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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효창원을 혐오시설 취급하며, 야스쿠니 참배 비난하나
고상만 인권운동가, 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입력 2013-11-26 10:34:18l수정 2013-11-26 20:22:32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2013년 6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마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귀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1996년 10월 23일 백범 김구 선생님을 시해한 암살범 안두희를 ‘정의봉(正義棒)’으로 응징한 박기서 선생이었다. 박기서 선생의 응징이 있기 전, 그러니까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백범 선생님을 시해한 안두희는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응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백범 선생을 시해한 그가 그 죄로 수감 생활을 한 것은 채 3개월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은 적어도 안두희,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축복, 그 자체였다. 백범을 시해하는 큰 죄를 짓고도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감옥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전시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백범 시해 당시 소위에 불과했던 그는 3년 만에 대령까지 진급하고 명예롭게 군 복무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의 행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안두희는 이후 군납 업체 면허권을 받아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한마디로 백범을 시해한 이후 축복받는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안두희에게 ‘정의봉’으로 명명된 나무 방망이를 가지고 응징한 이가 바로 박기서 선생이었다. ‘역사의 심판엔 시효가 없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안두희를 응징한 박기서 선생은 그 사건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다행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특사로 석방될 수 있었다. 내가 박기서 선생을 처음 만난 때가 그때였다. 박기서 선생이 특사로 석방된 1998년 어느 날,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준 김승훈 신부님을 찾아뵙기 위해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이 천주교 인권위원회였는데 당시 나는 그곳에서 활동가로 일하던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함께 식사하며 인사를 나눴으니 무려 15년 만의 재회였던 것이다.
효창원의 슬픈 현실, 이게 말이 되나요
백범 김구 (金九, 1876.7.11 ~ 1949.6.26)ⓒ자료사진
“고 선생님. 효창원 아시지요?”
기분 좋게 들이킨 막걸릿잔을 내려놓는데 뜬금없는 박기서 선생의 말씀이었다. 순간 “네. 알지요.”라고 답하는데 박기서 선생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효창원이 지금 국립묘지일까요. 아닐까요. 알고 계신가요?”
고백하자면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효창원에 백범 김구 선생님이, 그리고 윤봉길과 이봉창 등 대한민국 독립 운동사에 빛나는 인물이 모셔져 있는 그곳이 당연히 ‘국립묘지일 것’이라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보가 아닌 이상 묻는 의도를 살펴보니 내가 가진 상식이 틀렸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랬다. 효창원은 현재 대한민국이 운영하는 국립묘지가 아니었다. 1989년 사적 330호 지정되어 용산구청이 관리하고 있을 뿐 국가가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효창원에 안장돼 있는 분들은 모두 누구일까. 많은 이들은 사실 효창원의 유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아는 분 정도가 백범 김구의 묘역을 떠올리는 수준이다. 그나마 대통령 선거 등 큰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백범 김구 묘역을 참배하는 각 후보들의 정치 이벤트 덕분인 듯 하다. 하지만 효창원에는 모두 8분의 유해와 1분의 허묘가 자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백범 김구 선생님이다. 그리고 같은 봉분 안에 백범 선생님의 부인이시며 또한 독립 운동가이신 최준례 여사가 함께 합장돼 있다.
그리고 백범 선생님 묘 건너편에 위치한 ‘3 의사 묘’에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가 모셔져 있으며 다시 그 건너편에 조성된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조성환, 차리석, 이동녕 선생 등 3분의 독립운동가 묘역이 안장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효창원에는 모두 7분의 유해가 공식적으로 안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묘역 외에도 사실은 한 분의 묘역이 더 있다. 바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중근 의사의 허묘이다. 허묘는 유해가 없이 봉분만 있는 묘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중근 의사의 묘역은 허묘로 효창원에 남아있는 것일까.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애초 효창원은 정조대왕의 아들인 문효 세자 등의 묘가 있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1940년, 일제가 공원법을 제정한 후 이들 묘역을 모두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했다. 그리고 이곳을 효창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일제가 이 같은 공원법을 만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 강화를 위한 조선 왕조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악랄함의 결과였다.
마침내 1945년. 일제가 패망하여 물러난 후 해방된 조국으로 백범이 귀국했다. 이어 백범은 제일 먼저 조국 광복 과정에서 목숨을 바쳤던 애국선열과 순국선열의 유해를 효창원에 모시는 일부터 착수하기 시작한다. “조국이 광복되면 나를 고국에 안장해달라”며 남겼던 그들의 마지막 유언을 백범은 한시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백범은 일본과 중국에 흩어져있던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차리석, 이동녕, 조성환님의 유해를 찾아 효창원에 안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찾지 못한 유해가 있었다. 바로 1910년 중국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였다.
백방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고자 모든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크게 낙담한 백범은 고민 끝에 하나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대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한 채 자신마저 죽게 된다면 이후 아무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그래서 백범은 자신이 떠난 먼 훗날이라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된다면 반드시 이곳 효창원에 안장하라며 그의 허묘를 조성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1949년 백범마저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해 효창원에 안장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효창원 묘역의 유래인 것이다.
효창원, 국립묘지 지정 반대하는 사람들
안중근 의사.ⓒ아트액츄얼리
부끄러운 일이었다. 일제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고자 자신이 죽을 길임을 알면서도 ‘뻔히’ 뚜벅뚜벅 걸어간 이들 애국선열과 독립 운동가를 이 나라가 해방된 지 60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현재 이분들의 관리 주체가 용산구청이기에 일 년에 두 번 구청측이 묘역 벌초를 해주는 것이 모든 예우라는 사실을 접하고 죄송한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기가 막힌 사실은 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효창원 묘역의 안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 확인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효창원을 직접 방문하여 둘러보니 백범 묘역을 비롯하여 3 의사와 임시정부 요인 묘역 주변에는 예상처럼 경비 초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나 열면 되는 허술한 펜스만 둘러쳐 있었고 다만 자세히 보니 CCTV 한 대가 묘역에 세워져 있었다. 효창공원 관리 사무소에 전화하여 CCTV 운영 실태를 물어보니 그 결과는 더욱 참혹했다. 사무실 측에 따르면 CCTV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근무 시간 중에는 확인하며 따라서 근무 시간 후인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모두 퇴근하기 때문에 따로 관리하는 이는 없다는 답변이었다. 백범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차리석, 이동녕, 조성환, 안중근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줬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은 이분들을 지켜줄 경비 초소는 고사하고 CCTV 한 대로 경비를 다 하고 있다니 이 나라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에 2013년 7월 26일,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은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를 통해 늦었지만,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하여 이들 묘역을 국가보훈처가 관리하여 예우하도록 한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국가적 예우를 통해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진심을 다하고자 한 노력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효창원이 위치한 용산구의회의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들을 중심으로 효창원 국립묘지 지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들은 김광진 의원실에 법안 철회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효창원 국립묘지 지정 결사반대’ 현수막을 내 걸고 주민을 상대로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주요한 반대 이유는 ‘주민 불편’이었다. 효창원이 국립묘지로 지정되면 자유롭게 이용하던 효창공원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를 주도한 새누리당 구의원과 일부 세력의 속내 진실은 따로 있었다.
용산구의회 소속 새누리당 구의원들은 바로 코앞에 다가온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고 지지세를 확산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효창원 문제를 접근했다. 그래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주민들에게 전파하며 선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산구를 전부 묘지로 만들려는 것이 효창원 국립묘지 법안이라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만약 효창원이 국립묘지로 지정된다면 용산구 일대가 동작동 국립묘지처럼 전부 묘지로 뒤덮이고 그렇게 된다면 집과 땅값이 폭락하여 거지가 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선동까지 유포했다.
그중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일은 ‘효창원 국립묘지 승격 결사반대’ 서명 용지를 전달한다며 민주당 김광진 의원실로 찾아온 용산구의회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과 함께 온 50대 초반의 여성 말이었다. “사실이 아니라는데 왜 그렇게 효창원 국립묘지 지정을 결사반대 하냐”는 물음에 그는 소리 지르듯 “결국 국립묘지가 무덤 아니냐. 그런데 당신들 같으면 그런 혐오시설을 옆에 두고 살고 싶겠냐. 국립묘지 승격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백범과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그리고 독립운동가인 조성환, 이동녕, 차리석 선생의 묘역이 혐오 시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리고 저런 말을 당당하게 외치는 이 현실에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05년 4월 22일 도쿄에서 80여명의 일본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신사로 들어서고 있다.ⓒ로이터/뉴시스
효창원 국립묘지 안 된다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비난할 자격 없어
결론부터 정리하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만약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어떤 불편이 주민에게 발생한다면 이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해소하는 방안을 찾으면 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 ‘효창원 법’을 반대하는 이들의 진짜 속내가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저 코앞으로 다가온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선동만 할 뿐이다. 그래서 효창원 문제를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 주민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이를 막아내는 자신들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동할 뿐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내 가슴에는 진한 슬픔이 떠돌았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애국은 무엇이고 독립투사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백범 김구와, 안중근,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차리석, 이동녕, 조성환님들의 묘역 바로 아래에서 ‘국립묘지 지정 결사반대’ 현수막을 내 걸고서명하고 서명 받는 그 모습을 그분들의 영혼이 내려다보면 무슨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후손들을 위해, 이러한 나라의 민족정기를 위해 그분들이 스스로 죽음을 길을 걸어갔단 말인가.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조국인 일본을 위해 죽어간 전범들을 추모한다면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위이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처지에서 살펴본다면 ‘이 같은 일본의 표리부동이 차라리 부럽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 욕먹을까. 도대체 한일전 축구만 침 튀겨가며 응원하면 애국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대한민국은 효창원을 이렇게 박대하고 있을 것인가.
효창원을 국립묘지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고 말 고의 문제가 아니다. 더이상 이렇게 방치할 수 없는 민족정기의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 용산구 일대 주민의 불편이 있다면 이를 해결할 방안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지적했듯이 가장 큰 문제는 효창원을 혐오시설이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일부의 잘못된 정서적 거부와 몰역사적인 이해관계로 빚어진 개탄스러운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애국은 무엇이고 애국선열은 무엇인가. 이런 지경에서 만약 다시 외세에 의해 또다시 나라가 망한다면 누가 김구처럼, 안중근처럼, 윤봉길과 이봉창처럼 나설 것인가. 효창원을 박대하면서 더이상 이 나라에서 애국을 말하지 말라.
첫댓글 재편집을 한다면.....
아마도 독자들이 읽기에 더 편할듯 하군요.
독자들이 읽기에 편하도록 퍼온 글을 편집해주는 것도
일종의 고객서비스, 고객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