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블루문
석야 신웅순
“여보, 식사하고 산뽀 갈까요?”
“왜요?”
“달이 크게 뜬다니 달구경하려고요.”
“그래요.”
귀찮아할 것 같았는데 그러자고 한다.
슈퍼블루문을 보지 못하면 14년 후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슈퍼블루문은 한 달에 두 번 뜨는 큰 보름달을 말한다. 보름달보다 14%나 크고 30%나 더 밝다고 한다.
사실 크고 밝아서 보러가자고 한 것은 아니다. 14년 후에나 볼 수 있다고 하니 14년이면 2037년이다.
“그 때면 내 몇 살이지?”
번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보러가자고 했다.
사람들이 걷기 운동하느라 바쁘다. 우리처럼 한가롭게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아니다. 사실 우리도 인생이 바쁘다. 옛날의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같은 달을 보는데 젊었을 때의 달과 나이 들어서의 달이 왜 이리 다른가. 젊어선 낭만을 생각했고 나이 들어선 인생을 생각하니 말이다.
젊었을 때는 은희의「꽃반지 끼고」노래를 부르며 남녀 쌍쌍 달구경가기도 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달구경하러 왔다.
“저기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네.”
아내와 나와의 대화이다. 지금도 우리들은 그렇게 말을 한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윤극영이 작사, 작곡한 동요「반달」이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이후 신비가 깨졌으나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엔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있다. ‘반달’이라는 노래로 민족의 설움을 달래지 않았는가. 아니다. 돛대도 삿대도 없는 것이 꼭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슈퍼블루문을 14년 후에나 볼 수 있다는 그 말에 나는 바깥으로 쫓겨나왔다.
인생의 잔고가 자꾸만 줄어든다. 해마다 줄어가는 숫자만큼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돌아보니 삐뚤어진 길도 있고 아찔한 길도 있다. 용케도 그 길을 건넜다. 생각해보니 그 때 거기서 삐끗했으면 아득한 사람이 될 뻔했다.
이제와 후유, 한 숨을 내쉰다.
“아, 지금 내가 살아있구나.”
저 슈퍼문도 때가되면 그믐달이 되어 잎새 한 닢으로 툭 질 것이다. 그래 천 번을 이지러져도 어디 본바탕이야 변할 리 있는가.
인생의 초겨울이다. 이제 옷깃을 여며야할 나이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 이황이 평생을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신흠의 시 되뇌어본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 2023.9.10.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여린 연두 빛 봄 향기는 내 뱉아 볼 겨를도 없이 여름의 짙은 내음에 자리를
비켜 주더니 놈도 끌러놓은 세월 앞에 꼼작 없이 가을을 맞네요.
청춘을 돌려 달라고 소리쳐 볼까 하다가 그냥 아무에게도 폐 끼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싶어
목구멍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
답글이 명품입니다.
괜히 제가 폐 끼친 꼴이 되었습니다.
명품 글에는 이렇게 늘 미치지 못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