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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동 열방교회 개척 수기 >
경산시에서 더 이상 목회 사역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은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이지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가슴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안양에 있는 갈멜산금식기도원에서 아내가 보름간 금식기도를 마친 뒤, 주님의 응답이 시작되었다. 2011년 3월에 경산으로 내려가면서 갖고 갔던 자금은 이미 바닥이 났다. 왜냐하면 10년간의 단독목회를 보장받고 목회계약서까지 체결을 하였기 때문에 조금도 아끼지 않고 기도원 활성화를 위하여 전자금을 사용했던 것이다. 기존 수양관 명칭을 ‘열방기도원’으로 바꾸고 ‘연속부흥성회’에 관한 전단지 제작과 배포, 그리고 기독교연합신문과 경북지역 신문 광고와 기사를 내보내는데 자금을 모두 사용했다. 결국 6개월 만에 이천 육 백만원은 몽땅 소진되고 말았다. 정녕 한 마디로 무일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손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전에 알던 믿음의 권속들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시작했다. 경북지방으로 내려갈 때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분들이었다. 인천에 다시 올라와서 목회를 해야겠다는 말에, 또한 우리가 처해진 상황을 알게 되는 순간, 한 사람은 전도사님인데 씨앗으로 드린다며 200만원, 그리고 또 권사님 한 분께서는 빔 프로젝트를, 충청도에 살고 있는 어느 집사님은 앰프를 포함한 음향기기 일체를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잊지 못할 경산에 있는 전도사님은(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다) 자신도 힘들게 지하 임대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꼭 강대상 헌금을 해야 된다며 100만원을 헌금해 주셨다. 그런데 정작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장소였다. 기도를 하고 있던 사모의 마음에 자꾸만 효성동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효성동에는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본 적도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그 지역을 알아보자고 하고서는 3월 중순에 작전동에 살고 있던 딸네 집에 왔다가 효성동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예 2층은 나와 있지도 않았고 설혹 있다고 할지라도 보증금이 너무도 비싸서 우리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눈에 띄는 부동산 간판을 보고 아내와 함께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교회를 개척할 건데 혹시 임차할만한 적당한 건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 건물의 지하 50평이 싸게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건물주가 안양에 살고 있는데 거의 7개월 동안 비어있던 건물이라 수리를 하려고 견적을 뽑기 위해서 조금 전에 올라왔다고 했다.
어떤 상태의 지하실인지 자못 궁금한 심정으로 총총 걸음으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곰팡이 냄새나 습한 냄새가 어느 정도나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거의 100%였다. 물론 비쌀 경우 그냥 되돌아 나오려고 생각하였다. 내려가는 순간 나의 눈과 코를 의심하였다. 여기가 분명 지하 맞지? 그런데 지하 같지 않은 지하였다. 습하거나 쾌쾌한 냄새조차 전혀 나지 않았다. 건물주와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도 매우 잠깐이었지만 만약 교회로는 세를 안준다고 하면 어떡하나? 염려가 되었다. ‘주님 아시지요?!’ 짧지만 강하게 주님께 기도했다. “무슨 사업을 하실 건가요?” 건물주가 물었다. “요즈음과 같은 불황엔 사업을 하던 분들도 접는 상황이라 저희는 사업이 아니라 목회 사역을 할 계획입니다. 여기가 7개월 동안 비어 있었다던데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얘기겠지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물주가 “제가 얼마에 세를 드리면 되나요?”라고 했다. 속으로 일단 ‘됐다’ 싶었다. 보증금이 500만원밖에 없다고 했더니, 이 자리에 검도장이 있었는데 보증금 2,000만원에 월 60만원에 있었다며, 도대체 월세를 얼마씩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너무 적은 금액을 말하면 그냥 단칼에 거절당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교인도 한 명 없이 개척을 시작하면서 시세에 맞게 월세를 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혹여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저희가 경산에서 올라와야 되는데 사장님이 싸게 해주시면 계약을 하고 그렇지 않음 다른 곳으로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했더니 건물주가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글쎄 얼마를 주실 수 있는지 일단 말씀을 해보시라니까요.” “40만원요.”말하는 순간 곧 적막이 흘렀다.
“아니 사장님 후려쳐도 너무 심하십니다.”하시는 것이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저는 사장님이 아니고 목사입니다. 제가 흥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구요. 저희 입장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언짢게 생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동산 사장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김사장님, 계속 비워 두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시죠?!” 건물주가 화를 버럭 내면서 “조카 녀석을 통해 이걸 얼마에 샀는지 아는 양반이 어찌 그런 말을 해?!” 버럭 역정을 내고서 우릴 쳐다보며 하는 말, “10만원만 더 내놔요.”라고 하셨다.
아내와 나는 서로 쳐다보면서 마음을 읽었다. ‘주님이 인도하셨구나’ 생각하면서 한 번 더 부탁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사장님이 2년 계약을 해주시면서 6개월만 40만원에 해주시고 그 다음부터 50만원씩 드리는 것으로 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O.K.였다.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고 주님께서 역사하셨다. 인천 효성동에 이렇게도 깨끗하고 좋은 지하가 어디에 있으랴? 더구나 비어있는 7개월 동안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던 장소가 우리 눈에 띄게끔 하셨고, 때마침 거의 1년 동안 찾아와 본 적이 없다던 건물주가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현장에 와있도록 만드셨는지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또 지하실 내부 벽면과 천정 그리고 계단 입구까지 칠을 전부 새로 해주겠다고 했다. 주님을 믿지 않는 분인데 교회는 깨끗해야 된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페인트칠을 위시하여 천장 공사비가 750만원이나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겨울 동안 영하의 날씨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던 곳이라 가스순간온수기가 동파되었는데 새것으로 교체를 해주신 것이다.
5월 26일(토) 설립예배를 드리기로 날짜가 정해졌다. 아직 보름 정도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장의자가 마련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쓰이는 상황이었다. 대전에 있는 동생이 “누군가에게 형님을 소개했으니까 꼭 만나보라”고 해서, 효성동에 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더니 설립 예배를 열흘쯤 앞두고 어떤 남자가 찾아 왔다. 북부 알래스카지역에서 야생하는 블루베리와 북극 청정해역에 있는 연어에서 추출한 오메가3에 관한 건강 정보였다. 대화를 하던 중에 “목사님,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봤다. “제가 얘기에 집중을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면서, “사실 교회 설립예배를 앞두고 있는데 다른 것은 거의 다 갖춰졌는데 아직 의자가 준비되지 못해 신경이 쓰여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자기가 서초동에 있는 어느 교회 집사라고 하면서 개인의자 50개 값을 헌금하겠다는 것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집사님의 가정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교회가 인천 효성동에 세워진 열방교회이다. 바로 직전에 검도장을 경영하던 관장님이 처음 바닥시설을 할 때, 지하 콘크리트 바닥으로부터 15Cm 간격(공간)을 띄워 쪽마루를 깔았기 때문에 그만큼 습기와는 차단이 될 수 있었고, 습하지 않도록 원목마루 아래쪽 바닥에는 물길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아예 시설비 따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우리 형편에 꼭 맞는 곳이었다. 남녀 탈의실과 샤워실로 만들어진 두 곳 중 하나는 주방과 부엌으로, 또 다른 하나는 사택 숙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하 1층 교회 입구에 자그마한 사무실까지 예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시설비를 적게 잡더라도 2~3천만 원 정도는 족히 들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 열방교회를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그냥 무료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설립예배에 함께 하신 50여 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축복 속에 2012년 5월 26일 열방교회 설립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아무도 모르는 눈물과 기도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름 없이 헌신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 것이었다.
그 후 설립예배를 드린 뒤 어느 누구도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없지만 우리 부부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정녕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다.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에서 5월에 개최한 ‘십자가복음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큰 도전을 받고 왔다. 며칠 후에 갑자기 밤새도록 폭우가 쏟아졌다.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네 시 반쯤 깨어나서 싱크대가 있는 주방 안으로(예전엔 검도장 탈의실) 발을 내딛는 순간, 장판이 푹신한 스폰지처럼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에 가장자리를 쳐다봤다. 시커먼 물이 보였다. 큰 문제가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옆방으로 건너가 사모를 깨웠다. 알고 보니 지하 배수장에 설치된 수중 모타가 고장 나서 빗물까지 역류가 된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교회에 깔려져 있는 마루는 15Cm 높이 때문에 썩은 폐수가 닿지 않은 상태였다. 대야를 가지고 아무리 퍼내어 봐야 소용이 없었다.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날이 밝아 오기만 기다려야 했다. 교회 안에는 악취로 가득 찼다. 아침 8시경, 동네에 있는 설비업체 사장님을 모시고 왔다. 무려 3시간 이상 무진 애를 썼다. 우선 급한 대로 임시 모타를 갖고 와서 물을 다 퍼내고, 새것으로 모타를 교체를 했지만 악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충현교회 섬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비피해가 없는지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 다음 주 수요일 예배시간에 맞춰서 방문을 하겠다고 했다. 오랜 기간 집수장(배수장)의 청소를 전혀 하지 않아 고여 있던 물들이 썩어 있었다. 그 악취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그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여러 날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는 듯하였다. 드디어 수요일 저녁 무렵에 네 분의 권사님이 열방교회를 방문하셨다. 가까운 굴밥집 식당으로 함께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는데 한사코 당신들이 계산을 하시겠단다. 고맙다는 생각보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 예배를 드리려고 모두 자리에 앉아서 다함께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은혜를 사모하는 준비된 심령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전하였다. “아멘~!” 뜨겁게 화답하였다. 설립예배 후로 얼마 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열방교회에 모인 것인가 싶었다. 수요예배 때에는 헌금시간이 없는데 네 분의 권사님들이 모두 헌금을 하셨다. 간절하고도 애틋한 마음으로 축복하며 봉헌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감사했다.
2012년 6월 하순 어느 날 성남에서 이창호목사님(작은교회섬김센터 사무총장)을 만났다. 일산 거룩한 빛 광성교회(정성진목사님)에서 작은교회를 위하여 귀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다름이 아니라 행복누리신문(8면 제작)을 매달 1회 발행하는데 작은 교회는 매월 10만원만 부담하면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을 발행인으로 해서 1,000부씩 공급해준다고 했다. 그리하여 7월부터 매월 열방교회 김정우목사가 발행인으로 된 신문을 제공받았다. 그때부터 아주 열심히 아파트와 이웃 주민들에게 행복누리신문을 배포하면서 열방교회를 알리기 시작했다. 전도지의 경우에는 그냥 버리거나 거부를 하지만 행복누리신문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의욕이 너무 앞서는 바람에 내 나이조차 잊어버리고서 300부 이상을 아파트에 돌렸더니 종아리에 알이 배겨서 그 다음에 이틀 동안은 배포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혼자서 6개월 동안 행복누리신문 6000부를 열심히 뿌리고 또 뿌렸다. 그랬는데도 단 한 사람 교회를 찾아오는 분은 없었다. 그러던 중, 연합기독교방송(박찬영목사님) 복지선교교회에서 가진 2012년 12월 월례회 때, 새하늘교회 권태섭목사님을 알게 되었다. 권태섭목사님이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하시면서 “이달 말쯤에 열리게 되는 민족사랑운동본부 정기총회에 꼭 참석해 주십시요.”하시며 거듭 거듭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며칠 후, 내 발걸음은 작전동에 있는 새하늘교회로 향하였고 또 다른 새로운 만남들을 갖게 되었다.
2013년 새해가 밝아왔다. 민족사랑운동본부 신년하례회를 1월 중순 작전동 새하늘교회에서 갖게 되었다. 그 단체에 계신 분들과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신년감사예배를 마치고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민족사랑부흥사회 대표회장을 맡아서 일해 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들었다. 대표총재이신 전석도목사님께서 강권하셔서 참으로 민망했다. 그래서 사실을 고백했다. 교회를 개척한지 8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한 명도 없는데다 전혀 재정적인 여력도 없으며 교회도 지하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가까운 곳이니까, 말이 나온 김에 열방교회에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목사님을 모시고 열방교회로 왔다. 교회로 들어오신 후에 잠시 기도하시더니 “됐어. 이만하면 훌륭하네. 전혀 지하실 같지도 않고 참 좋구만”하셨다. 지금까지 ‘한국기독교 영풍회’에서 10년간 쌓은 경험만 하더라도 대표회장 깜으로 충분하다며 선뜻 100만원을 내놓으셨다. 정식으로 ‘민족사랑부흥사회’ 대표회장 취임예배를 드리도록 하자는 말씀이었다. 송구함과 감사함이 뒤섞인 그런 마음에 그때부터 분주하게 취임예배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2013년 2월 24일(주일) 오후 3시에 마침내 우리 열방교회에서 대표회장 취임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폭설이 내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근각처에서 목사님들이 50명 넘게 찾아와서 축하해줬다. 정말 너무나도 감사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 속 깊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날이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작에 불과했다. 현재 열방교회 전도사로 동역을 하고 있는 찬양사역자 김기연 전도사님 부부와의 만남이 바로 ‘민족사랑 부흥사회’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언제나 늘 영적 갈급함에 목말라했다던 그들이 새하늘교회에서 열린 민족사랑부흥사회 주관 제2차 부흥성회 때, 특송을 부탁받고 왔던 것이다. 처음 그들을 봤을 때 그 표정은 너무 어두웠고 무거워 보였다. 후에 듣게 된 말이었지만,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억지로 참석했었다는 것이다. 부흥성회 장소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작전동이라는 말에 거절할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참석하였기 때문에 그랬었다고 했다.
그런데 설교가 시작되고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노라고 고백하였다.
1시간 10여분의 설교를 마치고 집회가 끝난 뒤에 악수를 하는데 전도사님이 내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아마도 성령께서 그들에게 큰 은혜를 주신 것 같았다. 자기 명함을 주기에 나도 명함을 건네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대금찬양 특송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명함에 나와 있는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마나 반갑게 받던지 기뻤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목사님, 제 영적 멘토가 되어 주십시오.” 정말 당혹케 하는 말이었다. “전도사님, 이제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되었고, 제 설교를 한 번 들어본 것이 전부인데 너무 성급한 결정인 듯싶네요.”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벌써 1년 이상 기도해왔었는데 어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이었고 저희가 밤늦도록 대화하고 내린 결론입니다.”라고 했다.
내심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당연히 신중하게 처신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당부를 하였다. 지금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에 성가대 지휘자니까 결코 그 교회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또 한 가지는 담임목사님께 꼭 축복기도를 받고 와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끝냈다. 물론 반갑기도 하였지만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6년간 섬기던 교회에서는 성가대 지휘자로서의 대접(유급)을 받고 인정(존경)을 받던 기득권까지 포기하고 떠나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기연전도사님은 그 다음 주일부터 열방교회로 왔고 김희정사모님은 섬기던 교회 성가대 지휘자 후임자가 올 때까지 성가대를 책임지기로 하였는데, 아무래도 금년 말까지 있어야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했다. 물론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는 우리와 함께 하였다.
실제로 그 교회가 너무 멀어서 주일 낮예배와 성가대 연습만 끝나면 집에 왔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금요기도회를 하면서 ‘우리 다함께 그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좋은 분으로 빨리 결정될 수 있도록 합심해서 기도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불과 3주가 못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응답해주셨다. 6년간 정들었던 지휘자가 갑자기 교회를 떠나는 것이 너무 서운해서 그토록 아쉬워하는 성도들과 김희정사모님도 간신히 작별하고 송별회를 끝으로, 현재는 찬양사역과 반주자로서 열방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섬기고 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열방교회로 옮겨온 후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김희정사모님은 인천에 있는 ♡♡중학교 음악선생님으로 재직 중인데 교육감 표창장을 수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기연전도사님은 우리 교단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재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며 충성하고 있다. 매 주일마다 새로 작곡한 곡을 일명 ’말씀찬양‘이라고 우린 일컫는데, 성경 구절 그대로 찬양가사로 되어있다. 김희정사모님이 매 주일예배마다 특송을 말씀찬양으로 부르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있다. 확신하건대 언젠가는 한국교회 성도들 대다수가 말씀찬양을 즐겨 부르는 날이 꼭 올 것으로 믿는다. 이미 여러 차례 부흥사 단체 연합성회나 교단 산상집회 때 특송으로 불렀는데, 매번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CBS 작은교회 섬김센터(SCF)에서도 선을 보였는데 매우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사야서 41장 10절의 말씀찬양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22절 말씀 찬양은, 몇 번을 들어도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로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께서 후원자를 허락해주셔서 속히 CD음반이 제작되어 수많은 교회가 말씀찬양을 다함께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민족사랑 부흥사회 주관 제 3차 부흥성회가 있던 주간에 다급한 목소리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교회 사무실 천장에서 소나기처럼 물이 쏟아진다는 얘기였다. 차로 10분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왜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거기에다 신호등도 자꾸 걸리는지?! 교회로 내려가면서 즉각 심각성을 느꼈다. 지하 1층에 있는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3~4평 남짓 되는 현관문 바로 옆 사무실 천장에서는 말 그대로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밤 10시가 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작년 여름엔 장판 밑에서 폐수가 역류되어 한 바탕 크게 곤혹을 겪었는데 이번엔 위에서 쏟아지다니...? 가장 먼저 안양에 살고 있는 건물주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더니, 황당해하시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안양에 살고 있는 나더러 어떡하라고 지금 전화했어요? 아무튼 내일 아침에 갈테니 그리 아세요.”라고 하고는 그냥 툭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증거 자료를 남겨 둬야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겠기에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 도대체 이토록 많은 물이 어디서 쏟아져 내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악취가 나는 오수가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다행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상가 1층에서 입주자들이 야단법석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올라가 봤더니 혹한 때문에 옥상에 있는 물탱크 파이프가 터지는 바람에 물이 나오질 않아서 영업을 못하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며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밤새 못자고 고생한 우리도 이렇게 있는데 말이다.
아침에 일찍 오겠다던 건물주는 정오가 다되어 나타났다. “왜 그런 것이랍니까?” 묻기에, 옥상 물탱크가 터져서 벽을 타고 밤새도록 지하로 물이 쏟아져 내렸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간밤에 촬영해둔 휴대폰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아마 적잖게 많이 놀란 듯 했다.
한참을 보고 또 보다가 “목사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말하더니 “앞으로 3개월 월세를 내지 마시고 4월부터 내세요.”라고 하기에 내가 다시 말했다. “사장님, 저희가 현재 임대료 석 달분이 밀린 상태인데요.”했더니 그러니까 그것도 감해드리고 그러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모두 6개월분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부흥성회를 열었던 새하늘교회교회 담임목사님께서 그 얘기를 듣고서 하시는 말, “제가 강사 사례비를 못 드려 너무 죄송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셔서 참 좋네요.” 듣고 보니 꼭 그런 것만 같았다. 하나님께 감사함은 물론이고 건물주에게도 참 고마웠다.
정말이지 주님의 은혜로운 손길이 없다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힘든 것이 우리들이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며 식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다만 어리석은 인생들이 교만 또는 우둔해서 깨닫지 못할 뿐이다. 전도사님 부부가 우리와 함께 한 뒤로 가장 기쁘고 감사한 일은 다름이 아니라 김기연전도사님의 모친 박영자성도가 우리 교회에 출석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본인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지금껏 어머니한테 수십 번이나 교회에 함께 가자고 말씀드렸지만 단 한 번도 응하신 적이 없던 분이셨는데 그날 낮에 주방 싱크대 앞에서 뭔가를 하시다가 갑자기 하시는 말이, “너희가 옮겼다는 교회에 내가 한 번 따라가 볼까?”하셨다는 것이다. 큰 교회에 다니다가 왜 조그마한 개척교회로 옮겼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셨겠지만, 벌써 몇 달째 계속된 합심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설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끝내 거부하진 않겠지. 그렇게만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주님께서 응답하실 일들이 더 많겠지만, 김전도사님의 장인 장모님에 대하여 주님의 은혜가 먼저 덧입혀져야만 된다. 김희정사모님의 부모님께서도 교직 생활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리 큰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는데 버스 안에 함께 있던 선생님들 중에 부친이신 김용석선생님의 경우 목부분 아래쪽 전신이 마비가 되어 벌써 10년 이상 침대에서 누운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인 김소자씨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교회에 관련된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쯤 성당 가시는 시간에 맞춰 김용석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했다. 약속한 그 시간에 전도사님 부부와 함께 아파트로 찾아 갔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10년 이상 병석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여서 표정부터 밝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밝고 환한 얼굴과 성숙한 인품이 묻어나는 것 같은 참 좋은 느낌을 주었다. 찬송을 부르는데 함께 따라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 눈물까지 흘리시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 알고 보니까 젊은 시절, 구세군교회에 열심히 다녔다고 하셨다. 그런데 동료 교사들과 어울리다 보니 알코올 중독 초기까지 갈 만큼 술을 가까이 하다가 결국엔 교회와는 멀어진 상태에서 그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주님께 기도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같은 버스를 여러 선생님들이 다함께 타고 있었는데 왜 김선생님에게만 유독 큰 사고로 이어졌는지 혹시 느끼신 것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여쭤보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알지요.”하시며 또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회개도 했다기에 “참 잘 하셨습니다. 제가 잠시 기도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했더니, “예, 고맙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하셨다.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에 우리는 헤어졌다. 하나님께서 포기를 하지 않으시는 한, 절대로 우리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된다고 권면 드린 것이 이제 곧 열매로 맺을 것을 믿는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10월쯤에 한 번 더 찾아뵙기로 했다.
찬양사역자인 전도사님 부부가 열방교회로 온 후에 달라진 것이 참 많다. 예배 순서와 함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전에는 없었던 키보드가 생겼고 최고수준급 반주와 함께 은혜 넘치는 특송시간이다. 대금찬양과 팬플룻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감사하지만, 신약 성경 말씀을 가사로 만들어지는 ‘말씀찬양’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다. 우리 부부 둘이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도 물론 즐겁고 은혜 넘치는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몇 갑절이나 더 그러하다.
지난 6월 29일(토)에는 전도사님 부부가 생애 최초로 ‘찬양 콘서트’를 열방교회에서 가졌다. 비록 20여명의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참석을 했다. 나는 콘서트 내내 눈물을 훔치곤 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내가 처음부터 눈물을 흘리니까 김기연전도사님 부부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자꾸 쏟아져서 억누르기가 어려웠다고 했지만 참 좋았다고 하였다. 그날 애석하게도 참석을 못한 분들이 다음 콘서트 때에는 만사 제치고 참석하겠다는 분들이 여러 명 있다.
7월 14일(주일) 오후에는, 작은교회세우기연합 주관, 열방교회 주최 ‘희망 나눔 콘서트’가 또 열방교회에서 열렸다. 30여명이 참석을 했고 역시 감동이 넘치는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그렇게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들도 걸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냉담했다. 콘서트에 자비량 협찬해준 여러 찬양사역자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떠한 장애물이 놓여 있더라도 극복해나가며 승리함으로써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려 드리고 싶다. 그리고 때론 공과금이 연체되고 휴대폰이 끊어져 통화를 못하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중단할 수 없음은 물론,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우리 생애가 끝나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를 택해 주시고 불러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평생 감격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잘 받들어 섬겨야겠다. 할렐루야! 마라나타!
대한민국의 수많은 개척교회들이여. 우리 모두 끝까지 파이팅~~~! ^^
2013년 10월 7일
열방교회 김정우목사(032-549-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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