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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저절로 떠오르는 좋아하는 글,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이란 글귀를 읊조리며 back pack을 끄집어 내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또 중얼거려 보았습니다. 모든 성가신 일과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힘차게 피어올라라. 이젠 봄이 스스로 문을 활짝 열었으니 머지않아 봄기운과 봄 향기가 섞여 봄 향연을 이룰 것이니 봄 꽃도 피고 새 생명도 열릴 것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맥박이 빠르게 요동치며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봄 하면 사람 생애의 청춘과 같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지만 청춘의 느낌은 아직도 나의 의식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으며 때로는 회상하는 것으로 당시 좋은 추억을 떠올리건 합니다. 봄이 몰아주는 생동감을 기억하며 날씨를 우선 챙겼습니다. 오후로 갈수록 기온 상승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 맞춰 입을까 하다가 과거의 기억을 살려 그때의 봄날의 기준에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엄동 보다 산악사고는 봄에 더 많이 발생합니다. 방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산악사고는 성급한 판단도 한몫한답니다. 우선 깃털처럼 가볍지만 체온을 오래 잡아 주도록 직조된 속옷을 챙겨 입고 동절기에 자주 입는 중간 옷은 생략하고 막바로 폴리스재킷을 입었습니다. 이 옷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겉옷으로 선택한 폴리스계열의 옷은 보온성은 우수하나 바람에 약한 편입니다. 바람이 숭숭 드나들기 때문에 걸으며 발생하는 열기를 조절할 수 있어 쾌적한 상태는 유지할 수 있지만 겨울바람이 들어 있는 입춘 추위 봄바람과 마주할 때 방치하면 저체온증에 쉽게 빠져들 수도 있답니다. 입춘 추위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여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바로 봄 전반부의 시간입니다. 춘래춘 불사춘(春來春 不似春)이라는 말처럼 봄은 왔지만 봄과 같지 않는 날이 있는 것이 봄날이라 별도의 바람막이 옷이 필 요하고 가벼운 우모 또한 비상용으로 필요한 것이 초봄날씨입니다. 이러한 옷을 챙겨 어택하단 의류만 넣는 곳에 챙겨 넣고, 신발은 경등산화를 선택하고 스틱은 꺼내 조임 장치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어택가장자리에 묶어 두었습니다. 행동식으로는 사과 몇 알을 쪼개어 통에 담고 땅콩 외 3종의 부럼과 영양바 몇 개와 비스킷, 김밥 두 줄도 챙겼습니다. 이 모두를 보온 주머니로 감싸 원형 플라스틱 통에. 담아 어택 깊은 곳에 찔러 넣었습니다. 물은 끓여 찻물을 우려내고 보온병에 담고 등산용 칼과 해드랜턴도 어택 잡주머니에 넣고 그 옆 작은 주머니에는 아이젠 도 준비한 후 어택 자루 끝을 끈으로 동여 매고 뚜껑을 닫는 것으로 짐꾸리 기를 종료하였습니다.
봄은 물 길 따라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입춘절 전후가 다가오면 자주 찾던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열차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하여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 모든 것은 아직도 겨울입니다. 냉기가 돌고 스치는 바람도 섬찟할 만큼 찬바람이 불어 있었습니다. 오늘 찾아가는 곳은 참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요즈음 걷기에 무리가 없는 좋은 장소입니다. 동안 이곳의 기상조건은 아직도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입구부터 소나무 밭이 이어지고 그 아래 갈색 솔방울이 무수하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한두 개를 집어 들고 코끝을 대보았더니, 솔향과 더불어 동토의 흙내음이 진하 게 느껴졌습니다. 스치듯 계곡을 가로질러 산등성이를 오르려 하자 그 아래 바람에 휩쓸려와 쌓인 낙엽더미가 깊어 보행 지장물이 되어 불편을 느꼈습니다. 스틱 끝으로 일부 헤쳐가며 주능선에서 갈라져 뻗어 내려온 가지 능선을 올라서자 시야가 터지면서 마을과의 간격을 벌려 주었다. 오를수록 마을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산을 오른 후 다시 내려가야 할 마을이며 그 마을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 가 정주하는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서 오늘 산행은 끝나는 것이다. 산행의 끝은 산 아래까지가 아니라 귀가까지입니다.
대부분 숲을 찾는 이유는 자연과 교감을 목적으로 합니다. 교감의 자각을 통해 나의 들숨과 날숨의 상호관계를 새삼 확인하게 되고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의 손을 맞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에서 얻는 귀중한 진리입니다. 주능을 향해 오를수록 사라졌던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능선을 횡단하여 북사면 안부로 내려서자 만년설처럼 눈밭이 이어졌습니다. 더 깊은 산중으로 오르기 위해 큰골 계곡으로 접근하자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기세등등하게 들려왔습니다. 얼음이 풀리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자 눈에 파묻혀 있는 전나무 어린 목(木)을 발견하고 다가가자 움이 예사롭지 않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겨울 동안 생명의 움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잉태의 결과물입니다. 겨울을 우리가 알기로는 모든 것이 멈추고 잠든 시기로만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의 시간이 긴 이유는 생명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움은 겨울 동안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야 봄이 오면 즉시 생명의 빛을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전나무 움을 쓰다듬고 허리를 펴고 일서자 저만치 오솔길이 있어 다가 가 한참을 걸어보니 미끈한 거목(巨木)이 서 있었습니다. 양손을 벌려 껴안아 수피 안으로 흐르는 생명수 소리를 들으려 하였으나 나의 가슴에서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가 크게 들려 수맥 소리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가슴으로 담으려는 것을 포기하고 등을 돌려 밀착시켜 나무에 기대 보았습니다. 숨을 죽이고 휴식(休息)을 취하듯 가만히 서있자 그제야. 뿌리에서 수관을 통해 나무 곳곳에 보내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물을 끌어 모으는 담수지 역할을 하는 나무뿌리는 지금 즈음이면 기지개를 켜고 흙 곳곳에 뻗어 있는 수관을 부채 살처럼 활짝 펼쳐 놓고 때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둥 뒤 느낌이 좋아 잠시 눈을 감고 나의 숨소리가 잦아들도록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차갑게 느껴졌던 수피도 내 체온을 전이받았는지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이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화음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대로, 조릿대 잎사귀를 스치는 소리, 눈 녹는 소리, 심지어 햇살이 퍼지는 소리까지 섞여 봄 교향곡처럼 봄으로 가는 숲 사이로 은은하게 퍼져나가듯 하였습니다. 내려놓은 back pack을 다시 질머지고 오솔길 따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북사면으로 열린 얼음 녹은 물 길 속에 놓여 있는 자연석 위로 며칠 사이 내린 눈이 풍경화를 그려 놓았고 솦 사이 오솔길엔 눈 밟는 소리는 음률에 맞춰 그려 놓았는지 걸을 적마다 발자국 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울풍경은 이토록 아름답습니다.
설피 같은 오붓한 길을 한참을 걷다 왼쪽으로 틀어 약 0.5km 정도 오르면 임도(林道)가 나옵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을 이 길로 선택하면 걷는 것이 한결 쉽지만 끝자락에 가면 치고 올라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활짝 열려면 이 길이 좋습니다. 급경사지를 단숨에 치고 오르면 폐기능이 활짝 열려 피톤치드가 활성화되어 마음을 상쾌하게 이끌어줍니다. 등짐을 추스르기 위하여 양손을 깎지를 끼고 받친 후 S자의 길을 오르려 하자 모퉁이에 자작나무 숲이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작나무만 보면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합니다. 흰빛 고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 형상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거리며 탄다고 붙여진 이름이지요. 그리고 이름도 많은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입니다. 백화피(白樺皮), 백단(白椴), 화수피(樺樹皮), 화목피(樺木皮)라 부르기도 합니다. 남녀의 결혼을 말하는 화촉(華燭)이란 단어도 자작나무 껍질 타는 모습에서 왔다고 합니다. 습자지처럼 얄은 껍질에는 기름성분이 많아 여러 겹으로 자작나무를 칭칭 감아 추위를 이길 수 있어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입니다. 나무의 수명은 백 년 안쪽입니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면 미련 없이 터전을 버리고 떠나면 다른 수종들이 그 빈터를 채운다고 합니다. 껍질은 모아 두었다가 아궁이에 불을 집필 때 쏘시계로 사용하거나 등잔으로 사용도 하고. 종이가 없는 시절 껍질에 글을 써서 기록도 남겼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작나무 숲을 보게 되면 그리움을 잔뜩 담긴 여인의 눈(目)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작나무 나무기둥에는 눈과 같이 생긴 형상이 점 점으로 애처롭게 다가와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마음에 그리움을 피어오르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그러한 마음으로 서서 자작나무 숲을 응시하며 서 있다 두 편의 시가 떠 올랐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시가 떠올렸습니다. 류시화 (1958년 - )는 필명입니다. 본명은 안재찬이며 충북 옥천 출생입니다. 옥천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지요.
자작나무
류시화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젠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는 내 말은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받지 못했다.
다음은 백석 시인의 백화(白樺)를 떠올렸습니다. 시인 백석(1912 - 1996)은 평안도 정주 출생입니다. 백석은 필명이고 본명은 백기행입니다. 성북동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김영환과의 사랑 이야기의 유명한 일화 속의 주인공입니다.
백화(白樺)
백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를 되뇌다 끊기는 부분이. 있어, 애를 먹었습니다. 되뇌고 되뇌어도 백화는 감로 부근에서 맴돌기만 하여 답답했습니다. 요즈음 자주 있는 현상입니다. 좀처럼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사고(思考)에 사고(事故)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공고했던 기억과 회상의 결속이 자주 풀린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요즈음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양지바른 둔덕에 앉아 backpack을 내려놓고 행동식을 꺼냈습니다. 우선 우려낸 찻물을 마셨습니다. 잎, 가지를 섞은 나무차 아우룸 황칠 차입니다. 요즈음 들어 자주 마시는 차입니다. 향이 온전히 자연 그릇에 담기는 것과 같은 차입니다. 순수한 것들은 깊은 맛이 깃들어 있습니다. 살아가려면은 이런저런 치장이 필요한 세상이지만 순수한 것은 원형 그대로 불변의 약속을 지켜 주기 때문에 행복이 소담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럼을 꺼내어 깨물어 먹다 흰나비가 자작나무 숲을 휘젓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려 눈 가 근육에 힘을 주고 바라보자 자작나무 흰색 껍질이 바람에 벗겨져 기둥 사이를 유영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흰나비 춤과 흡사한 날개 짓이 참 곱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걸어 사다리처럼 생긴 가파른 길을 올라섰습니다. 걸어 오르며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던 숲과 계곡들의 멋진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전체가 산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정상에서는 온통 산만 보였습니다. 산 산, 산~~~ 하늘 아래 모든 것은 온통 산뿐이었습니다.
산에서 산을 조망하다. 석양빛이 감지되는 방향으로 길을 틀어 하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절기 산행은 남쪽으로 올랐다가 해의 긴 꼬리를 잡고 있는 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햇빛의 도움을 늦은 시간까지 받을 수 있어 추위를 제법 이길 수 있고 등산길 빙판이 적어 힘이 풀린 다리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대신 서쪽으로 난 산 길은 대부분 긴 편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지리적 특성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이기 때문입니다. 산이 길어야 계곡도 여러 갈래로 이어져야 합수가 되어 큰 강을 이루게 됩니다. 사람들은 강 주변에 마을을 만들고 모여 살며 그 시대의 환경에 맞춰 문명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림에 따라 시대의 상이 세워졌다 허물어졌다를 반복하여 역사의 이름으로 지나간 흔적은 다시 살아나곤 합니다. 그러나 산과, 산이 껴안고 있는 것들은
유구합니다. 그리고 이를 찾는 이들에게 무언으로 인자(仁者)가 되고 현자(賢者)돼라 가르칩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청정지역임을 알리며 지표수 역할을 하는 조릿대 숲까지 내려왔습니다. 이곳에서 30 여분 내려가면 마을입구에 도달할 수 있고 큰 사하촌 아래라 역까지 가는 이동수단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산사에서 운영하는 찻집으로 가 커다란 창문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쌍화차를 시킨 후 지니고 온 찻물과 먹지 않은 김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산행 중에 준비해 온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충분하게 보충하여 김밥은 먹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잠시 쉬며 종일 산행에 대한 스크린을 하다. 놓치기 쉬운 일정에 대한 자료는 메모로 남기고 쌍화차를 마셨습니다. 쌍화 차향이 이미 피로를 몰아내주는 것 같았습니다. 손목을 보호해 주는 옷소매를 걷고 걸음 수와 거리를 알려 주는 시계 보턴을 눌러보았습니다. 차례차례로 걸음수, 소요시간, 거리 등이 표시되어 16.9km 휴식시간 포함 4시 40분, 20,000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역으로 이동하여 열차에 오른 후 요즈음 다시 읽고 있는 칼린 비브란의 예언자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마침 선택한 객차에는 여행객이 거의 없었습니다. 움직이는 사랑방 창가에 앉은 것처럼 느끼며 책을 읽다 가끔씩 석양빛에 곱게 물들어 가다 어두움 속으로 사라져 가는 저녁 풍경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책을 펼쳤습니다.
-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도 그대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두어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
거침없이 읽어 나가는 사이 어느새 양평역 도착하였습니다. 내려 환승하여 일반 전철로 바꿔 탄 후 도심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 지하철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목적지 역까지 12분 정도 소요됩니다. 밤은 우중충하고 겨울밤 가로등 빛이 황량하게
느껴지는 잘 정비된 도시의 길, 그리고 올려다보게 되는 정주(定住)하는 아파트,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선(線)과 각(角) 만으로 이루어져 위태롭게 느껴졌습니다. 종일 발품과 함께 친견하던 자연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자연은 모든 것을 풀어놓는다면 도시는 꽁꽁 싸매는 성질이 다분합니다. 이런 사이 덜컹하고 스르르 열린 철 박스를 타고 오르며 현기증을 느끼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계음 여섯 자리를 제대로 눌러야 시멘트 옹성에 진입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입허가 여부는 삑~~ 소리가 늘 대신합니다. 삑! ~~ 조바심의 대가로 현관을 들어서면서 자신에게 툭 던지는 말, 참 좋았어 오늘 걸음 여행! 망설이지 말고 또 가자!
걸음여행 후 오늘 함께한 산악 용품과 장비를 정리하고 여운을 마음에 담으려 여백이 필요하였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여 틀었습니다. Lonsome Town ~~~ 직역하면 외로운 도시, Ricky Nelson이 불렀습니다. 외로운 마을에서는 잊는 법을 배운다는 가사가 무척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