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지붕 위에 하얗게 내린 이슬을 바라보면
춥지 않은데도 불현듯 머리가 허전합니다.
아끼던 것을 잃어버린 듯
마음마저 허전하니
행여나 하면서 머리 위로 슬쩍 모자 하나를 올려봅니다.
허전함을 감추려 했는데
당당하고, 따뜻하고, 멋까지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이 좀 나아 보입니다.
중절모자 하나가 사람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 나이가 그런 나이인가 봅니다.
내세울 명예도 없고,
자랑할 만한 재산도 없고,
젊다고 자신만만함도 사라지고 없으니
날 보호하기 위해
가리고, 덥고, 신고 그래야 하는가 봅니다.
나도 몰래 그런 것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는가 봅니다.
그까짓 모자 하나를 쓴다고 추위가 없기야 하겠느냐마는
추위를 막아준다는 마음의 안도감이 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겠지요?
흔히 하는 얘기로 믿는 구석이 있으니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된 것이라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은 추워도 내일은 따뜻해질 거라는 믿음이 날 견디게 하는가 봅니다.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가 봅니다.
춥다고 깃을 한껏 세우고도
모자가 주는 따뜻함이라는 매력에 빠져들어
추워야 겨울이지,
이런 멋이 있어야 겨울이지,
그러면서 자꾸만 거리를 배회하게 합니다.
그러는 겨울이
아직은 그리 춥지는 않아서 참으로 다행인 줄 알기나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대로 중절모자를 쓰고 다니기 좋도록
연일 포근하였던 날씨가 12월이 들자마자
눈이라도 오려나 우중 청하니 마음마저 무거워집니다.
양모로 된 모자를 벗고,
짚으로 만든 모자로 바꾼 까닭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멀기만 생각되었던 12월이 어느덧 되고 말았기 때문, 마음이 우울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일 것 같았던 1년의 마지막 달이 벌써 오고만 탓에 마음이 어두워진 것 같기도 합니다.
콧물 걱정, 기침 걱정할 한, 두 살배기 어린 아기도 아닌데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그런 날씨 변화에 조금은 민감해지는 것은
이젠 각박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보라며
세월이 주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이겠지요.
아마도 하늘을 닮아 둥근 중년의 그 모자가
그런 좋은 의미를 담아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나를 감싸 주니
겨울이라도 춥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첫댓글 나이사님, 모자가 잘 어울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