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겨울 저수지
십이월이 시작된 첫 월요일이다. 넉 달씩 끊어 구분 짓는 전통적 방식으로 겨울에 든 들머리기도 하다. 주중에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를 접하는데 월요일은 그다지 추워진 날씨는 아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연학교 등교를 위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로 내려서니 은행나무들을 비롯한 정원수들은 단풍빛이 고유의 빛깔로 물들어 낙엽이 지지 않고 가지에 붙어 있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외동반림로 메타스퀘이아는 늦게 물든 갈색 단풍은 지금이 절정인 듯했다. 창원 도심 여러 곳에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가 많으나 외동반림로와 용호동 일대도 우뚝하게 높이 자라 눈길을 끌었다. 이국적 모습인 침엽 낙엽수 메타스퀘이아는 단풍이 물들어도 곧장 잎이 지지 않았다. 겨우내 바람이 불 때마다 새 깃털 같은 잎이 시나브로 떨어져 나목이 되었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명곡교차로에서 소답동을 거쳐 창원역에서 내렸다. 그곳을 기점으로 낙동강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일터에서 하루를 시작할 몇몇 승객들과 함께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에 이르자 예상된 별세계가 펼쳐졌다. 도심에서는 아무런 기미가 없으나 산마루 너머 근교 농촌에서는 안개가 짙은 날을 볼 수 있는데 그에 해당했다.
지나온 가을에는 비가 흡족하게 내려 대기 중 함유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아침이면 동읍과 대산면 일대 안개가 낀 아침을 더러 보았다. 웬만한 호수나 습지와 같은 주남저수지 수면과 낙동강이 흘러가는 물줄기가 아침에 안개를 끼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안개가 낀 아침이면 날이 밝아와도 가시거리가 좁아져 운전자는 안개등을 켜고 천천히 운행함에 습관으로 익숙했다.
마을버스가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다호리를 지난 주남저수지에서 내려 반나절 도보 여정 기점으로 삼았다. 버스 정류소 근처는 예전부터 있던 민물고기 어탕집 말고 최근 들어 카페가 몇 군데 생겨 주변 풍광이 달라졌다. 주남저수지 둑길 산책로로 드니 안개가 자욱해 평소와 다른 아침 풍경이었다. 둑길 언저리 늦게까지 가을을 장식하던 코스모스는 꽃잎이 아직 붙어 있었다.
저수지 수면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갯버들은 가지가 앙상해져 겨울다운 운치를 더했다. 날이 밝아와도 안개가 낀 아침은 저수지 수면에서 잠든 새들은 움직임이 굼뜨고 소리도 적게 들려왔다. 가시거리가 좁으니 저수지 둑 너머로 날아가지 않고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는 듯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비행 끝에 나래를 접고 안식처로 삼은 주남저수지는 녀석들의 베이스캠프였다.
주말에 다수의 탐조객이 다녀갔을 둑길은 안개가 짙은 아침이라 산책객은 드물었다. 탐조객이나 사진작가들도 안개가 새들의 움직임을 굼뜨게 함을 알아서인지 외국인을 포함 고작 두 명만 보였다. 주천강으로 물길을 보내는 배수문을 지난 쉼터에서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몇 지기들에게 아침 안부를 겸한 주남저수지 안개가 짙은 주남저수지 풍경을 담은 사진을 날려 보냈다.
한동안 머문 쉼터에서 일어나 제2 배수문으로 가는 둑길을 천천히 걸으니 안개가 걷히는 기미를 조금씩 보였다. 간밤 저수지에서 잠든 철새들은 어둠이 유예된 인내심에 한계가 이르렀는지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수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라 둑 너머 들판으로 날아갔다. 선발대가 떠나자 안개가 덜 걷혀도 갑갑증을 느꼈을 철새들은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들판으로 날았다.
제2 배수문에서 물길이 빠져나온 들녘 농로를 따라 걸었다. 당국에서 파견된 환경 지킴이는 형광 조끼를 입고 탐조객 통제선 앞에서 제 임무를 다했다. 벼를 거둔 빈 논에는 재두루미와 기러기들이 먹이활동에 분주했다. 안개가 걷혀가는 들녘에는 조류생태 사진 대가 최종수 선생은 여전히 현장을 지켰다. 마산에 왔다는 생태 사진작가 ‘일죽’도 20년째 주남저수지를 찾는다고 했다. 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