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이 빙빙돌까?
원 성 호
관리기 엔진소리가 들판을 울리면서 자갈밭 흙이 좌우로 흩어진다. 기계라고는 하지만 소로 밭을 갈던 시절보다도 못하다.
그러나 어쩌랴 남의 손 안 빌리고 땅을 뒤집으려니 어쩔 수 없이 이 작은 기계에 의지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나는 기계 손잡이를 잡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작은 밭에 들깨 모종을 하기 위하여 땅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어질어질하다. 처음에는 현기증인줄 알았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본다. 그러나 어질어질한 증세는 계속됐다. 급히 관리기를 세우고 뒤로 물러섰다.
나도 모르게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가 했는데 순간 모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상태에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저만치서 무언가 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봤다. 넘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던 아내가 빙긋이 웃는다. 아니 내가 장난이라도 하는 줄 아나?
한동안 누어있으니 차츰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증세를 느끼기 시작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것이 처음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몸에 이상이 와서 그렇다고 생각지는 안았다. 다만 조금씩 어지러울 때 마다 ‘나이 탓인가? 나도 이젠 정말 늙었나?’ 하고 잠시 서글픈 생각을 떠올린 것뿐이었다.
그러나 느닷없이 넘어진 후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병원 내과를 찾았다.
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의사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처방전을 들고 단골 약국에 들어섰다. 나는 약사에게 내 증세를 이야기 하면서 처방전을 내 밀었다.
처방전을 들여다보던 약사가 말했다.
“이 약은 신경안정제 인데 처방에 의문이 듭니다. 이약 드시다가 효과가 없으면 이비인후과를 가 보세요. 제 생각에는 귀에 이상이 온듯합니다. 내과 의사들은 잘 모를 수도 있거든요.”
그 말에 나는 처방전을 도로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그길로 이비인후과로 직행했다.
그 때에서야 의사로부터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기능과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전정기능이 있다는 사실과 나는 지금 그 전정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이비인후과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을 복용해도 시원스레 어지럼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2주 간격으로 의사를 찾았지만 어지럼증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한동안 괜찮은 듯 하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어지럼증,
그날도 약 처방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서 십여 미터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중심을 잡으려고 했으나 몸이 오른쪽으로 돌면서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옆을 지나던 젊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긴 했으나 나는 서있기가 어려워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댁이 어디신지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가족에게 전화하면 곧 올 겁니다.”
나는 젊은이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젊은이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아내와 통화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잠시 후 아내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 달려왔다.
“나 병원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정신이 돌아오자 나는 아내를 대동하고 병원 문을 다시 들어섰다. 의사 앞에 다시 나가자 조금 전 일을 말하면서 정밀검사를 자청했다.
“약을 먹어도 증세가 여전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정밀검사라도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그러나 의사는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MRI를 찍어볼 수는 있지만 사진으로 판명하기 어려운 거라서요. 그래도 찍어 보시겠다면 찍어 보시지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의사가 탐탁치 않아하니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혹시하는 마음으로 MRI를 찍었다.
사진 판독결과 전혀 엉뚱한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지럼증과 관계없는 기억력에 문제가 되는 뇌 세포의 소멸 문제였다. 의사의 설명이 시작됐다.
“뇌 곳곳이 이렇게 비어 있습니다. 이는 뇌의 노화현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증세가 계속 진행되면 치매로 발전될 수도 있지요.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멍하니 의사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젊은 시절에 비한다면 기억력이 많이 나빠진게 사실 아니던가.
그날 강도를 높인 약을 다시 처방 밭았다. 어지럼증만 해도 적잖이 괴로운데 치매 가능성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뇌 전문의사도 아니면서 ..... 쳇.’
어느덧 어지럼증으로 병원 출입을 한 게 칠 개월 인가보다. 그동안 오직 한 의사한테만 계속의지하고 있었다. 아내가 말한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 보입시다.”
나 역시 동감이었다. 다음날 모 대학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병원 이비인후과에는 어지럼증 전문의만도 네 사람이나 따로 있었고 어지럼증 검사실이 별도로 있었다. 그 검사실에서 안구운동검사와 몸 균형 검사를 중점적으로 밭고 나서야 의사를 대면할 수가 있었다. 의사 소견은 이러했다.
“증세가 심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2주정도 약을 드리겠습니다. 이약 드시고 2주후에 다시 오십시오. 괜찮을듯하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그리고 청력이 좀 떨어지는데 평상시 느끼셨습니까?”
“아니요? 귀가 어둡다는 건 알지 못했습니다.”
“바나나와 오렌지를 많이 드십시오.”
그러면서 CD 한 개를 내주면서 말한다.
“안구운동과 중심잡고 걷기운동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수시로 따라해 보십시오.”
2주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거의 완치라는 결과를 들었다. 청력도 좋아졌단다. 세상에 이럴 수가 **병원에서는 7개월이 가도 차도가 미미했는데 단 2주일 투약으로 완치라니 정말 놀랍고 고마운 일이었다.
전문의의 위력을 크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날이후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처방해주신 약을 지금도 복용하고 있지만 어지럼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약도 서서히 줄여야 하지 않을까? 의사역시 그렇게 지시했으니까.
덕분에 바나나와 오렌지를 꽤 많이 팔아주고 있으니 미국 농민들 좋아하겠다. 그러나 바나나와 오렌지가 어디에 좋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뇌일까? 귀일까? (2012년4월1일 만우절)
첫댓글 남자분들은 네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삶이 쫙 펴진답니다. 어머니, 아내, 네비게이션, 네비의 딸
네비게이션도 여자인가요? 멍청해서 잘 모르겠습니다.허허
네비게이션 여자인거 모르셨습니까? 반드시 여자의 음성으로 들리잖아요? 하하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어지럼증의 원인이 하도 많아서....
네 아주 좋습니다.
네 병은 자랑하랐다고 하지요. 다행이시네요. 요즘 워낙 치매,뇌종증이 많아서요. 저희 조카며느리는 구정 전날 자기 방으로 자러간다고 하다가.
그만 팍 쓰러졌는데 벌써 인사불성-.K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달간 있는데도 병명을 몰라 서울대로 갔는데도 역시 병명을 모르고 혈청검사 미국가서 하랴
정신이 없습니다. 역시 인사불성-50도 안되었는데 -현대의학에서도 이렇게 모르는데가 아직도 많대요. 다행이시네요.건강하시길
저도 귀속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술까지 밭았다고 하던걸요.
그나저나 조카며느리 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젊은 분이 정말 안됐습니다. 환쾌하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