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삼년산성
보은 원정리 느티나무
굼틀굼틀-.
원정리 느티나무를 막 떠나려는데, 하늘이 왠지 수상합니다. 하늘엔 짙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윽고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집니다. 어렵쇼? 벼알이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벌판마저 날씨의 심술을 걱정하는지 움직임 없이 조용합니다.
첫 방문지인 보은의 삼년산성까지만 해도 가을 햇살이 따갑게 쏟아졌습니다. 대장님이 산성의 돌밭 위에 '학동들'을 앉혀놓고 열과 성을 다해 한국의 산성에 대해 설명할 때 여성 모놀님들은 고운 피부가 행여나 타질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토끼여행님, 길바트님, 아낙수나문님, 휘리릭님 등은 성 아래 나무그늘에 들어가 먼 발치로 열강을 들고 있었구요.
온갖 산성 정보를 수첩에 빼곡이 써온 대장님은 중국과 한국의 차이, 삼년산성의 유래와 축성과정, 돌의 특성과 갯수, 삼국통일의 비결, 당시의 동북아 정세, 석성이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창공의 태양처럼 맹렬하게 이어졌습니다.
강의 내용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여성 모놀들은 여전히 피부를 더 걱정하고 있는 듯하군요. 옆지기 제암산도 차양 넓은 모자를 차 안에 두고 온 걸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덥다덥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저 엄살만은 아니었지요.
두 번째 방문지인 임한리 소나무숲에 이르자 무더위가 많이 가신 듯했습니다. 구름이 끼어서였지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가운 햇살을 받았던 터라 구름들을 동원해 햇빛을 가려준 하늘이 고마웠습니다. 역시 손님대접을 한다 싶었지요. 조금 뒤에서 아시겠지만, 손님대접이 너무 극진해서 탈이긴 했습니다만.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숲속 정자 옆의 황토구슬통에 맨발로 들어가 발마사지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명가수 덜깬주님의 노랫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고아하게 만들줍니다. 숲 옆의 드넓은 밭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꽃들과 야무지게 여물어가는 대추알들이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군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단지님 댁이 있는 상주의 화동면에 접어들자 기어코 구름이 빗방울을 쏟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빗방울은 차창 밖이 안 보일 정도로 삽시간에 굵어졌습니다. 과공비례라더니 하늘의 손님대접이 너무 극진했던 걸까요? 걱정이로군요.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는데…. 무엇보다 단지님이 난감하실 듯합니다.
단지님댁 창고 바베큐 파티
아니나 다를까. 단지님 댁에 도착했더니 청승맞은 가을비가 마구 쏟아졌습니다. 분위기도 어수선해졌구요. 일부 모놀님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간단히 수인사를 한 뒤 야외 솔숲에 차려진 바베큐 점심상들을 가건물 창고로 옮기느라 부산합니다. 일손이 많으니 그 많은 탁자와 의자가 순식간에 옮겨지는군요.
그리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니 천국이 따로 없네요. 틀에 박힌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숨통을 확 틔워줄 만큼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솔숲을 오른쪽에 두고 황토흙집이 아담하게 앉아 있고, 그 앞에는 크고 작은 옹기들이 어깨를 비비며 서 있습니다. 닉네임이 왜 단지님인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집의 앞뒤에는 산과 들과 밭이 적당히 섞여 있어 평화로워 보입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얼마나 기분 째졌겠나 싶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창고 안 바베큐 파티는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한쪽에선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지고, 임시변통한 판자밥상 위에는 배추 등 각종 무공해 농산물이 가득 올라와 있습니다. 여기에 막걸리와 포도주, 소주같은 음료도 풍성하게 곁들여졌습니다.
배가 고파서 더 그럴까요? 창고 안 파티장은 활기로 넘칩니다. 역시 먹고 마셔야 신나는 모양입니다. 웃고 떠들며 돼지고기구이를 볼이 터지도록 밀어넣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닙니다. 밥솥 안에서 모락모락 김을 품어올리는 쌀밥 맛도 그만이군요. 게다가 그 사이에 비까지 그쳐줍니다. 하늘이 아직도 쪼깨 수상하긴 하지만요.
소나기 내리는 포도밭 사랑 "포도알 같은 자줏빛 사랑을 드려요!"
대장님과 단지님의 바깥양반이 오늘의 본행사격인 포도따기를 위해 앞장섭니다. 아기자기한 들길을 걷고 야트막한 산길을 넘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포도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곳저곳의 포도밭엔 보랏빛 포도알들이 하얀 종이 안에서 익을 대로 익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단지님의 포도밭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하늘은 무서운 기세로 비를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천둥소리까지 요란하군요. 모놀님들은 후다닥 포도밭의 비닐 햇볕가리개 밑으로 도망치듯 들어갑니다. 폭이 두어 뼘 될 듯한 비닐 햇볕가리개가 요긴한 대피처 구실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도 가위로 한 송이 한 송이 포도를 따보지만, 워낙 빗방울이 요란하게 내려 쉽지가 않군요. 너나없이 앉거니 서거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애꿋은 포도알만 입 안에 밀어넣고 있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야속한 비는 그칠 줄 모르네요. 결국 '퇴각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일부는 걸어서, 일부는 차를 타고 단지님 댁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아무리 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즐거운 사람은 그저 즐거운가 봅니다. 트럭 짐칸에 올라타 귀가하던 길에도 김사랑님은 '야호!'를 내지릅니다. 평생에 이렇게 재미있는 차는 처음 타본다면서 말입니다. 비포장 시골길이겠다, 트럭 위로 비는 내리겠다 신이 절로 난다는 겁니다. 이색경험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 틈에도 대장님은 동영상 촬영에 바쁩니다. 프로근성이란 이런 건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는 하늘과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네요. 실내로 들어가면 비가 개고, 밖으로 나오면 비가 쏟아지고.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잘 치는 상주 하늘입니다. 비움님이 즐겨 쓰는 표현처럼 처마 밑에선 몇몇 모놀님들이 '비가 긋기'를 기다립니다. 방 안에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닥속닥 뭔가를 소곤거립니다. 바깥 풍경을 구경하던 조아님은 닉네임처럼 비가 와도 기분은 그저 좋은 모양입니다.
창고특설무대에서 펼쳐진 장기자랑 공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장기자랑시간이었습니다. 다시 창고에 모여든 모놀님들. 아까 점심을 먹었던 간이 판자밥상은 그럴듯한 관람용 의자로 바뀌었습니다. '특설무대'에는 전자 피아노 한 대가 놓였구요. 뭔가 멋진 판이 한바탕 열리려나 봅니다. 그 사이에 뒤에선 단지님 가족과 지인분들은 포도상자에 포도를 담느라 분주합니다. 화동면장님도 오셔서 동참하시네요.
노는 데는 역시 법명 스님이십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얹자 마자 주옥같은 음들이 콩알처럼 톡톡 튀어 나옵니다. 스님들은 목탁만 치시는 줄 알았는데, 뜻밖입니다. 게다가 표정까지 변화무쌍하여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줍니다. 사람은 역시 배 부르면 놀고 싶은가 봅니다. 놀다 보니 창고 안은 흥겨움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개인적으로 이날 장기자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똥구랑땡님의 색스폰 연주였습니다. 묵직한 체격에서 흘러 나오는 묵직한 음향을 듣다 보니 가슴엔 어느새 감동으로 찰랑찰랑 넘치는 거지요. 배운 지 2년밖에 안됐다는데, 솜씨는 일품입니다. 나도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며칠 동안 맹연습을 했다는 신데렐라양의 춤솜씨도 공연장을 신선하게 해줬습니다. 역시 대장님의 따님답군요. 풀빵님은 오카리나 연주로 분위기를 바꿔줍니다. 교회에서 두 달째 배우고 계시다는데, 짧은 시간치고는 연주실력이 제법이시네요. 다음 답사 때는 기량이 훨씬 좋아져 있으리라 믿습니다. 뭐토스님의 시낭송은 말할 필요도 없이 고고한 품격을 선사합니다.
이번 답사 중에 인상깊게 배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천진무구함이 그것이지요. 비가 내리면 대개 기분이 축축해지기 마련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신바람나는 분들이 계셨기에 여행길이 더 즐겁고 알찼다고 생각합니다.
웃음을 얼굴에 올려놓고 그저 즐거우신 김사랑님, 늘 익살과 재치로 주변을 즐겁게 해주시는 들바람님, 진한 부산 사투리로 상큼함을 안겨주시는 레오님(인덕원참새님과 혹시 자매간 아니신지?. 워낙 닮아서^^), 말수를 아끼면서 묘하게 시선을 던지는 포비님 등등이 그렇습니다. 단지님과 그 바깥양반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두 쪽 나도 끄떡않을실 만큼 편안한 표정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성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은 정녕 아름답습니다.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그를 이용하는 지혜와 재치가 돋보여서지요. 바람에 휩쓸려가지 않고 그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오르는 새처럼 말입니다. 빗속의 여인들은 그래서 더 인상깊습니다.
어찌 빗속의 여인들뿐일까요? 빗속의 남정네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길.^^
그대의 함박웃음은 황금빛 벌판처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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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부끄..부끄..^^ 저랑 참새언니랑 닮았다는 소릴 모놀 답사가면 마니 듣지만 ...어찌 제가 참새언니 따라가리오...이번 답사때 비움님한테 사랑고백까지 하시더만 우찌 비움님은 쏘옥 빼셨을까?..ㅎㅎ 비 피한다고 비닐하우스안에서 비움님한테 바치는 노래 감동이였습니다...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감솨~~
레오님의 웃음은 백만불짜리입니다^^. 행복하게 사실 수밖에 없어요^^^^
포도밭에서 트럭타고 내려온 ***는 장기자랑 공연 도중 버스로 이동... 잠시 기절 했다는 사실(트럭 꽁무니에서 롤러코스터 타는줄 알았어요)
그랬어요? 그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겠네요.^^^^^^^
닉네임처럼 늘 행복하세요!
정감있는 후기 잘 보고 갑니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타님의 후기는 즐거운 추억거리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하는 장기가 있으십니다. 웃으면 복이와요. ㅎ ㅎ ㅎ
앞뒤 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이번엔 대화룰 많이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죠. 별꽃님은 닉네임이 아주 시적이십니다.
애플맘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으네요...즐거운 답사 후기 잘보고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즐거운 나날 되세요!!
레오 웃음 백만불짜리네..뒷배경도 끝내주고... 대타님 후기 참 정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고운님도 늘 웃고 사시죠?
역시 대타님의 글....답사후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타님
저야 말로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길 되게 해주셔서.
대타님의 글을 마치 소설 읽듯이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번에 얼굴로만 뵈왔는데, 다음번에는 대화를 많이 나누도록 하십시다.
그날의일들이 비디오 보는거 같네요^^ 반나서 반가워요^^
저 역시 반갑습니다. 늘 좋은 나날 되시길!
정감이 가는 푸근한 후기 잘 읽고 갑니다. 자주 모놀하시기를 바라면서.....이만...총...총...ㅎㅎㅎㅎㅎㅎ
김밥 고맙게 먹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긴 이름은 잘 못 외우는데, 아낙수나문님의 이름은 잘만 외워지니, 왜일까요?^^
늘 대타로 나오셔서 홈런 치시는 대타님의 낙천적이신 모습 너무 좋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드님과 포도빛 옷을 입고 포도밭 나들이 나서셨는데, 보기 좋았습니다. 아주머니의 센스와 배려가 돋보입니다.
바른생활표본인듯한 이미지에....늘, 웃음을 머금고 있는 표정이 아주 좋습니다요... 버스에서의 요구사항을 못들어줘서 미안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요...그럴려면 자주 나오셔야 될껄요...ㅎㅎㅎ^^*
김사랑님 노래는 살아생전에 꼭 듣고 말겨!
김사랑님 노래 하나 올려 드릴까요? 대타님~~~ 그러시려면 자주 나오셔야 해요==3=3
대타님 만나뵙게 되어 너무 반가웠어요...노래도 잘하시던데요..글도 잘 쓰시고 모놀의 재주꾼 또 한분 탄생이옵니다..^^
캬아~~..역시나 환상적입니다~~...대타님은 늘 새로운 여인을 찍으시는 군요~~ㅋㅋㅋ...너무 멋져요~~ㅎㅎ
망각의 은혜를 듬뿍 받은 비움이는 대타 님같은 학구파가 계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해롱해롱 가물가물했던 기억을 요렇게 칼칼하고 담백하게 후기로 엮어주시니 앉아서 밥상을 받는 기분이에요. ㅎㅎㅎ 비닐하우스에서 불러주신 노래 "캬~"였습니다. 그런 것은 물증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시커먼 애들 풀어 완벽하게 단속시켰는데,,,,,저 잘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