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열 번째로 남양주 홍유릉 중 유릉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남양주 홍릉과 유릉
유릉(裕陵, 순종과 순명황후·순정황후)
위치 :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조성 연도 : 1905년(광무 9), 1907년(융희 1), 1926년, 1966년
왕릉 형식 : 합장릉
합장릉(合葬陵)
합장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이다. 영조 이전의 합장릉은 혼유석을 2좌씩 배치하였으나 영조 이후에는 혼유석을 1좌씩 배치하였다. 대표적으로 세종 영릉, 인조 장릉, 정조 건릉 등 8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순종황제 유릉은 황제와 황후 두 분을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동봉삼실(同封三室) 합장릉이다.
▷ 유릉(裕陵) 이야기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과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두 번째 황후 순정황후 윤씨의 능이다. 유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한 봉분 안에 황제와 두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왼쪽에 순정황후, 가운데에 순종, 오른쪽에 순명황후를 모셨다. 유릉은 홍릉(洪陵)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황제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유릉은 1904년(광무 8) 순명황후가 황태자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현 용마산(어린이대공원 부근)에 유강원(裕康園)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가,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유릉으로 높였다.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용마산에 있던 유릉을 홍릉 동쪽 언덕에 옮기는 것으로 정하고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능 자리도 함께 공사하였다. 이후 순명황후를 먼저 모시고 순종을 합장하였으며, 1966년 순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유릉에 합장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유릉은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좁지만, 홍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되었다. 능침의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그 주변으로 석상(혼유석), 망주석, 장명등만 배치하였다. 제향공간인 침전 앞으로 문석인, 무석인, 기린석, 코끼리석, 사자석, 해치(해태)석, 낙타석, 석마 순으로 석물을 배치하였는데, 석마만 2쌍 배치하였다. 비각 안에는 1개의 표석이 있는데 1966년 순정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2년 뒤에 새로 제작한 표석으로 ‘(우측면)대한 (앞면)순종효황제 유릉 순명효황후 부좌 순정효황후 부우’라고 써있다.
▷ 순종(純宗) 이야기
순종(재세 : 1874년 음력 2월 8일 ~ 1926년 양력 4월 25일, 재위 : 1907년 양력 7월 19일 ~ 1910년 양력 8월 29일)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둘째 아들로 1874년(고종 11) 창덕궁 관물헌에서 태어났다. 바로 다음 해에 왕세자가 되었고 1897년(광무 1)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7년(광무 11) 일제의 압박으로 고종이 황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로 경운궁(덕수궁) 돈덕전에서 황위에 올랐다. 황위에 오른 후 연호(年號)를 융희(隆熙)로 고치고, 일제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미7조약(丁未七條約)과 기유각서(己酉覺書) 등이 강제로 체결되었으며, 결국 1910년(융희 4)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었다. 이후 조선국 이왕(창덕궁 이왕)으로 불리며 창덕궁에서 생활하다가 1926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로 세상을 떠나 묘호(廟號)와 제호(帝號)를 합쳐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라 하였다. 순종의 장례일을 맞추어 6·10만세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순명황후(純明皇后) 이야기
순명황후 민씨(재세 : 1872년 음력 10월 20일 ~ 1904년 양력 11월 5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은부원군 민태호와 진양부부인 송씨의 딸로 1872년(고종 9) 양덕방 계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1882년(고종 19) 왕세자빈이 되었고, 1897년(광무 1) 황태자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순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 1904년(광무 8) 경운궁(현 덕수궁) 강태실에서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7년(융희 1) 순종이 황위에 오르자 황후로 추존되었고, 이후 시호(諡號)와 제호(帝號)를 합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라 하였다.
▷ 순정황후(純貞皇后) 이야기
순정황후 윤씨(재세 : 1894년 음력 8월 20일 ~ 1966년 양력 2월 3일)는 본관이 해평인 해풍부원군 윤택영과 경흥부부인 유씨의 딸로 1894년(고종 31) 양근(현 양평) 서종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윤증순(尹曾順)이다. 1904년(광무 8) 순종의 첫 번째 황태자비가 세상을 떠나자 1907년(광무 11)에 황태자비가 되었고, 같은 해 순종이 황위에 오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로 책봉되었다.
순정황후는 한일병합을 반대하여 병풍 뒤에서 옥새를 치마속에 감추고 어전회의를 듣고 있다가 큰아버지 윤덕영에게 빼앗겼다고 한다. 결국 1910년(융희 4)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자 조선국 이왕비(창덕궁 이왕비)로 신분이 낮아진 후 순종과 함께 창덕궁에서 생활하였다. 순종이 세상을 떠난 후 일제의 침략행위와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고, 1960년 이후 창덕궁으로 다시 환궁하였다. 1966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나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렀고, 시호(諡號)와 제호(帝號)를 합쳐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라 하였다.
연도내용
| 1897년(광무 1) | 고종 황후 명성황후의 홍릉 조성(현 서울 청량리 홍릉수목원 경내) |
| 1900년(광무 4) | 황제릉의 형식으로 현재의 자리에 홍릉 공사 |
| 1905년(광무 9) | 순종 첫 번째 황태자비 순명비의 유강원 조성(현 서울 어린이대공원 근처) |
| 1907년(융희 1) | 유강원을 유릉으로 높임 |
| 1919년 | 홍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고종과 합장함 |
| 1926년 | 유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순종과 합장함 |
| 1964년 |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부인 의친왕비묘 조성 |
| 1966년 | 순종 두 번째 황후 순정황후를 유릉에 합장함 |
| 1967년 | 고종 후궁 광화당 귀인 이씨의 묘 조성 |
| 1970년 |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영원 조성 고종 후궁 삼축당 김씨의 묘 조성 |
| 1971년 | 영원을 현재의 자리로 옮김 |
| 1989년 | 고종 딸 덕혜옹주의 묘 조성 의민황태자비 이씨를 영원에 합장함 |
| 1996년 | 의친왕묘를 현 서삼릉 경내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의친왕비와 합장함 |
| 2005년 |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 조성 |
| 2009년 | 귀인 장씨묘와 수관당 정씨묘를 현 서삼릉 경내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김 |
첫댓글 흠.. 세분을 함께 모셨다.. 그렇고 마지막 왕릉이라 그런건지 건물이나 주변 상태가 다른 능들 보단 더 다채로운 느낌이네요.
그래도, 명색이 제국의 황제였으므로 위상에 걸맞게 조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기도 학생들의 단체 소풍장소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하네요.
@베라루빈 징그럽게 갔죠ㅋ
@뽕 존스
남양주에서 자라셨다면 아마도 그러셨을 듯. 겨울에 갔었는데도 햇살이 따뜻하니까 꼬꼬마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구경오더라구요
한번도 가본적 없다는 ㅠ ㅠ 아랫지방 사람들은 맨날 경주만 감 ㅎㅎㅎ
저도 경주는 무지하게 많이 다녀봤네요. 언제나 가고 싶은 경주입니다 ^^ 이 왕릉들이 궁에서 백리 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나름의 법도가 있어서 전부 다 근방에 있습니다. 경주에는 훨씬 더 오랜 왕릉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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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새는 산행은 안 다니십니까?
저는 실망 이지 말입니다.
즐거운 명절 되십시요.🙏
헉!
아시는척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