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桃源속의 이브
1965년 12월 20일이였다
발신자가 없는 편지한통이 나에게 배달되였다
모시는 글
시간 ; 1965년 12월 24일 20시00분
장소 ; 소사 도원의 집
회비 ; ㅇㅇㅇㅇ
찾아오시는 방법 ; 부천역에서 ㅇㅇ번 뻐스를 타시고 ㅇ번째 정거장에서 하차하시면
남쪽길로 향하여 곧장 200여m 위치에 있는 신옥인 양옥집입니다
바쁘시드라도 찾아주신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슴니다
ㅇ ㅇ ㅇ 드림
주관자는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연락이 왔을가
이상하다 싶어 호기심으로 사전 탐사차 장소를 찾아 가보았다
정거장에서 내려 가리키는대로 200m 정도 올라가니 길 양쪽으로 제법너른 복숭아 밭이 있고 그사이로 드러나는
집 한채가 높다랗게 우뚝 서있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시멘트와 페인트냄새가 남아있는것 같고 아무도 살지 않는지 문이 잠겨있는채
조용하다
누군가가 별장으로 지은것 같은데 보기 드물게 예쁘고 산듯한 이층 양옥집이다
수도권에 이정도의 집과 너른 복숭아 밭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꽤나 여유있는 사람인것 같다
그다지 바쁜일도 없으려니와 이상하게도 호기심으로 검은 곤색양복을 오랜만에 꺼내입고 거울을 드려다 본다
거울속의 청년은 자신이 보아도 흠잡을곳이 전혀 없는 말쑥하게 잘생긴 청년이다
이 양복은 내가 처음으로 회사에 입사했을때 선물받은 옷이다
아들놈이 지지리도 공부를 못하여 반에서 항상 꼴등을 도맞아 한녀석이 있었다
어려운 조건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후 방황하든시절 평소 알고 지내든 아줌마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취직이 될때까지 수고료는 드리지 못하고 대신 숙식을 제공할터이니 아들을 가르쳐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주인은 철도국 말단 공무원으로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세딸의 교육과 녀석까지 여덟식구가 겨우겨우 끼니를 때우는 집이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궁여지책으로 대답을 하였다
녀석은 머리는 우수한데 매일같이 만화에 빠저 교과서는 팽개치고 살다시피하니 공부가 엉망이였다
여전히 빵점만 받아오든 녀석에게 너는 나중에 거지가 될지 모른다고 계속해서 무서운 주사바늘같은 쇼크를 주었다
그러던 녀석이 차츰차츰 공부에 재미를 부치기 시작하드니 불과 몇달만에 반에서 우등생이되고 다음해 서울에서 내노라 하는 Y고등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철썩 붙어버렸다
모든것이 나의 지도덕택이라고 믿은 그들은 계속해서 아들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취업을 빌미삼아 이제는 혼자서도 이겨나갈수 있다며 극구 사양하였다
아줌마는 가난한 살림에도 나에게 입사를 축하할겸 고맙다는 사례로 양복한벌과 내복 그리고 구두를 사주셨다
난생 처음으로 산듯한 양복과 구두를 신고 첫 출근하였을 때는 하늘을 나를듯한 기분이였다
- 형님 잘오셨어요 혹시나 않오실가 걱정을 했는데 고맙습니다
우리회사에 납품차 자주오던 김교준이라는 청년이 문앞에서 반가히 맞이한다
김교준과 나는 사무적인 대화를 몇번 했을뿐이고 납품온 물건은 별다른 하자가 없는한 다 받아주었다
상부상조라는 의미에서일뿐 그 이상은 아니였다
어쩌다 같이 점심이라도 하자는걸 정중하게 사양도 했고 때론 식사라도 하라며 내미는 손도 무안하지 않을정도로
웃으면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이 계속해서 납품을 도맡아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혹시 나를 위한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워하자 고개를 흔들며 맞이해준다
여덟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젊은이들이 속속들이 나타난다 모두가 하나같이 낯서른 얼굴이다
스스로 자화자찬하던 나의 자존심이 스르르 와그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멋진 양복에 고급 코트나 바바리를 걸친이들, 방금 이발소에서 나온듯 산뜻한 화장내음 풍기는이들
뿐만 아니라 고급드레스에 밍크 털코트와 너구리 목도리를 두른 멋쟁이 아가씨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일부러 그렇게 짜마추었는지 남녀각각 열명씩 모두 이십명이다
하나같이 최고로 멋을 부린 하늘에서 내려온것 같은 선남 선녀들이다
응접실로 들어가니 제법 너르고 보기드믄 전축과 마이크까지 준비 되여있다
양쪽으로는 이제껏 보지못한 고급 쇼파도 가즈런히 놓여있다
- 안녕하십니까 김교준이라 합니다 아마도 제가 아는 분은 여기계신 이분밖에 모릅니다 나를 가리킨다
이분의 회사에 납품차 들리면서 사무적으로 몇번 뵈웠을뿐 더이상은 자세히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 오신분들은 서로가 리레이식 연결로 초청이되여 있어 서로가 다들 초면으로 알고있슴니다
인사나 자기 소개는 천천히 다과를 드시면서 하기로 하고 지금부터 즐거운 파티를 시작하겠슴니다
우선 진행에 앞서 건너방으로 가셔서 천천히 다과를 드시기 바랍니다
건너방에 들어가니 역시 너른 실내에 식탁은 하얀 백지로 덮혀있고 백지를 열자 과일 음료 과자와 떡이 정갈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 우선 저를 중심으로해서 오른쪽으로 번호를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마음에 드시는 번호를 돌려주시는 쪽지에 적어 주시면 최다득점자를 선정하여 오늘의 진행자로 모시겠습니다
우연찮게도 내가 거의 과반수 이상으로 진행자가 되였다
-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많이 부족하지만 보다 즐거운 오늘의 파티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슴니다
우선 앉은 자리부터 남녀가 서로 마주 앉지마시고 남녀 남녀로 자리를 바꾸어 각자 커풀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야 ! 우리 회장님 역시 최고시다 -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자 모두가 약속이나 한것처럼 박수가 쏟아진다
각자 소개는 사실이 아니어도 어차피 유효기간은 오늘 하룻밤이니까 책임은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급적 재미있고 유모러스한 자세를 기대합니다 우선 저부터 소개하겠슴니다
저는 충청도 깊은산골 옹달샘이 있는 오지속에서 살다가 우연히 서울에와서 학교를 다녔고 운이좋아 대수롭지 않지만 직장을 갖게되는 성공을 하였슴니다 이름은 [성공한]이라 합니다 요란한 박수가 쏟아진다
전진해. 김수로. 박아지. 오미자. 최고녀. 염탐장. 안심해 .양미리. 방구석. 지저분. 백바지....별의별 이름이 쏟아질때마다 배꼽이 빠저라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계속해 박수소리가 점점 고조되어간다
각자 노래가 한바퀴 돌아가자 합창이 나오고 어느새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오랫적 친구를 만난것처럼 서로가 어깨동무하고 목이 터저라 노래를 부른다
밖에는 하얀눈이 무리지어 쏟아지는 크리스마스의 이브의 아름다운 밤이다
다음은 노래자랑이 있고 노래가 아니라도 장기자랑이나 특이한 재주를 가지신분은 마음껏 발표하시기 바라며
순서에 입각해서 계속해서 다음번호로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수줍음도 없고 창피할것도 더욱없다 오늘 밤이 지나서 헤어지면 흉도 허물도 함께 모두 사라진다
마음을 놓으니 모두가 한결같이 가수를 빰치고 코메디를 방불케 한다
이제는 각각 남자들은 자기의 커풀을 엎고 방 세바퀴를 돌며 커풀여자는 끝날때까지 남자의 두귀를 잡고 노래를부르는 순서입니다 삽시간에 온방안이 서로 얼키고 설켜 장관을 이룬다
엎고가다 쓰러지어 안고 가는가 하면 어떤 커풀은 아예 방바닥에 같이 얼싸안고 딩굴고 있다
순간 짓궂은 누군가가 슬며시 나가 전기 스위치를 내리자 암흑속에서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그래도 누구하나 뭐라는이가 없다 아니 어쩌면 오늘같이 멋드러진 이브의 순간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밤을 즐기도록 태어났다는 말들을 한다
누구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보기싫은 사람의 얼굴을 볼일이 없기 때문이 아닐가
그래서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 아닌 밤의 주인이라는 말이생겼다 암흑속의 순간은 한참이나 계속되였다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어 세상모두와 인간의 추악함을 덮기라도 하는지 그칠줄을 모른다
뜨거운 실내의 열기에 땀을 흘리던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자 모두다 우루루 따라 달려나간다
때아닌 밤중에 눈사람을 만들고 누군가는 자기의 커풀의 등어리에 눈을 뭉처 집어 넣는다
갑자기 서로 엉켜 누구랄것도 없이 아무나를 향하여 열심히 눈싸움이 벌어진다
시간가는줄 모르던 밤이 깊어 으슥해지자 모두가 지첬는지 여기저기 제멋대로 나딩굴어 쓰러저있다
- 제이름 박아지가 아니예요 제이름은 혜연이예요-
내커풀 혜연이가 눈을 비비며 바싹 다가 오드니 손을 내밀며 눈내린 길을 걷고싶다고 한다
어딘지도 잘모르는 눈덮힌길을 서로 딩굴고 넘어지고 일으켜주며 눈위에서 벌렁누어 버린다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며 때론 문인화를 즐긴다며 턱밑에서 하얀 입김을 뿜는다
- 역시 나는 복이 있나봐 이런 가장 예쁜 혜연씨와 커풀이 되다니 -
-저도요 저도 오늘 너무너무 행복해요 -
혜연이의 입김이 코앞에서 목가으로 오자 이미 추위라는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아름다운 혜연이를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는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고
예쁘고 고운 혜연이를 만나기 위해
멀고 긴날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나부다
멋있어요 당신의 시도 목소리도 !
혜연이의 감칠듯 부드럽던 목소리는 수십년이 이미 지나왔건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도원속의 이브의밤 추억이 되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또다른 훗날의 기약을 남기지 않은채 도원의 집에서 나와 밤새 내린 눈으로 찻길이 끊어진 미끄러운 길을 쏟아저 내리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부천역까지 걸어 나올때까지 각자 커풀의 손을 잡고 석별의 이별가를 힘차게 불렀다 아쉽고 또 아쉬운 이브이다
첫댓글 한편의 멋진 단편소설을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고맙슴니다
즐거운 추석보내시기를 바람니다
추석날 아침 07시 17분 석봉 채성소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를 불문하고 선생님은 소설같이 사십니다.
未修任 !
읽어주심에 감사드림니다
부족한점이 많슴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