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創價)의 꽃 백련그룹(상) 52 ~ 77p중에서 명명(命名) 50주년 기념 올해(2016년) 7월, 백련그룹(한국의 무궁화반)이 명명 50주년을 맞았다. 상쾌하게 웃는 얼굴로 벗을 맞이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창가(創價)의 꽃'이다. 이케다 SGI 회장은, 존귀한 청춘을 보내는 백련의 젊은 여성들을 상찬하며 시를 보냈다. "언제나/ 청정한 보살의/ 모습을 하고/ 창가를 지키는/ 여러분에게/ 행복있어라"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는, 말법 광선유포의 주역인 지용보살(地涌菩薩) 이 출현한다. 그 특징 중 하나로 '연화'의 모습을 들어 이렇게 설한다. "선학보살도 불염세간법 여연화재수(善學菩薩道 不染世間法 如蓮華在水, 보살 의 도<道>를 잘 배워서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연꽃이 물에 있는 것과 같나이다.)" (묘법연화경병개결 471쪽) 백련은 흙탕물에도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처럼 법화경 행자는, 말법이라는 탁세(濁世)에도 결코 세법에 물들지 않고 보살도를 꿋꿋이 걷는다. 이처럼 존귀하고 강하고 청아한 이름을 딴 그룹이 백련그룹이다. 올해(2016년) 7월로 명명 50주년을 맞았다. 순수하게 신심에 힘쓰면서 사회 속에서 분투하는 백련의 벗. 회합에서는 산뜻한 행동으로, 모인 사람을 웃음짓게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백련그룹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SGI 회장은 '백련'을 지켜보며 계속 격려했다. 수필 '고귀한 마음을 가진 백련그룹'에서는, 임무를 서는 모습을 칭찬하며 이렇게 썼다. "오늘도 우리 보성(寶城)으로 삼삼오오 명랑하게 모였다 돌아가는 위대한 서민의 행진을 맞이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소중한 '백련' 여러분 이다. 상쾌한 목소리! 청순한 웃는 얼굴! 절도 있는 움직임! 청초한 녹색 유니폼을 보면 모두 안심한다. 백련의 모습은, 모든 사람의 마음 을 부드럽게 한다. '광선유포의 소중한 회합을 절대 무사고로!'라는, 깊고 존귀한 기원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내일도 많은 동지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책임감에 불타 성공을 위해 멋지게 지휘하는 씩씩한 그대여.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맡은 바 임무를 철저히 완수하겠다!'며 성대한 박수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침착한 자세로 홀로 일어서 꿋꿋이 노력 하는 백련그룹이여. 수많은 벗이 회합을 마치고 돌아간 뒤, 쉴 틈도 없이 묵묵히 광선유포의 회좌(會座)를 깨끗이 청소하는 거룩한 젊은 여성들이여. 어둡고, 탁할 대로 탁한 이 사회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벗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백련' 자매의 청춘은 매우 존귀하고 아름답고 훌륭하다." 또 소설《신·인간혁명》에서는, 회장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가 백련그룹 멤버에게 기대를 보내며 이렇게 격려했다. "'백련그룹'은 학회의 '얼굴'이고, 창가의 '꽃'입니다. 젊은 여성들이 광선유포라는 목적을 위해, 회원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존귀하고도 숭고합니다. 그런 노력과 노고는 모두 자신을 장엄케 하는 위대한 공덕과 복운이 됩니다. 이는 불법의 엄연한 인과이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불법자로서 엄연히 내 길을 간다'는 기개가 중요합니다. 남이 어떻게 평가하고 주위가 어떻게 보느냐로 행동 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佛法)의 법리를 기준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길 외에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신·인간혁명》제24권 '엄호') 백련그룹의 연원은 1957년 5월, 여자부간부회 때 발족한 '정리반'이다. 모든 행사의 운영과 정리를 담당하면서 인재육성에 힘쓰자는 취지에서 시작 했다. 제안한 사람은 이케다 청년실장이다. 이듬해인 1958년 3월, 총본산에 대강당이 완공되어 기념 등산회를 시작했을 때도 여자부에서 뜻을 모아 자발 적으로 안내와 청소 등을 담당하는 그룹을 만들었다. "모두를 위해, 광포를 위해 자진해서 일어선 '자발적인 마음'이야말로 '백련'의 연원이다." (수필 신·인간혁명) 대강당 완공을 기념하는 총등산 때, 처음 임무를 섰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등산하신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전례도 없고, 매뉴얼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매번 불분명한 상태에서 임무를 선 뒤 반성할 부분을 되짚으며 하나하나 충실 하게 임무를 섰습니다. 1962년, 이케다 선생님은 본산에서 임무를 서는 여자 부원에게 "우아하고 의연하게 힘차게 무관(無冠)의 여왕처럼 행동하세요." 하고 격려하셨습니다. 당시 생활은 결코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우아'나 '여왕'이라는 말을 사용하셔서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일만으로 도 벅찬 우리의 경애를 끌어올려 광포를 위해, 긍지 드높고 마음 풍부한 인생을 걷는 '여왕'의 행동을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처지나 환경에 놓여도 '무관의 여왕'처럼 늠름하고 명랑하게 꿋꿋이 사는 일이, 인생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이 그룹은 '본산 정리반' '본산 행사요원'으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며 분투했다. 당시는 단복도 없는 시절이었다. 모두 위아래 검정 정장 에 여름에는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옅은 파란색 완장을 차고 걸레질과 비질, 쓰레기 줍기 등으로 땀을 흘렸다. 냇가에 흐르는 낙엽도 주웠다. 여자부들은 자긍심과 사명감에 불타 아름답게 빛났다. 이케다 회장은 그런 여자부들을 계속 격려했다. 청소하는 모습을 재빨리 발견하고는 몇번이나 말을 걸었다. 당시 세이쿄신문에는 '비록 빗자루를 들고 있어도 이케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 여왕처럼 가슴을 폈다'는 멤버의 결의가 실려 있다. 멤버들은 광선유포를 위해, 회원님들을 위해, 종문 외호를 위해 다기지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본산 승려들의 태도는 심했습니다. 청소하는 멤버 들을 보고 감사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쌀쌀맞게 내려다보는 승려가 있었습니 다. 옛날부터 승속차별이라는 추악한 습성이 있었습니다. 밤에는 일찍 소등 하기 때문에 여자부 행사요원은 오전 5시에는 일어나서 청소를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 행사요원은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 되어도 그저 열심히 계속 작업했습니다. 사명감에 불타서 음지에서 묵묵히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그런 여자부들을 철저히 격려해주셨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회합 사이 등, 아무도 없을 때 눈에 띄지 않도록 청소할 때도 선생님은 행사요원 곁으로 발걸음을 옮겨 "여러분 덕분에 깨끗해졌군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몇번이나 거듭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단순한 '청소'가 아닙니다. 마음을 닦고 있는 겁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하고 격려받은 멤버도 있습니다. '여성의 행복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이케다 회장은 이렇게 지도했다. "여성은 행복해지기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자, 아직 신심 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하자는 굳은 결의를 품고 학회활동을 꿋꿋하게 실천 할 때 비로소 최고의 행복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만으로 괴로워 하고 막혀 있는 것은 지용보살이 아닙니다. 어본존에게 제목을 확실히 불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민중의 행복을 위해 활약할 수 있는 '힘 있는' 여성이 되기 바랍니다. 또 그래야 최고의 복운이 열립니다. 신심하지 않는 여성 중에 주위에서 부러움을 받는 듯한 처지라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간의 표면적인 행복의 모습에 분동되지 않고 자신과 인생, 어본존, 불도수행을 겸허하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아가야 합니 다. 강성한 신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산 행사요원은 환희에 차 임무를 수행했다. 봄에는 떨어지는 벚꽃 잎을 어깨에 받고, 여름에는 내리쬐는 햇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에는 낙엽을 산처럼 모으고, 겨울에는 얼어붙을 듯한 날씨 속에서 걸레질을 했다. 나중에 이케다 회장은 존귀하고 다기진 여자부들의 모습을 시로 지었다. "휴지를 / 줍는 모습에 / 부처 있노라" 열다섯 명으로 조를 짜서 월 1회, 1박 2일 교대제로 임무했다. 모두 직장에서 신뢰를 얻으며 용감하게 임무를 맡았다. 모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이케다 선생님이 지켜봐주신다. 지금이야말로 사제원점을 새기자'고 착실하게 자기 사명을 다했다. 그 훈도에 힘입어 인재 가 육성되어 부대장 등 리더가 잇달아 나왔다. 1966년 7월 8일, 멤버들에게 환희가 퍼졌다. 그때까지 '본산 행사요원'이라는 명칭이 다시 '본산 정리반' 이 되고, 나아가 '백련그룹'이라는 총칭을 받았다. 세이쿄신문 1면에는 '백련그룹 발족'이라는 표제어가 눈에 띄었다. 스승은 '백련'이라고 명명한 의의를 훗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마존의 '백련'에는 별명이 있습니다. '승리의 여왕'이라는 이름입니다. 나는 이러한 의미도 고려해서 '백련'이라는 이름을 여자부에 증정했습니다. 백련은 가장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가장 청아한 꽃을 피웁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세계 제일의 꽃'입니다. 백련은 인간의 위대함, 여성으로서 최고로 행복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틀림없이 우리 창가 여성이 바로 '승리의 여왕'입니다. (《사제의 보관》제6권) 또 백련그룹의 정신을 이렇게 쓰셨다. "'백련'의 생명은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연꽃이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입니다. 어떤 수렁 같은 현실에서도 여러분은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묘법연화의 당체(當體)로서 모든 것을 변독위약해서 승리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또 '백련'의 생명은 '행복'과 '희망'을 넓히는 힘입니다. 여성 문하에게 보내신 성훈에는 '인과구시(因果俱時, 꽃과 열매가 동시 <同時>)'라는 연화의 특질을 통해 '이 경(經)을 수지하는 사람은 백인이면 백인 모두, 천인이면 천인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불한다.' (어서 1580 쪽)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꿋꿋이 대화한 만큼 부처의 씨앗 을 벗의 마음에 뿌립니다. 반드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가 올 것입니다" (2010년, 백련그룹총회 메시지) '백련'이라는 이름은 여러모로 의의가 깊다. 이케다 회장의 명명에, 멤버들의 가슴에는 자긍심과 사명감이 더욱 들끓었다. 1966년 7월 초, 이케다 선생님과 여자부 대표 멤버가 간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 습니다. 당시 책임자인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본산 행사 요원에 이름을 붙여달라고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며칠 뒤 용지 한 장을 주셨습니다. 저는 펄쩍 뛸 듯이 기뻤습니 다. '백련그룹'이라는 굉장히 훌륭한 명칭이 씌어 있었습니다. 임무를 서고 있는 멤버들에게 곧장 연락했습니다. 모두 "와, 백련그룹!" 하고 놀라고 기뻐 하며 감동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멤버들과 만나면 이야기 나눕니다. "백련은 우리의 청춘이지요. '백련'이라는 글자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청춘시절 로 돌아갑니다." 하고 말입니다. 선생님이 지어주신 명칭의 깊은 의의를, 백련그룹을 졸업하고 더욱 새기고 있습니다. 백련그룹 명명 5년 뒤 1971년, 여자부 인재육성 종합기관으로 '백련대학'이 신설되었다. 9월 24일, 시나노마치에서 개교식을 열었다. 백련대학은 ①개성을 개화하고 창가 문화를 책임질 사람을 육성한다. ②복덕과 지혜 풍부 한 근대 여성을 육성한다. ③인류의 미래를 개척할 새로운 혁명적 여성을 육성 한다는 세 가지 항목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발했다. 백련강좌(학회의 이념과 여자부의 사명 등을 연찬)와 책임실습을 축으로 삼아 신시대 인재를 배출하기 를 목표로 설치했다. 여자부장 시절에 '백련대학' 학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완전한 형태로 자리잡은 여자부 인재육성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부 대표가 월 1회 모여 절차탁마해서 성장하는 '백련대학'의 개교는 획기적인 노력이었습니다. '백련대학' 연수는 1박으로 열린 적도 있습니다. 같은 세대의 벗이 함께 자고, 함께 식사하면서, 생활의 고민이나 광포의 희망을 이야기 나누는 것이 멤버들이 성장하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을까요. 또 소설《인간혁명》을 교재로 해서, 사제정신을 몸에 새긴다는 마음으로 함께 공부했습니다. 당시 여자부의 슬로건은 '광포를 위해 사는 총명한 여성 으로, 용기 있는 실천'입니다. '백련대학'이 그 선구를 끊자고 불탔습니다. 1972년 4월 2일에는 반년 동안의 연수를 마치고 제1기생 수료식을 열었습니다. 멋진 수료증서를 손에 들고 모두 '생애 스승과 함께!'라는 결의를 굳게 나누었 습니다. 어느 추운 날, 이케다 선생님이 임무를 서고 있는 백련 멤버에게 춥지 않느냐' 고 말을 걸고 '단복을 만들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1972년 10월, 임무를 맡을 때 입을 빨간색 단복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진심에 휩싸여 긍지 드높게 임무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백련그룹 멤버에게 마음을 쓰고 격려하셨습니다. 홍교가 결실을 맺은 멤버 전원을 격려하신 적도 있습니다. 갓 펴낸 서적에 휘호해서 대표에게 보내주시는 등, 정말로 소중하게 육성해주신 점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합니다. 직장에서 신뢰를 얻으며 임무를 맡는 것 자체가 힘든 도전이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그러한 노고를 전부 알고 계셨습니다. 당시 임무를 맡으면 이케다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물론 행사요원이기 때문에, 많은 멤버가 눈과 눈으로 무언(無言)의 서원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생애 보배가 될 황금 같은 추억을 한사람 한사람에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백련그룹 대표로서 이케다 선생님과 간담할 때에는 '여자부로서 투쟁한 복운을 확신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백련에서 훈도를 받았기에, 많은 멤버가 복운을 쌓고 인생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백련그룹은 여자부 최대 인재육성그룹으로 충실을 기했다. 1972년, 여자부간부회나 여러 행사의 진행요원으로 발족한 '제비꽃그룹'이 '백련대학'의 일부문으로 합쳐졌다. 이듬해인 1973년, '커널그룹'이라고 개칭 했다. 그리고 1974년 4월 2일, 본산 정리반인 '백련그룹'과 회합을 운영하는 '커널그룹'을 통합하여, 두 가지 기능을 합친 '백련대학교(총칭하여 '백련그룹') 로 새롭게 발족했다. 이때부터 입학한 멤버를 제1기생으로 하여 본문의 시대를 짊어질 여성을 육성했다. 연수 내용은 여자부간부회를 비롯해 여러 회합의 운영과 정리 등을 '실습하고' 임무에 나서는 자세를 배우거나, 교학을 연찬 하는 '강좌'를 중심으로 하였다. 1974년 4월 2일, 신체제가 된 백련대학교의 초대 그룹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 다. 당시는 아직 전국에 백련그룹이 없고, 도쿄를 중심으로 가나가와와 간사 이의 멤버 426명이 제1기생이 되었습니다. 단복도 없이 명찰과 커널그룹의 출석카드를 물려받아 시작했습니다. 본부간부회에서 우리가 맡은 주요 임무는 청소였습니다. 하계강습회에서는 폴로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잡초를 뽑거나 물을 뿌렸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행동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백련의 전통을 구축하자!'고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일찍이 이케다 선생님은 하계강습회에서 백련그룹에 "음지이나/ 명의 조람/ 눈부시구나"라는 시를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도 보지 않는 백련그룹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셨습니다. 지금 '백련그룹'은 전 세계로 넓혀졌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오다니! 하고 감동을 느끼면서 직접 백련그룹을 만들어 육성해주신 선생님께 대단히 감사합니다. 백련대학교 제1기생을 맞아 새로운 체제로 출발했을 당시, 저는 운영위원으로 백련대학교의 강좌 기획과 운영을 맡았습니다. 함께 거듭 협의하면서 '단순히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케다 선생님의 기대와 자애를 가슴에 품고 여자부의 중핵을 짊어질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대학교'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 제2대 백련그룹장을 맡고도 그 마음을 늘 잊지 않았습 니다. 본부간부회나 여자부간부회에서는 제1기생과 제2기생 멤버가, 좋은 전통을 구축하고자 진지하게 임무에 나섰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집결시간을 맞추고자 필사적으로 달려온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꾸준히 철저하게 음지의 임무를 다한다. 참석자를 맨처음 맞이하고, 마지막에 배웅 하는 것도 백련그룹이라는 자각으로 웃는 얼굴을 잊지 않는다. 회합이 끝나고 회합장소는 '사용하기 전보다 깨끗하게'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청소한다. 그 하나하나의 도전과 행동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마음으로 관철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간담 자리에서 "복운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복운이 없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지의 노고에 철저한 청춘을 보내고, 복운을 쌓을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직 간사이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학회 회관이 없던 시절, 큰 공공 시설을 빌려 간부회를 열었습니다. 우리 간사이 커널그룹은, 그러한 장소 에서 개최한 회합 운영을 맡았습니다. 그 당시 간사이에서는 상승의 기세 그대로 노도와 같은 홍교를 전개했습니다. 여자부의 진용도 확대하고, 회합결집도 나날이 늘어 참석자의 구도심이 넘쳤습니다. 처음 여는 장소이거 나, 최대 결집을 내건 대회이면 어느 정도의 인원이 참석할지 예측이 어려워 몇번이고 협의하고, 손으로 쓴 진행표와 배치도를 들고 회합의 무사고와 성공 을 늘 기원하면서 임무에 나섰습니다. 그중에는 회합장소가 몹시 더러워 며칠 동안 걸레질을 하여 참석자들이 상쾌하게 모일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 니다. 멤버들은 생활고, 가정불화, 병 등 여러 고뇌를 안은 채 임무에 힘썼 습니다. 회합이 끝나고 발랄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참석자들을 배웅하면서 동지를 위해, 광포를 위해 힘쓰는 기쁨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이케다 선생님은 도쿄에서 학회 조직을 지휘하시면서도 간사이에서 연 여러 회합 진행요원에게까지 마음을 쓰며 전언 등으로 늘 격려를 보내셨습니다. 그러한 사제의 호흡을 느낀 커널그룹의 한사람 한사람은, 회합에 참석한 사람 이상으로 광포의 선두에 서서 분투하자고 결의했습니다. 한번 한번의 임무가 상승의 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학회 속에서 꿋꿋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는 여자부원의 질문에, 이케다 SGI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본존을 배례하고, 각자의 처지에서 성실히 자행화타에 걸쳐 실천하면 됩니다. 먼저 아침저녁으로 착실하게 근행하고, 직장에서는 필사적으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또 학회활동에서는 선배를 잘 쫓아가고, 후배를 잘 돌봐주는 것이 학회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1976년에는 백련그룹으로 명명한 날인 7월 8일을 '백련그룹의 날'로 제정했다. 명명한 지 정확히 10주년을 맞은 해였다. 이때 백련그룹의 임무에 변화가 있었다. 등산회의 임무가 없어졌다. 각 방면, 각 현에 중심회관을 건설하여 여러 행사가 열리면서 백련그룹이 활약할 무대가 넓혀졌기 때문이었다. 1975년 11월, 규슈에서 백련그룹을 발족했다. 이어서 1976년 3월에는 간사이, 6월에는 주부, 도호쿠, 7월에는 호쿠리쿠, 9월에는 신에쓰, 10월에는 주고쿠, 홋카이도, 11월에는 시코쿠, 1977년 2월에는 오키나와에 백련그룹이 탄생하여 전국체제를 갖추었다. 각 방면에 백련그룹을 결성한 배경에는, 학회의 회관 정비를 급속하게 진행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산에서 임무할 당시 승려들은, 정성껏 청소하는 여자부 멤버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백련그룹 멤버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꿋꿋이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러나 신도 를 몹시 깔보는 승려의 태도에, 불만의 목소리가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님은 사원을 건립하는 데 기부하는 등, 온 힘을 다해 재건에 힘쓰셨습니 다. 그러나 '승려는 위이고 신도는 아래'라는 차별주의에 빠진 승려에게는, 선생님의 그 진심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스스로 정면에 서서 제1차 종문사건을 참고 견디며 학회원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또 회관과 학회원을 지키는 백련그룹의 본지라고 할 수 있는 사명을 만드셨 습니다. 1976년 8월, 전국의 회관에서 임무에 임하는 백련그룹을 위해 새로운 단복을 만들었다. '신시대에 걸맞은 단복을 만들면 어떠냐'는 SGI 회장의 조언과 함께 거듭 검토하여 만든 단복이었다. 전국의 백련그룹 멤버는 몹시 기뻐 하며, 아름다운 연보라색 단복을 입었다. 이케다 SGI 회장은 백련그룹의 발랄한 모습을 보고는 '보라색의/ 모습도 늠름하게/ 백련의/ 그대들이 있어 /광포는 확실하노라' 하고 시를 지었다. 당시 평범한 옷차림으로 임무를 하던 백련그룹의 모습을 보고, 이케다 선생님 께서 단복 제작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단복의 색깔이나 디자인까지 자세히 조언하셨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연보라색 단복은 마음에 쏙 들었습 니다. 마치 백련그룹 멤버를 격려해주는 듯한 밝은 색깔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단복을 본 선생님은 '좋군요' 하고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단복이 완성된 것은 여자부 결성 25주년의 때였습니다. 각 방면에서는 여자부간부회를 열어 각지에 광선유포의 기세를 넓혔습니다. 새로운 희망에 불탄 백련그룹이 그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77년 4월 3일, 시즈오카연수원에서 전국의 백련그룹 대표 200명이 모여 제1회 '백련그룹총회'를 상쾌하게 열었다. 멤버들은 연보라색 단복을 입고 명랑하게 스승 곁으로 모였다. 여기서 이케다 SGI 회장은 백련그룹 원점의 정신과 신시대 사명을 힘주어 지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