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을 걸어 도서관에서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지는 않아도 겨울다운 추위가 닥친 십이월 초순이다. 열흘께 전부터 기침과 콧물이 나와 코로나 시대 집에 비치된 약을 한 차례 먹었다. 좀 나은 듯하더니 아침 이른 시각부터 계속된 찬 바람을 쐬는 야외 활동으로 인해서인지 완전히 낫지 않아 약국을 두 차례나 찾아 감기약을 사 먹는 중이다. 나이가 드니 감기 면역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실감한다.
목요일도 자연 학교 등교 시각은 늦추지 않고 여명에 집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나서자 어둠이 사라지는 외동반림로 매타스퀘이아는 흑백 음영이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지귀상가를 앞둔 창원천2교에서 좌회전 신호 대기 중 차창 밖 창이대로 은행나무는 샛노란 단풍잎이 다수 붙어 있었다. 버스는 창이대로 명곡교차로에서 도계동으로 갔다.
소답동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도계광장을 바라보니 아침놀이 살짝 비쳤다. 창원역을 출발해 근교 농촌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출근길 승객이 가득해서 빈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할 처지였다. 나이가 든 이는 착석 손님에게 미안해 출발지로 가 타면 되는데 운행 시각을 봐가며 도중에 타면 생기는 일이다. 마을버스는 소형차라 운전석 옆 엔진 덮개에 걸터앉아 갔다.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니면서 승객은 불었다가 줄면서도 입석 손님은 여전했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 초등학교를 지난 상등에서 내렸다. 앞서 지난 초등학교 이름은 ‘신등’이고 상등을 지나서는 ‘장등’이 나오는데 들녘에는 ‘등’ 자 돌림 마을이 흔했다. 인체의 등처럼 들녘 약간 높은 부분에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인데 대홍수에 피수대가 된 언덕이지 싶다.
하루를 시작하는 도보 여정으로 약간 쌀쌀한 아침 기온이긴 해도 들녘을 1시간 산책하고 마을도서관으로 갈 참이다. 시야에 든 사방 들녘은 저만치 창고를 겸한 소규모 공장이 몇 개 보였다. 1모작 지대라 추수를 끝내고 비워둔 빈 들판을 바라보며 가술 방향으로 걸었다. 넓은 들녘 한복판으로는 어디론가 뻗쳐가는 대형 송전탑이 논바닥 중간중간에 높게 세워져 아득하게 사라졌다.
구름이 간간이 낀 하늘로는 일출의 기운이 감도는 때 기러기들이 날았다. 저수지에서 잠을 깬 철새들은 날이 밝으면 활주로를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수면에서 둑 너머로 날아 나와 먹이활동을 했다. 들녘은 장등에서 산업단지로 이어졌는데 아파트단지를 지난 상가 카페에 들어 따뜻한 커피로 손을 녹이면서 마을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9시가 되어 카페에서 도서관으로 갔다.
며칠 전에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이번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을 생각이다. 지금쯤 작가는 올해 노벨상을 받으러 스웨덴에 머물지 싶다. 엊그제 뜬금없는 ‘계엄령’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는데, 한강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국가권력과 군인이 민간인에 가한 폭력 장면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작가는 오십대라 두 사건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아니라 관련 자료와 증언을 취재했다.
앞서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는 5·18을 피해자 진술과 서책을 참고한 문헌과 영상을 바탕으로 했는데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문학적 역량과 감성에 역사의 상흔에 대한 그 시대의 증언과 기록이 보태진 공동작이기도 했다. 때가 되어 바깥에서 점심을 때우고 남겨둔 3부를 마저 읽고 책장을 덮으니 후련함보다 가슴에는 무거운 납덩이가 채워진 느낌이다.
낮이 짧아져 해가 일찍 기우는 오후에 가술 국도변 초등학교 주변 거리를 거닐면서 담 너머 보인 모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등 굽은 할머니가 혼자서 머무는 집 / 드나들 사람 없는 북가술 너른 마당 / 정원수 여럿 가운데 모과나무 자랐다 // 봄에 난 새순에서 잎 돋아 꽃을 피워 / 여름에 영근 열매 과육이 여물어져 / 철 늦은 된서리 맞고 샛노랗게 달렸다” ‘북가술 모과’ 전문이다. 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