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열한 번째로 구리 동구릉의 수릉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동구릉(東九陵)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약 450여 년간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이 처음으로 조성되고 이후 문종의 현릉(顯陵), 선조의 목릉(穆陵), 현종의 숭릉(崇陵),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영조의 원릉(元陵), 헌종의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능이 조성될 때마다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 등으로 불리다가 문조의 수릉(綏陵)의 옮겨지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
동구릉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의 왕릉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왕이나 왕후의 능을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 나란히 조성한 쌍릉,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한 능에 왕과 왕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 왕과 두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된 능이 모여있다.
연도내용
| 1408년(태종 8) | 태조의 건원릉 조성 |
| 1452년(단종 즉위) | 문종의 현릉 조성 |
| 1513년(중종 8) | 문종 왕비 현덕왕후의 능을 현릉 동쪽 언덕으로 옮김 |
| 1600년(선조 33) | 선조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의 유릉 조성 |
| 1608년(광해군 즉위) | 선조의 목릉 조성(현 헌종 경릉 자리) |
| 1630년(인조 8) | 선조의 목릉을 유릉 서쪽 언덕으로 옮김, 능의 이름을 목릉으로 고침 |
| 1632년(인조 10) | 선조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의 능을 목릉 동쪽 언덕에 조성 |
| 1659년(현종 즉위) | 효종의 영릉 조성(현 영조 원릉 자리) |
| 1673년(현종 14) | 영릉을 여주로 옮김 |
| 1674년(숙종 즉위) | 현종의 숭릉 조성 |
| 1684년(숙종 10) | 현종 왕비 명성왕후의 능을 숭릉 오른쪽 자리에 조성 |
| 1688년(숙종 14) | 인조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휘릉 조성 |
| 1718년(숙종 44) | 경종 첫 번째 왕세자빈 단의빈의 묘 조성 |
| 1720년(경종 즉위) | 단의빈을 단의왕후로 추존하고 묘를 혜릉으로 올림 |
| 1776년(정조 즉위) | 영조의 원릉 조성 |
| 1805년(순조 5) | 영조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의 능을 원릉 오른쪽 자리에 조성 |
| 1843년(헌종 9) | 헌종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의 경릉 조성 |
| 1849년(철종 즉위) | 헌종의 능을 경릉 왼쪽 자리에 조성 |
| 1855년(철종 6) | 익종(추존 문조)의 수릉을 현 용마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김 |
| 1890년(고종 27) | 익종 왕비 신정왕후(황후)의 능을 수릉에 합장으로 조성 |
| 1904년(광무 8) | 헌종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능을 경릉 오른쪽 자리에 조성 |
구리 동구릉
수릉(綏陵,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조성 연도 : 1830년(순조 30), 1834년(헌종 즉위), 1846년(헌종 12), 1855년(철종 6), 1890년(고종 27)
왕릉 형식 : 합장릉
합장릉(合葬陵)
합장릉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이다. 영조 이전의 합장릉은 혼유석을 2좌씩 배치하였으나 영조 이후에는 혼유석을 1좌씩 배치하였다. 대표적으로 세종 영릉, 인조 장릉, 정조 건릉 등 8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순종황제 유릉은 황제와 황후 두 분을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동봉삼실(同封三室) 합장릉이다.
▷ 수릉(綏陵) 이야기
수릉은 황제로 추존된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의 능이다. 수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일반적인 왕릉은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에 따라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왕(황제)이 왼쪽, 왕비(황후)가 오른쪽에 모셔지지만, 수릉은 반대로 모셔져 있다.
문조는 처음 효명세자의 신분으로 1830년(순조 30)에 세상을 떠나, 묘를 경종의 의릉(懿陵) 왼편에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翼宗)으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수릉(綏陵)이라 하였으며, 1846년(헌종 12)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양주 용마봉(현 광진구 용마산)으로 옮겼다. 그러나 1855년(철종 6) 다시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현재의 동구릉에 마지막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1890년(고종 27)에 신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수릉에 합장되었다.
수릉의 문석인은 기존의 복두관복 대신 금관조복의 형태인데 이는 연경묘 시절에 만들어진 문석인으로, 동구릉 중 유일한 형태이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총 2개의 표석이 있는데, 1비는 익종대왕과 신정왕후의 표석이고 2비는 문조익황제와 신정익황후의 표석이다.
▷ 문조(文祖) 이야기
문조(재세 : 1809년 음력 8월 9일 ~ 1830년 음력 5월 6일)는 순조와 순원황후 김씨의 아들로 1809년(순조 9)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태어났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27년(순조 27)에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정사(대리청정)를 돌보았다.
왕세자는 외척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였으나 대리청정을 통해 강인한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소외되어 있던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였으며, 백성을 위하는 선정을 펼쳤다. 또한 실학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교류하며 견문을 넓히고, 타문화 수용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예악진흥을 위해 궁중연회에 쓰이던 춤과 노래인 정재(呈才)를 발전시켜 악장, 치사, 전문 등을 직접 지었고, 춘앵전을 편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30년(순조 30) 창덕궁 희정당에서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孝明世子)라 하였다. 이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었다.
▷ 신정황후(神貞皇后) 이야기
신정황후 조씨(재세 : 1808년 음력 12월 6일 ~ 1890년 음력 4월 17일)는 본관이 풍양인 풍은부원군 조만영과 덕안부부인 송씨의 딸로 1808년(순조 8)에 두포 쌍호정 사저에서 태어났다. 1819년(순조 19)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827년(순조 27)에 헌종을 낳았다. 효부라는 칭찬을 듣던 왕세자빈은 불행히도 헌종을 낳은지 3년 만에 남편 효명세자를 잃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 8) 순조의 왕비 순원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종친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고종)을 양자로 입양시켜 왕위에 올렸으며, 고종 즉위 후 수렴청정을 하여 흥선대원군과 함께 정국을 주도하였다. 수렴청정 기간에 남편 문조가 이루지 못한 뜻을 이어 받아, 흥선대원군과 함께 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 등의 개혁을 실시하였다. 1866년(고종 3) 수렴청정을 거두고 왕실 최고의 어른으로 살다가 1890년(고종 27) 경복궁 흥복전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첫댓글 반가운 동구릉
구리 사시는 분들은 동구릉이 최고의 휴식공간이었죠~
@베라루빈 홍유릉 5번갈때 동구릉 1번씩 섞어서간듯하네요 ㅋㅋㅋㅋ
@뽕 존스 저는 애 어릴 때 일산에 살아서 서오릉 많이 다녔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