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작 기도
주님...
다시 무덤으로 몰아 넣으시는군요.
그곳이 제가 가야할 자리라면 기꺼이 수용하겠나이다.
입이 있으나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주님이 주시는 무덤을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를 심판하여 공의가 세워지고 주님과의 더 친밀한 생명의 관계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사람들은 무언가 몸으로 하기를 원하고 위로해주기를 원하지만 나는 할 수 없나이다.
오직 주님과의 교제를 통한 관계회복이 우선이오니 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게 나를 장악하소서.
나의 더럽고 추한 죄악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소서.
주님 품안에 온전히 거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사 57:1-13
제목 :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사람 중심인가?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2.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수리라.
3. 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6.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즐 중에 네 몫이 있으니 그것들이 곧 네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또한 네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위로를 받겠느냐?
7.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거기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8. 네가 또 네 기념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네가 나를 떠나 벗고 올라가서 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또 네가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여 그 벌거벗을 것을 보았으며
9.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먼 곳에 보내고 스올에까지 내려가게 하였으며
10.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말하지 아니함은 네 힘이 살아났으므로 쇠약하여지지 아니함이라.
11.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12.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13.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 가겠고 기운데 불려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 나의 묵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도 의롭게 살며 변함없이 나에게 충성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이 고난을 당하다가 죽어가지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억하는 이들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실은 이 세상의 악한 세력 밑에서 더 이상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그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들은 이제 나의 평안을 누리며 영원히 편안한 쉼을 얻을 것이다.
나에게 충성하며 올곧게 산 대가로 영원히 편안하게 쉴 것이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며 음행을 일삼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사술과 음행으로 나를 모욕한 자식들이요, 음행하는 아비와 간음하는 어미의 자식들이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내가 보낸 선지자들에게 혀를 길게 내밀며 조롱하고 입을 크게 벌리면서 위협하는구나.
그것이 바로 나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행동이다.
죄악의 자식들이요 기만과 폭행을 일삼는 자식들아, 너희는 푸른 나무마다 찾아다니며 바위틈에서 너희 자식들을 제물 삼아서 우상에게 바쳐야 너희가 섬기는 우상들이 기뻐하는 줄로 믿는다.
너희는 개울 바닥의 돌덩이들에게 음식과 술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그 돌덩이들 밑에 묻힐 것이다.
도대체 너희는 내가 그 모든 일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너희는 높이 솟은 산봉우리마다 찾아 다니며 창녀의 소굴을 만들어 놓았다.
너희는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우상들에게 짐승을 잡아서 바치고 잔치하며 음행을 하였다.
너희는 문과 문설주 뒤에 남근 신상을 모셔두면서 정작 진짜 남편인 나는 버리고 떠나 다른 남신들을 섬기며 창녀의 소굴을 만들고 있구나.
너희는 다른 남자와 자려고 침상을 넓히며 우상들 가운데서도 음행하기에 적합한 우상을 골라 음행하고 그런 우상들과 동침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들의 벗은 몸을 바라보며 좋아한다.
너희는 몰록 우상에게까지 값비싼 향유를 제물로 바치며 그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쓰는구나.
너희는 멀리 죽음의 세계까지도 사신들을 보내어 음행할 남신들을 구하였다.
너희는 너희의 정부를 찾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지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헛수고이니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욕이 넘쳐서 지칠 줄도 모르고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한다.
도대체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에 나까지 속이려고 하느냐?
너희가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도 않고 마음에 두지도 않는데 내가 과연 두렵지 않으냐?
내가 오랫동안 말을 않고 잠잠히 있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냐?
너희가 말하는 공의와 옳은 행실이라는 것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그것은 너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온갖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일이다.
그것은 너희를 구해내지도 못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우상을 많이 만들어 심기며 복을 달라고 빌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런 우상들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고 입김에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이 땅을 차지할 것이며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유다 사회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종교적으로 극심하게 부패하여 타락한 이들은 하나님을 배제하여 멀리하고 자기들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육신적 쾌락을 무기로 삼아 우상을 섬기는 작태를 벌이고 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아마도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시대로 추정된다.
히스기야의 선왕이었던 아하스 시대에도 종교적으로 극심하게 타락하긴 했지만 오늘 본문처럼 의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므낫세 시대는 본문 1절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이 의인들이 악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임당하는 일이 극심하였다.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 가도다.
전승에 의하면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까지도 므낫세에 의해 죽임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선하고 추앙받는 왕이었는데 어찌하여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 부친과 달리 가장 악한 왕으로 추락하게 되었을까?
물론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히스기야 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정황을 살펴보면 의외로 그 해답은 간단하다.
므낫세는 부친 히스기야가 왕으로 있을 때 유다가 처한 위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히스기야 때에 유다는 열방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상당히 고립되어 있었다.
실제로 앗수르는 끊임없이 유다를 집어삼키기 위하여 공격해왔으며 거기에 바벨론의 잦은 침략도 한 몫 하였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유다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한 히스기야는 다른 어떤 우상이나 다른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주변의 강력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의 여호와 신앙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달랐다.
그는 유다가 위기를 겪는 것은 열방으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서 될 일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이 믿는 우상들을 섬겨서 그들과 종교적 정치적인 동맹을 맺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방의 온갖 우상들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우상의 산당과 제단을 다시 세우는가 하면, 하나님의 성전에조차 우상을 위한 제단을 건축하였다.
전국의 산과 계곡 곳곳에 우상의 제단을 세우고 심지어 사람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를 행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을 하는 므낫세에게 의인들은 거세게 반발을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는 그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직언하는 선지자 등 의인들을 죽이는 일에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왕하 21:3-7a)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왕하 21:16)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한 가지 상황을 두고도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행하는 일들이 답답해 보였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도 참기 힘들거니와 주변의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노리며 공격해오는 그런 긴장감을 견디기가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이방의 우상과 그 강대국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더 강력한 보호수단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와 같이 므낫세가 행한 결과는 유다 전체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왕하 21:12-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이처럼 므낫세의 결정적인 실수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적 통치에 있다.
모든 인류에게 죽음의 비극을 가져온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다름 아닌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자기가 하나님 되려는 자기 의, 곧 인본주의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세상이 이토록 타락하고 부패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사시대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선을 행하려고 하면 할수록 바울 이전의 사울처럼 세상을 망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 그 자체가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죄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속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시기심과 질투가 끊이질 않으면서 말이다.
이는 다름 아닌 나의 이야기다.
나는 남들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얼마나 배 아파했는지 모른다.
부교역자 시절, 다른 동료 부목사가 무언가 획기적으로 일을 하면 부럽기도 하면서 그 때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고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나를 잡아먹곤 하였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나를 세우려고 하는 그 자리에 나의 인생을 얻기보다 결국 나의 인생을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우리가 온전히 살 수 있는 길은 이 땅에서 육신적으로 잘 되는 것, 내 인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늘 주님 품에서 거하며 주님과 교제를 통하여 영생을 얻고 누리는 것이다.
이 영생은 주님께서 창세전에 주시마고 약속하셨던 언약적 생명이기에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신실하게 나를 찾아오시고 주님을 떠나 부패한 나에게 당신의 보혈로 치유하여 주시고 그 생명을 주셨다.
나는 오늘도 이 생명으로 주님이 주신 생명의 자유를 누린다.
그저 주님이 좋다.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품에서 나는 평안과 안식을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갖은 우상과 패역을 일삼았던 죄인이 여기 있나이다.
돈을 맘몬 신으로 섬기고, 자식을 우상으로 섬겼으며, 세상이 인정하는 명예와 부러워하는 권세를 나의 신으로 섬겼던 자입니다.
목사로되 유명한 목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고, 찬양을 하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그런 노래를 부르기 좋아했던 자입니다.
그저 사람 좋다는 이야기 한 번 듣기 위하여 내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지만 나의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 그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것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나의 의는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임을 나는 어찌 그리도 몰랐는지요?
나는 역시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 자가 맞습니다.
주님...
그런 나라도 창세전 약속에 근거하여 내게 친히 찾아오셔서 아담이 입었던 무화과옷을 찢어 벗기시고 주님의 옷, 보혈의 옷,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셨나이다.
오늘도 이 옷을 입고 겸손히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가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비록 돼지 똥냄새가 작렬하지만, 아버지는 그 냄새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품에 품어주셨사오니 나도 담대하게 나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