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제 이름자 위에 악상들이 잘못 놓인 것을 보고 우울해했다면, 그거야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한데 그의 그 긍지는 어디서 뽑아낸 것일까?
-밀란 쿤데라 <느림>중
이렇게 글을 쓰기는 처음이다.
생경스런 글쓰기....
어제던가?
집으로 스며든 시간은 열시가 지나 있었다. 조간신문을 때늦게 훑어보고, 카세트에 이현우의 바이러스(6집앨범)을 걸어놓고 컴퓨터를 켰다.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글의 진도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썼더라? 아마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본 이야기부터.....아마 또 글쓰기를 포기할지 모른다. 25세의 나, 강준영은 컴퓨터를 끈다.
.....한때 내가 사랑하던 여자,
건넌방의 그 여자를 닮아 있었다. 내 안의 물컵에 반쯤 미네랄워터를 따라 준 사람. 그 여자 지금쯤 무얼하고 살고 있을까.
오늘도 특근을 했다. 퇴근하면서 바라 본 하늘은 검푸른 물감을 물에 풀어 놓은 듯 청량감이 느껴진다. 불현, 담배를 물고 싶어진다. 담배? 끊었었는데. 서울을 다녀오던 날 나는 몇 개월 만에 다시 담배를 물었다. 오늘은 j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나의 유치한 프로포즈는 이런거다.
문자 메시지 100개를 받아 줄 사람이 되어주겠니?
정말로 유치한 문구였다. 차라리 5425를 이용할걸했나? 그녀는 인터넷의 어느사이트명을 문자로 찍었다. 받아줄까. 그녀는 나와 동갑의 25이고 태평양 본관에 근무하고 있고 집은 석계다. 그녀를 본 것은 365일 내내 차디찬 소주 첫 잔을 하고 기다리는 닭갈비냄비처럼 화끈거리는 유월의 신촌이었다.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대학동기인 영철이다. 그는 대학때부터 이휘재를 능가하는 바람둥이였다. 여자세명.남자세명. 소개팅 분위기. 그러나 소개팅은 아니었다. 그저 친목도모를 떠들며 주말때우기를 가장한 사람들의 술자리였다. 그녀또한 아니 그녀의 친구 영숙 또한 나를 개그맨 n모씨로 봤다. 나는 맞다고 이야기를 했고, 글구 담지도 않은 강동휘의 얼굴하고(웃을 때)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개그맨을 닮았다는 말은 맞을게다. 나의 프로필은 이렇다.
1.이름-강준영
2.1976년 2월 21일 수원생
3.직업-경기도 안성시 소재의 지방공단에 있는 (주)영풍통상.품질관리부 인라인큐씨.Inline Q.C (알카바,라는 충전전지를 생산함.)
4.좋아하는 가수 - 엄정화
5.좋아하는 작가 - 무라카미 하루끼. 기형도
6.월수입 - 백만원이 조금넘음.
7.아직애인이 없음.
8.독신주의자.
9.천안공업대학 전자과 졸업.
10....
처음에는 그냥 잊혀졌었다. 그날 신촌을 유치원생처럼 헤매다니다가 (아마 술이 좀 들어갔음) 우리는 헤어지는 연인처럼 신촌역에서 사라졌다. 그 후 철을 통해 우리는 연락이 됐고 그녀는 은근 슬쩍 철에게 나의 휴대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러나 전화를 먼저 건 사람은 나였다. 그러다 우리는 어정쩡한 사이가 됐다. 그녀는 마른 스타일이고 베토벤의 로망스2번이 어울릴 듯한 도회적인 여자였다. 그리고 눈이 크고 검정원피스가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날 입었던 옷도 소매가 없는 검정색 원피스였다. 오늘 그녀에게 전화를 넣었다. 하오 3시 반. 그녀는 휴게실에 나와 벽카페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이야기를 오분정도 하고 나는 하오 5시쯤 그녀에게 그 유치한 메시지를 넣었다. 아직 그 메시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나는 망연히 기다리고 싶었다. 한 하루쯤 지나서 그녀의 답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따라다닐지도. 생각해보니 그녀는 옛사랑을 닮아있다. 그녀, 추상미와 비슷한 스타일. 아니 사람들은 추상미를 닮아있다고 했었다. 추상미의 신인시절, 그녀는 본명대신 예명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엠비씨의 베스트 극장이었다. <네발자전거> 그녀가 출연한 첫드라마였고 나는 군대에 있었고 계급은 일병이었다. 1997년 봄. 나는 밤근무를 나가 고참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 아까 그여자배우가 지금 여자친구를 닮았다고. 고참은 괜찮던데,하는 말을 한다. 그때 그녀가 추송웅의 딸인지도 모른채, 철조망 너머 세상의 그녀를 생각한다. 병장오버룩overlook을 달기 몇달 전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