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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먼저 고아를 웃겨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맹인으로 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상상으로 그리거나 묘사한 것을 실제로 본 것처럼 그려 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새소리, 물소리를 묘사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가들이 인간의 감정을 묘사할 때마다 짧은 글 속에 많은 얘기들을 감추고 함축하여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 신기(神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시어(詩語)를 끄집어내서 짧은 행 속에 묻는 것도 정말 신기(神奇)할 뿐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그렇게도 생생하게 자신이 본 것을 옮기고, 상상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지 상상하면 신묘(神妙)함을 느낍니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것을 현실처럼 느낄 때에도 그 속에 있는 그 오묘함은 상상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기도 합니다. 삶의 온갖 것들이 내게 무게로 다가와 매일 매 순간을 느끼고 색깔을 입히고, 깊이를 달리할 때 나는 그저 멍청하게 감격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임을 여읜 사람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노래한 사설시조 한 편을 묵상하면서 그 간절한 마음을 어쩌면 그리도 세세하게 표현했는지 신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원문 아래 ‘ㅏ’ 가 지원이 되지 않음)
나모도 바히돌도 - 작자미상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뫼헤 매게 쪼친 가토리 안과
대천(大川) 바다 한가온대 일천석(一千石)시른 배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늉총도 근코 돗대도 것고 치도 빠지고 바람 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섯겨 자자진 날에 갈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나믄듸 사면(四面)이 거머어득 져뭇 천지적막(天地寂寞)가치노을 떳난듸 수적(水賊) 만난 도사공(都沙工)의 안과
엊그제 님 여흰 내 안히야 엇다가 가를 하리오.
<해석> 나무도 없고 바윗돌도 없는 민둥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서 천석의 곡식을 싣고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나서 노와 닻도 잃어버리고, 닻줄은 끊어지고 돛대도 꺾어지고, 키도 빠져나가고, 바람은 불어 물결은 몰아치고, 안개는 뒤섞여 사방을 분간할 수 없고, 갈 길은 아직도 천리만리 남아있는데 사면이 어둑하고 날은 저물어 적막하고, 파도가 몰려오는 가운데 해적 떼를 만난 선장의 마음과,
엊그제 사랑하는 임과 이별한 나의 마음이야 어디에다 비교하겠는가?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이처럼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 마음속에 사랑을 묻고 있으면서 터질 것 같고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까투리와 선장의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과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막막한 처지를 사설시조로 표현한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함을 간절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연인과 이별하는 마음, 연인을 떠나서 죽게 되었을 때의 그 긴박한 이별을 어쩌면 이렇게 간곡하게 표현하였는지 정말 신기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세상 끝나는 날에 대한 묘사가 정말 신묘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씀이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그 주변 상황을 간결하게 묘사하십니다. 여기저기의 장소를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마음에 천차만별로 다르게 하느님의 나라가 다르게 오실 것이며, 수십억 개, 수천억 개의 모습으로 다르게 오실 것이니 일일이 표현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든 크든 모든 사람의 마음에 같이 오신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답니다.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먼저 고아를 웃겨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웃을 것이다.> 탈무드에 있는 말입니다. 하느님나라를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 탈무드의 교훈을 보면서 나는 정말 하느님나라를 그리지 못하고, 간직하지도 못하고, 새기지도 못하고 살았음을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그 동안 헛살았던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하느님나라는 서울인줄 알았고, 시골의 전원주택인 줄 알고 있고, 크고 작은 성당이나 예배당인줄 알았고, 법당이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가슴이며, <고아를 웃기는>순수한 시간이며, 아이들을 위해서 가슴 졸이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새깁니다. 그 사랑이 머물러야 하는 내게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그 분은 오늘도 질식해서 돌아가십니다. “숨을 쉴 수 없다. 얘야.”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22ㄴ―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축일11월 11일 성 마르티노 (Martin)
신분 : 주교
활동 지역 : 투르(Tours)
활동 연도 : 316?-397년
같은 이름 :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는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316년경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에서 태어났다.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로마제국 군대의 장교인 아버지가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로 전속되자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전기작가 술피키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는 “마르티누스의 생애”(Vitae Martini)에서 이미 이탈리아 생활 중에 성 마르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는 얻었으나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는 여전히 제국 내에서 소수일 뿐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그는 자기 뜻과는 달리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에 입대했지만 이미 마음은 그리스도를 따랐다고 기록하였다. 로마로 유학 간 그는 그곳에서 예비신자가 되었다.
성 마르티누스가 속한 부대가 프랑스의 아미앵(Amiens) 근처에서 주둔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 앞에서 구걸하고 있는 한 걸인을 만났다. 당시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던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그 절반을 걸인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자기가 걸인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님께서 나타나 “아직 예비신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교회 미술에서 즐겨 다루는 이 신비 체험을 한 후 그는 18세에 세례성사를 받고 얼마간 군대에서 더 생활한 후 제대하였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이민족이 갈리아 지방으로 침략해 오자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Julianus)는 출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그들을 소집했다. 그때 스무 살 즈음의 성 마르티누스는 황제 앞에서 봉급 받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군인으로서 황제를 섬겼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섬기려 한다면 제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황제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비겁하게 군인 신분을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는 다음 날 아침 무장 해제하고 십자가 하나만 들고 홀로 적진으로 가겠다고 했고, 놀랍게도 다음 날 적군의 사신이 황제에게 평화 제의를 해와 다행히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군대에서 제대한 성 마르티누스는 푸아티에(Poitier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1월 13일)를 찾아가 그의 지도하에 은수자 생활을 하다가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많은 이들을 교회로 인도했으나 아버지만은 끝내 개종시키지 못했다. 일리리쿰(Illiricum, 오늘날의 발칸 반도 서부 지역)으로 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대적해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고,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와서는 아리우스파에 속한 밀라노(Milano)의 주교에 의해 추방을 당했다. 그는 한동안 리구리아해에 있는 갈리나리아(Gallinaria) 섬을 피신처 삼아 지내다가 360년경 아리우스파 황제에 의해 추방되었던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우스 주교가 교구로 돌아오자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그는 푸아티에에서 8km 정도 떨어진 리귀제(Liguge)에서 성 힐라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은수자가 되었다. 그런데 다른 은수자들이 그곳으로 몰려와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 갑자기 큰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 공동체가 결국 프랑스의 첫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 투르의 주교가 선종하자 투르의 주민들은 성 마르티누스에게 주교가 되어 주기를 간청했다. 수도 생활을 위해 주민들의 청을 거절했지만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받아들였다. 그는 371년 7월 4일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한동안 주교좌성당에서 활동하던 그는 투르 외곽의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80명의 제자와 함께 작은 골방에서 수도 생활을 하며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했다. 교구의 각 본당을 일일이 걸어서 방문하고 전교에 힘을 쏟자 프랑스 지방 곳곳에서 이교도 신전의 파괴와 사람들의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짐승을 감화시키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환시와 예언의 은사로도 유명했다. 그는 또한 프리실리아누스(Priscillianus)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황제에게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누스의 생명을 구해 주길 청할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이단자라는 모함까지 받았지만, 성 마르티누스는 이단자들을 성교회로 인도하고자 모든 것을 참아냈다.
술피키우스 세베루스의 편지에 보면, 성 마르티누스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를 해결하고자 캉드(Candes) 지방 사목 방문을 떠났다. 그곳에서 성직자들 간의 화목을 이루고 수도원으로 돌아가려던 중 병에 걸려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이들을 향해 “주님, 아직 당신 백성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며 눈과 손을 하늘을 향해 드높인 채 기도했다. 그곳에 모인 성직자들이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쳤을 때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냐? 이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397년 1월 8일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 드렸다.
그는 살아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 죽은 후에도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된 작은 경당은 수많은 순례자로 가득했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성인이며, 그의 유해가 모셔진 경당은 프랑스 최초의 순례지로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대표적인 순례지로 꼽히게 되었다. 그가 걸인에게 반쪽을 나눠준 외투 또한 ‘성 마르티누스의 기적의 망토’(Cappa Sancti Martini)로 불리며 중세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고,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의 한 명인 그는 군인, 재봉사, 가난한 이, 가축과 목동의 수호자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유럽 교회에서 특별히 대림 시기에 기억되는 대표적 성인으로도 꼽힌다. 한 걸인에게 자기 망토를 나눠준 그의 사랑과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르티노 (Martin)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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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