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투병 팔백예순일곱(867) 번째 날 편지, 3 (사회, 경제) -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주시(主視)]

혈액암(급성 백혈병) 투병 팔백예순일곱(867) 번째 날 편지, 3 (사회, 경제) -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2023년 1월 21일 토요일이란다.

“새마을금고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포털에서 ‘새마을금고’를 검색해서 기사부터 봐요. 어떤 갑질이 또 터졌을지….”라고 인천의 한 금고 직원 A씨가 말했는데, 마을금고에서는 ‘잊을 만하면’ 직장 갑질 사건이 터져나오고 있고, 특히 작년에는 갓 입사한 여성 직원에게 밥짓기와 빨래를 시킨 사건, 갑질 신고자 색출 협박 사건, 성추행 합의 강요 사건 등이 줄줄이 드러났구나.

사랑하는 큰아들아

그래서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와 사과하기까지 했는데, A씨가 다니는 금고도 과거 이사장이 직원들에게 개고기를 삶으라고 강요한 일이 있었는데, 지난해는 임신한 직원에게 야근과 화장실 청소를 강제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새마을금고에서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로 피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 견제받지 않는 이사장의 ‘절대 권력’,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직장문화 등을 꼽는데, 이는 새마을금고만이 아니라 한국 직장인 대다수가 다니는 중소 사업장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로, 새마을금고의 직장갑질 사건들이 한국 직장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원인과 해법을 들여다보는 ‘렌즈’가 될 수 있는 이유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작년 12월 19일 새마을금고 갑질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 이들이 겪은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 등을 들었는데, 새마을금고 갑질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노사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일어났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새마을금고는 하나의 기업체처럼 보이지만, 1300여개의 각 지역 금고들은 사실 중소규모의 별도 법인이다. 경향신문이 만난 당사자들이 다니는 금고들도 15~30인 규모였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각 금고를 관리·감독하지만 적극 개입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큰아들아

개별 금고에서 이사장의 권력을 견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새마을금고의 각 금고들은 지역 조합원들의 출자로 설립되고, 설립 이후엔 지역 기업과 자산가들이 주 고객이 되고, 금고 이사장은 지역 유지들과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는데, 이사장과 이사회를 뽑는 100~300명의 ‘대의원’들도 이사장의 편인 경우가 많다고 당사자들은 입을 모았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이사장과 ‘이사장의 사람들(이사회)’은 인사권부터 대출 심사까지 절대 권력을 갖고, 아예 가족들을 채용해 ‘가족 기업’이 되기도 하는데, B씨가 다니는 인천의 한 새마을금고에는 이사장의 며느리와 손녀가 다니고 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며느리가 B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해 노동청에서 괴롭힘으로 인정까지 받았지만, 사과는커녕 이사장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부당전보·승진배제 등 부당한 처우를 가했고, 이사장은 결국 검찰에 송치됐고, B씨는 “근로감독에서 벌금까지 나왔는데, 이사장은 ‘벌금 내면 된다.’며 ‘꼬우면 너도 신고하라.’고 농담하고 다녔다”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고인 물’처럼 폐쇄적인 직장에서 직원들은 갑질·비리 등 문제를 쉽게 제기하지 못하는데, 이사장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심한 괴롭힘이 시작된다는데, 울산의 한 금고에서 일하는 C씨는 직원들의 통신기록을 요구한 이사장을 신고했다가 지금도 보복성 조치를 당하고 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이사장은 직원 전체 회의에서 “직원들이 외부 조직과 결탁하는 걸 내가 그대로 봐야 하나. 내가 무조건 다 찾아낼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고, 색출 끝에 드러난 C씨에게 금고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종류에 대해 나열하고 단체 내에서 그들이 행하는 행동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라”는 과제를 냈는데, 금고의 문제를 고발한 C씨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것이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힘없는 직원들이 사용자의 갑질에 대응하기 위해선 ‘뭉치는’ 수밖에 없으나 규모가 작을수록 더 강해지는 ‘감시와 처벌’ 때문에 작은 사업장에서 직원들이 뭉치기는 매우 어렵고, 노조라는 형태로 직원들이 사용자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 사업장에서는 ‘노사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역설적으로 작은 사업장이 감시의 체계가 더 촘촘하다.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있으니 문제를 적극 제기하거나 뭉치려 하면 금방 티가 난다.”고 했는데, C씨는 금고에 만연한 갑질문제 등에 공감하는 동료들과 함께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불만의 목소리가 삭제된 자리를 체념과 순응이 채우는데, 작년 여름 ‘밥 짓기·빨래 갑질’이 터진 동남원새마을금고도 12~13명의 토박이들이 오래 근무한 곳으로, D씨는 “저는 남원 사람이 아니지만 저를 제외한 모두는 거기 토박이였다. (밥짓기와 빨래 등 강요에 대해) 같은 또래 직원들마저도 ‘이 정도는 배려할 수 있는데 왜 트집잡냐’고 반응했다. 문제를 키우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개별 금고의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할 중앙회의 관리·감독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중앙회장을 350여명의 주요 금고 이사장들이 선출하기 때문에 중앙회 역시 각 금고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당사자들은 설명하는데, B씨는 “중앙회에 직장 내 괴롭힘과 가족채용 등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너무 나서면 갑질’이라며 방관하고 있다.”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직원들도 중앙회의 관리·감독을 신뢰하지 않는데, D씨는 아예 중앙회를 건너뛰고, 노동청과 행정안전부에 직장 갑질을 신고했는데, 중앙회 관계자는 “중앙회장 선출 구조와는 관계없이 업무지도 및 갑질 고충 처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 이사장과 중앙회장을 회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2025년 3월 직선제 도입을 앞두고 있어 이후 (견제 문제는) 크게 개선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네.

어떻게 해야 ‘갑질’ 멈출까?

당사자들은 직장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민주적 운영과 견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C씨는 “이사장이 본인 편인 대의원이 많이 선출되도록 대의원 선거 시간을 사람들이 투표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잡거나, 공고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작게 붙이는 일도 있다”고 했고, A씨는 “행안부에 금융 비위 관련 민원을 넣어도 금융전문가가 아닌 행정공무원이 나와서 기관 운영만 감독한다. 중앙회 위에 전문성을 갖춘 상급감독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새마을금고도 자체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중앙회 관계자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금고인사노무 개선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직제개편으로 금고조직문화혁신부를 확대 신설했다. 향후 컨설팅 결과에 따라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새마을금고의 특수성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요구되는데, ‘사용자의 막강한 권력’과 ‘뭉치기 어려운 직원들’이라는 새마을금고 갑질사건들의 기본 구도는 새마을금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정 사무국장은 “보육교사, IT업체 등 좁은 업계의 특성이기도 하고, 작은 사업장의 특성이기도 하다. 업계 평판이 개개인에게 반영되니 찍히면 괴롭힘 당하고, 도와줄 사람도 체계도 없어 참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직장갑질119의 4분기 실태조사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의 22.1%가 회사를 그만뒀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퇴사 비율은 47.4%에 달했는데, ‘뭉치기 어려운’ 노동자들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할 방법도 필요한데, 고용노동부의 ‘2021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46.3%인 반면, 30~99인 사업장은 1.6%로 나타났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그쳤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중소 사업장의 직장갑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정 사무국장은 “이사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새마을금고처럼 지역의 작은 사업장에는 구시대적 문화가 잔존한다. 부정이 발생했을 때 중앙회가 확고히 일벌백계하고, 조직문화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네.

사랑하는 큰아들아

아무튼, 오늘 오후 편지 여기서 마치니, 오늘 하루도 안전하고, 건강하고, 늘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안녕히…….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오후에 혈액암 투병 중인 아빠가

핸드폰으로 들리는 배경음악-[외국곡] Rain & Tears-Aprodite's Ch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