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35/191120]‘방아쇠증후군’ 우정의 동반수술
여름-가을내내 고향집 본채와 사랑채 리모델링공사를 하는데, 시다바리(데모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해 본 삽질을 하느라, 제법 고생깨나 했다면 했다. 그런데, 무리를 해서인지 두어 달 전부터 양쪽 손을 쥐는데, 특히 가운데 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고 아프기까지 한다. 억지로 구부리려 하면 방아쇠를 당길 때처럼 튕기듯 펴지기도 하고, 뚝딱 뚝딱 소리까지 난다. 낮에는 증상이 좀 덜하나 새벽에는 특히 심하다. 아항, 이게 아버지와 형이 수술까지 한 ‘방아쇠 증후군(trigger finger)’로구나. ‘인간목수’ 친구의 병원에 또다른 친구의 문병차 갔는데, 여지없이 그렇단다. 손바닥을 조금 째 힘줄이 지나가도록 열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참에, 또다른 친구가 등장, 그 친구의 증상도 나와 똑같다. 둘이는 원장실에서 파안대소. “그럼, 우리 같은날 같이 하자” 약속했다.
보름 후, 같이 수술하기로 한 날이 어제. 마취주사 맞을 생각을 하니 너무 겁이 난다. 싫다. 생활에 아주 큰 불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지간하면 안하고 싶다는 우리의 의견을 ‘개무시’한 의사친구, 내비두면 힘줄이 굳고 손가락 관절염이 생긴단다. 매는 먼저 맞는 게 났다고, 내가 먼저 침상에 누웠다. 손가락 부위만 마취시키는 주사는 몹시 아팠다. 아-악 소리를 여러 번 지를 뻔했는데, 간호사들에게서 ‘원장의 겁쟁이친구’ 소리를 들을까봐 애써 참았다. 수술은 간단했다. 10여분, 손바닥을 찢어 꿰매는 듯했다. 바늘 넣다뺐다하는 느낌이 생경하다. 하여간 완료. 이어서 들어온 친구에게 “졸라 아프다” 겁을 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는 웃으며 “별 것 아니네” 눙을 쳤다. 비급여항목이어서 20만원을 넘는단다. 돈은 고사하고, 붕대로 칭칭 싸놓은 왼손에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밀려온다. 이것 참, 괜히 했나싶다. 이 손이 다 나으면 오른손도 해야 할 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있지만, 친구 따라 수술한다는 말은 금시초문. 뒤이어 수술실에서 나온 친구와 ‘붕대 손’을 내세우며 인증샷을 찍었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석 달도 넘게 고생하는 친구가 물리치료차 와, 1층 대기실에 고등학교 동창판이다. 철없는 놈들처럼 수다를 떨며 붕대손을 들어 사진도 찍는다. 옆방의 원장까지 합하면 네 명. 속없이 낄낄거리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경남호텔 옆 맛집골목에서 그 유명한 간장게장을 먹었다. 되게 비싸다. 중짜가 7만5000원. 졸지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며 투덜이스머프가 된 친구를 달래는 한 친구. “우천, 오늘 내일 이틀만 참자”.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 흐흐.
이틀마다 소독을 해야 하고 2주 후엔 실밥을 빼야 한다. 손을 주로 사용해 무리한 일을 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60대 이후 많이 발생하는 증후군이라 한다. 우리 몸의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까. 손톱 밑의 가시를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꼭 관리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자연스런 노후현상의 일종이랄 수도 있다. 어제 방영된 ‘인간극장’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제목이 ‘가을 깊은 그 남자의 집’이던가. 초등학교 정년퇴직한 68세 독신남성이 낯선 제천땅의 풍경에 반해 전원주택을 짓고 98세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야기이다. 무명의 화가이다. 그 할머니, 독감예방주사를 맞자니까 무섭다고 질색을 한다. 혈액검사도 그렇지만, 주사를 맞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나의 경우는 침은 대침을 맞아도 겁이 안나는데, 주사는 왜 그렇게 무서울까. 고교시절에는 주사 맞지 않으려 요령껏 도망을 다녔다. 침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주 소싯적부터 할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맞으시는 걸 많이 본 때문일 것이다. 피를 빼내는 부황도 무섭지 않은데, 병원 오는 것은 정말 싫다.
지난 3월 서울대병원에서 전립성비대증 수술을 했다. 막상 수술이야 마취한 상태에서 하니 아프고 무서운 줄을 몰랐다. 허나, 사전에 전립선암 여부를 가리는 조직검사(요도를 통해 전립선 조직을 찝개로 13번 떼어낸다) 등은 얼마나 아프던지. 같이 검사를 받던 50대 후반 남자는 아예 도망을 가버렸다. 그 좁은 오줌길로 줄을 집어넣어 작업을 하니 얼마나 죽을맛이었겠는가. 부디 아프지 말지어다. 허나 그게 인력으로 되는 일인가. 내 절친은 최근 위암2기 수술을 받아 위를 거의 다 잘라냈다. 항앙치료를 3주 간격으로 8번을 받아야 한다는데, 3주 끝났는데, 죽으면 죽었지 도저히 받지 못하겠다고 한다. 지켜보는 가족들이 얼마나 그 고통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저릅때기처럼 빼빼 마른 몸으로 그 독한 항암치료를 해대니(치료 후 나흘간은 아예 죽어 지낸다고 한다), 이제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다. 스스로 체력을 키워 하겠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참 이래저래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죽을 운명은 40에도, 50에도 죽는 것이다. 그러니 평균 생존율이 있지 않는가. 고등학교 졸업을 417명이 했다는데,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가 40~50명은 족히 되리라.
참으로 인생 무상이 아닌가. 요즘 고교동창 밴드에 낙엽을 “삶의 이정표”라고 쓴 경찰 출신 ‘늦깍이 시인’이 등장해 화제이다. 생긴 것은 삼국지의 장비 형상인데, 글은 나근나근 여고생같다. 언제부터 그렇게 시인의 감성이 잠재되어 있었는지, 아예 폭발지경이다. 친구들은 모두 “미쳤다” “믿을 수 없다” “어디서 베꼈지?” 이구동성이지만, 본인은 지레 못들은척 제 갈 길을 척척 가고 있다. 트랙터에 이어 2014년식 볼보 포크레인을 구입하는 정열을 보이고 있다. 친구들을 졸지에 모이게 하는 데도 타고난 재주가 있다. 다이내믹한 노후, 건강은 필수. 우리 모두 신경을 바짝 쓰자. 나는 고향집을 고쳐 고향을 지키겠다는 ‘40년 소원’을 푼 마당에, 15년째 먹고 있는 고질병‘당뇨와 고혈압’약을 끊고, 운동으로 대체해 볼 요량이다. 날마다 고향 뒷산을 더트며 하룰 2만보를 목표로 걷고 사색하고, 그 성찰한 바를 그게 우수마발牛溲馬勃일망정 기록으로 끄적거릴 생각이다. 독자가 비록 한 명일지라도(아내가 독자가 되면 좋으련만, 나의 글은 읽어볼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두 아들내외는 세대차이가 엄청날 것이므로 읽기를 강요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만만한 것이 언제나 만나도 좋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독자일 수밖에. 흐흐), 나는 계속 “나이므로” 쓰고 또 쓸 것이다.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진짜로 길이 남을 만한 에세이 한 편 쓸 수 있을는지. 아아, 세월이 간다. 가을도 가고 겨울이 바로 코앞이다. 옷깃을 여미며 동면의 계절, 우리 마음의 양식을 쌓자. 그게 우리의 자양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