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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기보다는....
어어부프로젝트야 말로 저런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빨리 카페 안에 있는 글부터 정리해야할텐데 말입니다.
차일피일 십년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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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앨범을 발매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2년, 팬들은 서태지에 관한 온라인 기록 보관소 ‘서태지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홈페이지도 아니고 개인을 위한 아카이브라니.
서태지 아카이브가 문을 연 때는 3월23일 자정이었다. 그런데 문 열기가 무섭게 웹사이트는 몇 번이고 주저앉았다. 흔히들 ‘뻑났다’ 또는 ‘터졌다’란 전문용어를 쓰는 현상을 서태지 아카이브는 몇 차례 겪었다. 이유는 트래픽 폭주였다. 첫날은 30분 간격으로 트래픽을 초기화하해야 할 정도였다. 확인해 보니 첫 3일 동안 하루평균 30GB 트래픽이 발생했다.
이 웹사이트는 서태지가 만든 게 아니다. 서태지컴퍼니도 아니다. 팬들이 만들었다. 서태지 아카이브를 방문하면 온통 검정색으로 칠한 웹사이트에 우선 압도 당한다. 허나 곧바로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에 놀라게 된다. 서태지의 생년월일부터 서태지가 출연·보도·언급된 TV, 라디오, 신문 기사, 잡지, 온라인 기사, 책, 광고가 모여 있다. 20년간 팬들의 활동사항을 한눈에 보는 ‘팬덤’ 폴더도 있다. 팬사이트, 서태지기념사업회, 그간의 활동 사항, 용어집 등이 정리됐다.
사이트를 들여다볼수록 이런 의문이 생겼다.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서태지 아카이브의 개인정보취급방침 문서 속에서 운영자 e메일 주소를 찾아냈다. 조효은 씨는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니 팀원 중 2~3명과 같이 만나자’라고 답장을 보냈다. 다들 생업이 있으니 저녁에 보자고 했다. 약속한 날 저녁 7시 이선미, 정수인, 조효은 씨가 블로터닷넷 사무실에 들어섰다. 간간이 연예뉴스에서 보이는 앳된 10대가 아닌 30대 안팎의 여성 셋이었다. 이름은 알려줬지만, 정확한 나이와 하는 일은 밝히지 않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서태지 아카이브에 참여한 이선미, 정수인, 조효은 씨
서태지 아카이브는 조효은 씨가 2010년 여러 팬 사이트에 제안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팬 사이트들에서 ‘정리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란 의견은 종종 나왔어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제대로 정리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고 거창한 프로젝트로 생각한 건 아니었고요. 팬들끼리 잘 정리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이번엔 말로 그치지 말고 실행에 옮기자고 의지를 다졌다. 팬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좋았다. 곧장 서태지닷컴쪽에 ‘서태지’란 이름을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팬들이 만드는 웹사이트이지만, 서태지란 이름으로 자료를 모으고 서비스하니 당연한 수순이란다. 두 달쯤 지났을까. 답변을 기다리다 지쳐 포기할까 싶을 무렵 ‘사용해도 좋다’란 대답을 들었다.
허락까지 구했겠다, 이젠 이름을 정할 차례였다. ‘서태지 규장각’, ‘서태지 기록보관소’, ‘서태지 아카이브’ 3개가 후보에 올랐다. 이 때가 2010년 10월께,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인기 있을 때라 우리 식으로 ‘규장각’으로 부르자는 안이 있었다. 투표는 한 달이나 진행됐는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3번 ‘서태지 아카이브’로 정해졌다.
웹사이트 저작 도구로는 운영하며 게시판을 더하고 수정하기 좋은 XE를 골랐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교적 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버는 월 10만원짜리 상품으로 웹호스팅 업체에 맡겼다. 자료 목록은 많지만, 음악이나 영상 등을 직접 사이트 안에서 재생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비용은 많이 안 들었다. 트래픽도 초반에 반짝 몰렸고, 지금은 하루평균 4GB 정도 발생하고 1천개 IP에서 5만 히트를 기록한다.
▲서태지 아카이브 첫 화면
사실 서태지 아카이브에 참여한 팬 중에선 웹사이트 개발이나 디자인, 문서 정리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개인 블로그 하나 만들 때도 폴더를 나누고 그에 맞게 콘텐츠를 정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조효은 씨는 “카테고리와 메타데이터 정하는 데 1년이 걸렸고, 인물에 대한 아카이브다 보니 도서, 영상, 웹페이지, 기사, 논문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회의 때 안건은 늘 두루뭉술했다. “자, 오늘은 신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자료 정리에 관해선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선미 씨와 정수인 씨는 “저작권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는 자료도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자료팀 소속 저작권팀원이다. 서태지 아카이브를 준비하고 운영한 팬들은 자료팀, 웹팀, 디자인팀으로 업무를 나눴는데 그 중 자료팀은 단순노동에서부터 저작권 확보까지 업무가 다양하다.
여기서 ‘단순노동’이란 팬들이 보내온 스크랩한 신문기사나 라디오 녹음 파일을 타이핑하는 작업을 말한다. 지금은 재생기도 잘 팔지 않는 VHS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 등 디지털로 전환하기 어려운 자료가 수두룩하다. 자료가 오는 건 반가운데 아직도 디지털화하지 못한 자료를 보면 한숨도 나오는 모양이다. 어찌보면 플레이어를 아예 구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프로젝트를 시작해 다행이라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선미 씨와 정수인 씨가 있는 저작권팀은 신문사나 잡지사, 방송사 등 저작권자에게 해당 저작물을 웹에 게시해도 좋은지 일일이 허락을 구하는 일을 맡았다 ’서태지’란 세 글자가 들어간 자료부터 방송까지 팬들이 보내오는 자료는 산더미인데 저작자의 허락을 받는 건 쉽지 않았다. 온라인 아카이브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보니 연락할 때마다 ‘다른 덴 어떻게 한대요?’란 질문을 듣기 일쑤였다.
“저는 저작권 쪽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웹사이트에서 어느 정도까지 열람하게 해야 하나’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사실 저작권법이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은 있지만, 이용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안 나왔거든요. 우리 팀은 저작권법, 판례, 법령,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발간한 자료를 토대로 ‘여기까진 괜찮겠지’라고 나름 기준을 만들어요. 그런데 막상 저작권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또 달라요.” 이선미 씨가 털어놓은 고충이다.
▲서태지 아카이브를 만들기까지(자료: 서태지 아카이브)
저작권팀은 온라인 기사를 정리하면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침(가이드라인)도 들여다봤다. 거기엔 기사로 바로가는 링크를 한 번에 여럿 게시하는 건 개인에 한해 허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서태지 아카이브의 기사 링크는 마우스로 눌러도 해당 기사로 곧장 이동하지는 않는다. 모두 주소창에 ‘복사→붙여넣기’를 해야 볼 수 있다. 사실 국내 저작권법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거나 법원 판례가 나온 건 아니지만, 혹시 몰라 지침 내용을 그대로 따른 모양이다. 사정을 모르는 방문자는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 오류가 있다고 종종 알려준다.
기사든, 블로그이든 허락 없이 퍼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꼼꼼한 건 아닐까. 정수인 씨는 “머리 한 구석에 ‘서태지’란 이름이 있다”라며 “우리가 잘못해 피해가 가면 안 된단 생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시작한 일이니 말썽이 없어야 한단 책임감이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방송한 지 오래돼 방송사조차 다시듣기 서비스하지 않는 방송물에 대해서도 방송사에 허락을 구했다. 녹음파일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받아적은 녹취록을 공개하는 것도 이렇게 일일이 허락을 구했다. 정작 방송사는 방송물 사용에 관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라디오 녹음파일은 CBS와 BBS 두 곳 빼곤 웹에 게시해도 좋다는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 “상업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비영리인데다 당대 대중문화와 라디오 방송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성격도 있는데 저작권 협의하기 어려웠다”라고 조효은 씨는 아쉬워했다.
그래도 웹사이트를 열고 나니 트래픽 폭주도 겪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준비할 때는 팬 사이트들에서 큰 관심을 받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지만, 만들어놓고 나니 뿌듯한 서비스가 되어서일까. 서태지 아카이브를 준비하며 100여명이 거쳐갔지만, 매번 30~40명을 유지했다.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회의하고, 자료팀은 1년간 일요일 밤마다 9시부터 자정까지 채팅으로 의견을 나눴다. 이렇다할 결과물도 없이 1년을 넘겼고, 중간에 모든 팬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을 땐 3명밖에 안 왔는데 웹사이트를 열자 반응은 뜨거웠다.
웹사이트 열기 이틀 전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기대보다 언론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호스팅을 맡은 업체가 단단히 준비하자고 연락해올 정도였다. 조효은 씨는 “오픈하는 날 트래픽을 신경써야 한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는데 결국 트래픽이 초과했다”라며 “호스팅 업체에선 최고 사양으로 했어도 초과했을 거라고 나중에 말했다”라고 말했다. 조효은 씨는 그날 새벽 내내 30분마다 추가 트래픽을 확보하기 위해 결제를 반복했다.
이제는 활동하지 않는 ‘언니들’이 웹사이트를 보고 연락한 것도 보람 중 하나다. “e메일이나 팀원을 통해 연락을 받았어요. 서태지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하던 언니들은 그때 자료가 서태지 아카이브에 올라온 걸 보고 깜짝 놀라 연락하거나, 지금까지 보관한 자료를 기증한단 연락도 왔어요. 결혼도 했고 예전같은 열정은 없지만, 간직해온 자료를 택배로 2상자를 보낸 분도 있고요.” 조효은 씨는 서태지 아카이브 덕분에 예전에 서태지를 좋아한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서태지 아카이브에 가면 1992년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때, 그리고 서태지가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 팬들이 활동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탈퇴하고 연예인의 초상권 문제를 부각한 일 등은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에 큰 사건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팬들에겐 추억이 됐다. 그 마음으로 다들 서태지 아카이브쪽에 자료를 기증하겠다고 연락하는 것이리라.
“스무살 때 시간도 많고 열정도 많아 언니, 오빠들 따라 다녔어요. 버팀목이었죠. 잘 몰라도 언니, 오빠의 등만 보고 쫓아가면 됐어요. 그런데 서태지아카이브 설명회 때 3명밖에 안 왔고, 어린 친구들이 일하는 걸 보고 ‘이제는 내가 등이 되어야 할 때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수인 씨는 이런 게 팬덤의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이선미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조효은 씨는 고등학생 때, 정수인 씨는 수능을 치르고 나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모두가 시작한 나이는 달랐지만, 20대 중반, 30대 언니들이 이끌어줬다. 그 언니들은 지금 몇 살이 됐을까. 여기에 대답하면 나이가 들통난다며, 셋은 미소만 흘렸다.
▲서태지 아카이브 디자인팀은 아카이브 뉴스레터를 만든다.(이미지: 서태지 아카이브)
국내엔 서태지 공식 팬클럽이 없다고 한다. 서태지컴퍼니에서 만든 서태지닷컴이 있지만, 각자 취향에 맞는 웹사이트에 가입해 활동한다. 팬클럽이 없으니 대표자도 없다. 팬사이트는 여러 개 있고 익명으로 움직이는 곳도 있어, 서로 얼굴도 모르고 정확하게 몇 명이 있는지 세어보지도 않았다. 모래알인가 싶겠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모금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팬들끼린 이를 ‘총알을 쏜다’고 표현한다. 서태지 아카이브도 웹사이트로 열기로 하고선 개발비와 1년치 서버운영비로 400만원을 모았다. 이렇게 팬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금하는 사례는 서태지 팬 사이에 여럿 있다고 한다. 서태지숲이나 합창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설명을 들을수록 서태지 아카이브는 ‘서태지’란 이름으로 선뜻 총대를 멘 사람이 있고, 돈을 기부하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모습에서 위키피디아가 대표하는 집단지성의 한 예로 보였다. 실제로도 자료 설명이 잘못된 게 있으면, 해당 시기에 활동했던 언니들이 ‘틀렸다’라며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 서태지 아카이브에서만 이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니라고 조효은 씨는 설명을 보탰다. “블로터닷넷에서 연락 받고 인터뷰를 수락해야 하는지, 질문지에 대한 대답 내용도 같이 의논했어요.” 이 과정에서 모두 얼굴을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다들 카페와 팬사이트로 정보를 공유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참여하고 돕고 의지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에 참여한 이선미, 정수인, 조효은 씨는 “우린 대표자가 아니고 자원봉사자일뿐”이라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웹사이트 개발을 맡은 사람은 이 웹사이트에 만족할까. 인터뷰를 마치며 물었다. 개발업체는 서태지 아카이브팀이 개발 후기를 쓰려고 인터뷰할 때 딱 하나, 사이트를 흰색으로 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고 한다. 디자인팀은 서태지닷컴과 서태지컴퍼니와 통일성을 주려고 검은색으로 하자는아이디어를 냈는데 덕분에 웹사이트가 무거워 보이는 면이 없진 않다.
서태지 아카이브는 지금도 자료를 모으고 있다. 웹사이트에 관한 평가나 의견도 받고 있다. 5월6일엔 서울에서 오프라인 설명회를 마련해 개선할 점과 기록관리 체계의 기준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