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잠에서 가술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십이월 둘째 월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다녀온 진해 경화 장터 풍물을 시조로 한 수 남겼다. “삼팔날 장이 서는 경화동 저잣거리 / 콩잎 따 포개 겹쳐 차곡히 띠로 묶어 / 소금물 우려 삭혀낸 반찬 재료 나왔다 // 참빗질 꽂은 비녀 머리에 수건 둘러 / 아궁이 불을 지펴 장독대 오가면서/ 당신이 생시에 차린 콩잎자반 그립다” ‘콩잎자반’ 전문이다.
날이 밝아온 아침 식후 자연 학교로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원이대로로 나가 소답동을 거쳐 창원역에서 내려 근교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타려니 그보다 앞서 2번이 출발했다. 기사는 고령임에도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분으로 나와 안면을 익혀둔 사이여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몇 차례 이용한 노선이니 손님 인상착의를 기억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치면서 승객은 불어나 서서 가는 이들도 생겼다. 버스가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내렸다. 그동안 1번이나 2번 마을버스를 이용하면서 모처럼 승차 구간이 짧은 셈이다. 덕산에서 본포로 새롭게 뚫은 지방도 굴다리를 지나 동읍 주민자치센터 근처 들판으로 나갔다. 벼를 거둔 빈 논에는 기러기들이 날아와 먹이를 찾았다.
들판에서 바라보인 덕산 일대는 고층 아파트가 세워져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나들목과 접한 곳이라 밖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구룡산 기슭 용강에서 용암을 거쳐온 중앙천이 동판저수지로 드는 다리를 건넜다. 지난가을 무점마을 코스모스 꽃길을 걸으려고 지났던 길을 다시 찾았다. 동판저수지 갯버들이 바라보인 들녘에도 기러기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했다.
무점마을을 앞둔 동판저수지 가장자리는 갯버들 사이로 어미 고니가 새끼 고니를 데리고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철새 가운데 유난히 덩치가 큰 고니는 들판으로 나오지 않고 수면에서만 놀며 먹잇감을 찾았다. 녀석들의 본향 시베리아 호수나 강에서 여름에 불린 새끼를 데리고 나타났다. 성체 고니는 백색이고 새끼는 잿빛이라 구분이 쉬웠는데 어미는 보호 본능을 발휘해 사라졌다.
무점마을에서 동판저수지 둑으로 갔다. 여름 폭염을 견뎌내 가을에 알록달록한 꽃을 피웠던 코스모스 잎줄기는 삭아 헝클어져 있었다. 다년초인 국화와 달리 코스모스는 일년초라 줄기는 물론 뿌리까지 모두 삭은 채였다. 올여름에 꽃을 피우기 이전 싱그럽던 잎줄기부터 만개한 꽃길을 걸어봤고 이제는 삭은 뒷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무점마을 코스모스 생태를 통시적으로 꿰뚫었다.
철새들에게 동판저수지는 주남저수지의 보조댐 기능을 했다. 날씨가 몹시 추워 주남저수지 수면이 빙판이 되면 그곳에 오글거려 놀던 철새는 동판저수지로 건너왔다. 동판저수지는 야트막한 언덕 남향이고 갯버들과 갈대가 무성해 혹한에도 주남저수지보다 결빙이 늦은 편이다. 아까 갯버들 틈새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고니들이 보이긴 해도 개체수는 주남저수지에 비해 훨씬 적었다.
동판저수지 둑에서 주천강이 흘러가는 방향인 진영읍은 아파트단지가 숲을 이루었다. 무점마을에서 좌곤리로 이어진 들녘에는 기러기 떼가 먹이를 찾았다. 동판저수지 배수문에서 주천강 둑길을 따라 걸으니 천변에 태공 서넛은 낚싯대를 던져 놓고 세월을 잊은 듯했다. 좁은 다리를 건너자 상포마을에서 주남마을 앞으로 펼쳐진 넓은 들판은 벼농사 뒷그루가 없는 일모작 지대였다.
추수가 끝난 빈 들녘에는 역시 기러기들이 먹이활동을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기러기들은 경계심에서 목을 길게 빼더니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녀석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 해도 상등마을로 가는 들판 농로는 외길로 나 있어 둘러 갈 방법이 없었다. 상등에서 농로를 따라 더 걸어 가술에 닿으니 점심때가 되었다. 용잠마을에서 시작해 상등마을을 거쳐와 서너 시간이 흘렀다. 2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