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왠지 서운한 감이 들기 때문이다.
뭔가 먹을거리 하나라도 사 들고 가야 손이 심심하지 않고 마음이 허전하지 않다.
그래서 신혼 초기에는 동네 시장에 들러 고등어 한 마리나 과일 한 봉지씩 반드시 사 날랐다.
이런 습관은 어릴 적 시골에서 우리 아부지, 어무이께서 하시는 것을 보면서 커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었다.
아부지, 어무이는 시골 장날 읍내 장터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셨는데, 장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에는 꼭 손에 뭔가를 들고 오셨다.
팔다 남은 오징어나, 명태, 김 따위뿐만 아니라, 옆 생선가게에서 팔다 남은 고등어, 갈치, 상어 등의 생선류나, 과일가게에서 파는 자두나 복숭아, 사과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어린 내 마음에는 장날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집을 나갔다 올 때에는 꼭 뭔가를 사 가지고 와야 되는 것으로 인식이 박혀 버렸다.
결혼 후에도 이 버릇은 계속 이어져서 귀가할 때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떡볶이, 만두 등을 꼭 사 들고 가고 싶어졌다.
아니, 이렇게 내가 직접 사 들고 가는 것 말고, 차라리 벗씨와 장을 같이 보러 나가는 것이 내겐 기분이 더 좋았다는 편이 맞겠다.
단지 내게 너무나 많은 인내력을 요구하는 의류 쇼핑은 제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쩌다 벗씨 혼자 시장에 가서 고등어, 두부, 콩나물이나 과일을 사 오게 되면, 내가 삐쳐서 말을 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중요한 행복을 빼앗아 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도 퇴근 무렵이 되면 미리 전화를 해 본다.
‘오늘은 뭐 장보러 갈 것이 없냐?’ 하고 말이다.
오늘도 퇴근할 무렵 벗씨한테 미리 전화를 해 두고 저녁에 장 보러 가기로 했다.
저녁 여덟 시라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그래도 또 한 번의 행복한 시간을 누릴 기회를 얻은 것이니 얼마나 기뻤으랴.
승용차를 타고 우리가 자주 가는 대구 북구 칠성동 이마트로 갔다.
복잡한 주차장을 이리저리 뒤진 끝에 겨우 주차를 했다.
건물 입구에서 카트 자물쇠에 백 원을 넣고 카트 하나를 끄집어냈다.
카트 손잡이에 나는 오른손을 얹고, 벗씨는 왼손을 얹었다.
아직 짐이 실린 것이 아니지만 둘이서 나란히 손을 얹고 매장 안을 걸었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작은 카트는 아니지만 둘이 매달리기에는 손잡이가 약간 비좁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억지로 손잡이를 같이 잡았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한 사람이 카트를 잡고 한 사람은 그냥 걸어가기에는 왠지 한 사람의 손이 허전할 것 같기 때문이리라.
그리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매장으로 내려가서는 이것저것 주어 담았다.
합의할 것도 없이 각자 먹고 싶은 음식 보따리를 집어 담으면 된다.
먼저 빵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저녁은 먹고 왔지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을 것 같은 식빵 봉지와 고구마 파이를 무심코 집어넣었다.
콩고물이 묻어 있는 빵도 넣었다.
봉지엔 데이엔데이빵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을 지나 모듬 소시지를 또 담고, 저지방우유도 넣었다.
이 우유는 큰 우유곽 옆에다 작은 우유곽 두 개를 붙이고 있어서 할인매장에서 인기가 제일 좋다는 품목 중 하나다.
우리 아들에게 줄 팥빙수도 넣었다.
이것은 여름에 인기 있는 품목이다.
코너를 조금 돌아서는 아들 간식거리로 비빔면, 수타면, 짜짜로니도 넣었다.
이것은 내한테는 천한 음식이므로 사 가지고 가 봐야 난 입에도 못 댄다.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는 벗씨가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집어넣었다.
올리브유, 무향 에프킬라, 에프실버메트, 그리고 파워아쿠아블라스트라는 긴 이름의 제습제 등이었다.
이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출구 쪽으로 가면서는 쌀 10킬로그램짜리 한 푸대, 수박 한 덩어리, 옥수수 한 팩, 맥주 한 세트, 가시오가피 햇순, 두부, 그리고 즉석족발을 몰아넣었다.
어느새 카트는 속을 다 채우고 위로 불룩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육류나, 생선류는 사지도 못 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이렇게 죽 한 바퀴 돌고는 오늘의 행복 탐험을 다 끝냈다.
내한테는 쇼핑 카트에 집어 담는 이 상품들이 그저 행복이라는 상품으로 와 닿았다.
온 매장에 널려 있는 행복들을 입맛대로 하나하나 카트에 쓸어 넣고 있다는 느낌으로 와 닿았다.
생각해 보면 내겐 이런 행복이 진짜 행복이 아닌가 한다.
약 10년 전 여느 가정처럼 우리 집도 IMF라는 것이 있었다.
그 때가 잠시 행복을 잃어버렸을 때였다.
고통의 나날이 계속 이어졌더랬다.
그 때 나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선배 지인께서 술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최고로 행복했던 시절은 우리 부부가 같이 할인매장에서 쇼핑카트를 끌 때였다. 그런데 이젠 그런 시절은 다 가고 더 이상 하고 싶어도 못 할 지경이 되어 버렸어. 언제 또 쇼핑 카트를 끌 날이 올지 기약할 수가 없어 괴롭구나······."
그 당시 이 얘기에 대해 나도 뼈저리게 공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며 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서 혹시나 우리 부부가 쇼핑카트를 같이 끌지 못 할 날이 또 오지나 않을까 하고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오늘 이 시간만큼은 승용차 트렁크 속에 행복을 가득 옮겨 싣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2007년 7월 5일
멋진욱 김지욱 서.

첫댓글 이 사진은 나이스마트에서 찍은 거라 내용물이 다르군요. 히히.
아이구! 대장님, 또 감동시키는군요. 이 행복 끝까지 가리라 믿어요. 한 번 어려움을 이겨냈으니까요. 절대 이 행복을 놓칠 수 없으니까요. ㅎㅎ
저는 이제 어려움이 와도 안 울래요. 히히.
돈 쫌 아끼라. 주섬주섬 담다보면 수십만원 나간데이.
안 그래도 이 날 12만 원인가 나와서 호주산 쇠고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안동 간고등어를 못 사 왔어요. 히히.
대장님의 글을 보면서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참으로 흥미롭고 감명깊게 표현하시는 풍부한 문장력과 위트에 놀라고 감동합니다^^* 좋은 글을 읽을수있는 기회를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구, 과찬의 말씀입니다. 보람있고 바쁘게 사시는 단우님이 부럽습니다. 히히.
일상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계십니다. 두분 천생연분입니다.
돈이 없으니 이렇게 위로 하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히히.
햐~ 계산 엄청 나왔겠심다. ㅎㅎ 마트에 안가본지 참 오래됐네.... (IMF 라.... 에고고...고 때 내 전 재산 다 날라 갔었는디...^^ 소설 쓰머 베스트셀러 될끼라...ㅎㅎ)
아이엠에프 극복기 한 번 멋있게 써 보시와요. 파이팅~! 히히.
아이구 싫어요!!! 절대 싫어요!!!
부부가 장을 본 다는것은 예전엔 볼수 없었던 풍경이지요. 저만치 앞서 내질러 가는 아버지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는 우리들 어머님을 보면서 성장하였던것 같습니다. 우리집 부부도 곧잘 마트에 같이 갑니다만, 멋진욱 , 멋진 윤 부부와 같이 카트 손잡이를 같이 잡아 보지는 못 했습니다. 두분은 천생 연분인듯......
허허허, 카트 손잡이 같이 못 잡는 세대이시군요, 히히.
글 진짜로 잘쓰네.
이 밤에 주무시라니깐 다른 글 다 찾아서 읽고 계시는군요. 내일 일이 걱정이 됩니다. 히히.
우린 마트가면 잘다투는데. 난 빨리빨리고 최단우는 여기저기구경. 꾸물꾸물. 난 물건 쥐고 노상 사람찿고 그러면서 몇바퀴...
우리와 영 반대네요? 보통은 사모님이 꾸물거리는데.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