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시작 (아 1:2-4)
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오늘은 “첫사랑의 시작”이라는 제목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지옥 갈 죄는 딱 한 가지, 주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사랑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그 정답이 고전 16장에 있습니다. 고전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아직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기쁨을 모르고 저주 아래 살고 있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잠8:17-18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계2:5에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만큼 중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어려움의 원인도 딱 하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서입니다.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할 일은 고난을 불평하지 말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가 말씀 보고 기도하면서 경건을 회복하듯이 진실로 회개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기도해도 듣지 않으신다면 왜 그런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갈갈이 찢으십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과 첫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1. 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생겨납니다.
2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여기서 본문의 여주인공인 술람미가 솔로몬을 흠모하게 된 동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동기는 솔로몬의 영광과 위대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술람미만이 아닙니다. “처녀들이” 란 용어가 2, 3절에도 나오듯 솔로몬을 아는 모두의 갈망입니다.
믿음에 적용하면 이런 갈망이 어떻게 생깁니까?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는데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고전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그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롬1:16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했고, 고후11: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했습니다.
중매자가 되려면 좋은 점을 부각시켜 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좋은 점만 있기 때문에 주님을 알고 주님의 사랑을 알면 그 사랑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도주는 달콤하면서도 취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또 찾게 되고 또 찾게 되면서 취하게 됩니다. 엡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했듯이 주님의 사랑에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렘51:7에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했듯이 전에는 세상에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사랑함에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 우리도 모르게 주님을 흠모하는 사랑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이게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벧전1:23-25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했듯이 말씀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고 그것이 교회생활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집왔으니 노다지를 캔 것입니다. 노다지도 그런 노다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물 중의 보물로 깨달아야 합니다. 초보자니까 자신을 위해서라도 주님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2. 고난의 사랑을 묵상함으로서 생겨납니다.
3절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여기 처녀들이 사랑하는 이유 두 번째로 “네 기름이 향기롭고 아름”다워서 그랬습니다. 사랑을 향유에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향유는 희생이나 기도를 상징합니다. 먼저 첫사랑은 나를 위한 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을 때 생겨납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은 성경을 묵상함으로서도 깨닫고, 벧전2:19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한 것처럼 고난 속에서 주님을 생각함으로도 깨닫습니다. 갈6:17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했듯, 사도 바울은 그런 흔적이 있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큰 믿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을 묵상했든지 몸에 성흔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1224년 9월 14일에 프란시스가 '라 베로나' 산에 있는 기도실에서 기도할 때 두 손과 두 발과 옆구리에가 패이고 성흔이 생겨낫다고 합니다.
3. 기도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3절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연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가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계8:3-4에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했듯이 향은 기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동물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외분비기관에서 '페르몬'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인간에게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페르몬을 인공으로 만들어서 상품화하기도 하는데 효과는 확인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 우리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사함을 많이 받으면 더 많이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희생의 향에 비유했듯 몸과 마음과 힘과 시간을 드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주님의 품 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험이 있습니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아가서의 이 부분은 아직 초보로서 깊은 기도라고는 할 수 없고, 교회를 통한 감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감화를 주지만, 기도를 통해서도 감화를 줍니다. 말씀으로 안 된다 해도 기도할 때 됩니다. 기도 잘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성도의 가슴을 흔들어놓는 기도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감동을 받습니다.
4. 헌신적인 봉사를 통하여 첫사랑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다란, 우리를 향하여 아낌없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직분들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목자이시기도 하시고 신랑 구주 성전 제사장 선지자 왕이기도 하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도 했고 하나님의 본체시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쏟았다는 것은 아낌없이 봉사를 가리킵니다.
히3:1-2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이처럼 자기 직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은혜를 어디서 받습니까?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인 교회를 통하여 받습니다. 예배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유익한 은사의 다양한 순서를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혹은 초청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부흥회를 통해서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갖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인도에서 순교하면서 “나는 주님을 예배하나이다.” 하는 말로 계속하여 영광 돌렸다고 합니다. 도마”의 이름이 ‘쌍동이’ 혹은 ‘의혹을 풀다’는 의미이듯 이중적이고 의문이 많았던 그가(요11:7-16, 요14:1-7, 요20:24-29), 인도에서 순교할 때 예배로서 영광을 돌린 것은 오순절에 예배하다 능력을 받고 모든 의혹이 풀렸고 알지 못하는 문제들도 대부분 예배가 그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5. 듣는 대로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4절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이 말은 술람미가 시녀들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약혼도 결혼도 한 적이 없는데 왕궁의 시녀들이 등장하니까 혼란이 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술람미의 마음속에서 그리는 갈망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즉 그녀는 그가 나타나 침궁에서 꼬옥 껴안아 주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벌써 시녀들을 따라 연인에게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 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시녀의 인도를 받듯, 우리를 주님께로 이끌어 주는 것은 말씀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고, 성도의 교통, 성찬, 사랑 등 성화의 방편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화의 방편을 열심히 하면 주님을 만나는 더 깊은 은혜 가운데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조금만 더 열심히 해 보시라고 권합니다.
계21:12 “열두 문이 있는데 -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여기 12지파는 행26:7에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긴다고 했듯이,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는 자가 은혜 가운데 들어감을 시사합니다. 시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듯 우리를 주님께 인도하는 것 중 하나는 감사와 찬송입니다.
말씀의 감화로도 인도하고, 감사와 찬송으로 인도하고, 기도로도 인도를 받습니다. 방언도 자주하시면 주님께로 깊이 들어가는 신령한 문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섬기고 봉사하다가 주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성화의 방편들이 완전히 나의 경건이 되도록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속의 인력을 이길 만큼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역동적인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믿는다면 이제 사랑으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싹 튼다면 그것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만 사랑하십시다.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사십시다. 교회생활 잘하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은혜를 받으십시다. 조금만 더 신앙생활 열심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포도주보다 향기름보다 쏟은 향기름보다 나은 주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가장 복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