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의 눈물 !
아내의 죽음을 슬퍼함(悼亡詩)
荏苒冬春謝(임염동춘사)-세월은 끊임없이 흘러 겨울 봄 바뀌어
寒暑忽流易(한서홀류역)-추위와 더위가 문득 흘러 바뀌네.
之子歸窮泉(지자귀궁천)-그대는 황천(黃泉)으로 돌아가니,
重壤永幽隔(중양영유격)-깊은 땅이 저승길을 가로 막는 구려
私懷誰克從(사회수극종)-내 슬픔, 누가 따를 수 있으리오?
淹留亦何益(엄류역하익)-그대 없는 이 세상에 오래 더 머문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僶俛恭朝命(민면공조명)-부지런히 나라일 열심히 하면서
迴心反初役(회심반초역)-마음 돌려 처음의 내 할일로 돌아오지만.
望廬思其人(망려사기인)-그러나 집을 보니 그 사람 생각이 또 나,
入室想所歷(입실상소력)-방으로 들어가 지난날을 생각 한다.
帷屏無髣髴(유병무방불)-휘장과 병풍엔 그대 자취 없으나,
翰墨有餘跡(한묵유여적)-쓰다 만 편지에는 그대 남은 흔적 있구려.
流芳未及歇(류방미급헐)-감도는 향기 아직 다하지 않고,
遺挂猶在壁(유괘유재벽)-남은 물건도 아직 벽에 걸려있네.
悵怳如或存(창황여혹존)-멍하니 혹 살아있나 해서,
周遑忡驚惕(주황충경척)-방황하다 근심 속에 놀라네.
如彼翰林鳥(여피한림조)-저 숲을 나는 새처럼,
雙栖一朝隻(쌍서일조척)-쌍으로 살다 하루아침에 홀로 되고(비익조(比翼鳥)를 뜻함),
如彼遊川魚(여피유천어)-저 강에서 헤엄치는 고기처럼,
比目中路析(비목중로석)-한 쌍의 비목어(比目漁) 길 가운데서 갈라졌네.
春風緣隟來(춘풍연隟래)-봄바람은 방문 틈을 쫒아(緣) 들어오고,
晨霤承檐滴(신류승첨적)-새벽 낙숫물, 처마에 이어(承) 방울지네.
寢息何時忘(침식하시망)-잠을 잔들 한시라도 잊으리오...
沈憂日盈積(침우일영적)-깊은 수심 날마다 쌓이니,
庶幾有時衰(서기유시쇠)-바라건대 어느 때 되면 이 슬픔이 다해,
莊缶猶可擊(장부유가격)-장자(莊子)처럼 아내가 죽어도 노래 부를 수 있을까
반악(潘岳)
떠나는 부인에게 입맞춤으로 영별(永別)한 아흔 김종필 !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향년 86세로 2월 21일 오후 8시께 별세했다는 보도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정해진 이치(理致)이지만,
이 시대 우리 현대사에 변혁(變革)의 중심에서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중심인물이었기에, 비록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보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정치의 정점(頂点)에 있었던 분의 반려자(伴侶者)의 영별(永別)이기에 세인(世人)의 관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종필 전 총리는 64년 전 아내에게 선물했던 금반지로 목걸이를 만들어 부인의 운명(殞命)시에 목에 걸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부인의 영정사진을 만지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하였다.
(2015.2.22. 조선일보 기사)
김 전총리가 90세이고 부인이 86세면 장수(長壽)라고 할 수 있지만, 평생의
반려자(伴侶者)와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는 장수(長壽)가 슬픔을 위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초세가(楚世家)에 “팽조(彭祖)”
라는 인물이 있는데 800년을 살다가 죽었다.
팽조(彭祖)의 아내가 슬피 울고 있었는데, 조문객(弔問客)이 묻기를,
보통사람의 수명을 10배나 더 살고 죽은 호상(好喪)인데 무엇이
아깝다고 그렇게 애통해 하느냐고 하자
팽조의 아내가 말하기를
800년이 긴 세월이지만 900년보다 짧지 않느냐?
라고 대답하여 인간의 생(生)의 애착심(愛着心)은 끝이 없음을 대변하여 주고
있다.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살며, 절대 살아보지 않았던 것처럼 죽는다고
달라이라마는 말했다.
구약성경 창세기 5장 21절∼27절에
므두셀라(Methuselah)가 969년을 살다가 죽었다.
그러나 구약성경 시편 90장 10절에서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康健)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세월은 날라가는 것처럼 신속히 간다.
라고 하여 인간의 수명이 유한(有限)함을 말하고 있다.
김 전총리의 부인에 대한 사랑은 극진했다는 보도는 신문기사 여러 곳에 보인다.
김종필 전 총리는 지난 2월 7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자신의
구순(九旬·90세) 기념 저녁식사 자리를 오후 8시쯤 빨리 끝냈다.
병원에 입원한 부인 박영옥(86) 여사의 간병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입원해 있는 아내가 빵을 좋아해. 빵을 사서 돌아가야지.”
(2015.1.10. 조선일보 기사)
김 전 총리는 을미년 새해 90세를 맞았는데 자찬(自撰) 묘비명(墓碑銘)이 신문에
소개되었다.
年九十而知八十九非(연구십이지팔십구비).
“나이 90이 되어 생각해보니 지난 89세까지가 모두 헛된 인생이었구나”이다.
(2015.1 26 조선일보 기사)
많은 사람들은 출세와 부(富)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하지만, 생(生)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면 자기의 지난 인생을 부질없었다고 여기는 것일까?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 버나드 쇼도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부인이 운명하기 직전에 문병간 한 참석자가 말하기를
“결혼 50주년은 금혼식(金婚式)이고, 60주년이 회혼식(回婚式)인데, 70주년은 어떻게 부르냐”고 묻자
김 전 총리는 옆에 있던 부인을 바라보며
"이 사람하고 70주년은 어렵겠지…"라고 말했다.
이어 "난 평생 이사람 밖에 몰랐어요"라면서
박 여사를 향해 "수고했어요"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2015.2.21. 중앙일보 기사)
김 전 총리는 “충남 부여 장지(葬地)에 나하고 아내하고 같이 나란히 눕게 돼
있다.
먼저 저 사람은 가고, 나도 곧 따라 갈 거다.
일찍 가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2015.2.22. 조선일보 기사)
“65년간 한 번도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었어요.
못된 병에 걸려가지고. 그래도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요. 내가 곧 따라 갈 테니….
아내가 몇 발짝 앞서갔어요.”
(2015.2.22. 조선일보 기사)
김 전 총리는 부인이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입맞춤을 했다”고 했다.
(2015.2.22. 중앙일보 기사)
김 전 총리는 고향에 부부 묘를 마련하고 묘비명(墓碑銘)도 미리 써뒀다.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永世) 반려(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2015.2.23.조선일보 기사)
사람에게 슬픈 일이 여러 가지 있으나 그 중에 가장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을 말한다면 부부간 한쪽이 먼저 가는 죽음이 아닐까?
인생행로를 부부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걸어 가다가 한사람이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혼자만 남은 외로운 새처럼 쓸쓸한 그림자인
고신척영(孤身隻影)이 되었을 때 얼마나 고독의 비애(悲哀)에 몸부림치겠는가!
필자는 이런 고독의 비애를 감당할 수가 없을 같아
“아내의 무릎을 베고 내가 먼저 죽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만
주위사람들은 말하기를 “당신이 먼저 죽으면 병든 아내는 누가 돌본단 말인가”하여,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의지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죽음의 슬픔이 북받치는 곳에 과부(寡婦)의 한탄도 있고, 혹은 홀아비(鰥夫)의 탄식도 있으니, 이 혼자 남은 홀아비의 탄식인 환부탄(鰥夫歎)을
“도망시(悼亡詩)”라고 하였다.
도망시(悼亡詩)는 죽은 아내를 슬퍼해서 지은 시(詩)를 말한다.
고금을 통하여 홀아비의 가슴을 찌르는 슬픔인 도망시(悼亡詩) 명시(名詩)가 여럿 있다.
그중에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중에 아내의 부음(訃音)을 듣고 쓴 도망시(悼亡詩)가 가슴을 메이게 한다.
도망시(悼亡詩)
那將月老訟冥司(나장월로송명사)-어떡하면 월하노인 데려다 저승에 소송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내세에는 우리 부부 처지를 바꿔 태어나서,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천리 밖에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나의 이 슬픈 마음 그대에게 알게 할까.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월하노인(月下老人)-중매쟁이
조선 영조때의 문신이며 서예가 화가인 자하(紫霞) 신위(申緯)도 부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후 항상 매실이 목에 걸린 것 같이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하였다.
도망시(悼亡詩)
制淚而今也不難(제루이금야불난)-눈물을 참는 것이야 이젠 어렵지 않소만
此生閱歷幾悲歡(차생열력기비환)-이 인생 몇 번이나 기쁨과 슬픔을 겪을런 지
中腔有似靑梅子(중강유사청매자)-가슴속에 푸른 매실이라도 들은 것처럼
怪底長常一味酸(괴저장상일미산)-이상하게 오래도록 시큰해져 오는 구려
신위(申緯)
인간의 문학사는 죽음의 충격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고대 가요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얽힌 사연이 말해주고 있다.
公無渡河(공무도하)-여보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당신은 그예 물을 건넜네
墮河而死(타하이사)-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當奈公何(당내공하)-아아 당신을 어이할거나.
창작연대 작자미상(作者未詳)
죽음이란 무엇인가?
숨 한번 내 쉬었다가 그 숨한번 다시 들여 쉬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과의 거리는 백지 두께보다 더 얇다.
저녁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
아침이슬과 같은 초로(草露)인생 !
그래서 옛날 선사(禪師)들은 삶과 죽음은 같은 것이라 하여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했다.
하지만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는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耶?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어려서 고향을 떠나와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닌 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인생이 태어나는 것만 반기고 당연한 죽음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소동파(蘇東坡)가 남긴 만고의 명문 “적벽부(赤壁賦)”에서
인생은 망망대해에 한 알의 좁쌀처럼 보잘 것 없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이 흘러가지만 장강(長江)의
강물은 끝이 없이 흐르는구나!
누군가 한사람이 죽어 갈 때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껴 이 노래가 가슴을 친다 !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