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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茶飯事)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라는 뜻으로, 늘 있어서 이상하거나 신통할 것이 없는 일로서 일상의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을 일컫는 말이다.
茶 : 차 다(艹/6)
飯 : 밥 반(食/4)
事 : 일 사(亅/7)
(유의어)
항다반(恒茶飯)
항다반사(恒茶飯事)
일상에 흔히 자주 있는 일을 '다반사'라 하는 것은 모두들 안다. 한자를 잘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주 있으니 '많을 다(多)'로 쓸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茶飯事)에서 나와 '차 다(茶)'를 쓴다니 의외로 여긴다. 밥은 몰라도 차 마시는 일이 일상사라니 그럴만하다.
명절 때 가족이 모여 차례(茶禮)를 지냈고, 찻잎 따기에서 달여 마시기까지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를 다도(茶道)라 해도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 말이 흔히 있는 일상의 일을 가리키게 된 것은 불교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 달마(達磨)의 동진과 함께 차 문화도 건너 와 중국 총림에선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차를 심신을 닦는 수행의 하나로 보며 선다일여(禪茶一如)란 말도 나왔는데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른다. 당(唐)나라의 선승 조주(趙州)는 유명한 끽다거(喫茶去)란 말로 차를 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선사다. 그가 남긴 '조주록(趙州錄)'은 520여 가지의 일화를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로 기록했다. 이 책의 459칙(則)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를 즐겨 마시는 조주선사가 어느 때 그를 찾은 두 스님에게 여기 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조주가 말한다. "차나 한 잔 드시오(喫茶去/ 끽다거)." 얼마 뒤 또 한 사람이 왔다. "몇 번째인가?" 물으니 와 본 적이 있다 했다. 역시 "차 한 잔 드시게."
옆에서 차 시중을 들던 시봉 스님이 처음 온 사람이나 여러 번 온 사람이나 차 한 잔 권하는 것이 무슨 까닭인지 여쭈었다. 그랬더니 "너도 차 한 잔 마셔라"라고 한다. 차 마시라는 말이 실제 마시라는 말이 아니고 일상 속의 마음을 바라보라는 의미 깊은 화두 공안(公案)의 하나라는 것이란다. '끽다거'는 진리를 탐구하는 참구(參究)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차 마시는 일이 친숙한 일상사임을 알려준다.
송(宋)나라의 선승으로 벽암록(碧巖錄)을 완성했다는 극근(克勤)도 차에 관한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을 남겼다.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라며 수행과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서도 일찍부터 불가에서 다도가 수행의 일부로 일상화 됐다. 조선 후기의 초의(艸衣) 선사는 선禪) 수행을 차와 일치시켜 차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여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다. "동쪽나라의 차를 칭송한다"는 뜻의 동다송(東茶頌)은 한국의 다경(茶經)으로 불린다고 한다.
조계종(曹溪宗) 원로스님이었던 동일(東日) 대종사가 2005년 입적 때 제자들에 남긴 오도송(悟道頌) 끝부분이 더욱 의미 깊다. "시작한 적도 그친 적도 없는 차 마시고 밥 뜨는 일이로다(無始無終茶飯事/ 무시무종다반사)." 오늘의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게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다반사의 뜻을 음미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 다반사(茶飯事)
동양 3국(한국, 중국, 일본)의 차문화(茶文化)는 오랜 세월 동안 그 민족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진보돼 왔다. 평범한 백성들의 음료에서 때로는 약용(藥用)으로 쓰였다. 상류층의 기호식품(嗜好食品)화 되면서 사상과 예절이 더해져 다도(茶道)가 만들어지고 종교를 만나 제물이 되니 헌다례(獻茶禮)와 차례(茶禮)가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일찍이 하나의 음료가 약(藥)이 되고 도(道)가 되고 제물(祭物)이 된 것은 차(茶)밖에 없다 하겠다. 이제는 차(茶)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음료(飮料)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너무나 두꺼운 예복(禮服)을 걸치고 무거운 절차를 가지고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예 젊은이들은 상대하려고 하질 않는다.
지인들 중에는 다도(茶道)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해 온 사람이 있다. 나는 그를 도(道)를 가르치는 선생이기에 도사(道師)라 부른다. 어느 날 이 도사(道師)의 초청을 받고 댁을 방문했다.
다도를 가르치는 도사니까 오늘 차 마시는 일은 좀 힘들고 어렵겠다고 생각하면서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그 도사의 방에 들어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도(茶道)와는 전혀 맞지 않은 찻자리며 차 도구들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다도를 가르치라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더욱 놀란 것은 찻자리에 마주 앉아 차를 나누는 가운데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다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소의 차를 마시는 내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청허당(淸虛堂) 차실(茶室)에는 다도가 특별히 없다. 다도(茶道)는 처음부터 곱게 접어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 둔지가 오래 됐다. 하지만 차의 소중한 역사이기에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차를 따르는 도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다도를 실천하지 않습니까?" 도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다반사(茶飯事) 아닙니까." 다도를 강의하는 도사조차도 다도를 따라 차를 마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 있어 찻자리에 앉고 차를 마시는 일은 도(道)도 아니고 제사(祭事)도 아니고 공양(供養)도 아닌 흔한 일, 예삿일 즉 다반사(茶飯事)인 것이다. 다반사(茶飯事)란 말은 차를 마시는 일이나 밥을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뜻의 명사(名詞)다. 중국에서는 다반(茶飯)을 일상 음식을 가리키는 말로 써왔다. 다반사는 항다반(恒茶飯) 또는 항다반사(恒茶飯事)라고도 한다.
유배지 강진 초당(草堂)에서 다산(茶山)정약용은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망하고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흥한다고 하면서 백성들이 차를 많이 마실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평범한 백성들은 까다롭고 귀족스러운 다도를 쉽게 넘지 못했다.
지금도 무슨 차연구회니 차문화협회니 기념회 보존회 등등 많은 차 모임이 있어 가보면 대부분 다도(茶道) 시연(侍宴)이 그 행사의 핵심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차를 보존하고 널리 전파하자면서 다도를 시연(侍宴)하고 강조하며 수강생을 모집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차는 다산(茶山)이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말한 것처럼 쉽고 편하게 즐기고 마셔야 한다. 그래서 다반사(茶飯事)란 말이 나온 것이다.
다도(茶道)는 차 예법이라 할 수 있다. 다도의 성립은 8세기 중엽 중국 육우선사(陸羽禪師)가 '다경(茶經)'을 지을 때부터 비롯됐다. 우리나라는 신라 흥덕왕 때 김대렴을 통해 차가 전래된 후 고려 시대까지 사찰이나 귀족층 중심으로 전승됐으나 조선시대 이르러 숭유 억불 정책으로 다소 쇠퇴했지만 사원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19세기 초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차를 선가(禪家)의 참선(參禪)으로 이끌어 다선일체(茶禪一體)를 설파하게 된다. 이때부터 차는 구별되어진 예(禮)와 형식에 얽매이고 종교적인 의미까지 더해져서 신비스럽기까지 한 것으로 변했다.
이후 불교에서는 헌다례(獻茶禮), 유가(儒家)에서는 차례(茶禮)를 통해서 섬기는 신(神)과 조상에게 제사(祭事)하게 된다. 차례(茶禮)는 우리나라에서 명절(설, 추석)에 지내는 제사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는데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제사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는 그 명칭만 있지 내용은 사라지게 된다.
일본의 다도가 예의적(禮儀的)이라면 한국은 제의적(祭儀的)이다. 중국은 이 둘을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차를 해방시켜 차를 차 되게 하라고 외친다. 다도(茶道)와 차례(茶禮)에서 비종교화(非宗敎化), 비신화화(非神話化) 시키고 과도한 형식주의를 깨트려 버리면 순수한 다반사(茶飯事)가 나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세대에 어울리는 차 문화가 소중히 가꿔지기를 바란다.
■ 차(茶), 이제 매일 다반사(茶飯事)로 마시자
설 한가위 같은 명절에 조상께 추모의 마음 드리는 절차가 '다례(茶禮)'다. 기제사(忌祭祀;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나 묘사(墓祀; 무덤서 지내는 제사)보다는 덜 무거운, 좀 캐주얼한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저 단어를 한자로 쓴 것은 같은 말을 '차례'라고도, '다례'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차례와 다례는 같은 말이다. 차례는 민간에서, 다례는 궁중이나 사찰에서 쓴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자료도 있다. 그러나 실은, 어원을 따져도 다 뻥이다. 아무 때나 안심하고 둘 다 써도 된다.
발음기호 같은 한자의 발음표시법인 반절(反切)로 茶는 택가절(宅加切)이다. 宅의 한국어 발음 중 자음인 'ㅌ'과 가(加)글자의 'ㅏ'를 합친 소리값(음가 音價)에서 '다(타)'가 왔다. 중국말 첫 소리에 가까운 'ㅊ'과 'ㅏ'를 합치니 '차'다. '다'나 '차'나 뜻과 소리의 원리가 원래 같다.
둘 다 무방하나, '차'가 현장에서 더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요즘 유행어 '별다방'의 다방이란 말에서처럼 '다'로 쓰이는 단어들이 또한 여럿 있다. 차실(茶室)이라고 하지만, 차방이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굳어진 말인 것이다.
수, 당나라 때 지금 중국 땅인 그 곳 사람들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 쯤의 우리 선조들은 아주 비슷한 소리로 한자를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지역에 따라 달라진 것이 한국과 중국의 한자어 발음 차이다. 북경(北京)과 베이징의 차이도 그렇게 본다.
하여튼 이 글의 열쇠말(키워드)은 차, 차례(茶禮)다. 그런데 정작 차례에서 차(茶)가 사라진 것이 요즘 상황이다. 조상을 대접하는 음료가 모두 술(주 酒)로 변한 것인가. 그럼 차례 말고 주례(酒禮)라 해야 하지 않나? '음복주(飮福酒) 한 잔'의 음주운전의 폐해가 명절 전후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음복차(飮福茶)가 해답이리라.
명절의 의례(儀禮)를 보여주는 거의 대부분의 교본이 차례 또는 다례를 설명하면서 술을 (정중히) 따르는 절차만을 언급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대개 이를 따라 (베끼듯) 적는다. 명절마다 차례에 술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 내역이다. 한 자료의 차례 순서를 보자.
①목욕재계, 차례 지낼 마음 준비 ②제상(祭床) 집기 설치, 제수 준비
③명절 아침 제복 입고 제 위치에 정렬
④제상 차리기와 신위(神位) 봉안(奉安)
⑤신내림(강신 降神)의 예(禮)
⑥조상신에 대해 모든 참사자 참배
⑦제찬(祭饌 제사음식)과 잔 올리기
⑧시립(侍立)해 신위에 식사 권유
⑨수저걷기와 합동 배례
⑩사당(祠堂)으로 신위 모시기
⑪제상 정리, 음식 나눠 먹는 음복
⑤, ⑦, ⑧번의 절차에 술을 따르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⑪번의 음복은 조상이 세상에 끼친 덕을 기리는 의미라고 설명된다. 술 한 잔 걸치는 것을 포함한 헌주(獻酒)가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음복주는 복을 마시는 것 아닌가. '음복=술'이란 생각도 많다. 차는 없다.
차례 또는 다례에 차를 어떻게 우려(만들어) 어떤 절차로 조상께 대접한다는 얘기가 실종된 세상의 형편이다. 그러고 보니 '차 한 잔 하자'는 말의 차를 매실차 인삼차 쌍화차 칡차와 같은 음료로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차나무와 녹차, 홍차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차는 전통의 음료다. 다른 식품들처럼 영양소도 맛처럼 유익하며, 마음(정신) 추스르는 연장으로서의 의미도 인류 특히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공감을 키워왔다. 차 마시는 것을 다도(茶道)라고도, 다선(茶禪)이라고도 하는 까닭이다. 제사에 차를 조상께 대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반사(茶飯事)는 차 마시듯, 밥 먹듯 예사로 하는 일이다. 우리는 밥 먹는 그만큼 차를 마셨다. 어쩌다 한겨레가 잠시 차를 잊었다. 다시 다반사로 차를 마시면, 거리의 넘치는 술의 향연(饗宴)을 잔잔한 차의 여운(餘韻)으로 바꾸면, 몸과 마음에 또 우리나라에 평화가 올 터.
■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의 유래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를 통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고 했다. 왜냐 하면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시에서 처럼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일생을 보게 되듯이,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무엇을 먹고 마시면 그것의 일생을 몸에 담는 건 아닐까. 환경, 토양, 미생물, 일조량, 장마나 서리 등 그것이 겪은 총칭을 음미하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지(産地)와 와이너리를 강조하며 포도주에 떼루아(terroir)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자연환경과 경작인의 노고가 어찌 포도주에만 한정되겠는가. 굳이 용어를 붙이지는 않아도 커피에도 떼루아가 있기 마련일 테고, 한방에서 권하는 차(茶)도 떼루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계절상 따뜻한 차 한 잔이 몸을 데워주는 때가 됐다. 크고 작은 더위(小暑, 大暑)를 보내고 가을의 문턱(立秋)을 지나니 더위가 가시며(處暑) 맑은 이슬이 내리는(白露) 절기로 접어들면서다.
여름에 마시는 차는 생맥산(生脈散)정도에 그친다. 생맥산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를 물에 달여서 여름에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동의보감에 의하면 사람의 기(氣, 에너지)를 도우며 심장의 열을 내리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날이 추워지면 마시는 차들이 많아진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경락을 말초까지 뚫어주는 효능을 내는 것들인데, 계지(桂枝)차가 먼저 떠오른다. 계피와는 구별된다. 계피는 나무 아래쪽의 두꺼운 줄기 껍질이며, 계지는 나무 끝부분의 어린 가지다.
계지는 특이한 향기에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계지의 효능도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을 잘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에 손발이 차고 저린 증상이 있는 분들은 계지차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쌈 채소로도 먹는 당귀는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모두 캐서 차로 이용한다. 말린 당귀를 물에 넣고 끓여서 차로 마신다. 독이 없고 따뜻한 성질의 당귀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랫배가 차가운 분들이 당귀차를 마시면 효능을 볼 수 있다.
음식에도 많이 사용되는 생강은 정녕 양념인가, 약재인가. 한방에서는 건강(乾薑)이라 해서 뿌리줄기를 말려 약재로 사용한다. 특히 몸을 데우데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재다. 소화기를 진정시키고 헛구역질 나오는 것을 잡아주며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는 감기에 생강을 우려내서 마시면 효과적이다. 생강은 대추와 함께 첩약에 빠지지 않는 약재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대기가 건조해져서 목이 칼칼해지기 쉽다. 기침이 날 때 모과차를 마시면 엉킨 기관지를 풀어주고 신경통 근육통에도 효과적이다. 또 한방에서 목감기에는 도라지를 기본 처방에 둘 정도여서 도라지차는 목 염증에 효능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국화 산수유 결명자 등 몸을 데워주고 근육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되는 차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차가운 성분의 차와는 달리 따뜻한 차는 장기간 복용할 수도 있다. 차 한 잔이 사람의 몸을 데운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한 때 유행한 일본 만화에서 포도주를 '신의 물방울'로 비유했는데, 한방에서 권하는 차는 '치유의 물방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예로부터 차는 약이 아니어서 한두 번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꾸준히 마셔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한자로 매일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을 반사(飯事). 차 마시는 일을 차사(茶事)라고 하는데, 차나 식사를 하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하는 흔한 일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 하는 이유가 다 있는 셈이다.
▶️ 茶(차 다, 차 차)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余(여)의 변형자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茶자는 '차'나 '차나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茶자는 艹(풀 초)자와 余(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중국은 차의 나라이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2,737년 중국의 고대 황제인 신농씨가 차를 발견해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고 한다. 차는 처음에는 약으로 마셨지만, 지금은 음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茶자에 쓰인 艹자는 찻잎을 뜻한다. 余자는 작은 집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茶자는 소박한 집에서 차를 즐긴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할 수 있다. 참고로 茶자를 우리말로는 '다'라고도 읽는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다방'이라는 곳은 사실 '차방'을 우리말로 읽은 것이었다. 그래서 茶(다, 차)는 ①차(茶) ②차나무(茶--) ③동백나무(冬柏--: 차나뭇과의 상록 활엽 교목) ④다갈색(茶褐色) ⑤소녀에 대한 미칭(美稱) ⑥(차를)마시다, 그리고 ⓐ차(茶) ⓑ차나무(茶--) ⓒ동백나무(冬柏--: 차나뭇과의 상록 활엽 교목) ⓓ다갈색(茶褐色) ⓔ소녀에 대한 미칭(美稱) ⓕ(차를)마시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차와 과자를 다과(茶菓), 차를 마시는 곳을 다방(茶房), 차 만드는 법이나 차에 관한 예의를 다도(茶道),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차리는 다과 따위를 다담(茶啖), 차를 달여서 대중에게 이바지하는 일 또는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다각(茶角), 차를 따라 마시는 종지를 다종(茶鍾), 관청의 식모 노릇을 하는 천비를 다모(茶母), 불가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내놓는 다과 따위를 다담(茶談),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화장火葬하는 일을 달리 이르는 말을 다비(茶毘), 일상생활에 쓰는 식료품을 두는 방이나 찻집을 차방(茶房), 찻그릇을 담는 조그마한 예반을 다반(茶盤), 차를 빻는 절구를 다구(茶臼), 명절날이나 조상의 생일 또는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등의 낮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 차를 담아 마시는 잔을 차잔(茶盞), 가루로 된 차를 담는 사기 그릇을 차기(茶器), 임금께 차를 올림 또는 그 의식을 진다(進茶), 푸른빛이 그대로 나도록 말린 부드러운 찻잎 또는 그것을 끓인 차를 녹차(綠茶), 맛이 별로 좋지 않은 차 또는 남을 높이어 자기가 대접하는 차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박차(薄茶), 차를 마시고 밥을 먹듯 일상적으로 하는 일 또는 예사로운 일을 일컫는 말을 다반사(茶飯事), 차를 먹듯 늘 있어 예사롭고 흔함을 일컫는 말을 항다반(恒茶飯), 항다반으로 있는 일 곧 예사로운 일을 일컫는 말을 항다반사(恒茶飯事), 차를 마신 지 반나절이 되었으나 그 향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다반향초(茶半香初), 집에서 먹는 평소의 식사라는 뜻으로 일상사나 당연지사를 이르는 말을 가상다반(家常茶飯), 항상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등에 쓰인다.
▶️ 飯(밥 반)은 ❶형성문자로 飰(반)은 통자(通字), 饭(반)은 간자(簡字), 飯(반)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反(반)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反(반)은 위에서 물건을 덮고 아래로부터도 그것을 받는 일, 밥식변(飠=食)部는 먹는 것, 먹는 일, 飯(반)은 입에 머금고 잘 씹어 먹다, 먹는 것, 밥, 본디는 食(식)과 飯(반)은 같은 말이며 먹는데도 먹는 것에도 같이 쓴 것인데 나중에 곡식의 주식(主食)을 가리켜 飯(반)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❷형성문자로 飯자는 '밥'이나 '식사',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飯자는 食(밥 식)자와 反(되돌릴 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反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뒤집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사실 사전상으로 보면 飯자와 食자는 같은 뜻을 갖고 있다. 다만 이전에는 食자가 주로 '먹다'나 '음식' 자체만을 뜻했었다면 飯자는 곡식(穀食) 위주의 식사를 뜻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食자와 飯자는 관습적으로만 구분할 뿐 의미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飯(반)은 반축(飯柷)과 같은 뜻으로 ①밥 ②식사 ③먹다 ④먹이다 ⑤사육하다 ⑥기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밥 식(食)이다. 용례로는 아침저녁의 끼니를 드리는 일을 반공(飯供), 식후에 먹는 과일을 반과(飯果), 밥그릇 또는 밥을 담는 그릇을 반기(飯器), 중국에서 식단을 이르는 말을 반단(飯單), 수저나 숟가락을 반비(飯匕), 밥 짓는 일을 맡아 보는 계집종을 반비(飯婢), 격식을 갖추어 차린 밥상을 반상(飯床), 밥을 짓거나 하면서 심부름하는 어린 승려를 반승(飯僧), 밥을 담는 그릇이나 밥통을 반우(飯盂), 중국 음식을 하는 음식점을 반점(飯店), 숭늉을 반탕(飯湯), 염습할 때에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과 씻은 쌀을 물리는 일을 반함(飯含), 밥을 지을 수도 있게 된 알루미늄으로 만든 밥 그릇을 반합(飯盒), 밥과 국을 반갱(飯羹), 밥과 과자를 반과(飯菓), 밥알을 반과(飯顆), 밥상을 반대(飯臺), 끼니로 먹는 음식을 반식(飯食), 끼니 때 밥에 곁들여서 한두 잔 마시는 술을 반주(飯酒), 밥에 곁들여 먹는 온갖 음식을 반찬(飯饌),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무능하고 하는 일 없이 밥이나 축내는 사람을 조롱하는 반낭(飯囊), 입에 든 밥을 뿜어낸다는 뜻으로 아주 크게 웃음을 반분(飯噴), 거칠고 반찬 없는 밥이라는 뜻으로 안빈낙도함을 일컫는 말을 반소사(飯疏食), 밥을 담는 주머니와 술을 담는 부대라는 뜻으로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반낭주대(飯囊酒袋), 식사가 끝난 후에 울리는 종이라는 뜻으로 때가 이미 지났음을 이르는 말을 반후지종(飯後之鐘), 밥이 오면 입을 벌린다는 뜻으로 심한 게으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래개구(飯來開口), 제사의 제물을 진설할 때 밥은 서쪽 국은 동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반서갱동(飯西羹東),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는 쉽다는 말을 십시일반(十匙一飯), 집에서 먹는 평소의 식사라는 뜻으로 일상사나 당연지사를 이르는 말을 가상다반(家常茶飯), 술과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주대반낭(酒袋飯囊), 옷걸이와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옷을 입고 밥을 먹을 뿐이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의가반낭(衣架飯囊), 먼지를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진반도갱(塵飯塗羹), 한 끼의 식사에 천금같은 은혜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에 크게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일반천금(一飯千金), 개밥의 도토리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톨이가 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구반상실(狗飯橡實), 종에게 흰 밥을 주고 말에게 싱싱한 풀을 준다는 뜻으로 주인의 인심이 넉넉하여 남을 후대함을 이르는 말을 백반청추(白飯靑蒭), 따뜻한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풍족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온의미반(溫衣美飯), 한 술 밥의 덕이라는 뜻으로 보잘것없이 베푼 아주 작은 은덕을 이르는 말을 일반지덕(一飯之德), 여행 길에 하룻밤 묵어 한 끼 식사를 대접받는다는 뜻으로 조그마한 은덕을 입음을 이르는 말을 일숙일반(一宿一飯),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이라는 뜻으로 가까스로 살아 가는 가난한 삶을 이르는 말을 조반석죽(朝飯夕粥) 등에 쓰인다.
▶️ 事(일 사)는 ❶상형문자로 亊(사), 叓(사)는 고자(古字)이다. 事(사)는 깃발을 단 깃대를 손으로 세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역사의 기록을 일삼아 간다는 데서 일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事자는 '일'이나 '직업', '사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이 등장했던 시기 使(부릴 사)자와 史(역사 사)자, 事(일 사)자, 吏(관리 리)자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중에서도 정부 관료인 '사관'을 뜻했다.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후에 글자가 분화되면서 事자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정의하기로는 史자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자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자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事(사)는 일이나 볼일 따위를 이르는 말(~를, ~을 다음에 쓰이어)이나 또는 일의 뜻을 나타냄의 뜻으로 ①일 ②직업(職業) ③재능(才能) ④공업(工業), 사업(事業) ⑤관직(官職), 벼슬 ⑥국가(國家) 대사(大事) ⑦경치(景致), 흥치(興致) ⑧변고(變故), 사고(事故) ⑨벌(옷을 세는 단위) ⑩섬기다 ⑪부리다, 일을 시키다 ⑫일삼다, 종사하다 ⑬글을 배우다 ⑭힘쓰다, 노력하다 ⑮다스리다 ⑯시집가다, 출가하다 ⑰꽂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事實), 뜻밖에 일어난 사고를 사건(事件),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사태(事態)평시에 있지 아니하는 뜻밖의 사건을 사고(事故),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사정(事情), 모든 일과 물건의 총칭을 사물(事物), 일의 전례나 일의 실례를 사례(事例), 일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지속적인 활동이나 일을 사업(事業), 일의 항목 또는 사물을 나눈 조항을 사항(事項),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일의 안건을 사안(事案),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 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로써 함을 이르는 말을 사친이효(事親以孝),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임금을 섬김에 충성으로써 함을 이르는 말을 사군이충(事君以忠), 모든 일 또는 온갖 사건을 일컫는 말을 사사건건(事事件件), 사실에 근거가 없다는 뜻으로 근거가 없거나 사실과 전혀 다름을 일컫는 말을 사실무근(事實無根), 사태가 급하면 좋은 계책이 생김을 일컫는 말을 사급계생(事急計生), 일정한 주견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 사람을 붙좇아 섬기면서 의지하려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사대사상(事大思想), 자주성이 없어 세력이 강대한 자에게 붙어서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을 사대주의(事大主義), 옛 사람의 교훈을 본받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사불사고(事不事古),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거나 하는 일마다 다 실패함을 일컫는 말을 사사무성(事事無成), 일의 되어 가는 형세가 본래 그러함을 일컫는 말을 사세고연(事勢固然),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가 명백함을 일컫는 말을 사리명백(事理明白), 일을 함에는 신속함을 중요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사귀신속(事貴神速), 이미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사이지차(事已至此), 여러 가지 사변이 자꾸 일어나 끝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사변무궁(事變無窮)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