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4.25.목요일 성 마르꼬 복음사가 축일 1베드5,5ㄴ-14 마르16,15-20ㄴ
선교적 삶, 순교적 삶
-날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한결같이-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2012년도 수도원 설립 25주년 감사제때 낭송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고백시 마지막 연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참 많이 나눴고 하루도 되뇌어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이 좌우명 고백시와 더불어 2014년 안식년중 산티아고 순례여정후, 늘 생각했던 인생여정중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압축했을 때, 또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했을 때,
나는 과연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가의 점검이었습니다.
아침 6시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태어나 오후 6시 해가 짐과 동시에 죽는 인생이라면
나는 어느 시점(時點)에, 또 봄철에 태어나 겨울로 끝나는 삶이라면 나는 어느 계절의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지요?
늘 나눴지만 저의 경우는 하루로 하면 오후 4:30분, 계절로 하면 초겨울쯤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확인이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환상이나 허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오늘 하루를 살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젊음은 나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열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처럼 샘솟는 꿈과 열정의 삶이라면 마음은 늘 하느님처럼 영원한 청춘에. 영원한 현역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리적 현실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기에 하루하루 마지막까지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영적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죽어야만 끝나기 때문입니다.
옛 어른이 오늘 말씀이, 또 교황님의 오늘 말씀이 인생순례여정중의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나이테는 어떤 재주로도 흉내낼 수 없다.
사람들은 그의 성과에 감탄하지만 그의 노력은 따라하지 않는다.”-다산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면 쇠와 돌에도 무늬를 새길 수 있다.”-순자
교황님의 어제 삼종기도후 강론은 영원한 삶에 유익이 되는 향주삼덕(向主三德)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1.인내, 2.현명, 3.용기, 4.정의, 5.절제에 대한 강의에다,어제의 6.믿음, 7.희망,
8.사랑의 향주삼덕입니다.
향주삼덕에 대한 마지막 결론입니다.
“우리가 만일 성령께 마음을 연다면, 성령은 우리 안에 신적덕을 살아나게 할 것이다.
신뢰를 잃었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믿음에로 다시 열어주실 것이고, 좌절되어 있다면,
하느님은 우리안에 희망을 일깨워주실 것이고, 우리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면,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부드럽게 하실 것이다.”
강론후에는 어김없이 평화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교황님의 다음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패배이다. 이런 전쟁의 비극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무기생산자들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중에 있고, 젊은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혼자의 삶이 아니라 더불어의 삶입니다.
교황님의 시야는 전 세계 고통중의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늘 4월25일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이런 앞서의 모든 성찰들이 우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삶, 순교적 삶에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흡사 유언처럼 참 엄중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 선포 사명은 교회의 존재이유이자 우리 신자들의 기본사명임을 깨닫습니다.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신자여야 비로소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을 받아들여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을, 파스카의 구원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선포의 핵심내용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환호송이, 영성체송이 복음의 핵심을 확인시켜 줍니다.
“알렐루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물론 멀리 파견되어 활동하는 복음 선포자도 있지만, 각자 삶의 자리 또한 세상의 중심이요
복음선포의 장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존재론적 복음 선포라합니다. 어디서나 복음 선포자의 선교사로서의 신원입니다.
다음 복음의 후반부 말씀이,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주님이심을, 하느님곁에 계시면서
동시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우리의 일을 이루시는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후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16,19-20ㄴ)
바로 하느님곁에 계신 초월자(超越者)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내재자(內在者)가 되시어
늘 우리의 일을 완성에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니, 새삼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임을 깨닫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예수님이니 얼마나 든든하고 복된 복음선포자의 삶인지요!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 밖으로는 주님의 복음선포의 사도가 우리의 신원입니다.
안팎은 하나입니다.
안으로 충실한 제자가 밖으로도 훌륭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충실한 제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가르쳐주십니다.
1.겸손과 2.깨어 있음과 3.믿음입니다.
1.“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애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2.“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3.“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이 거룩한 미사중,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
그들은 날마다 당신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 정의로 힘차게 일어나나이다.”(시편89,16-17).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