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안톤 체호프 소설 『체호프 단편선』
단편소설의 칼날
우리는 안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닌 것을.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세상의 중심임을. 5살 아이에게 어른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고, 나는 현재 이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2살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세상 모든 일에 불만이고 정의는 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80살 노인이에게 그 밑 나이들은 다 어린애이다.
우리는 안다. 우리는 늙고 죽는다.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이 우리 감정의 무지개를 이룬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죽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지금 현재 이 상태가 영원할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고 이 것을 지켜내려 착각하고 고집부리고 아등바등하며 산다.
소설은 허구를 만들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낸다. 장편 소설은 플롯이 느리다. 독자로 하여금 세상의 중심이 나이고 지금 상태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란 착각을 하게 한다.한다. 단편 소설은 플롯이 빠르다. 과정은 압축적으로 결과는 빠르게 보여준다. 독자가 뒷장을 읽으며 앞장의 구체성을 잊어버리기 전에 결론을 내 버린다. 그래서 좋은 단편 소설은 촌철살인의 각성과 도끼로 살얼음판을 박살내는 흥분과 갈증나는 몸을 적시는 시원한 물과 같은 존재가 된다.
체호프(1860~1904)
는 톨스토이가 극찬한 러시아의 단편소설의 대가다. 그는 러시아 남부 아조프해 항구도시 타간로크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농노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 시민의 권리를 산 사람이었다. 부모는 식료품점을 운영했고,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집은 가난했다. 체호프는 어렷을 적부터 아버지 일을 도와야 했고, 그래서 유급되기도 했다. 16세 때 아버지가 파산하여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이사갔지만, 그는 고향에 남아 고학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879~ 1884년까지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다니면서 생계형 글쓰기를 하였다. 1880~ 1887년 까지 그가 쓴 소설과 콩트, 만평이 500여 편에 달했다.
그는 문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 작가로서의 길을 가게 되는데, 그 계기가 1888년 중편 소설 『광야』였다고 한다. 1884년 개업 후에도 검열을 피하면서, 또한 잡지사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며 창작 활동을 계속 해 온 그는 두 번의 객혈과 건강악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1890년 4월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났고, 1892년 모스크바 근교 멜리보호에 정착했다. 의사로서 당시 그는 전염병 방역과 빈민 구제 사업등 지역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행하였다. 1898년 결핵의 악화로 남부 휴양지 얄타로 이주했고, 1904년 까지 마지막 남은 자신의 생명력을 창작활동에 매진했다.
번역자 박현섭은 체호프가 ‘기 드 모파상과 함께 현대 단편 소설의 형식을 확립한 인물’이라고 평한다. 그의 소설은 ‘지극히 일상적인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하고 모순된 반응에 주목했고’, ‘플롯이 느슨하고 그 결말이 미결정의 상태로 끝나게’한다. 그는 ‘차갑지만 단호하지만 부드러웠고’, 그의 ‘익살 뒤에는 천근 같은 우수가 기대어’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페시미즘 속에 질긴 낙관이 숨쉬고’있다고 말한다.
주교(1902년 작품)
성직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그는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하루종일 바쁘다. 일상의 종교 의례를 집전하고, 소소한 그러나 민원인에게는 중요한 사무를 처리한다. 성당의 후원을 받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가 처리할 성당의 행정 업무도 만만치가 않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그의 지위가 높기에 어머니 조차도 그를 어려워 하고 친모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며칠 계속 몸이 안 좋았고 결국 그는 죽는다. 장티푸스에 걸린 것이다. 그는 티푸스 상태에 정신이 혼미헤지는 상황에서 ‘소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즐겁게 들판을 뛰어가고, 그의 위로 넓은 하늘이 펼쳐치는 광경을 그리고’있었다. 그는 죽었다. 한달 후 새 주교가 임명되고 사람들은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오직 고인의 늙은 어머니만이 손자들에게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들인 주교에 대해 가끔 이야기할 뿐이다. 그 녀는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조심했고, 심지어 그녀도 모든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다.
올해 환갑인 나도 정말 턱없이 젊은 나이임에도 지나온 내 삶이 조금은 버거웠고, 조금은 의무감이었으며 조금은 눈치를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주체적으로 주도했다기 보다는 끌려다녔고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한 것은 분명했다. 남은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떠해야 할까? 결국 나도 주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그래 아주 가끔 일탈을 하면서 저 자유로운 들판과 허공과 하늘을 바라보며 살 지어다. 체호프도 이 소설을 쓸 때, 삶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일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해 내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계속 이어진 몸의 고통을 누구에게 말하랴. 주교도 체호프도 나도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내기(1888년 작품)
어느 사교 모임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다. 어느 한 변호사가 사형보다 살아있는 것이 아무래도 좋기에 종신형을 선택하겠노라 한다. 모임의 주최자인 은행가는 평생 갖혀 사니 단번에 사형시키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했더. 그는 젊은 변호사에게 그럼 거액의 돈을 줄테니 한 5년 감금된채 살아보라고 말한다. 변호사는 오 년이 아니라 십오 년을 살겠노라고 말한다. 그렇게 내기를 하게 되었는데... 변호사는 감금된 십오 년 동안 결과적으로 인류가 쌓아 놓은 모든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섭렵한다. 그 사이 은행가는 파산하고 변호사에게 줄 내기 돈도 없었다. 그는 변호사를 죽이려 계획하고 그가 감금된 방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편지를 발견하고 읽게 된다. 변호사는 스스로 감옥에서 나갈 것이며 거액의 돈을 받지 않겠노라고 밝힌다. 은행가는 깊은 자기 혐오감에 휩싸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변호사는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변호사가 15년 동안 해냈던 일이 지금의 AI가 해내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의 시대, AI가 펼쳐놀 미래의 시대를 상상하기 바쁜 이 시대에 이 소설은 하나의 지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 것이 인간임을. AI가 결국 우리 삶의 포지티브 정답을 찾으려 계속 시도를 한다면, 우리 인간은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당당히 확률과 통계가 보여주는 대세를 벗어나 존엄과 자존심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이런 변수도 AI가 상수로 받아들이는 획기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겠지만 말이다. 변호사의 결론은 이런 것에 기반한다. 당신들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도 결국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죽음은 그대들을 마루 밑의 쥐새끼들처럼 지상에서 쓸어 버릴 것이다’. 80 노인 트럼프도 죽을 것이고, 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이란의 어린 아이까지 죽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 이 말이다.
책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