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제작가라면 한 번쯤은 이 세 거장의 바이올린을 재현시켜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세 거장이 생존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현재도 그러하다. “이것이야말로 비견할 만한 것이다.” 라고 내놓은 것이 없으니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며, 어쩌면 영원히 밝혀낼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우스의 모델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는 최고의 모델로 존재하지만 감정 분야에서도 가장 기초적이면서 최고의 수준까지 볼 수 있는 귀한 모델로 삼고 있다.
바이올린을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순서로 몸통을 살펴본다. 위판, 아칭, 아웃 라인, 에프 홀, 퍼플링(purfling)의 정밀도. 다음으로 아래판, 사이트, 스크롤, 바니쉬-이것은 특히 세밀하게 관찰해야 된다-, 그리고 소리를 유심히 듣는다. 다음에는 수리 부면을 본다. 상태가 좋은 부분보다는 수리한 흔적이 있는 부분을 엄밀히 살펴봄으로써 명기 여부, 혹은 수준급 바이올린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00년도의 올드 명기가 있는데, 3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깨끗하다면 박물관 소장품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수리 부면을 보는 자세한 방법은 차후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우선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의 차이점과 주요 부면을 비교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이 세 거장의 바이올린에서는 뚜렷한 개성이 있으므로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확립되면 다른 바이올린은 이에 준해 조명함으로써 누구의 것을 따르는 것인지, 혹은 복제해 놓은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트라디바리의 두 아들 스트라디 프란시스코와 오모 보노는 당연히 부친의 뒤를 이었으므로 부친의 모델을 따랐고, 그의 최고 수제자 베르곤지도 그의 전성기 것에서 다소 개성을 살린 것이 있긴 하지만 스승의 영향에서 크게 못벗어났으며, 그중 많은 수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고 봐야 된다. 이런 내력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L양이 이곳 시카고를 방문했는데, 이때 L양의 바이올린을 살펴봐준 적이 있다. 바이올린 속에 베르곤지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지만 한 눈에 보아도 잘못 구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에프 홀은 아마티 형을 나타냈고, 바니쉬는 짙은 브라운이라 베르곤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파트 한 채 값을 주고 구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기에 그저 얼버무리고 말았다.
바이올린을 대할 때 눈에 잘 띄는 곳이 바로 에프 홀이다. 사운드 홀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바이올린 몸통에서 그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며, 제작 솜씨도 가늠할 수 있다. 전문가는 에프 홀을 보는 순간 아마추어의 어설픈 솜씨인지 능숙한 장인의 솜씨인지 가늠할 수 있다. 에프 홀에 대한 비율을 본다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아이(eyes)와의 길이도 세 모델 모두 차이가 난다.
아이, 에프 홀, 아칭, 스크롤, 바니쉬 등을 비교
아마티의 비율을 본다면 가로 45x세로 69, 아이 사이의 길이 40mm. 스트라디바리는 가로 47x 세로 72, 아이 사이 길이 41mm, 과르네리는 46x74, 아이 사이 길이 42mm. 이를 미루어 보아 과르네리의 에프 홀이 가장 깊고 다음이 스트라디바리, 그리고 아마티 순이다. 가로를 차지하는 부면은 곧 에프 홀의 경사도를 의미하는데, 경사도로 보면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아마티 순이 되며, 아이 사이의 길이는 과르네리, tm트라디바리, 아마티 순이 된다.
위의 세 거장 에프 홀을 비교해 봤을 때 그 개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았다. 예외가 있지만 이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칭이란 바이올린을 측면으로 보았을 때 유선형으로 둥글게 솟아오른 높낮이와 헤보우면 골의 깊이로부터 차츰 올라온 형태를 보는데, 통상 높은 아치, 중간 높이, 평형으로 대별하여 본다. 1700년대에는 많은 명장들이 하이 아칭으로 제작한 것이 더러 보이고, 아마티, 과르네리, 혹은 스트라디바리도 중간 높이의 아칭으로 제작한 것이 희소하긴 하나 보인다. 1800년대에 들어와서도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중간 아칭, 때로는 하이 아칭으로 제작한 것이 자주 보인다. 1900년대에는 거의 평형으로만 제작해왔다고 생각된다.
하이 아칭이나 중간 높이 아칭의 특징은 대체로 공명이 좋으며, 예쁜 소리를 내주고 있으나, 소리의 뻗어침이 평형만 못한 것이 결점이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의 실내악, 혹은 오케스트라 연주자에게는 별탈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즐겨 연주하고 있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도 중간 높이 아치로 만든 것이 있긴 하나 극히 소수이며, 거의 평형이다.
바이올린의 줄감개 부연으로 둥글게 몇 바퀴 돌린 모양새를 갖춘 것이 스크롤이다. 여기서 제작가의 솜씨와 개성이 잘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므로 가장 등한시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뜻밖에 스크롤에서 장인의 기질 내지는 명장으로서의 체취가 풍기기에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스크롤 중 사자머리나 당대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상, 혹은 미녀의 상을 조각함으로써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어떤 스크롤은 대하자마자 혐오감조차 갖게 하는 조잡한 것도 있는데, 소리와는 무관하나 이런 것치고 소리가 제대로 나는 것이 없으니 실로 오묘하다. 세 거장 역시 솜씨와 개성을 이 스크롤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마티의 것은 거의 스트라디바리 것과 흡사하나 스트라디바리의 것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이에 반해 과르네리의 것은 다소 투박하게 보이지만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바니쉬에는 오일과 알콜 바니쉬가 있고 제작가의 의도에 따라 바니쉬를 쓰지만, 오일 바니쉬는 건조시키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고, 알콜은 쉽게 건조된다. 바니쉬는 소리의 변화를 막아주고 악기를 보호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 쓰인다. 달리 표현한다면 상품 가치를 높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완성된 바이올린 몸통에 멋있는 바니쉬를 칠해 줌으로써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되어 갖고 싶은 욕망에 더욱 열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요즘에도 스트라디바리 음색의 비밀이 마치 바니쉬에 감춰져 있는 듯이 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밝혀진 바로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점은 간단한 논리로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초창기 1600년대 말의 것은 매우 뛰어난 것이 있는가 하면 뜻밖에 처지는 것도 있으며, 대체적으로 그의 전성기의 것만 못하며 그의 말기 작품 역시 평이 다소 낮다.
이를 미루어 보아 바니쉬에 근본 비밀이 있다면 초기, 전성기, 말기 가릴 것 없이 소리가 잘 나야 되지 않겠는가. 역시 제작과정에서 나무의 질과 텝톤(Tap ton)의 조화, 이상적인 치수와 정확도, 그리고 장인정신을 쏟아 부었을 때 만들어진 것은 한 사람의 솜씨이지만 각기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바니쉬에 근본 비밀이 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2년 전 어느 바이올린 제작가로부터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 최초로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바니쉬 비밀을 밝혀냈고, 도료도 복원했다는 글을 보내오면서 그 신빙성 여부를 물어왔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음리 연구가라고 덧붙여 알려져 왔는데, 혹 이런 터무니 없는 글에 현혹되어 그릇된 안내를 받을 우려가 있기에 바른 이해를 위하여 잠시 언급한다.
스트라디바리 비밀이 ‘바니쉬’라는 것은 사실과 무근
세계 최고의 음리 연주가라는 사실이 어디서 인정된 것인지를 묻고 싶다. 획기적인 바니쉬 내지는 도료를 복원했다면 공인되기까지 세계적인 과학지나 권위있는 학회지에서 인정받게 되며 또한 글도 실리게 된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뉴 사이언티스트’ 지에 1988년에 게재된 내용을 간추려 소개함으로써 바니쉬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캠브리지대 화학과 피터 에드워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전자현미경과 에너지 분산x선 분광학이라는 새로운 분석기법을 이용, 스트라디바리의 바니쉬를 조사한 결과 음색의 비밀이 바니쉬에 있을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추측이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바니쉬를 칠한 표면층 바로 밑에 0.05mm의 또 다른 굳어있는 층을 발견했고 분석 기법을 이용, 조사한 결과로서 이 층의 성분이 알미늄, 인산, 칼슘, 철 등임이 확인되었고, 이같은 성분은 크레모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포졸라나(Pozzuolana)라는 화산재와 같은 성분임을 밝혀냈다. ”
음색의 비밀은 바로 이 성분 때문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으나 바니쉬를 칠하기 전 목재에 포졸라나라는 화산재를 얇게 입힌 것은 과학적으로 규명해 놓은 것이다.
명성있는 바이올린 제작자들 중에 포졸라나가 실제로 다루어지고 있었고, 요즘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긴 하나 그 효능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말이 없다. 여하튼 질 좋은 화장품을 사용함으로써 여인들의 미를 한층 더해 주듯이 바니쉬는 완성된 바이올린의 나무통에 칠해 줌으로써 그 아름다움에 미를 더해 주고 손상을 막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싸구려 바이올린이라도 이 바니쉬를 칠하기만 하면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 같은 소리가 터져나온다(?)면 어지러운 바이올린 세계에 가리워져 있는 먹구름이 한 순간에 걷힐 것이다.
세 거장의 바니쉬에도 각각 특징이 있다. 아마티는 일반적으로 짙은 노란색 브라운에 붉은 색을 띤 것이 주를 이루며, 스트라디바리는 골든 오렌지 브라운으로 뛰어난 비색을 느끼게 하고 오묘함이 있고, 과르네리우스는 한 마디로 그 특징을 말할 수는 없지만 골든 옐로우, 가끔 짙은 브라운에 짙은 붉은 색도 보이는데 바니쉬는 매우 뛰어나다.
이 세 거장의 바니쉬 색깔에 예외가 있음은 물론이다. 바이올린을 감정하는 데 있어서 바니쉬 색깔과 풍겨주는 멋과 분위기는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있기에 바니쉬를 중점적으로 세밀히 밝혀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이올린 몸통에서 위판을 톱 플레이트, 혹은 벨리라고 하며 나무는 통상 스프루스(Spruce)를 쓰는데, 넓은 그래인, 중간, 좁은 그래인은 제작가의 의도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스트라디바리나 아마티는 주로 좁은 그래인 우드를 사용했는데, 좁고 넓고는 다소 울림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작가의 아이디어에 따라 선별된다. 이 나무의 특징은 가벼운 편이고, 울림이 좋으나 조그만 충격에도 나무가 잘 떨어져 나가고 갈라진다. 때문에 올드 바이올린을 보았을 때 많은 흠집과 갈라있던 자국, 특히 활 긋는 쪽의 마모와 상처를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백 플레이트는 단풍나무가 주로 쓰이는데, 알프스 단풍을 최고로 친다. 나무가 단단하기에 비교적 상처를 덜 입는다. 간혹 올드 바이올린 중 오랫동안 사운드 포스트의 압력으로 인해 갈라진 곳이 보이는 것도 더러 있긴 하지만 패치 업(Patch up) 이라는 완벽한 수리로 별무늬, 굵은 것, 좁은 것 여러 형이 보이는데, 소리와는 상관없다고 보며, 명기 중에는 무늬가 거의 안보이는 것도 간혹 있다. 통우드가 좋으면 좋은 재목으로 쓰이게 된다.
퍼플링을 살펴봄으로써 제작자의 숙련도 가늠할 수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버드 아이 매플이라 해서 참새눈과 같은 점점으로 무늬가 되어 있는 것과 포플라 나무를 간혹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톱과 백의 가장자리로부터 안쪽으로 3~5mm 정도까지를 거리로 하여 바이올린 형태에 따라 가느다란 나무심을 모양 좋게 심어놓은 것(퍼플링)을 보게 된다. 싸구려 연습용은 가느다란 두 선을 붓으로 그린 것이지만, 실제는 약 1.5mm 정도의 깊이에 퍼플링 두께 약 1.3mm 정도로 파내고 일일이 심어 넣은 것이다. 이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숙련 여부가 잘 드러남을 발견할 수 있다. 코너 곡선에 따라 깨끗하게 돌려진 것인지, 꾸불대는 곳은 없는지, 코너 지점에서의 합치점이 일정한지를 세밀하게 봄으로써 어설픈 아마추어의 솜씨인지 능숙한 솜씨인지를 쉽게 분별하게 된다.
이 세 거장의 퍼플링에 있어서는 특별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지만 능숙한 솜씨를 충분히 볼 수는 있는 것이다. 이상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의 스탠다드 모델이랄 수 있는 것을 들어 가장 특징적인 점을 분별하여 설명했다. 다시 종합해 본다면 이 세 거장의 모델에서 그중 가장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곳을 충분히 익혀둘 필요가 있다. 시 바우트 곡선, 에프 홀, 스크롤, 바니쉬를 가장 기본으로 하여, 구입코저 하는 악기를 이 본에 대조함으로써 누구의 것, 혹은 누구의 영향을 받은 악기인가를 분별해 보기 바란다. 사실 이 정도의 설명으로 확고한 개념이 서기에는 부족함이 있으며, 게다가 예외적인 모양을 갖춘 것도 적지 않기에 그저 참고 정도의 의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잡동사니 나 낡은 악기는 걸러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최승식(바이올린 감정 및 제작가, 시카고 현악사), 월간 <객석>1992년 12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