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hospitality)와 보호자 성령(the Paraclete) 교회선교의 본질적 두 요소
2024.5.6.부활 제6주간 월요일 사도16,11-15 요한15,26-16,4ㄱ
일기쓰듯 편안하게 쓰는 강론을 지향합니다. 오늘은 한국 순교성인 103위 시성 기념일입니다. 꼭 40년전인 오늘 1984년 5월6일, 오전 10시25분, 순교자들이 피로 신앙을 증거한 절두산과 새남터 성지가 내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편교회의 수장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평화의 사도”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는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미사주례중 100만명이 신자들 앞에서 라틴어로 103위 순교복자의 시랑을 선언했습니다.
이 교황님 황금빛 곤용포 제의는 요셉수도원을 참으로 사랑했던 매듭전문가 김희진 자매가 만들었고 후에 자매님은 남은 황금빛 천으로 제의를 만들어 우리 요셉 수도원에 기증하여 자주 대축일에 입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에 앞서 1984년 5월3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려 땅에 엎드려 겸손히 친구(親口, 존경을 담은 입맞춤)하는 장면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요!
1984년 5월6일 이날은 평신도 92명(여성47명, 남성45명), 성직자 11명(한국외방전교회10명 포함)이 성인이 된, 참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그 감동을 생생히 느낀 국민의 축제같은 날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장충동 분원에 머물러 면학중이던 청원자 신분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또 교회 뉴스를 보니 지난주 4월29일에는 90세로 선종한 부산교구의 저명한 진보적 신학자 서공석 신부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서인석 신부와 사촌간이자 마르틴 아빠스와 절친관계에 있던 분이셨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대개는 90세 전후로 세상을 떠납니다. 긴듯하나 짧은 인생입니다.
어제 교황청 베드로 광장에서 레지나 첼리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강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교황님은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들이라 부르겠다” 대목을 중심으로 주님과의 아름다운 우정의 성장을, 그리고 그 우정을 다른 이들과 나눌 것을 강조했습니다.
주님과의 우정,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말마디인지요!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관상적 삶인지 뒤돌아 보게 합니다. 정말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과의 깊어지는 우정과 더불어 웬만한 소원도 다 이루어지리란 생각이 듭니다. 어제부터 내린 하루종일 내린 봄비가 지금도 계속 오고 있습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아 미사에 참석했던 어느 자매는 빗소리에 감격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빗소리 듣기도 힘든 아파트 주택구조라 그럴 것입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23년전 써놨던 시가 생각났습니다.
“바라봄의 관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때로 둘만의 깊고 긴 대화가 필요하다
하늘님과 땅,
멀리서 보기만 했지 못다한 이야기들 너무 많았다
하루종일 두런두런 소리내며 내리는 비
나눠도 나눠도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님과 땅의 정다운 대화
사랑의 일치
아! 때로 나누고 싶다
관상적 삶중에 주님과의 끝없는 대화를”-2001.7.5
주님과의 관상적 대화는 신자들의 내적생활을 참으로 풍요롭게 합니다. 이런 관상적 삶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환대와 파라클레토 보호자 성령입니다. 이 둘은 교회 선교 활동에 본질적 요소에 속합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활동하는 역할의 겸손한 환대, 겸손한 보호자 성령입니다.
바로 사도행전에의 필리피에서의 리디아의 환대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이 원활할 수 있었음은 이런 자발적 겸손한 환대에 있음을 봅니다. 히느님은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을 환대하게 하십니다. 다음 대목의 묘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아마도 분명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은 리디아의 환대에 응해서 그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가정교회가 이뤄집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환대에 바탕한 가정교회가 주류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숨겨져 있는 겸손한 환대 없이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리하여 필리비는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의 활약에 힘입어 지역선교에서 유럽 대륙 선교의 영광스러운 교두보이저 전초기지가 됩니다. 물론 당시의 바오로와 그 일행은 몰랐겠지만 하느님의 계획에는 유럽 대륙의 선교가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관상적 환대에 이어, 겸손한 파라클레토 진리의 영이 또 절대적 역할을 합니다. 바로 2주 후에는 진리의 영, 성령님이 오시는 성령강림 대축일이 있고 불교와 사이 좋은 관계를 상징하듯 그 앞 5월15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앞서 오시는 성령님이 부처님의 형님처럼 생각됩니다.
참으로 교회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성령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행사때는 전례시 성령님이 임하기를 간청합니다. 이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진리의 영을 보내주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을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 성령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조언하시며 강화하시고 지지하시는 성령입니다. 그대로 성령은 교회 공동체내의 예수님의 현존이 됩니다. 참으로 역설적으로도 온갖 박해중에도 위로자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과 용서, 평화와 정의의 활동에 항구했던 교회였음을 봅니다. 코린토 2서의 다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넘칩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의 현존인 성령을 우리의 희망이자 참 좋은 위로자, 조력자로 고백합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환대와 더불어 성령과의 친교로 바람직한 관상적 선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환대와 주님과의 친교를 고백한 자작 좌우명시를 나눕니다. 교회는 물론 우리 모두가 지녀할 환대의 앞문과 친교의 뒷문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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