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43번째 주 내용: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죽음에 대한 천재불결(千載不決)과 그 후 2대 태종에 대하여 설명
■ 일자: 경자년(庚子年) 단기 4353년 서기 2020.12.10.목요일.(음력 10.26.)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43번째 무료강의 글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오직 배움의 길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자가 실패를 딛고 승리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정정당당한 미래를 위해 우리 젊은 후손들에게 대홍익역사(大弘益歷史)배움터와 천지학당(天地學闛)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힘찬하루 보내세요.
제9마당 설명 중 43번째 무료강의 시작
◐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죽음에 대한 천재불결(千載不決)과 그 후 2대 태종에 대하여
■ 공자가어(孔子家語) 16편 변물편(辨物篇)에 조(祖)와 종(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조(祖): 공(功)이 있는 임금은 조(祖)라 하고
- 종(宗): 덕(德)이 있는 임금은 종(宗)이라고 한다.
▣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죽음의 의혹에 대한 천재불결(千載不決)에 대하여.
천재불결(千載不決)이란? 의혹이 천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의혹을 말하고 있다.
조광윤(趙匡胤)이 송나라를 세운 태조에게는 덕소(德昭)와 덕방(德芳)이라는 황자가 있고 그 당시 성인이 돼있었다.
그런데도 아우인 조광의(趙光義)가 재위를 계승한 것이다.
태조의 병세가 중해지자 황후는 환관인 계은(繼恩)에게 황자인 덕방을 부르도록 했으나 환관인 계은은 모든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놓고 태조의 동생인 조광의를 먼저 찾아가게 되어 결국 형인 조광윤을 추대하였던 그의 동생 조광의가 먼저 임종 직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곧 황제의 임종에 불리운자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조광윤의 동생 조광의는 폐하는 붕어하셨다. 이 진왕이 즉 태조의 동생인 조광의가 유조(遺詔)를 받았다. 내가 재삼 사퇴했으나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이에 태조는 10월에 별세하고 송의 2대 황제인 진왕이 12월에 즉위했다. 이것이 송의 2대 태종이다.
연호를 그해에 그대로 쓰는 것이 법도였으나 2대 태종은 아버지를 이은 것이 아니고 형을 이은 것이므로 그 예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라고 하여 연호를 태평흥국(太平興國)으로 고쳤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중 오월국(吳越國)은 송나라 2대 태종 3년인 서기 978년 5월에 평화리에 국도를 송나라에 헌상한 것이다.
거란=요나라를 제외한 송나라는 오월국이 송나라에 항복한 즉 헌납한 후 태원(太原)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北漢)나라만이 남아있었다.
북한(北漢)국의 소정권이 오대십국의 최후의 정권으로 남았던 것은 그 배후에 거란족인 요의 대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주의 세종인 시영은 이 북한(北漢)을 토벌하는 도중에 죽었다. 이 시영을 이어서 후주의 대권을 이어서 조광윤이 송나라를 960년에 세우게 되었다.
북한(北漢)나라는 결국 요나라의 식량보급은 끊기고 고립무원의 싸움을 단념하고 송태조에게 성을 나와 항복했다.
송의 2대 태종은 요(遼)를 치기로 결정하였으나 대패하여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송의 2대 태종은 자기 아들을 황제로 이어가기 위해 방해가 되는 자기 동생과 형의 아들을 없애야만 했다.
그래서 형의 아들인 조덕소(趙德昭)는 자결하여 죽고 조덕방(趙德芳)은 병사라고 하여 죽었다. 그의 동생 조정미는 방주로 유배되어 병을 얻어 죽었다.
이후 역사는 2대 태종의 뒤를 이은자는 그의 아들 황태자로 이어가게 되었다.
≪ 서기 976년에 조광윤의 동생 조광의는 조광윤의 아들이 성인이 되어있었는데도 환관의 장난으로 조광윤의 동생이 북송의 2대로 이어갔다. 곧 976년에 북송의 2대로 즉위한 이후 479년이 지나서 1455년에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한명회 등으로 7대 세조의 역사에서는 성인이 아닌 15살의 단종을 폐하고 7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만약에 수양에게 윤씨와 같은 부인과 정인지, 신숙주, 한명회 등의 배후 인물이 없었더라면 그는 그저 외롭고 나약한 단종을 지성껏 도와 주공의 역할을 다하였을 것이었다. 역사는 그 당시 누가 정권을 잡느냐는 힘과 능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임금이 정해지는 것이다. 현재도 또 앞으로도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힘과 능력의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아아 세계역사는 모두가 비슷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학문을 닦아도 권력욕심과 젊음의 피가 흐르는 이상은 과거의 역사나 현재의 역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사실은 어렵기 때문이다. 단 정단(正端)=정도의 도로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면 좋은 역사가 나오지만 불의로 정권을 탈취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게 되어 어두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백성은 더 고달프고 힘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 곧 백성이 너무나 힘이들게 되면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 곧 역사는 흥망성쇠의 연속극이다. 역사가 바라는 것은 좋은 연속극이 나오도록 하는데 있다. ≫
➜ 송태조 조광윤의 실패작 → 운명 전에 태자문제를 문무백관들 앞에서 확약을 못 받은데 있다
조광윤의 비인 황후의 실패작 → 조광윤의 운명 직전에 황태자를 부르는 것보다 먼저 충신들을 불러서 대책을 물어보는 지혜가 빠졌다.
그러나 역사는 북송 말 때인 이 당시 역사로 아골타(阿骨打)는 1115년에 거란=요(遼)나라를 일부 멸망시키고 여진(女眞)나라의 일부부족을 통합하여 금(金)나라를 건국하였다.
1125년은 금나라 완안성(完顔晟)으로 2대 태종 때이며 이때는 북송 8대 휘종황제(徽宗皇帝) 마지막 재위 때에 수호지(水滸誌) 등의 역사 이야기가 나왔으며 이러한 시대에 금나라에게 거란=요(遼)나라 마지막 9대 천조제(天祚帝)는 멸망하고 2년 후 1127년에 북송의 8대 휘종과 북송의 마지막 9대 흠종이 모두 금나라에 잡히고 북송(北宋)은 멸망하였다.
역사는 북송의 마지막 9대 흠종의 아우 조구(趙構)를 황제로 하여 우선 남경(南京) 응천부(應天府: 허난성 동부 난징)에서 즉위시켜 이를 고종(高宗)이라고 하며 역사에서 이를 남송(南宋)이라고 하였다.
이후 남송의 나라가 나와서 주희(朱熹)=주자(朱子)가 나와서 주자학 즉 성리학이 집대성하게 되어 사서삼경 등 유학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43번째 무료강의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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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전자책 2020.4.29. 발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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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작하여 진실을 이길려고 하면 재앙(災殃)을 당한다. ♬
경자년(庚子年) 단기(檀紀) 4353년 서기(西紀) 2020년 12월 10일 목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