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밖에 모든 환경에 접헐 때마다 웃다가 울다가 속상하다가 그렇게 살 것을, 그런 찰나(刹那) 찰나에 그 슬픈 생각이 일어나면 그 슬픈 생각에 딸려가지 아니하고 슬픈 생각이 나자마자 그 슬픈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 뭣고?
성이 날 때 썽나는 일을 계속 생각허다보면 오장육부가 썩어문드러지게 되고 원망, 원한심이 불탈 텐데, 썽이
나자, 썽나는 생각이 나자마자 그 생각에 즉해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뭣고?’ 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이요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오직 이 법만이 생사속에 살면서도 생사해탈허는 길로
가는 거고, 우주법계의 성주괴공 속에 살면서 성주괴공 속에서 해탈도를 찾는 길인 것입니다.
생새해탈이 별 것이 아닙니다.
요 육체를 가지고 백 년 이백 년)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육체를 끌고 다니는 이 놈, 우리는 그걸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모냥도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으나 분명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주인공이 뭣인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그놈을 항상 어떠헌,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 가면서나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그때그때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 뭣고?’를 찾으면
반드시 그 의단이 독로해가지고 결국은 그 의단을
타파해서, 의단을 타파해서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것이 그것이 불법이요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생각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오고 자기를 찾는 방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정말 부처님을 믿고 종교가 불교인 사람은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을 해야,
이 몸띵이 가진 채 비록 모냥은 이렇게 다르지마는
다 같이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허는 인식을 철저히 가지고 ‘이 뭣고?’를 열심히 허시면,
설사 사업이 좀 잘되더... 잘되는 수도 있고 뜻과 같이
안 되는 수가 얼마든지 이 사바세계에는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바세계의 모습은 바로 성주괴공이요
생로병사이기 때문에 그 「무상한 그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활구참선법이라고 허는 것을 확실히 믿고
조실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이 뭣고?’를 허시면 우리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고 그러헌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하고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시면 무생,
무상한 속에서도 영원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부처님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니, 우리는 인연이 다할 때까지 앞으로 십 년(을 더
사시거나 오십 년을 더 사시거나 백 세를 넘게 사시더라도 그렇게 사시면 우리는 정말 참다웁게, 올바르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