斑騅送陸郎
육랑(陸郞) : 육(陸)은 육(六)의 대자(大字)로, 곧 육랑(六郞)이라고 불렸던 당(唐)나라의 미남 장창종(張昌宗)을 가리킨다. 그가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총애를 받자, 양재사(楊再思)가 “사람들은 육랑의 얼굴이 연꽃과 같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연꽃이 육랑을 닮았지 육랑이 연꽃을 닮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人言六郞面似蓮花 再思以爲蓮花似六郞 非六郞似蓮花也]”라고 아첨을 떨었던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卷90 楊再思列傳》
육랑(陸郞) : 기녀(妓女)의 정랑(情郞). 즉 풍류인(風流人)을 가리킨 말이다.
반추의 어느 곳에 육랑을 바라볼꼬 / 班騅何處望陸郞
《古樂府 神弦歌 明下童曲》에 “육랑은 얼룩말을 타고 …… 문을 바라보고도 돌아오지 않는다[陸郞乘斑騅 …… 望門不欲歸].” 한 데서 온 말인데, 혹자는 여기의 육랑을 진 후주(陳后主)의 압객(狎客)인 육유(陸瑜)였다고 하나, 자세하지 않다.[주-D004] 용정(龍庭) : 흉노(匈奴)을 말함. 전하여 여기서는 흉노의 땅을 가리킨다.
육적(陸績) : 삼국(三國) 시대 오(吳) 나라 사람으로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는데, 그가 6세 때에 원술(袁術)의 집에 갔다가 그 집에서 귤(橘)을 내오자 귤 3개를 품 안에 싸가지고 와서 모친께 드린 고사가 있음. 《三國志 吳志 陸績傳》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의 효자(孝子) 육적(陸績)이 나이 6세 되던 해에 한 번 원술(袁術)을 찾아가 알현했는데, 이때 원술이 귤을 대접하자, 육적이 귤 세 개를 몰래 품속에 넣어두었다가, 떠나려고 절을 할 때에 그 귤이 땅에 떨어지므로, 원술이 말하기를 “육랑은 남의 집에 손님이 되어 몰래 귤을 품속에 감추었단 말인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하자, 육적이 무릎을 꿇고 대답하기를 “돌아가서 어머니께 드리려고 하였습니다.[欲歸遺母]”라고 하니, 원술이 그를 대단히 기특하게 여겼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57 吳書 陸績傳》 여기서는 저자 자신은 귤이 있어도 부모님께 가져다 드릴 수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이때 저자가 유자(柚子)를 얻었으므로 이것을 육적의 귤에 빗대서 한 말이다.
마힐의 시는 본래 감동이 있었고 / 摩詰詩篇元有感
육랑의 심사는 안정되기 어려웠지 / 陸郞心事更難平
‘마힐’은 당(唐)나라 시인 왕유(王維)를 가리키고, 그의 시란 〈칙사백관앵도(敕賜百官櫻桃)〉를 가리킨다.
육랑(陸郞)의 …… 어려웠지 : ‘육랑’은 송(宋)나라 시인 육유(陸游)인데, 여기서는 그가 지은〈한영원중초목(閑詠園中草木)〉에서 앵두를 노래한 것을 말한다.
혜자처럼 이내 흰 나귀 타고 가고 / 惠子驢仍白
육랑처럼 다시 얼룩말을 타고 가리 / 陸郞騅更斑
혜자(惠子)처럼 …… 가고 : 두보의 〈송혜이귀고거(送惠二歸故居)〉에 “혜자가 야윈 흰 망아지 타고서, 병든 몸으로 계곡으로 돌아가네.〔惠子白駒瘠, 歸溪唯病身.〕라고 한 말에서 인용하였다.
육랑(陸郞)처럼 …… 가리 : 고악부(古樂府) 〈명하동곡(明下童曲)〉에 “육랑은 얼룩말을 타고〔陸郞乘斑騅〕”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육랑은 풍류객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육랑은 한(漢)나라의 육가(陸賈)라고도 하고, 진 후주(陳后主)의 압객(狎客)인 육유(陸瑜)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금옥처럼 온화한 육씨란 선비 / 溫溫陸郞金玉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