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씻기
박진희
간호대학에서 맨 처음 실습 시간에 배운 것이 '손 씻기'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또는 '반짝반짝 작은 별'등 20초 정도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며 미지근한 물에 비누로 거품을 내어 손가락마다 비벼서 손등과 손바닥을 구석구석 씻으라고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라며 손 씻기를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손 씻기를 강조한 이유를 나는 곧 알게 되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동안 또 다른 병원균에 감염돼 더욱 중증이 되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한 선배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던 손으로 무심결에 자신의 입 주위를 만진 후 바이러스인지 박테리아에 감염이 되어 한동안 앓아 병원에 나오지 못했다. 하마터면 그녀가 돌보던 다른 환자들도 전염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뇌의 압력을 내리는 수술을 했거나, 허파에서 피나 공기를 빼내는 튜브를 매달았거나, 기관절개로 호흡이 어려운 환자들을 돌볼 때는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도 긴장이 되어 숨도 죽여가며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데 충실해야 한다. 환자들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병균을 옮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환자 방에 들어가기 전, 들어간 후, 일회용 장갑을 끼기 전, 벗은 후에도, 일단 무엇을 만지면 무조건 씻으라는 교육이 거듭되었고 하루에 백 번도 훨씬 넘게 씻곤 했다. 그런 날은 손이 얼얼하고 건조해졌지만, 핸드크림을 바르고 자면 신기하게도 밤 사이에 회복이 되어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손 씻기에도 역사가 있다. 1847년, 헝가리 출신 의사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임산부들이 출산하면서 산욕열로 사망하는 확률이 현저히 높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관찰한 결과,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패혈증 (Sepsis)으로 죽은 시체들을 부검하고는 바로 분만실로 직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체를 만졌던 손으로 출산을 돕고자 산모들의 자궁에 손을 댄 것은, 의도하지 않은 살인과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해, 산모들은 끔찍한 분만의 고통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병원균에 전염되었고, 그 죽음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절규했던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부검을 마친 인턴들에게 염화석회액으로 손을 소독하라는 규칙을 만들어 실시했고, 산모들의 사망률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전염의 경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는 자신의 논리를 뚜렷하게 증명해 보이지 못했다. 의학계뿐 아니라 그의 아내조차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고, 감옥에 갇혀 간수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패혈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아이러니다. 손을 씻는 게 종교도 아닌데 그는 마치 순교자처럼 희생되었다.
그 후 루이스 파스퇴르가 <병원균학>이란 저서를 통해 제멜바이스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간호학의 선구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크리미아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면서, 병원의 청결과 손 씻기로 감염을 예방하는 정책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부다페스트에 세워진 제멜바이스 대학에서는 그의 연구를 계승한 최첨단 손 씻기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손 씻기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보건기구 (WHO)와 미국 질병관리본부 (CDC)에서 적극 나서기에 이르렀다. 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질병의 발생과 전염을 막을 수 있으므로 경제적이며 효율적이라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 추세라 참 다행스럽다.
2009년 신종플루가 퍼졌을 때나 2015년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위협했을 때 세계가 두려움에 떨었다. 또 홍콩에서 조류 독감 보균자와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거나 그 버튼을 만진 사람 모두가 전염되어 사망한 일도 있었다. 조류 독감, 돼지 독감, 낙타 바이러스 등등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손을 깨끗이 씻었더라면 감염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생활 속에서 전염병을 예방하는 에티켓이 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소매를 들어 잽싸게 고개를 약간 숙여 몸을 옆으로 돌려서 입을 가린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옷소매로 누르고 문을 밀어 열 때 손이 아닌 팔꿈치, 무릎 등 몸의 다른 부위를 쓰는 것이 좋다. 차나 가방에 손 청결제(hand sanitizer)를 상비해 두고, 사람과 접촉이 있었거나 공용으로 쓰는 물건을 만진 뒤에 사용하는 습관을 들인다. 메르스 사태 이후, 공공장소에 손 청결제가 비치된 것은 아주 바람직한 변화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나는 손 씻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환자들이 손을 씻으면 병원에서의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을거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병원에서 후원하는 Evidence Based Practice 리서치로 몇 달간 멘토와 함께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미 코마상태인 환자를 제외하고 의식이 있는 환자들들과 그 기족들에게 손 씻는 교육을 하고, 그들의 손에 병원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주는 일이었다. 넉달 동안 교육을 실시한 우리 병동이 다른 병동에 비해 감염 사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환자들이 손을 씻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입증하기가 어려웠고, 병원 전체에 홍보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아쉬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의 손을 씻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손은 씻는다고 닳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손을 씻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20초, 하루에 오십번 씻으면 16분이고, 백 번 씻는다면 33분 정도 걸린다. 단순히 손 씻는 일이지만,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의 의무이며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손을 씻는다는 것은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의 의미로서, '손 씻기'는 손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깨끗이 하는 의식인 것이다.
<한국산문 12월호, 2018> 한국산문 수필 공모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