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0-21]
조덕삼(趙德三, 1867-1919)과 이자익(李自益, 1879-1958)⑤
조덕삼 장로의 아들 조영호가 1926년 금산교회의 장로가 된 후 여러 해가 지나면서 일제의 감시와 억압이 점점 심해져졌습니다. 교회들은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강요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영호는 이에 응하지 않았기에 결국 일본 경찰에 끌려갔으며, 교회는 한 동안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동광학원도 폐쇄하고 학생들을 인근 초등학교로 편입학 시키게 되었지만 동광학원 건물을 야학당으로 사용하면서 글을 모르는 마을 부녀자들에게 글과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교인들과 마을 주민들의 의식을 고쳐나가기 위해 음력설 대신 양력설을 지키게 했고, 청년들에게는 농사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금산교회 신자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일제가 물러나기를 기도했습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교회당 문을 열게 되었고, 당시 조영호는 정치인들의 정치참여 권유를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교회를 섬기다가 194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부인 이영숙 권사는 전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아들 조세형이 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대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에는 언론인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4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조세형은 1999년 12월 금산교회에서 할아버지 조덕삼, 아버지 조영호에 의어 3대째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역임했고, 민주당 상임고문을 계속 역임해오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충격을 받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16일 만에 78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100년이 된 금산교회당을 1994년 당시 조세형 집사가 전라북도에 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해서 1997년에 문화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