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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덕운화
▲ 중국화가 오금목의 '상산채지도'라는 그림에 나타난 섬서성 남전산의 장관.
사슴이 노는 골짜기(鹿柴) / 왕유
<해설> 있다.
비롯하였다. 왕유는 망천장 벽에 망천계곡의 승경 20경을 그려 놓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왕유의〈망천도〉이다. 왕유가 산수화, 문인 남종화의 시조가 된 그림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명(明)나라 시인이며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이동양(李東陽)은 성당(盛唐)의 시풍을 추구하는 당시(唐詩) 부흥운동을 부르짖었는데, 《회덕당시화(懷德堂詩話)》에서 “왕유의 시는 담백한가 하면 더욱 짙고, 가까운가 하면 더욱 멀구나”라고 평하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란도란 사람소리 뿐인 고요한 망천계곡 낮은 곳 좋아서 계곡 음지에서 절로 자란 푸른 이끼 위에 석양빛이 숲속 깊숙이 들어와 비추니 더 아름답구나. 《당시전주(唐詩箋注)》에는 “‘인적이 없다(不見人)’와 ‘사람의 말소리가 들린다(但聞人語響)’라고 한 것은 숲이 깊기 때문이다. 숲이 깊어 햇볕이 덜 들면 이끼가 자라기 쉽다. 저녁에 되비치는 빛이 스며들고 빈 산은 고요하니 진실로 사슴이 터전을 삼기 알맞은 곳이다. 시가 매우 섬세하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 시에서 ‘텅 빈 산(空山)’과 ‘석양볕(返景)’ 그리고 ‘푸른 이끼(靑苔)’의 시어는 절묘하다. 불교에서 무었을 깨달음이라 하는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었인가?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공(空)이다. 공 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본이 되는 핵심사상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하는 사물이 자기를 형성하는 고유한 실체가 없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따라 화합하여 일시적으로 모습을 이루고 있을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존재의 실상(實像)을 밝힌 진리이다. 우리의 마음도 실체가 없다. 자성(自性)이 없다. 무자성(無自性) 즉, 공이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이 깨달음이고,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으려는 경계가 공의 세계이다. 1구에서 공산(空山)이 있는데 사람이 보지 못한다(不見人)고 했다. 공의 도리를 보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텐데, 그러나 2구에서는 어디선가 도란도란 사람소리가 들린다. 진리를 먼저 알고 있는 성문(聲聞) 선지식의 소리가 들린다. 마치 《십우도(十牛圖)》에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는데, 소의 발자국을 보았고(見跡), 깊은 산속에서 소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1구와 2구의 ‘견(見)’과 ‘문(聞)’은 보는 것과 듣는 시청각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견성오도(見聲悟道) 즉,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는 세계로 이끌고 있다. 3구에서는 내 마음의 깊은 단계인 제8아뢰야식(深林)에 반야지혜(空觀)가 깊숙이 들어와(入)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것을 저녁 석양빛이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으로 표현하였다. 결구(結句)에서 “다시금 푸른 이끼 위에 비추네(復照靑苔上)”는 압권이다. ‘푸른 이끼’는 왕유가 깨달은 인생의 모습이다. 왕유는 자연 속 이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천재 왕유의 위대한 통찰력이다. 이끼는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 음지 습지를 좋아한다. 이끼는 큰 고목나무나 바위 틈에 붙어서 끝까지 죽지 않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남는다. 이끼는 혼자 살 수 없다. 여럿이 모여 군생(群生)한다. 연꽃처럼 고원(高原)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불교 경전에서는 연꽃을 더러운 연못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꽃을 곱게 피워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살에 비유하고 있다. 더러운 이 세상 사바세계에 살면서도 그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 보살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통해서 부처를 발견한 것이다.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