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열 두 번째로 구리 동구릉의 현릉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구리 동구릉
현릉(顯陵, 문종과 현덕왕후)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조성 연도 : 1452년(단종 즉위), 1513년(중종 8)
왕릉 형식 : 동원이강릉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이다. 최초의 동원이강릉은 세조 광릉이며, 예종 창릉, 성종 선릉 등 7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선조 목릉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언덕(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에 별도의 봉분을 조성하였고, 숙종 명릉은 쌍릉(숙종과 인현왕후)과 단릉(인원왕후)의 형태로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하였다.
▷ 현릉(顯陵) 이야기
현릉은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현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문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문종이 1452년(문종 2)에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세조),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의 대신들이 여러 왕릉 자리를 답사하여 지금의 자리에 현릉을 조성하였다. 앞서 1441년(세종 23) 현덕왕후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경기 안산에 묘(소릉昭陵)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세조 즉위 후 단종 복위 사건에 친정어머니와 남동생이 연루되는 바람에 폐위되었다. 그러다가 1512년(중종 7) 다시 왕비로 복위되어 다음 해에 문종의 현릉 동쪽 언덕으로 사후 72년만에 왕의 곁으로 능을 옮기게 되었다. 이때 두 능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유 없이 저절로 말라 죽어 죽은 나무를 베어보니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중종실록』에 전해진다.
현릉은 조선시대 기본 예전인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랐다. 문종의 능침 봉분 병풍석의 문양은 이전(태조 건원릉, 태종 헌릉)의 영저(금강저)와 영탁(금강령) 대신 구름무늬로 바뀌었고, 석상(혼유석) 받침대인 고석의 수도 4개로 줄었다. 현덕왕후의 능침은 문종의 능침과 같은 모습이나 봉분의 병풍석을 생략하였다.
▷ 문종(文宗) 이야기
문종(재세 : 1414년 음력 10월 3일 ~ 1452년 음력 5월 14일, 재위 : 1450년 음력 2월 23일 ~ 1452년 음력 5월 14일)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첫째 아들로 1414년(태종 14)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1418년 아버지 세종이 즉위하자 1421년(세종 3)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세종 재위 말년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에 문무 관리를 고르게 등용하고 민생파악에 힘쓰는 등 나라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문종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말이 적고,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문종은 천문에 능통하였으며, 측우기도 발명하였다. 1450년 아버지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동별궁 빈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동국병감(東國兵鑑)』과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 역사서가 편찬되었고,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병력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1452년(문종 2) 재위 2년만에 경복궁 천추전에서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 현덕왕후(顯德王后) 이야기
현덕왕후 권씨(제세 : 1418년 음력 3월 12일 ~ 1441년 음력 7월 24일)는 본관이 안동인 화산부원군 권전과 해령부부인 최씨의 딸로 1418년(태종 18)에 홍주(충남 홍성) 합덕현 사저에서 태어났다. 1431년(세종 13) 세자 후궁으로 승휘(承徽, 종4품)가 되었고, 양원(良媛, 종3품)을 거쳐 1437년(세종 19) 왕세자빈이 되었다.
문종은 왕세자 시절 김오문의 딸을 왕세자빈(휘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휘빈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술법을 쓰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이후 1429년(세종 11)에 봉여의 딸을 두 번째 왕세자빈(순빈)으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순빈 봉씨도 문종과의 갈등과 왕세자빈으로서 품위를 잃어 폐위되었다. 세종은 이미 자식이 있고 후궁의 서열 중에 가장 높은 양원 권씨를 왕세자빈으로 올려야 한다는 뜻을 밝혀 권씨를 왕세자빈으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1441년(세종 23) 원손(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경복궁 자선당에서 24세로 세상을 떠났고, 1450년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되었다.
첫댓글 생각해보니 조선 왕릉은 서울 근교에 많이 있겠네요.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경주가서 본 왕등은 신라왕릉 이었네..ㅋ
그렇죠
한양도성 기준으로 반경 십리이상, 백리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룰이 있었죠
단종왕릉만 후대에 왕위로 추대되어 어쩔 수 없이 영월에 있고
그 외에는 세종대왕릉만 유일하게 예외로 백오십리가 떨어진 여주에 조성되었습니다요
세종대왕릉은
"왕릉의 풍수가 국운과 왕실의 안위 직결된다"는 명분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고 합니다요
@베라루빈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9.28 11:0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9.28 11:0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9.28 12:31
이야 위에서 본 모습 정말 멋지네요!
국가유산청에서 찍은거니까 드론을 날린거지, 문화재 근처에서 드론은 금지구역이라...
위에서 찍은 사진이 역시 최고죠!
@베라루빈 네 단정하고 품위가 있는, 과하게 화려하지 않은 멋이 있어서 좋네요. 그렇죠 아무나 드론을 날릴 수는 없게 해둬야겠지만 아쉽기도 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