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열 번째로 서울의 태릉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서울 태릉과 강릉
태릉(泰陵, 중종비 문정왕후)
위치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조성 연도 : 1565년(명종 20)
왕릉 형식 : 단릉
단릉(單陵)
단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이다. 대표적으로 태조 건원릉, 단종 장릉, 중종 정릉 등 15기의 능이 있다.
▷ 태릉(泰陵) 이야기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명종은 어머니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원래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긴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만 적용되었는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능침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등 석물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크게 세웠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 문정왕후(文定王后) 이야기
문정왕후 윤씨(재세 : 1501년 음력 10월 22일 ~ 1565년 음력 4월 7일)는 본관이 파평인 파산부원군 윤지임과 전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났다. 1515년(중종 10) 중종의 두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517년(중종 12)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1남(명종) 4녀를 낳았다.
당시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왕세자로 책봉된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명종)을 낳자, 인종을 지지하는 대윤(大尹)과 경원대군을 지지하는 소윤(小尹) 간의 대립이 있었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윤이 정권을 잡았으나, 인종이 재위 9개월 만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이복동생 경원대군(명종)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때 왕실 최고 어른이자 명종이 어머니였던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고, 정권은 대윤에서 소윤으로 넘어갔다.
소윤은 의도적으로 대윤을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다시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대윤과 선비세력을 제거하였다. 수렴청정 기간 동안 정국은 불안정하여 매관매직이 빈번하였고,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 문정왕후는 불교에 관심을 두어 불교 부흥에 앞장서 선교양종 및 승과제도를 부활시켰고, 보우를 봉은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8여 년의 수렴청정을 끝내고 명종이 친정(親政, 왕이 직접 정치를 행함)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문정왕후에게 있었다. 1565년(명종 20) 창덕궁 소덕당에서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첫댓글 태릉, 정릉 이런 동네가 다 사연이 많은 동네여 ㅎㅎ
태릉, 정릉, 선릉, 선정릉, 사릉역 등 왕릉이름의 지하철 역만 5군데나 되네요. 사극만큼 사연이 많지요 ^^
태릉 푸른동산 장위동살때 마니갔는데 ㅋ
갈빗집도 유명한곳있었고
갈비줄섬미다
@강철수트
@강철수트 아무튼 줄은 제일 빨리 서시는군요 ^^
태릉갈비가 전통적으로 유명하고 고급집들이 많죠
@베라루빈 날강돕니다 강철날강도
222 갈비줄섬미다
@supervisor 고깃집 사장님한테 줄서면뎀니까
@뽕 존스
@supervisor
@베라루빈 줄 빨리 서야 실망하지 않는 법 입니다 !!!
@강철수트 새치기 좀 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