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전 교통사고로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통원 치료했던 박모씨(49세)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안부를 묻던 중 일년 전 친구인 김모씨도 자동차사고로 다리에 동일한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험금의 액수였다. 통원치료를 한 자신보다 입원해 있었던 친구의 보상액이 약 2배 가량 많았던 것이었다.
당시 박씨는 좀 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빨리 합의하고 퇴원하면 병원비가 향후 치료비로 지급돼 보상금 액수가 더욱 많아진다는 보험설계사의 말을 믿고 통원치료를 강행했다. 박씨는 “다리부상이었기 때문에 통원치료가 힘들고 불편했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보상액은 기대에 못 미쳤다.” 라고 말했다.
박씨를 더욱 화나게 했던 것은 통원치료 결정 후 달라진 보험사의 태도였다. 보험사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었다. 박씨는 “결국 현실적으로 입원할 필요가 없는 부상이라 하더라도 정직하게 통원치료 하는 것보다 입원하는 게 피보험자에게는 이익인 것이 아니냐”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자동차보험사의 잘못된 보험금 지급관행이 불필요한 입원환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험사기를 조장하는 측면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환자(피보험자)가 입원치료를 하느냐 혹은 통원치료를 하느냐에 따라 보상금 액수에 큰 차이가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자동차보험사들이 입원시에만 휴업손해(일당)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퇴원 후에는 휴업 손해가 인정되지 않고, 장해가 인정되는 정도에 따라서 보험 약관에 정해진 액수만 받을 수 있다. 더욱이 경미한 부상의 경우에는 장해가 인정되지 않아 이마저도 받지 못하고 보험사 약관에 정해진 약 20만원 정도의 위자료만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 통원치료라 하더라도 오히려 입원치료보다 더 많은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진단이라도 입원한 경우와 입원하지 않은 경우 보상액은 약 2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불필요한 입원환자를 조장하는 보험규정
보험사기에 악용되기도
보험소비자연맹측은 이러한 보험규정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었을 때 전체 피해자의 70-80%가 입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교통사고 부상자의 20-30%만이 입원을 하고 있다. 결국 입원치료나 통원치료를 구분하지 않고 ‘수입의 감소가 있는 경우’ 휴업손해를 인정하는 휴업손해 약관을 무시하고 입원 치료시에만 휴업손해를 인정하는 우리나라 보험사의 관행이 불필요한 입원환자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보험사의 약관은 가짜 환자인 속칭 ‘나이롱 환자’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한다.
물론 보험사 입장에서는 환자(피보험자)가 입원을 하는 것은 손해다. 왜냐하면 환자가 입원해 있을 경우 보험사는 건강보험 액수의 3배에 달하는 자동차보험수가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고, 환자에게 휴업손해(일당)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사는 환자에게 입원치료보다는 통원치료를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의 손해사정사 오한나씨는 “이 때문에 환자가 진단기간을 경과한 경우나 장기치료가 계속될 경우, 보험사측에서 의사로부터 소견서를 받아 퇴원 조치시키는 사례도 있어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퇴원후 보상금 지급을 미루는 보험사의 횡포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보상요청해야
더욱 큰 문제는, 환자가 보험사의 말을 믿고 퇴원을 한 후에 보험사의 태도가 돌변한다는 데 있다. 환자가 입원했을 때에는 병원비와 일당 등 보상금이 증가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보상을 서두르던 보험사들이 일단 환자가 퇴원한 후에는 병원비와 일당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지므로 보상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보험소비자 연맹 측은, “피해자가 연락하지 않으면 보험사는 보험금지급을 몇 년이라도 방치하는 경우가 있으며 사고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때문에 피해자측의 적극적인 보상요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각종 소송을 남발하며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보험사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장치는 없다. 소송을 통해 승소하는 방법뿐이다. 그런데 보험사에 의해 소송이 제기되면 피보험자는 금융감독원의 민원 처리도 받을 수 없게 돼 많은 금전적 부담을 지게 된다.
보험소비자 연맹 측은 “경제적 약자인 피해자를 상대로 거대 보험사가 먼저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큰 문제”라면서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금전상의 이유로 소송을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건국대 법대 최병규 교수는 “현행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이외에 영국,독일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옴부즈만 제도의 도입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험사들이 소송을 남발해 보상금 지급을 늦추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규제다. 이 제도에 따르면 보험사는 사고 후 3개월 이내에 보상금 지급을 결정해야 한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와 합의된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국에 의해 사업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보험소비자연맹 측은 “우리나라에서 보험 사기가 빈번한 이유가 보험사의 잘못된 지급 관행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다”면서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해야만이 보험사기로 낭비하는 돈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의의 피해자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