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 명상에 도움이 되는 책
*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중
13. 담론談論山
(신영복, 돌베개, 2015)
1. 『시경』
1)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다.
2)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
시는 가장 개인적인 언어로, 가장 심층적인 세계를 가장 무책임하게 주파하는 장르다.
시는 세계를 인식하고 재현하는 상투적인 방식을 전복하고 상투적인 언어를 전복하고 상투적인 사유를 전복하고 상투적인 언어를 전복하는 것, 이것이 시인의 카타콤calacomb 이며 그 조직 강령이다.
3) 『시경』은 북방문학으로 4언체이다. 노래로 치면 4분의4박자 행진곡이다. 『시경』의 시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사실성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미라고 한다. 『시경』에 실린 300여 편 중에서 그 절반인 150편이 '풍風'이다. '풍'은 황하 유역 15개 제후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집한 것이다. 이 '풍'의 '사회미'는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 삶의 정서이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이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한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
시는 진정성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자기도 감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화려한 그릇에 담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공감하지 못한다.
5) 시 한 편이 담고 있는 세계는 매우 크다. 시는 굉장히 큰 세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시 300수를 암송하게 한다고 한다. '시'가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이고, 시를 암기한
다는 것은 시인들이 구사하던 세계 인식의 큰 그릇을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6) 유연한 시적 사유는 비단 세계 인식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대단히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시적 레토릭rhetoric(수사법)을 다양하게 구사하
고 있다. '귀가 어둡다'라고 하고, '눈이 높다'라고 하는 경우다. 이러한 시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
7) 우리가 갇혀 있는 협소한 인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시경』의 사실성과『초사』의 낭만성,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것이 공부이다. 그러한 공부가 근본에 있어서 시적 관점, 시적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
2. 『주역』
1) 『주역』은 세계의 운동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서술로 보는 것이 옳다. '추억'은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통틀어 말하는 점은 사실 상, 명과 다르다. 상품은 관상·장·수상으로 이미 정해진 운명을 보는 것이다. 명은 사주팔자이다. 타고난 운명, 이미 정해진 운명을 읽으려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점은 정해진 운명을 읽으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판단을 돕기 위해 하는 최후의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역」을 접서로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서로도 읽지 않아야 한다.
2)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주역」의 독법이다. 『주역』의 독법이란 괘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그 독법이 관계론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주역』에는 64개의 괘화가 있다. 이 말은 64개의 패턴으로 묶어놓았다는 말과 같다. 64괘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3) 『주역』은 위, 비, 응, 중이라는 네 가지 독법이 있는데, 관계론을 조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면 다음과 같다.
① '위'는 효의 자리이다. 효를 읽을 때는 먼저 그 자리[位]를 읽는다. 효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을 즉위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실위했다고 한다. 효자체의 존재성보다는 효가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그래서 관계론이라고 한다. 존재보다는 관계를 중시한다. 역지사지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처지를 바꾸면 생각이 달라진다. 위가 그만큼 중요하다.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이다. “70%의
자리에 가라!" 나머지 30%의 여유', 이 여유가 창조성으로, 예술성으로 나타난다. 알튀세르의 비유가 신랄하다.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동상이 아니었다.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② '비'는 바로 이웃하고 있는 효와의 관계를 보는 것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부모, 형제, 친구, 어제, 내일,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바로 이웃하고 있는 것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③ '용'은 관계성의 폭을 조금 더 넓게 보는 것이다. 관계의 범위가 시공간적으로 더 확장된다. 관계의 범위를 키우면 그만큼 더 힘이 생긴다. 그래서 응을 '덕을 쌓는다', '인심을 얻는다'라는 뜻으로 읽는다.
④ '중'은 관계성이 극대화 되는 자리이다. 그래서 '중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가운데란 앞뒤, 좌우로 참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다. 생명의 본질이 안정감이라고 했을 때 중간이 가장 안전한 자리이다. 안정감은 우호적 관계 속에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중간만 가라', '모나면 정 맞는다'라는 말들에서 배울 일이다.
4)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은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이다. 이 덕목 중에서 '겸손'이 단연 관계론의 최고 형태이다.
"땅 속에 산이 있으니 겸손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많은 데를 털어 적은 데에 더하고 사물을 알맞게 하고 고르게 베푼다." "겸손은 높이 있을 때는 빛나고, 낮은 곳에 처할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
한다.” 그러기에 겸손은 "군자의 완성"(君子終)이다.
3. 『논어論語』
공자가 14년간의 망명(이때 공자를 수행한 제자는 자로, 안회,자공 세 사람이다)을 끝내고 68세에 고향에 돌아와서 7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5년 동안 학사를 세워 제자들과 만난다. 『논어』는 망명 중에 그리고 망명 후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이다. 물론 공자 당시에는 「논어」라는 책이 없었다. 공자 사후 100년 이후에 공자 학단에서 만든 책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2) 공자는 '인'이란 '근자열 원자재라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다. 공자 어록에서 많이 알려진 명구는 '기소불욕물시어인, 즉,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마라이다. 또한 공자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말로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다(성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공자의 '화동담론은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
화 줄여서 붙인 이름으로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면,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이다. 따라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비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평화공존을 주장하고 흡수합병이라는 패권적 국가 경영을 반대하는 유가 학파의 정치사상이 화동 담론이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배병삼, 사계절, 2014)
1) 공자는 사람다움을 인이란 말로 요악했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 '논어'라고 이름 붙였다. 배워야만 사람인 것이다. 인간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를 살았던, 간단히 지금부터 2500년 전의
사람이다. 노나라의 도읍인 곡부 근교에서 태어나 73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어릴 때 이름은 구, 즉, 공구이고 어른이 되어서 공식적인 이름인 자는 중니다.
2) 『논어』전체(총 20편의 서론은 편이다. 주희는 이 편을 두고 "학문에 들어가는 나들목이요, 덕을 쌓아두는 마당"이라고 하여 그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공자 말씀하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하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노엽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人不知而不慢, 不亦君子乎"
3) 모든 일에 자기 책임을 앞세우는 이가 군자요,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자는 소인이다.
일을 행함에 사양과 배려를 앞세우는 사람이 군자요, 자기 이익부터 앞세우는 사람은 소인이다. 인자는 '베푸는 사랑'을 즐기며 살고 지혜로운 자는 '사랑의 의미를 안다.
4. 『맹자』
1) 맹자는 7편 261장, 3만 5천 자 가량 된다. 병자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만남이다. 양과 소를 바꾼 이야기 (맹자가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나라 왕을 찾아가서 자기가 들은 소문을 확인
하는 이야기)를 통해 왕이 신하에게 혼종하기 위해 끌고 가는 소는 놓아주고 그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은 '본 것'과 ‘못본 것'의 염청난 차이, 즉, 생사가 갈리는 차이이다. 본다는 것은 만남이다. 만남은 곧 '관계'이다.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이다.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이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의 연대이다. 관계론의 실천적 버전이 연대이다.
2) 공자의 핵심이 '인'이라고 한다면 맹자의 핵심은 '의卷’라 할 수 있다. 『맹자』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분은 민본사상이다. 진정한 즐거움이란 독락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어야 하는 여민락이 곧 민본사상이다.
3) 맹자』의 사상과 인간을 알 수 있는 예화로 활쏘기 얘기가 있다.
활을 쏘아서 과녁에 적중시키지 못했을 때는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부중, 적중하지 못한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아야 한다
반구저기는 엄정한 자기반성의 자세가 맹자에게 있다.
5. 기타
1) '사이 존재'라는 개념이 있다. 시간, 인간, 공간 등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사이[]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2)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한 말이다.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3) 대상과 필자가 어떠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가가 결정적이다. 이를테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는 한마디로 관계없음'이나 마찬가지다. 대상과 필자의 혼연한 육화없이는 대상을 인식하고 서술할 수 없다. 객관은 뒤집으면 관객이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 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식이란 주체와 대상의 엄숙한 혼혈 의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관계 없이 인식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4) 잘 안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한다. 잘 알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한다. 관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관계가 애정의 수준일 때 비로소 최고의 인식이 가능해진다.
애정이야말로 인식을 심화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쑥'과 '잡초'의 차이는 이름에 있다. 쑥은 이름이 있는 풀이고 잡초는 이름이 없는 풀이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대상이라는 뜻이다.
관계와 애정 없이 인식은 없다. '관계와 인식'의 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인식의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