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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士)
재덕(才德)은 있지만 은거(隱居)하여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선비를 가리키던 말이다.
處 : 살 처(虍/5)
士 : 선비 사(士/0)
'처사(處士)'의 원의는 재덕(才德)은 있지만 은거(隱居)하여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인(士人)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들은 자처(自處;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처신함) 하기를 좋아했고 생전에 이름이 들리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벼슬하지 않을 경우 '서민'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은 벼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벼슬을 하게 되면 원하지 않는 일, 도의에 어긋난 일도 서슴없이 해야 했기 때문에, 덕이 높은 고사(高士)들은 구차한 삶을 싫어하여 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예가 종종 있었다.
공자도 제(齊)나라에서 돌아온 뒤 처사(處士)의 삶을 영위한 적이 있으며 삼도를 허무는 일(墮三都)이 실패한 후 천하 유력을 떠났을 때 한 동안 처사(處士)의 삶을 동경한 적이 있다.
처사(處士)는 구차한 삶을 싫어하여 서민으로 살아갈망정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산 사람들이다. 출사를 하게 되면 많은 혜택을 받지만 그 대가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그러나 출사를 하지 않으면 군신(君臣) 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명을 따를 필요가 없고 충성을 바쳐야 할 의무도 없다. 춥고 가난하며 고통스런 삶을 영위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관리들의 제재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왕이나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처사들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또 성가시게 여겨졌지만, 이들을 제재할 방법이 법 테두리 안에 없고, 또 이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출사 때문에 자신들은 실현하지 못하는 유학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외경(畏敬)'의 차원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만일 자신들의 요구(대개는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하여 제재를 가하게 되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관리들은 물론 국왕조차도 존경할망정 억압하지 않았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사회에도 법은 있었다. 법의 준수와 적용은 황제라 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종종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왕이 등장하는 예가 있는데, 그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지고 있는 것일 뿐, 불법을 저지르는 왕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조를 떠 받치는 기둥이 바로 법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법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곧 왕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왕조의 관계자들 쪽에서 용납하지 않았다. 정난(靖難)이 일어난 것이다. 왕이 저지르는 불법이 자기들의 사익(私益) 추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공(公)'이 건실해야 자신들도 가져갈 수 있는 몫(私)이 있기 때문이다. 법 곧 '공(公)'의 준수는 왕이든 신하이든 모두가 지켜야 할 천하의 보편 원칙이었다.
혼란은 정해진 규칙(禮, 곧 분배 정의)이 지켜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런 일들은 대개 왕이 국정 운영을 태만히 하여 관리들에 대한 통제가 미흡하거나 부패한 관리(外朝)들을 감찰하기 위해 영입한 내조(來朝)의 관리들이 백성들의 몫을 불법적으로 강탈할 때 일어난다. 이때 백성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왕조가 몰락하기도 한다. 문제는 왕조의 몰락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몰락이다. 왕조가 몰락할 경우 새로운 왕조로 대체하면 그만이지만 공동체의 몰락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나라들이 나타났다 사라져 간 모습을 본다. 동아시아만 해도 나라를 이룬 민족은 한족과 몽골족, 일본족, 그리고 우리 민족 뿐이다. 만주족은 청(淸)이라는 대제국을 이루며 천하를 지배했지만 오늘날 그들이 이룬 나라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와 문자조차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면 여간해서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된다 하여도 수 세대를 경과한 뒤에야 겨우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처사(處士)들의 권능은 이때 발휘된다. 처사(處士)들은 벼슬 길에 나아가지 않았을 뿐 통치에 필요한 지식과 덕목을 모두 갖춘 사람들이다. 유학의 교양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출사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모두 것이 갖추어진 사람들이다.
보통 '처사(處士)'라고 하면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뭍혀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북창청풍(北窓淸風)'하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이들은 처사(處士)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일체 간여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은일지사(隱逸之士)'도 처사(處士)가 아니다. 그들은 처사(處士)의 적이요 민생의 적일 뿐이다.
처사(處士)는 유교적 교양의 세례를 받아 몸과 마음이 유학의 정신으로 꽉 차 있고 유학의 정신과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정치계의 번거로움과 세상의 어수선함을 싫어해서 초야에 뭍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조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출사해서 뜻을 펼칠 수 있는 이를테면 '관료 상비군'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다.
유학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다. 인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인간다운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덕목이 '충(忠; 盡己)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없다.
이에 인간다움의 실현에 뜻을 둔 자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이루려는 노력과 함께 남의 인간다움도 이루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서(恕; 推己及人)의 도덕이다. 이런 경우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보다 그것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맹자는 사(士)의 본업을 묻는 왕자 점(王子墊)의 질문에 "사는 뜻을 키워 출사하는 것이라"고 답해 줬다. '뜻을 키운다'고 할 때의 '뜻'이 '인간다움의 구현'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출사는 바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유학의 교양 습득을 매우 강조하며, 이를 '사람됨'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이런 도덕을 완성한 사람이나 이런 도덕의 취득에 정진하는 사람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존경(師表)했던 것이다.
처사(處士)들이 보기에 국가의 기층은 민생(民生)이다. 그리고 이 민생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덕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며, 어른은 어린 이에게 바르게 사는 법을 일러 주고 어린 이는 어른의 경험에서 인생의 경륜을 배워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돕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붕우(사업하는 사람들) 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 형제 자매 간에는 다툼이 없어야 하며 화목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해야 한다.
정치에 나아간 자는 하늘이 만 백성을 낸 뜻을 헤아려 인정(仁政)을 펼쳐야 하며(君子上達), 처사(處士)로 살아가는 자는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켜 국가의 재정을 돈실하게 하여 나라를 아래로부터 굳건하게 해야 한다(小人下達).
'상달(上達)'이든 '하달(下達)'이든 거기에는 모두 인간의 정이 녹아 있는 것이다. 출사(出士)와 처사(處士) 사이에는 상하의 구분이나 존비(尊卑)의 차별이 없다. 그것은 단지 '세(勢)'가 만들어 낸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다.
처사(處士)들은 자신의 이익보다 민생의 이익에 전념했다. 유학의 이상은 '충서(忠恕)'에 있기 때문이다. 출사한 자들 앞에는 이른바 '세(勢)'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자신을 등용해 준 왕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 있었지만, 처사들에게는 그런 의무나 규정 같은 것이 애초부터 있지 않았다. '충(忠)'은 오로지 국가의 안위, 백성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쓰인 것이다. 유학의 도를 실현하는 데는 처사들의 삶이 오히려 홀가분했던 것이다.
전제군주 국가에서는 왕과 국가가 등치되고, 왕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등치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안다. 국가와 군주는 다르다는 것을. 그러나 왕에게 등용(出仕)된 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왕의 이익 추구에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다. 그것이 내키지 않으면 정치계에서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처사에게는 그래야 할 의무나 도덕 같은 것이 없다. 군왕을 존경하는 것은 단지 그가 하늘의 명을 받아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데 필요한 정치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백성이 있다면 그들을 돌볼 왕(정부)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왕에 대해 공경심을 표시할 뿐이다. 다만 그것은 왕이 백성들의 삶 곧 인간다운 삶을 보호하려고 할 때 뿐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충성을 바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출사한 관리들에게 요구된 '충(忠)'의 덕목은 국가와 동일시 된 '군주'를 향해 있지만, 처사들이 실현하는 '충'의 덕목은 오로지 국가(民生)를 향해 있는 것이다. '공사(公私)'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출사한 관료들에게는 '공사'의 기준이 왕조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지만 처사들에게는 민생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었다. 공자가 말한 '충서'의 도덕에 철저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출사한 관리들은 나라가 평화로울 때에는 군주와 더불어 복록(福祿)을 누리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모욕을 당하거나 죽임에 내몰린다. 청사(靑史)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자자손손 전해지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처사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평소에는 유학의 교양을 연마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주력하고, 국정이 문란할 때에는 가산(家産)을 털어 민생을 돌보며 어떠한 경우에도 민생이 피폐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다. 민생의 안정이 인간다운 삶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평소에 베푼 감화(感化)를 바탕으로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그것이 민생을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름은 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며 구전(口傳)으로 남아 전설로 전해질 뿐이다.
처사들은 공을 이룬 뒤 그에 머물지 않는다. 선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사한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할 만한 여유나 자유조차 없다. 왕이 주는 것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게 의무요 '충'이기 때문이다. 결국 영욕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처사는 이런 것을 구차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출사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만의 도를 실현하며 살았던 것이다.
온갖 부덕한 무리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던 시절,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치명(致命)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림 처사들을 기리며 이 글을 쓴다. 그들 처사들이 걸었던 길을 오늘 우리 향사(鄕士)들이 간다. 공자의 지학(志學)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太史公曰, 詩有之, 高山仰止, 景行行止. 雖不能至, 然心鄉往之.
태사공이 말하길, "시경에 높은 산은 우러러보고, 큰 길을 간다"고 하였다. 비록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사모하여 따른다.
(사기 공자세가 태사공찬)
▶️ 處(곳 처)는 ❶회의문자로 処(처)의 본자(本字), 处(처)는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와 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 : 止; 발을 아래로 향하게 쓴 자형으로 내려가다, 이르는 일)部와 범호엄(虍; 범의 문채, 가죽)部의 합자(合字)이다. 걸어서 걸상이 있는 곳까지 가서 머무름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處자는 '곳'이나 '때', '머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處자는 虎(범 호)자와 処(곳 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處자는 본래 処자가 먼저 쓰였었다. 処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冖(덮을 멱)자만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발이 탁자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止자 대신 人(사람 인)자가 쓰이면서 사람이 탁자에 기댄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다. 処자는 이 두 가지 형태가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탁자에 기대어 잠시 멈추어 있음을 뜻한다. 이후 소전에서는 処자와 虎자와 결합하면서 범이 앉아있는 모습의 處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處(처)는 (1)중앙(中央) 관서(官署)의 하나 (2)육군(陸軍)의 사단(師團) 중(中) 이상(以上) 사령부의 참모부서의 이름. 일반(一般) 참모 부서에 쓰임 (3)어떤 조직(組織) 따위에서 일정한 사무(事務)를 맡아보는 부서 명칭(名稱)의 하나 (4)고려(高麗) 23대 고종(高宗) 이후에 있었던 요물고(料物庫)에 딸린 일종의 장원(莊園) 등의 뜻으로 ①곳, 처소(處所) ②때, 시간(時間) ③지위(地位), 신분 ④부분(部分) ⑤일정한 표준(標準) ⑥살다, 거주하다 ⑦휴식하다, 정착하다 ⑧머무르다 ⑨(어떤 지위에)있다, 은거하다 ⑩누리다, 향유(享有)하다 ⑪맡다, 담당하다 ⑫다스리다 ⑬대비(對備)하다 ⑭(미혼으로)친정에 있다 ⑮돌아가다 ⑯사귀다 ⑰보살피다 ⑱처리(處理)하다, 대처(對處)하다 ⑲분별(分別)하다 ⑳차지하다 ㉑두다, 보지(保持)하다(온전하게 잘 지켜 지탱해 나가다) ㉒모이다 ㉓자처(自處)하다 ㉔결단(決斷)하다 ㉕멈추다 ㉖(병을)앓다 ㉗나누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다스려 치러 감을 처리(處理), 위법 행위에 대하여 고통을 줌을 처벌(處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병의 증세에 따라 약재를 배합하는 방법을 처방(處方), 처리하여 다룸을 처분(處分), 일을 처리함을 처사(處事), 근로자에게 어떤 수준의 지위나 봉급 등을 주어 대접하는 일을 처우(處遇),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몸가짐이나 행동을 처신(處身), 사람이 살거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곳을 처소(處所), 형벌에 처함을 처형(處刑), 일을 감당하여 치러 감을 처치(處置), 이 세상에서 살아감을 처세(處世), 결정하여 조처함을 처결(處決),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처사(處士), 정해 두고 항상 있는 곳을 거처(居處), 사물이 나온 근거를 출처(出處), 가까운 곳을 근처(近處), 일을 정돈하여 처리함을 조처(措處), 어떠한 일에 대응하는 조치를 대처(對處), 정부 각 조직체의 부와 처를 부처(部處), 몸의 다친 자리를 상처(傷處), 가는 곳이나 이르는 곳을 도처(到處), 중요한 데를 요처(要處), 처리하기 어려움 또는 처지가 딱함을 난처(難處), 여러 곳이나 모든 곳을 각처(各處), 어떤 곳이나 아무 곳을 모처(某處), 좋은 방법으로 알맞게 처리함을 선처(善處), 본디 나서 자라났거나 생산되었던 곳을 본처(本處),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말을 추처낭중(錐處囊中), 잘한 뒤에 처리한다는 뜻으로 후환이 없도록 그 사물의 다루는 방법을 정한다는 말로서 뒤처리를 잘하는 방법이라는 말을 선후처치(善後處置),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란 뜻으로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또는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이라는 말을 도처춘풍(到處春風), 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함 또는 가는 곳마다 뜻밖의 화를 입는다는 말을 도처낭패(到處狼狽),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었다는 말을 묘서동처(猫鼠同處), 발을 붙이고 설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기반으로 삼아 의지할 곳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착족무처(着足無處),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신비를 이르는 말을 산림처사(山林處士), 가는 곳이나 간 곳이 분명하지 아니하다는 말을 거처불명(去處不明), 원통한 사정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말을 호소무처(呼訴無處),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을 연작처당(燕雀處堂) 등에 쓰인다.
▶️ 士(선비 사)는 ❶회의문자로 하나(一)를 배우면 열(十)을 깨우치는 사람이라는 데서 선비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士자는 '선비'나 '관리', '사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士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고대 무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士자는 BC 2,000년경인 오제(五帝)시대에는 감옥을 지키는 형관을 뜻했고, 금문에서는 형관들이 지니고 다니던 큰 도끼를 말했다. 그러니 士자는 본래 휴대가 간편한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무관(武官)을 뜻했던 것이다. 士자에 아직도 '관리'나 '군사', '사내'와 같은 뜻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士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선비'나 '관리', '남자'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士(사)는 (1)장기에 있어서 궁을 지키기 위하여 궁밭에 붙이는 두 개의 말 (2)중국 주(周)나라 때 사민(四民)의 위이며 대부(大夫)의 밑에 처해 있던 신분 등의 뜻으로 ①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②관리(官吏), 벼슬아치 ③사내, 남자(男子) ④군사(軍士), 병사(兵士) ⑤일, 직무(職務) ⑥칭호(稱號)나 직업의 이름에 붙이는 말 ⑦군인(軍人)의 계급 ⑧벼슬의 이름 ⑨벼슬하다 ⑩일삼다, 종사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선비 유(儒), 선비 언(彦)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장수 장(將), 백성 민(民)이다. 용례로는 병사를 지휘하는 무관을 사관(士官), 선비의 아내 또는 남자와 여자를 사녀(士女), 선비의 힘 또는 병사의 힘을 사력(士力), 장교가 아닌 모든 졸병을 사병(士兵), 병사의 대오를 사오(士伍), 학식이 있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사인(士人), 군사를 사졸(士卒), 군사의 기세 또는 선비의 기개를 사기(士氣), 선비로서 응당 지켜야 할 도의를 사도(士道), 선비들 사이의 논의를 사론(士論), 선비와 서민 또는 양반 계급의 사람을 사민(士民), 일반 백성을 사서(士庶), 선비의 풍습을 사습(士習), 문벌이 좋은 집안 또는 그 자손을 사족(士族),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의 무리를 사류(士類), 군사와 말을 사마(士馬), 선비의 기풍을 사풍(士風), 양반을 일반 평민에 대하여 일컫는 말을 사대부(士大夫),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덕행이 높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을 사군자(士君子), 교육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인사(人士), 하사관 아래의 군인을 병사(兵士), 절의가 있는 선비를 지사(志士),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성심껏 장렬하게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을 의사(義士), 기개와 골격이 굳센 사람을 장사(壯士), 세상을 피하여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를 은사(隱士), 학덕이 있고 행실이 선비처럼 어진 여자를 여사(女士), 의욕이나 자신감이 충만하여 굽힐 줄 모르는 씩씩한 기세를 떨쳐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사기진작(士氣振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을 일컫는 말을 사기충천(士氣衝天),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수양이 깊어 말이 없는 사람 또는 말주변이 없어서 의사 표시를 잘못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언거사(無言居士), 백금을 받은 용사라는 뜻으로 매우 큰 공을 세운 용사를 이르는 말을 백금지사(百金之士), 산림에 묻혀 사는 군자를 두고 이르는 말을 산림지사(山林之士), 세속밖에 홀로 우뚝한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특립지사(特立之士), 궤변을 농하여 국가를 위태로운 지경에 몰아넣는 인물을 일컫는 말을 경위지사(傾危之士), 보잘것없는 선비 또는 식견이 얕은 완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개지사(一介之士), 나라의 앞일을 걱정하는 기개가 높고 포부가 큰 사람을 일컫는 말을 우국지사(憂國之士), 세상일을 근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우세지사(憂世之士), 좋은 일에 뜻을 가진 선비를 일컫는 말을 유지인사(有志人士), 무슨 일이든지 한마디씩 참견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사람 또는 말참견을 썩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언거사(一言居士), 조그마한 덕행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일절지사(一節之士),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하게 할 큰 뜻을 품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지사인인(志士仁人), 바위 굴속의 선비라는 뜻으로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선비를 이르는 말을 암혈지사(巖穴之士), 천명을 받아 천자가 될 사람을 보필하여 대업을 성취시키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좌명지사(佐命之士), 항우와 같이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힘이 몹시 세거나 의지가 굳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항우장사(項羽壯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