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뫼 지인 농막을 찾아
십이월 첫 주 화요일이다. 수도권과 중부 내륙은 며칠 전 첫눈이 폭설로 내린 후 추위가 풀리지 않은 듯 하나 우리 지역은 그다지 추운 줄 모르고 지낸다. 주중 아침 자연 학교로 가는 등굣길 교통편은 열차를 이용하려 마음먹었다. 창원중앙역에서 진주를 출발 동대구로 가는 통근 열차를 탈 셈이다. 날이 덜 밟은 어둠 속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교로 나가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창원대학 캠퍼스 구내를 지나는 즈음 비음산 날개봉 산등선으로 날이 밝아오는 기운이 서렸다. 창원중앙역에 닿아 진주에서 오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한림정까지 가는 표를 구했다. 정한 시각 닿은 열차에 올라 비음산터널을 통과한 진례역에서 대피 선로에서 수서행 SRT를 앞세워 보내고 진영역을 지났다. 창밖으로 보인 화포천 습지 냇바닥엔 남녘으로 날아온 철새들이 모여 놀았다.
한림정역에서 내린 승객은 혼자뿐이었다.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은 무인 역사를 빠져나간 신성마을에서 북쪽을 향해 걸었다. 전방에는 최근 개통된 60번 신설 국도에 뚫은 다리가 우뚝하게 보였다. 한림 가동에서 생림으로 경전선 철길과 호포천에 높다란 주탑을 세워 쇠줄로 팽팽히 당긴 사장교였다. 국도 굴다리를 지난 들녘을 걸으니 벼를 거둔 뒷그루로 양파를 심느라 일손이 바빴다.
농촌 들녘에서는 여름의 벼농사 수익보다 추수 이후 이모작 작물을 가꾼 소득이 더 높기 마련이다. 일부에는 벼농사를 포기하고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가꾸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는 지난가을 무척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비가 와 벼를 거둔 논바닥에 물이 고여 뒷그루 경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트랙터가 젖은 논바닥을 갈지 못해 양파와 마늘 심기가 늦어지는 경향이었다.
들녘에서는 이른 아침인데도 부녀들 중심으로 양파를 심는 일손이 분주했다. 그 가운데는 주로 베트남에서 온 인력이 많은데 우리나라 농사일에 익숙했다. 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화답해 왔다. 시전마을을 지난 한림배수장에서 가까운 신촌에서 강둑으로 올랐다. 화포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홍수를 대비하는 커다란 배수장이다.
둑 너머 둔치에는 물억새와 갈대가 시들면서 갈색 평원이 드넓게 펼쳐졌다. 강 건너는 밀양 상남면 오산과 명례였다. 강물이 삼랑진으로 흘러가는 산모롱이는 밀양강이 흘러온 뒷기미와 경전선 철교가 아스라이 보였다. 4대강 사업으로 뚫은 자전거길을 따라 술뫼로 향해 시산 언덕 농막에서 전원생활 누리는 지인을 찾아갔다. 주말은 부산 자택에서 지내다 주중은 농막에서 보낸다.
공기업에서 은퇴한 지인은 텃밭을 가꾸며 강변 풍광을 곁들인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시청자를 늘려간다. 어제 서리가 오기 전 풋고추를 노지에 구덩이를 파고 스티로폼에 모래를 채워 저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바 있다. 길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는 즐거움도 소소한 듯했다. 지인을 뵙고 인사를 나누고 실내로 들어 결명차를 들면서 어렵게 청년기를 보낸 회고담을 들었다.
지인과 헤어지면서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을 살펴봤다. 여름 한 철은 물론 늦가을까지 계속 딴 가지와 고추는 푸른 잎이었다. 거기는 아직 된서리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을에 심은 무와 배추는 싱싱하게 자랐다. 녹즙을 내서 든다는 케일도 잎이 싱그러웠다. 나는 농막 방문 기념으로 너풀거리는 잎인 상추와 끝물 고추를 한 줌 따 배낭에 채워 지인과 작별하고 텃밭을 벗어났다.
시산 언덕에서 강둑을 따라 자전거길을 걸으니 술뫼 파크골프장에는 동호인들이 잔디밭을 누비며 여가를 즐겼다. 강둑을 계속 걸어 가동을 지나자 신설 국도 미개통 구간은 인부들이 공사를 하느라 장비를 움직였다. 강 건너 명례는 순교자 성당과 전주 이씨 낙주재 재실이 아득하게 바라보였다. 둑길이 끝난 유등 배수장에서 가술을 거쳐 시내로 가는 49번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2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