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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그 사나이] 14
S#1. 산속, 텐트 밖 (밤)
(13부 엔딩에 이어)
택 기 (오들오들 떨며 불쌍한 눈빛) 정말. 들어가도 돼?
지 현 (시선 피하며 중얼중얼) 빨리 들어와요. 그러다 큰일 나겠네.
택 기 (일어나 잽싸게 오며) 아, 추워. 가시나 그래도 양심은 있네. (얼굴 들이대며) 양심에 털 은제 밀었어?
지 현 누가 댁 감기 걸릴까봐 그래요? 아프기라도 하면, 돼지 못 찾을까봐 그러지?
택 기 (두 손으로 가슴 가리며) 대신 내 건드릴 생각 마.
지 현 댁이나 나한테 흑심 품지 말아요.
택 기 누가 니 겉은 거한테!
지 현 (괜히 어색해서) 얼른. 들어오기나 해요.
텐트 속으로 뻘쭘하게 들어가는 택기.
S#2. 동 텐트 안 (밤)
지현이 누우면서 보면, 들어와 엉거주춤 앉는 택기.
지 현 안 자요?
택 기 어. 자.
지 현 그러고 앉아서 잘 거예요?
택 기 어. 아니. (최대한 떨어져 벽 쪽으로 바짝 붙어 돌아눕는다.)
지 현 (피식 웃더니) 안 잡아먹을 테니까, 이리 와서 편하게 누워요.
택 기 됐어. 난 이게 편해.
지현 샐쭉하고는, 택기에게 담요 덮어주는데, 작은 담요라 택기를 덮어주면 지현이 모자라고, 지현 쪽을 덮으면 택기 쪽이 모자란다.
지 현 일루 좀 와 봐요. 담요 같이 덮게.
택 기 엉? (돌아보더니, 조금 가까이 온다.)
지 현 더 좀 와요.
택기가 머뭇거리고 안 오자, 지현이 덥썩 가까이 가는데, 이때 택기도 가까이 오다가 둘의 몸이 부딪친다.
지 현 아야!
택 기 어? 닿았나? 아프나?
두 사람 아주 가까이에서 보게 되고,
지 현 괜찮아요.
택 기 (슬쩍 떨어지려하면)
지 현 (택기 팔 잡고) 가만 좀 있어요. 고대루. (나란히 딱 붙어, 담요 덮어주고는 눈 감는) 잘 자요.
택 기 (지현을 빤히 보다) 그래. 잘 자. (멀뚱거리다 눈 감는다.)
S#3. 시골집 마당 (밤)
잔뜩 걱정이 되는 수진과 경민. 수진은 마을사람들과 평상 한쪽에 앉아있고, 경민은 서성이며 집 밖을 내다보는데.(마루 위의 영란은 잠든 명구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고.)
경 민 왜 안 오지? (수진에게) 119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수 진 (불안해서 일어서며) 그러게요!
홍이모 걱정말어유. 택기가 저 산을 지 집 안방처럼 훤히 알아유.
영 배 그러문요. 서울츠녀를 만나도 벌써 만났을 거 에요.
경 민 근데 왜 아직 안 오죠?
영 배 도야지를 아직 못 잡았갔지요. 어디서 자구 날 밝으면 또 잡으러 갈 거에요.
홍이모 그러문 둘이 잠은 워디서 잔댜?
사람들을 쳐다보는 수진과 경민. 안심이 되기는커녕 점점 불안해진다.
영 배 택기가 텐트르 갖고 다녀요. 텐트에서 같이 잘 거예요.
홍이모 그려? 그러문 됐네!
경 민 (속마음소리) 아니, 되긴 뭐가 돼?
홍이모 그래도 산 속이라 춥것는디?
이장댁 춥긴 뭐가 춰유? 팔팔한 남녀가 텐트 안에 있으문 열이 후꾼후꾼 나지?
홍이모 허긴, 그렇것네. (웃는데)
이장댁 아이구, 우리가 지금 뭐해러 기다린데유? 젊은 남녀가 같이 산에 들어갔는데, 쉽게 나오것슈? (일어나는데)
명 숙 (눈치 주며 쿡 찌르는) 뭔 소리를 그렇게 해요...
이장댁 아이구, 원래 포도밭에서 난 정분은 못 띤다구들 허잖여. 택기랑 지현이랑 맨날 포도밭에서. (이때 경민 수진과 눈이 마주치자) 아이구, 이 주책 좀 봐. 우린 그만들 가쥬...
홍이모 (일어나며) 그려, 오것지, 뭐.
이 장 (수진과 경민에게) 너무 걱정 마시고요, 들어들 가 주무세요.
영 배 (별 걱정 안하는) 낼 낮에는 올 거예요.
모두 우르르 나가는데, 이때 랜턴 하나 들고 숨차게 들어서는 홍이.
홍 이 택기 오빠 워디 산으로 갔슈?
홍이모 너는 잠 안자고 뭐 하러 나왔어?
홍 이 오빠가 서울 년허구 산엘 갔다는데 잠이 와유?
홍이모 어이구, 내가 너 땜에 못 살어. 빨리 집에 못가? (끌고 가면)
홍 이 그년하고 둘이 오늘 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찾으러 갈래유!
홍이모 (등짝 때려 데리고 가며) 밤에 워딜 가? 그러다 큰일 나는 겨. 빨리 가.
홍 이 싫어유...! 놔유, 엄니, 이거 놔유... (끌려가고)
홍이모와 동네 사람들, 홍이를 데리고 가면, 왠지 더욱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는 경민과 수진.
경 민 안되겠어요! 찾으러 가야지. 혹시 랜턴 없어요?
수 진 (역시 같은 생각이다.) 있어요. 잠시만요. (급히 택기방으로 사라지고)
경민 초조하게 기다리면, 마루 위에서 빼꼼이 쳐다보는 영란. 이내 다시 나타나 경민에게 랜턴을 내미는 수진.
수 진 여기요. (자기도 랜턴 하나 켜며, 운동화 잘 신고 같이 갈 태세다)
경 민 (의아해서) 수진씨도 가시게요?
수 진 (다부지게) 저 야간 산행 해봤어요. 가죠. (급히 앞장서면)
어리둥절해서 얼른 따라가는 경민. 가는 두 사람을 빼꼼이 내다보다 찜찜하게 고개 돌리는 영란.
S#4. 동 텐트 안 (밤)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택기. 잠이 오지 않는 듯 택기의 등을 보며 살며시 눈을 뜨는 지현. 택기의 헝클어진 머리를 만져주려다가 그냥 손을 내린다. 애써 잠 청하려는데,
택 기 와? 잠이 안 오나?
지 현 (깜짝 놀라며) 안 잤어요?
택 기 니 땜에 깼지. 와 자꾸 부시럭거리?
지 현 미안해요.
택 기 (천청을 향해 나란히 누우며) 와? 내 겉이 멋있는 놈하고 같이 있으니까 신경 쓰이나부지?
지 현 내가 왜요? 댁이야말로 신경 쓰이나 부죠?
택 기 니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내 아무리 굶주렸다 캐도 니 같은 여잔 싫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자.
지 현 하 참, 누가 할 소리?
택 기 와 기분 나쁘나?
지 현 아뇨? 내가 왜요?
택 기 뭐, 잘 됐네. 서로 똑같으니.
지 현 그러게요.
택 기 니 하는 거 보문... 우리가 친구 되길 참 잘했지, 니 누가 데꼬 살란지 진짜 걱정 된다.
지 현 어머? 댁은 안 그런 줄 알아요? 댁하구 같이 살 여자는 진짜 성격 좋구, 이해심 넓은 여자여야 될 걸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포기하고 살아야 되니까?
택 기 내가 뭐?
지 현 내말이 틀려요?
택 기 그래, 우린 친구지, 서로 그, 뭐냐, 애인은 되지 말자꼬. 뭐, 될 일도 없겠지만.
지 현 당연하죠. 그런 소린 해봤자 입만 아프지.
괜히 뚱하니 조용해지는 두 사람. 잠시 어색하다. 지현이 먼저 등을 돌리자, 택기도 슬쩍 등을 돌린다.
택 기 빨리 디비져 자. (눈 감는다)
지 현 (왠지 섭섭한 기분. 속마음소리) 장택기. 바보! (두 눈 콱 감는다)
S#5. 산길 (밤)
지현아! 택기야! 경민과 수진이 지현과 택기를 부르며 삐질삐질 거리며 급하게 산을 올라간다. 수진의 발이 자꾸 미끄러지자, 팔을 잡아주는 경민.
경 민 야간산행 정말 해보긴 해봤어요?
수 진 해봤어요! (꼬리 내리며) 한번.
경 민 참 내. 지금이라도 다시 내려가시지 그래요?
수 진 왜요? 자신 있어요.
경 민 나중에 딴소리하실까봐 그러죠.
수 진 딴소리 안 해요. (앞서 가면)
경 민 아후, 난 등산은 질색인데... 아무튼 장택기 이 자식, 끝까지 애를 먹이는구만.
수 진 (멈춰 돌아보며) 뭐요? 이 자식이라뇨? 지금 누구 때문에 우리 택기까지 고생하는 건데요? 지현씨가 대책두 없이 산에 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경 민 이거 보세요. 우리 지현이는요... 관둡시다. (다시 부르며 가는) 지현아!
수 진 택기야! (부르며 경민 뒤로 가면)
경 민 앞에 가세요.
수 진 싫어요. 무서워요. 뒤에 갈래요.
경 민 원래 뒤가 더 무서운 거예요. 귀신이 앞에 가는 사람 잡아가는 거 봤어요? 뒤에 가는 사람부터 슥! 데려가지?
수 진 (순간 괜히 혼자 뒤 돌아보며) 엄마야! 놀랬잖아요!
경 민 내가 뭘 어쨌다구요? 이렇게 겁두 많으면서 왜 따라오셨어요?
수 진 그럼 어떡해요? 택기하고 지현씨하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튼 빨리 가요. (앞으로 나서며) 택기야!
경 민 (뒤에 가며, 괜히 겁나 뒤 돌아보면서) 지현아!
S#6. 동 텐트 안 (밤)
지현, 자고 있는 듯 눈 감고 있으면, 차려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 반듯이 누워있는 택기.
지현이 깰까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잠이 오지 않는 듯 눈동자만 멀뚱거리는데,
지 현 (눈 감은 채) 자요?
택 기 (깜짝 놀라 얼른 눈을 꽉 감는다)
지 현 (눈을 뜨며) 안 자요?
택 기 니, 니가 자꾸 말 시키니까, 잠이 안 오잖아.
지 현 내가 언제 말을 시켰다고 그래요? 난 잠이 안 오네? (택기 쪽을 향해 돌아눕더니, 아주 가까이에서 택기 얼굴 보며) 그럼 우리 잠도 안 오는데 얘기나 할래요?
택 기 (속마음소리) 이 가시나가 이거 와 이라노? (대사. 뚱하니) 내, 내는 잠 잘 와. 니나 잠이 안 오지.
지 현 (다시 천정 보고 나란히 누우며) 그래요? 그럼 나도 자야겠네. (눈 감는데)
택 기 얘기해 봐.
지 현 (눈 뜨고 히죽 웃으며) 저기요. 나 실은 이렇게 텐트 안에서 자보는 거 처음이에요. 놀러가도 맨날 콘도 같은 데로만 다녀서, 이렇게 텐트에서 자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택 기 벨께 다 소원이네.
지 현 참 좋다. 낭만적이구. 시냇물 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참 좋다.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는 거 있죠?
택 기 (어느 덧 긴장 풀며) 그렇게 좋아?
지 현 네.
택 기 그럼 맨날 여 와서 자. 내가 텐트 쳐줄게. 안 그래도 집에 방 모지라는데 잘됐네.
지 현 으. 내가 미쳐.
택 기 자꾸 실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자. 일찍 일어나서 돼지 잡으러 갈라문.
지 현 으. 멋대가리 하고는. (천정을 보며) 그런데 장택기씨.
택 기 와.
지 현 아니에요. (잠 자려하는)
택 기 와?
지 현 아니에요. 주무세요.
택 기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자라꼬?
지 현 별 얘기 아닌데? 그냥 자요.
택 기 안 돼. 못 자. 빨리 얘기 해.
지 현 참 내. (흠 흠 냄새 맡으며) 오늘 발 안 닦았죠?
택 기 (펄쩍 뛰며) 무신 소리야? (얼른 발 들어 냄새 맡으며) 내 발 냄새 안 나. (냄새난다) 가서 닦고 올까?
지 현 됐어요. 그냥 자요.
택 기 그래? 미안하네.
지 현 (눈 감은 채 택기 쪽으로 착 붙어 돌아누우며) 괜찮아요. 나도 이제 촌년 다됐나봐. 장택기씨 발 냄새가 구수한 걸 보니. (혼자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택기 멋쩍어서, 눈 감은 지현을 본다. 혼자 히죽 미소를 짓더니, 지현에게 담요를 잘 덮어주고 누워 천정을 보는 택기.
택 기 (속마음소리) 이지혀이. 니가 이래 내 옆에 누워서 쌕쌕 숨도 쉬고, 종알종알 말도 하고 그러니까, 내는 참 좋다. 내는 참 좋은데... 니한테 확 뽀뽀도 하고 싶고, 니를 꽉 끌어안고도 싶고 그런데 니는 그 의사가 그래 좋나. 나쁜 가시나. 잘 자라.
왠지 씁쓸한 미소로 변하더니. 미소 사라지고 씁쓸한 표정만 남는 택기. 애써 돌아누워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한다.
S#7. 동 산길 다른 곳 (밤)
렌턴을 비추며 조심조심 가고 있는 경민과 수진. 둘 다 좀 겁을 먹은 상태다. 간간이 부엉이 소리 들려오고,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다. 이때 어디선가 여우 울음 같은 개 짖는 소리 들리면, 순간 멈춰서는 두 사람.
수 진 이게 무슨 소리에요?
경 민 몰라요.
수 진 아, 무서워. 혹시 늑대 만나는 거 아니에요?
경 민 그런 불길한 얘긴 좀, 하지 좀 마요! (다시 가려는데)
이때 경민의 랜턴 불빛이 희미하게 사그라들더니 꺼져버린다.
경 민 (급히 랜턴 스위치 만져보더니) 어? 아니, 무슨 이런 랜턴을 가져왔어요?
수 진 어머, 건전지가 다 됐나? 자, 제 거 들고 앞에 가세요.
수진, 경민에게 랜턴을 내미는데, 그 마저도 불빛이 깜빡거리더니, 희미하게 꺼져버린다.
이내 암흑으로 변하는 순간. 동시에 개 짖는 소리 다시 들려오고, 아악! 비명을 지르는 수진과 경민.
수 진 우리 다시 돌아가요!
경 민 어떻게 돌아가요? 어디가 길인지 보이지도 않는데?
수 진 그럼 어떡해요?
경 민 나도 몰라요.
수 진 (혼자 뒤로 넘어지고는) 으악! 어딨어요?
경 민 여기요. 괜찮아요?
수 진 어디요?
경 민 여기요. 내 손 잡아 봐요.
수 진 아아악! 어딜 만져요!
경 민 뭘 만졌다 그래요? 내 손 여깄다니까요?
수 진 내가 그쪽 손을 왜 잡아요!
경 민 그럼 내 옷이라도 잡아요! 나도 무섭단 말이에요.
수 진 남자가 뭐가 무서워요?
경 민 남잔 안 무서운 줄 알아요? (불쌍하게) 지현아!
수 진 (울먹이며) 택기야!
S#8. 시골집 (아침)
아침상을 들고 와 평상에 내려놓는 영란. 명구는 밥 먹는데, 병달은 넋 놓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다.
영 란 너무 걱정 마세요. 곧 오겠죠...
병 달 내가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지현이가 다행히 택기를 만났어야 할 낀데...
영 란 별일 없을 거예요. 박사님하고 의사선생님까지 찾으러 가셨는데요, 뭘.
병 달 뭐라? 수진이하고 의사선생도 산으로 갔다꼬?
영 란 네. 어젯밤에 찾으러들 가더라구요.
병 달 아이고... 이거 큰일났구만... 이를 으째?
영 란 아버님 고깃국 좀 드셔보세요. 아버님 좋아하시는 나물도 무쳐봤어요.
병 달 됐다. 명구하고나 묵어라...
영 란 그래도 한 술 뜨세요. 어젯밤부터 한술도 못 드셨는데... (수저로 밥 퍼서 내미는데)
병 달 치아라. 지금 야들이 쫄쫄 굶고 있을 낀데, 밥이 목구녕으로 넘어가나!
영란 찔끔하고, 병달 일어서는데,
이때 우르르 급히 들어오는 지현모, 지현부, 지호.
지현모 숙부님!
지현부 저희 왔습니다.
병 달 너그는 꼭두새벽부터 말라 내려왔나?
지현모 우리 지현이가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가 안돼서요. 지현아! (방으로 가려는데)
영 란 돼지 잡으러 산에 들어가서 전화가 안 될 거예요.
지현부 네? 돼지요?
영 란 (그제야 지현부에게 인사) 안녕하셨어요. 아주버님.
지현부 (어리둥절) 안녕하세요?
지현모 아니, 언제요? (니가 영란이니? 하는 눈빛)
영 란 어제 낮에 갔는데, 아직도 안 오네요.
지현모 네? 어제 낮에요?
지현부 (병달에게)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지현이가 산에 가서 안 왔다니요?
지 호 누나 밤 새 얼어 죽은 거 아니야?
병 달 시끄럽다! 야들은 또 누가 불러서 내려왔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괜히 찔끔하는 영란.
지현모 (영란에게) 어디로 갔어요? 어서 찾으러 가야죠!
영 란 전 잘 몰라요.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현모 아이구, 지현아. 아이구, 세상에.
지현부 아니, 우리 지현이를 포도농사 배우러 보냈지, 돼지 잡으라고 보냈나? 지현아!
지 호 누나!
S#9. 숲속, 텐트 안 (아침)
지현의 얼굴에 환한 아침 햇볕이 비추고, 지저귀는 새소리 들려온다. 잠결에도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게 눈을 뜨는 지현. (지현은 택기와 지낸 밤이 행복했던 것) 기지개를 쫙 펴며 옆을 보면, 택기가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지현.
S#10. 동 텐트 밖 (아침)
코펠에는 된장 국물이 끓고 있고, 코펠 뚜껑을 도마 삼아 잭나이프로 감자를 잘게 썰고 있는 택기.
지 현 (행복한 기분으로 다가오며) 음, 냄새 좋다. (애교) 줘 봐요. 내가 할게.
택 기 (얘가 왜 이래) 됐어. 다 했어. (썬 감자를 끓고 있는 국물에 넣는다.)
지 현 (다른 코펠 열면 다된 밥이 보인다.) 어머! 밥 냄새! 코펠에다 한 밥은 진짜 맛있는데... (손으로 뜨거운 밥알 집어 먹으며) 앗 뜨거! (후 손가락 불면)
택 기 (코펠용 주걱 주며) 가시나. 밥이나 퍼.
지 현 (밥 휘저으며) 택기씬 밥도 참 잘한단 말이야? 음, 맛있겠다.
택 기 그럼, 30년 가까이 해온 밥인데!
지 현 어머? 몇 살 때부터 밥을 했길래, 30년이래?
택 기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부터 내가 밥 했으니까, 진짜 25년 경력은 돼.
지 현 엄마가 몇 살 때 돌아가셨는데요?
택 기 일곱 살.
지 현 (택기를 볼 뿐)......
택 기 (양파, 파 썰며, 혼자 계속 얘기) 거짓말 인줄 아네? 진짜야. 나 일곱 살 때부터 밥했으. 그때는 산에서 나무 해다가 불 때가 밥을 했다꼬. 불 때다가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을매나 매운지 모르제? 그래도 내는 밥하는 기 제일 좋았다. 엄마 생각나면 부엌에 들어가 밥을 했다꼬.
지 현 (택기를 안쓰럽게 보며) 왜요?
택 기 (썰은 파를 국에 넣으며) 아부지가 사내아는 절대 울면 안된다 캤는데, 연기 때문에 울면 봐줬거등. (실없이 웃는다)
그런 택기를 보며, 순간 눈물이 핑 도는 지현. 슬그머니 돌아앉아 택기 몰래 눈물을 찍어내는데,
택 기 와? 니 눈에 연기 들어갔나? 버너는 연기 안 나는데?
지 현 아니에요. 밥 먹죠. (얼른 숟가락 챙긴다)
S#11. 동 숲 다른 곳 (아침)
한 나무에 ㄴ자로 기대앉아 오들오들 떨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경민과 수진. 진흙탕에 뒹굴었는지, 옷과 얼굴, 머리 등 꼴이 처참한 몰골이다. 수진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 졸다가 깨는 경민과 수진. 엉망이 돼버린 서로의 몰골을 보고는 당황해서 얼른 고개 돌린다.
경 민 아. 배고파.
수 진 (머리 매만지며) 아. 추워. (기침 해대고)
경 민 괜찮아요?
수 진 괜찮아요. (콜록 콜록)
경 민 우리가 한심하게 왜 이러고 있죠?
수 진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 허기져.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는데...
경 민 나두요. 아, 통닭 먹고 싶다.
수 진 난 김치찌개요.
경 민 전기구이 통닭으루.
수 진 난 돼지고기에 두부 송송 썰어 넣어서요.
경 민 (문득 수진을 보며) 두 사람 만났을까요?
수 진 (마주 보고) 만났겠죠?
경 민 설마 무슨 일은 없었겠죠?
수 진 (갑자기 급해지며) 어서 찾아보죠.
경 민 그래요.
두 사람 급히 일어서는데, 오그렸던 팔 다리 잘 펴지지 않는다. 신음소리 내면서 겨우 일어서는 두 사람. 찜찜한 기분을 지우려는 듯 급히 택기야! 지현아! 부르며 숲을 걸어 들어간다.
경 민 (길 못 찾고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죠?
수 진 (울먹이며) 우리 길도 잃어버린 거 같애요.
경 민 (거의 울부짖음) 지현아!
수 진 (역시 처절하게 부르는) 택기야!
S#12. 시냇가 (아침)
지현과 택기가 나란히 앉아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고 있다.
지 현 (피식 웃으며) 택기씨가 보기에는 나 같은 애가 시골 내려와서 포도밭 받겠다구 이러구 있는 거 되게 웃기죠?
택 기 알문서 와 물어?
지 현 (쑥스러워서) 솔직히 나 여기 내려오기 전에 서울에서, 밥 한번 안 해봤어요. 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물 먹고 싶으면, 발라당 누워서 “엄마 물!” 그러고 내 속옷도 한번 안 빨아보고, 일요일에 청소도 안하고. 그게 너무 당연한 걸로 알았어요. 난 항상 나보다 좋은 집에서 태어난 애들, 나보다 조건 좋은 애들만 생각하면서, 내가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택기씨 앞에서 할 말이 없네요...
택 기 (괜히 멋쩍어서 헛기침하고는) 니, 축구선수 박지성이 맨발 본적 있어?
지 현 아뇨. 내가 박지성이 하고 친군가? 맨발을 보게?
택 기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으루 말이야.
지 현 아니요.
택 기 언제 박지성이 발 한분 봐봐. 참 눈물나게 감동적이라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굳은 살 박히고 갈라진 발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어. 그건 노력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통을 이겨낸 아름다운 발이야. 니, 남 좋은 조건 가진 거 부러워하지 마. 내 힘으로 뭔가를 해야지. 박지성이처럼! 헛꿈이나 꾸고 일확천금이나 노리는 사람들은 그런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가 없다꼬.
지 현 맞아요.
둘 웃으며 다시 설거지를 한다. 지현이 씻은 그릇 넘겨주면 받는 택기의 손이 스친다.
지 현 (문득 택기의 손을 잡아서 보며) 그러고 보니 택기씨도 손이 엄청 거치네?
택 기 (손 슥 빼며) 내 손이 뭐가 거칠어? 얼마나 보드라운데?
지 현 보드랍긴 뭐가 보드라워요? 만져보면 꺼끌꺼끌, 아저씨 손 같지.
택 기 (삐져서)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없어. 빨리 하고 와. 나 텐트 걷어야 돼. (일어서는데)
지현, 괜히 삐쭉거리다가, 코펠을 하나 떨어뜨리고 물에 떠내려간다. 어? 얼른 코펠을 잡으러 물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지현. 그 바람에 쌓아놨던 다른 코펠들도 건드리고, 모두 떠내려간다. 아이, 씨? 이를 어째?
택 기 (돌아보고 얼른 쫓아가며) 아이고, 저 가시나. 으쩐지 사고 칠 때가 됐다 캤는데, 안친다 했지!
지 현 (그릇 잡으러 가며) 내가 일부러 그랬어요? 거기! 좀 잡아봐요! 얼른!
택 기 안 그래도 바쁜데... 거기 떠내려간다. 빨 잡아!
둘 다 첨벙첨벙 물에 흠뻑 젖고. 흐르는 물을 따라가며 코펠들 잡아 물 밖으로 바삐 던지는 지현과 택기. 이때 지현 문득 뭔가를 보고 멈춰 선다.
지 현 어? 저기요!
택 기 뭐해? 코펠 다 떠내려간다! (하다가 보면)
개울가에 돼지가 있고, 지현이 살금살금 돼지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택기도 긴장해서 멈춰 서서 보는데,
지 현 (이윽고 다가가 돼지 목을 끌어안더니) 갱숙아! 잡았다!
돼지 목을 꼭 끌어안고 뒹굴며 좋아하는 지현. 놀라서 보던 택기도 활짝 웃는다.
S#13. 마을길 (아침)
돼지를 끈으로 묶어 몰고 오는 지현과 택기. (두 사람 아랫도리 물에 젖고, 지현은 택기의 남방을 입고 있다)
이 장 아이고, 저기 오네요! 돼지 잡아 갖고 와요!
모여서 걱정하고 있던 병달과 마을 사람들 지현과 택기를 발견하고 우르르 오는데,
홍 이 (제일 먼저 달려와 택기를 끌어안으며) 오빠. 무사히 왔구먼!
택 기 야가 와 이라노. 놔라...
지 현 (속마음소리) 진짜 여자관계 복잡해.
홍 이 (지현을 보며) 둘이 별일은 없었지?
병 달 (달려와서) 아니, 와 늬들만 왔나?
지 현 (삐져서) 왜 저희만 와요? 이렇게 돼지도 잡아왔잖아요! 보셨죠? 제가 돼지 잡아오는 거?
이 장 오다가 박사님하구 의사선샘 못 만났나?
택 기 (어리둥절) 아뇨?
송할멈 어젯밤에 박사님허구 의사선생님이 늬들 찾으러 산에 들어가셨댜. 근데 못 만난겨?
지 현 (놀라며) 네?
박영감 아이구 큰일이네. 이번에는 두 냥반이 행방불명 됐구먼!
놀라는 택기와 지현.
S#14. 산길 (낮)
급히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 지현과 택기.
택 기 니는 오지 마.
지 현 (걱정스레) 아니에요. 나두 가야죠.
택 기 와? 느그 갱민오빠한테 무슨 일 있을까봐 그래?
지 현 무슨 말을 꼭 그렇게 해요? 그러는 댁은 수진씨 걱정돼서 가는 거 아니에요?
택 기 그래. 수진이 걱정돼서 간다. 아니, 그 의사는 산에 가고 싶으면 지 혼자 갈일이제, 와 우리 수진이는 같이 데꼬 갔어?
지 현 하, 우리 수진이? 언제부터 우리 수진이야? 아니, 그러고 보니, 남의 애인인 줄 뻔히 알면서, 밤에 낯선 남자 따라서 같이 산에 가는 여자는 또 뭐야?
택 기 뭐?
지 현 혹시 우리 경민오빠 좋아하는 거 아니야?
택 기 (어이가 없어) 뭐라꼬? 수진이는 니겉이 의사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여자가 아이야. (가면)
지 현 허이구, 그러셔? (따라가고)
택 기 느그 갱민오빠야 말로 진짜 문제 있네. 대책도 없이 여자를 끌고 산에 들어가면 우쩌자는 기야? 혹시 우리 수진이를 어떻게 함 해볼라고 데꼬 간 거 아인가? 으쩐지 처음부터 질이 안 좋아 뷔더라니...
지 현 뭐라구요? 기가 막혀서 증말. (그러다가) 아니, 두 사람 혹시 어젯밤에 눈이라도 맞아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택 기 그런 믿음도 없는 남자를 말라 사겨? 당장 관두지.
지 현 뭐요? 댁이나 수진씨 단속 잘해요!
불안하게 발길 재촉하는데, 이때 어디선가 구조요청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 진 (다 죽어가는 희미한) 사람 살려!
경 민 (지칠 대로 지친) 사람 살려요.
급히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더니 두리번거리며 달려가는 택기와 지현.
지 현 (두리번거리며 가는) 경민 오빠!
택 기 (둘려보며 가는) 수진아!
S#15. 숲속 다른 일각 (낮)
지현과 택기 달려오면, 처참한 몰골의 경민과 수진이 막 또랑을 기어 나오고 있다. 경민오빠! 수진아! 놀라서 부르며 재빨리 달려가는 지현과 택기. 지현은 경민에게, 택기는 수진에게로 간다. 지현아! 택기야! 둘, 둘씩 네 사람 상봉하는데...
지 현 (경민을 부축하며) 오빠 괜찮아?
경 민 넌 괜찮니? 별일 없었구? (하면서 택기를 보고, 차마 말은 못하며 재채기)
지 현 어머, 오빠 감기 들었잖아?
자기도 모르게 얼른 입고 있던 택기 옷을 벗어 경민에게 덥어주는 지현. 택기 이 모습을 보면서 괜히 심술이 난다.
택 기 (경민에게 덮어준 옷을 확 뺏으며) 이거 내 옷이야. (그 옷을 수진에게 덮어주며) 니 괘않나? 이거라도 입어라.
수 진 (거의 탈진상태) 택기야, 별일 없었지? (하면서 희미한 눈동자 지현을 응시하면)
택 기 무슨 일?
수 진 됐어. 아무 일도 없었다니, 다행이네.
힘없이 웃는 수진.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스르르 정신을 잃고 택기 품에 쓰러진다.
택 기 (놀라서 수진을 안으며) 수진아! 수진아!!
S#16. 시골집 마당 (낮)
수진을 업고 마루로 달려 들어오는 택기. 병달과 지현가족들이 놀라서 보고 달려온다.
(영란은 명구와 마루에서 콩깍지 까고 있다가 얼른 수진에게 자리 비켜주고)
병 달 이기 무신 일이고?
택 기 (수진을 마루에 눕히며) 모르겠습니더. 일단 몸을 따뜻하게 좀 녹여야겠심더. (재빨리 자기 방으로 뛰어가고)
지현모 아니, 우리 지현이는? (뒤 돌아보면)
이때 지현이 경민을 부축하며 걸어 들어온다. 지현가족들 지현이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가고.
지현모 아이구, 이것아! 기집애가 겁도 없이 어딜 산엘 혼자 들어가?
지 현 미안해, 엄마.
경 민 (그 와중에도 처참한 미소로 인사) 안녕하셨어요?
지현부 (경민에게)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우리 지현이 땜에 괜히.
지현모 그러게. 닥터 김이 우리 지현이를 구해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이때 급히 이불을 들고 나와 수진을 덮어주는 택기. 택기 급히 이불 덮은 채로 수진의 몸을 주물러 녹여주는데,
지 현 (그 모습 보고는, 경민에게) 오빠. 오빠가 수진씨 한번 봐 줘.
경 민 그래.
지저분한 몰골로 수진 앞으로 가서 앉는 경민.경민, 수진의 눈을 뒤집어 보고, 손목의 맥박을 재며 시계 본다.
택 기 좀 으떻습니꺼?
경 민 큰 이상은 없는 거 같은데요? 갑자기 긴장이 풀어져서 탈진한 거 같으니까, 오늘 하루 푹 쉬면서 안정을 쉬하면 좋아질 거예요.
병 달 (마음 조린) 아이구. 다행이네.
경 민 (멋쩍게 돌아보며) 그런데 밥 좀 없나요? 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더니.
경민의 뱃속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 요동치며 강렬하다.
S#17. 동 시골집 마루 (낮)
평상에서 밥을 와구와구 먹고 있는 경민. (세수만 한 정도) 지현모가 안쓰러운 듯 바라본다.
지현모 세상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경 민 (밥공기 딱딱 긁으며) 혹시 밥 남는 거 없나요?
지 현 (샤워했는지, 수건으로 머리 닦다가) 어, 잠깐만. 내가 퍼올게. (부엌으로 간다.)
경 민 (국그릇 들고 돌아보며) 국도 좀.
지현모 (지현에게 대고) 지현아! 고깃국도 더 퍼 와라!
영 란 국은 없는데? 아까 쫌 남아있던 거 형님이 다 드셨잖아요. 두 그릇이나.
순간 인상 구겨지며 영란을 쫙 째리는 지현모. 경민을 보고는 헤벌쭉 웃는다.
S#18. 택기 방 안 (낮)
침대에 반쯤 몸을 일으키고 베개에 기대어 앉아있는 수진. 택기가 수진에게 죽을 떠먹인다. 후후 불어 식힌 후 정성껏 떠먹이는 택기.
수 진 (희미하게 웃으며) 택기야. 미안해.
택 기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수 진 응. 속에 뭐가 좀 들어가니까, 살 것 같다.
택 기 그러게 마할라 산에는 따라 왔어? 몸은 약해가지고, 산도 잘 타지도 못하는 기.
수 진 됐어. 그만 먹을께.
택 기 좀 더 먹어. (더 먹여주고)
수 진 아니야. 이제 가봐야지. 내일 세미나 준비도 해야 되는데. (하지만 받아먹고 있고)
택 기 이거 다 먹고 누워있다 천천히 가. (또 떠먹이고)
이때 창밖으로 지나가던 지현이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곤 멈춰 선다.
S#19. 동 택기 방 창문 밖 (낮)
창문을 통해 방 안의 택기와 수진 모습을 쳐다보는 지현. 휴지로 수진의 입도 닦아주고, 후후 불어 죽을 떠먹이는 택기. 다정해 보인다.
지 현 (혼잣말) 지극정성이네, 지극정성.
이때 뒤에서 나타나 이런 지현을 툭 치는 지현모.
지현모 너 뭐해? 닥터 김 가는데?
지 현 응? (돌아보면)
대문가에서 경민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지현을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제야 서둘러 경민을 따라 나가는 지현.
지현모 쟤가 왜 저래? (문득 택기 방안과 지현을 번갈아 본다.)
이상하다는 감을 잡는 지현모.
S#20. 동 시골집 앞 (낮)
경민이 시계를 보며 바삐 차를 향해 걸어오면,
지 현 (따라오며) 오늘 일요일인데 꼭 이동진료 나가야 돼? 쉬지도 못하고 피곤해서 어떡하냐?
경 민 (피곤하지만) 괜찮아. 난 남자잖아. (의미심장하게) 넌 정말 괜찮아?
지 현 응? 괜찮아.
경 민 (반지 낀 지현의 손을 잡으며) 어제 별일 없었지?
지 현 (경민이 만지작거리는 손의 반지가 보이고) 응.
경 민 (심각하게)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별별 생각이 다 들고?
지 현 미안해. 오빠.
경 민 (쳐다보다) 이런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나 솔직히 니가 장택기 저 사람이랑 같이 농사짓는 게 마음에 걸린다.
지 현 오빤? 왜 그런 소릴 해.
경 민 일단 씻고 빨리 가봐야 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저녁 때 다시 올게.
경민, 지현의 손을 놓고 차로 들어가고, 급히 출발한다. 지현 내심 고민이 되는 표정으로 돌아선다.
S#21. 지현방 (낮)
거울을 보며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빗고 있는 지현. E. 갑자기 시냇물 소리, 풀벌레 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들려오더니, 방안 가득 가슴 저릿하게 커지며 스쳐지나간다.
Insert. - 잠이 든 택기의 등을 보며, 택기의 머리칼을 만져주려다가 그만두던 지현.
소리들 사라지고, 멍하니 거울 속을 보고 있는 지현. 이때 지현모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지현의 옆에 앉는다.
지현모 너 어제 어디서 잤어?
지 현 응? 텐트에서. (머리 빗는데)
지현모 저 놈은 어디서 자구?
지 현 어? (말 돌리며) 엄마, 자꾸 이놈 저놈 하지 마. 택기씨 좋은 사람이야.
지현모 좋은 사람? 너 왜 이래? 저 사람하구 아무 일도 없었지?
지 현 일은 무슨 일? 왜들 그래?
지현모 닥터 김도 엄청 기분 안 좋은 눈치던데? 너 자꾸 닥터 김 신경 쓰이게 하지 마.
지 현 뭐가 신경이 쓰여?
지현모 세상에 자기 여자가 다른 놈이랑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할 남자가 어딨어?
지 현 돼지 잡으러 간 건데, 뭘?
지현모 돼지는 무슨 돼지! 그 놈이랑은 아무 것도 하지 마! (심상치 않게) 그러고 보니까 너 좀 이상해?
지 현 뭐가?
지현모 아무튼 농촌총각은 절대 안돼. 쳐다도 보지 마!
지 현 (할말 없다. 입 꾹 다물었다가) 근데 엄만 왜 또 내려왔어?
지현모 포도밭이 엉뚱한 년한테 넘어가게 생겼는데, 그럼 가만히 있니? (답답하다는 듯) 영란이 저 년이 왔으면 진작에 나한테 전화부터 할일이지, 너 혼자 어떻게 당할라구 이러구 있었어?
지 현 포도밭은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거야. 엄만 좀 가만히 있어.
지현모 알아서 하시긴 뭘 알아서 하셔? 어떻게든 저년을 내쫓아야지. (밖으로 나간다.)
한숨쉬며 고개 돌리는 지현.
S#22. 시골집 부엌 (낮)
가스레인지 위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요리를 하고 있는 영란. 지현모가 영란의 옆에 와 선다.
지현모 (영란에게) 어머? 냄새 좋다. 북어국 끓이나부다?
영 란 (겉으로는 함박웃음) 아버님께서 좋아하셔서요. 들어가 쉬세요, 형님.
지현모 아니, 내가 왜 자네 형님이야?
영 란 그럼 동생인가요?
지현모 (괜히 부엌칼 들고 북어 대가리라도 치며) 자네가 갑자기 여길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포도밭은 우리 지현이 꺼야. 알아?
영 란 (뜨거운 김이 솟는 솥을 번쩍 들더니) 그건 우리 명구가 없었을 때 얘기죠. 할아버지 유산을 당연히 손주가 물려받아야지, 왜 먼 친척 딸래미가 받는대요? 그것도 시집가면 그만인 딸이?
지현모 (위협을 느끼고) 아니, 이 여자가?
영 란 이 여자라뇨? 말씀 조심하세요, (힘주며) 형님!
지현모 (양손에 북어대가리와 식칼 든 채) 아니, 지금 해보자는 거야, 뭐야?
뜨거운 솥과 북어 대가리를 들고 서로 노려보는 영란과 지현모. 분위기 자못 심각해지는데, 이때 병달이 부엌으로 온다.
병 달 둘이 뭐 그래 시끄럽노?
지현모 (당황, 칼과 북어 내려놓고) 별일 아니에요. 숙부님.
영 란 한동안 못 봤더니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안 그래요, 형님?
지현모 그럼, 동서!
영란과 지현모 과장되게 웃는데,
병 달 내 물 한잔 도고.
네! 동시에 대답하며 돌아서서 분주하게 물잔을 챙기는 지현모와 영란. 지현모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영란은 싱크대의 주전자에서, 각자 재빨리 물을 따른다. 또 동시에 돌아서서 병달에게 물잔을 내미는 지현모와 영란.
지현모 물 여깄어요, 숙부님.
영 란 아버님, 여기 물!
두 개의 물 대접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의 병달.
지현모 이게 더 시원해요. 냉장고에서 나온 물이라.
병 달 내는 이가 시려버가... (영란의 물잔을 잡는다.)
영란 슥 웃고, 지현모는 표정 구겨지며 머쓱한 억지 미소 짓는다.
S#23. 동 시골집 마당 (낮)
지현모 잔뜩 짜증나는 표정으로 부엌에서 나오면, 지현부가 명구를 무등까지 태워서 신나게 놀고 있다. (지호는 평상에서 공부하고 있고)
지현모 아니, 여보! (쫓아가서 등을 때리며) 어이구 살판났네, 살판났어! 뉘 집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를. 당장 못 내려놔요?
지현부 아니 왜 애한테 왜 그래?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구... (명구 내려놓는데)
지현모 (명구에게) 너 나가서 놀아!
명 구 (삐쭉거리며 지현모의 눈치를 보는데)
병 달 (부엌에서 나오며) 누가 우리 맹구한테 뭐라카노?
지현모 찔끔해서 돌아보면,
병 달 맹구야. 니 내하고 마실갈래?
영 란 (얼른 와서 명구 손 병달에게 잡혀주며) 그래, 명구야. 할아버지 따라 갔다와라.
병달, 명구의 손을 잡고 나가면,
지현모 아니, 저기. (말리지도 못하고 불안하게 쳐다보는데)
영 란 (의기양양해서) 아주버님도 오시고 했는데, 저도 읍내 나가서 장 좀 봐올게요, 형님. (기분 좋게 나간다)
지현모 저 여시가? 아이구, 아이구, 어떡해요?
지현부 뭘 어떡해?
지 호 엄마. 내가 재롱이라도 떨어서 할아버지 마음을 사로잡아 볼까? 나도 손주잖아!
지현모 넌 빨리 가방이나 싸. 내일 학교 갈라문.
S#24. 서울, 빌딩 앞 일각 (낮)
도우미 차림의 은영이 빌딩 화단에 걸터앉아 전화를 하고 있다.
은 영 (놀라며) 뭐? 장택기 그 남자하고 텐트에서 잠을 잤다고? 야, 너 왜 그래? (사이) 뭐? 낭만적? 너 그러다 진짜 클 나!
S#25. 시골집, 지현방 (낮)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하고 있는 지현.
지 현 나 이미 클났어.
은 영 (E) 얘가? 안 돼. 너 그 남자 어디가 좋니?
지 현 그 남자 손은. 축구선수 박지성이 발하고 똑같애.
S#25-1 서울, 빌딩 앞 일각 (낮)
은 영 (전화) 그건 또 뭔 씨 나락 까먹는 소리니?
S#25-2 시골집, 지현방 (낮)
지 현 (전화) 맨날 살집만 해서 손금도 안보이고, 꺼칠꺼칠하고 뭉뚝한 게... 그 사람 손만 보면 정말 마음이 찡해.
S#25-3 서울, 빌딩 앞 일각 (낮)
은 영 (전화) 얘가? 너 정신 차려! 넌 손이 부드러운 남자를 좋아했잖아!
S#25-4 시골집, 지현방 (낮)
지 현 (전화. 자기도 속상한) 그래! 근데 자꾸 택기씨의 거친 손이 좋단 말이야. 어쩌지? 너무 괴로워.
은 영 (E) 그럼 너 경민오빠는 싫으니?
지 현 아니, 싫다기보다는. 경민오빠는 비가 내리면 멋진 우산을 사다줄 수 있는 남자야. 택기씨는 비가 내리면 같이 비를 맞아주는 남자구. 나 옛날엔 멋진 우산을 사주는 남자가 좋았는데, 지금은 같이 비를 맞아주는 남자가 더 좋아. 어떡하지?
S#26. 택기방 앞 마당 (낮)
수진이 나오면 따라 나오는 택기.
택 기 좀더 쉬었다가 가지.
수 진 아냐. 내일 중요한 세미나가 있어. 가서 준비해야지.
택 기 니 운전할 수 있겠나? 내가 태워다 줄게.
수 진 아니야. 혼자 갈게. 너두 피곤할 텐데, 잠깐 눈 좀 붙여. 나 땜에 쉬지도 못했잖아.
그대로 수진 바삐 나가고, 바라보다 돌아서는 택기. 문득 어젯밤 텐트 안에서 지현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지 현 (E) 그럼 우리 잠도 안 오는데 얘기나 할래요?
Insert. - 택기 쪽으로 돌아눕더니, 아주 가까이에서 택기를 바라보며 귀엽게 웃던 지현.
생각에 빠져 살픗 미소가 떠오르던 택기. 이내 얼른 미소 지우고는 밭에 갈 채비를 한다.
S#27. 동 마당 지현 방 앞 (낮)
밭에 가는 차림으로 지현방 앞으로 다가온 택기.
택 기 (방문에 대고, 평소보다 어색하게) 안에 있나? 밭에 안 가나?
지 현 (방문 열고 나타나) 네?
택 기 (쳐다보지 않고) 빨리 나와. 밭에 가게. (바로 돌아서서 박스 챙기면)
지 현 아니. 오늘도 밭에 가요? (마당으로 나오며 택기방 보며) 수진씨는요?
택 기 어? 갔다.
지 현 왜? 여기서 병수발 받고 며칠 누워있지 않고?
택 기 씰데없는 소리 말고 빨 나와.
지 현 오늘 하루는 좀 쉬면 안돼요? 어제 한숨도 못 잤는데?
택 기 한숨도 못자긴 뭘 못자? 누가 없어가도 모르게 쿨쿨 잘만 자더만.
지 현 누가 쿨쿨 잤다 그래요?
택 기 내가 다 봤는데?
지 현 (눈 동그랗게 뜨고) 그럼, 잠도 안자고 남 자는 얼굴만 밤새보고 있었어요?
택 기 (뜨끔해서) 빨리 나와. 내일 아침 일찍 집하장에 출하할 포도, 오늘 다 따놔야 돼. 어제도 일을 못해가, 오늘 밤 새야 할 끼야. (박스 들고 나가면)
지 현 네? 밤을 또 새요? 누굴 철인으로 아나? (박스 들고 따라 나간다)
S#28. 포도밭 (낮)
싱그럽게 익어가는 포도송이들을 따고 있는 아낙들. 지현과 택기가 장갑을 끼며 들어선다.
택 기 안녕들 하셨어요?
명 숙 아니 왜들 벌써 올라와? 하루 푹 쉬지.
지 현 어떻게 그래요? 일손 딸리는 거 뻔히 아는데... (포도송이 따며) 어머! 하루 못 본 사이에 색이 더 진해졌네? 단내도 더 풍기고?
이장댁 (지현과 택기에게 다가와 은근하게) 그런데, 워째 두 사람 안색이 좀 안 좋네? 얼굴이 누렇게 뜬 게 한잠도 못 잤나벼?
지 현 네?
이장댁 둘이 어젯밤에 뭔 일 있었던 거 아녀?
지 현 (깜짝 놀라) 무슨 일이요?
이장댁 어머, 놀라는 거 보니까 뭔 일이 있기는 있었는 갑네?
택 기 저 가시나하고 무신 일이 있다 말입니꺼? 거 씰데없는 소리 마시고, 포도나 빨빨 따이소. (다른 데로 가면)
명 숙 어머, 화내는 거 보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낙들의 웃음소리 커지고, 지현 괜히 어색하다.
S#29. 마을 회관 앞 (낮)
명구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병달. 평상위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던 박영감이 병달을 발견한다.
박영감 병달이 저 눔 옆에 누구여?
송할멈 글쎄요?
병 달 (노인들 앞으로 명구 데리고 오더니) 명구야, 인사드려라. 할배 친구분들이시다.
명 구 (수줍게) 안녕하세요.
박영감 누구냐?
병 달 내 손자다. 으떠냐? 잘 생겼자?
박영감 니가 손자가 워딨냐?
병 달 내 손자라 카이.
송여사 어머, 그럼? 얘가 종만이 처가 데려왔다는 그 애에요? (유심히 보는데)
병 달 으때? 내를 딱 빼다 박았지?
그 말에 송여사와 박영감 등 노인들 명구를 뜯어보는데,
송할멈 아이구, 할아버지를 꼭 빼다. (병달과 명구를 번갈아 보더니) 닮은 데가 없네?
병 달 와 닮은데가? 어? 이 키 작은 거, (손으로 명구 눈을 쫙 찢어 보이며) 눈 쫙 째진 거! 딱 내를 빼다 박았지.
박영감 (혀를 끌끌 차며) 병달이 너도 참 순진허다. 아, 영란이 걔가, 애가 있었어봐라, 그때 벌써 데리고 왔지. 이제 와서 손줍네 하고 데리고 온 게 말이 되냐? 그게 다 니 집 포도밭이 탐나서.
병 달 (빽) 시끄럽다, 이놈아! 내가 손주라카믄 손준 기제, 뭔 말들이 많나? (명구 끌고 가며) 가자!
병달이 명구를 데리고 가자,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사람들.
송할멈 (박영감에게) 영감님도 참. 어떻게 그런 말을 면전에다 대구 허세유?
박영감 친구니까 해주는 말이지. 병달이 저 눔도 큰일이네. 여우같은 거한테 홀려가지구, 포도밭 다 넘겨주게 생겼네...
S#30. 마을 골목 (낮)
명구의 손을 잡고 씩씩대며 걸어오는 병달.
병 달 저런 망할 눔의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명 구 (뛰듯이 손 잡혀 끌려오며) 할아버지 좀 천천히 가요.
병 달 응, 그래. (명구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니, 내 말 잘 들어라. 누가 뭐라 캐도 니는 내 손자다. 알것제?
명 구 네, 할아버지.
병 달 (등을 대며) 다리 아프지? 업히라.
명 구 괜찮아요.
병 달 업히라믄 업히라. 내 니를 몇 번이나 더 업어 주겠노...
쭈삣대며 업히는 명구. 병달 끙!하며 힘들게 일어서더니 명구를 업고 간다. 명구도 막상 업히자, 기분이 좋은 듯 히죽 웃는다.
병 달 할애비가 업어주니까, 존나?
명 구 네.
병 달 그래, 가자.
병달이 사라지고 나자, 골목 뒤에서 지현가족들이 나타난다. 저마다 하드, 쭈쭈바 하나씩들 물고 있다. (지호는 서울 갈 가방을 매고 있고) 놀란 표정으로 명구를 업고 가는 병달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지현가족들.
지현모 아니, 숙부님이 왜 저러시죠? 노망이 나셨나?
지현부 어린애니까 좀 업어주고 싶으신 가부지.
지 호 어떡하지? 나두 업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지현부 근데 생각보다 숙부님이 명구를 많이 좋아하시네?
지현모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큰일 났네?! 이러다 정말 포도밭 그년한테 넘겨주시는 거 아니야?
지 호 엄마. 난 기차시간 늦겠다.
지현부 그래, 어서 가.
지현모 혼자 밥 잘 챙겨먹고 학교 갈 수 있지?
지 호 걱정 마. 엄마나 잘해! 파이팅! (간다.)
S#31. 읍내 부동산 사무실 (낮)
영란과 홍철, 황동춘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고 있다.
홍 철 누님. 일단 포도밭부터 명구 앞으로 해 놔야 된다니께유?
영 란 (뭔가 주저하며) 그래두. 아직은 내가 온지도 얼마 안됐구.
홍 철 그냥 누님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되유.
황동춘 맞아요. 이 쪽으론 우리가 전문가라니까.
영 란 그래두. 어떻게 땅문서를? 쫌만 기다리면 땅문서는 저절로 내주실 것 같은데?
홍 철 자신 있슈?
영 란 자신? (자신은 없다)
황동춘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머리를 더 바짝 모으더니, 소곤소곤 대는 세 사람.
S#32. 시골집 안방 (밤)
문이 열리고 지현모가 들어온다.
지현모 저기 숙부님.
병 달 와? 무신 일이고?
지현모 (앉으며) 저기. 숙부님께 뭐 하나 여쭙고 싶어서요.
병 달 내헌테? 뭘?
지현모 저기 우리 지현이한테 1년 간 와서 농사지으면 포도밭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병 달 응? 어. 그래, 그랬지.
지현모 저기, 지금이라도 그 약조를 종이에다 각서루 써주시는 게.
이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영란이 나타난다.
영 란 아버님. 식사하세요.
병 달 (지현모를 피해 슥 일어나는 기색) 그래. 밥 먹자.
병달이 나가자, 아무래도 찜찜한 표정이 되는 지현모.
S#33. 시골집 마당 (밤)
서로 말없이 저녁만 먹고 있는 지현부, 지현모, 영란. 병달은 명구에게 반찬을 챙겨주고, 명구가 먹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
영 란 아이구, 아버님. 아버님 드시라고 한 건데요, 아버님 드세요.
지현모는 영란과 명구가 아주 눈에 가시고 죽을 맛인데, 이때 경민이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온다.
경 민 식사들 하고 계셨어요?
지현모 (화들짝 일어나며) 아니! 닥터 김이 또 웬일이야?
경 민 아침에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거 같아서요.
지현모 아이구, 뭘 또 이런 걸 사왔나? 바쁠 텐데...
지현부 저녁은? 안했으면 같이 들지?
경 민 먹었습니다. (두리번거리며) 근데 지현이는요?
영 란 (얄밉게 끼어들며) 택기하고 둘이 포도밭에 있을 거예요. 오늘 밤새 포도 따야 된다는 거 같던데...
경 민 (얼굴빛이 안 좋아지며) 아. 그래요?
지현부 (영란이 못마땅하다. 얼른 경민에게) 아니, 저기. 포도 주문 들어온 게 밀려서. 우리도 저녁 먹고 올라가 볼 참이야. 우리하고 같이 가세.
S#34. 포도밭 (밤)
곳곳에 플라스틱 박스들 놓여있고, 지현과 택기가 열심히 포도를 따 플라스틱 박스에 넣는다.
지 현 이걸 언제 다 따지? 따도따도 박스가 안차네?
택 기 내일 아침에 집하장에 보낼 거니까, 오늘 밤새 다 따놔야 돼. 니 밤이라고 대충대충 따지마. 안 익은 거까지 따면 안돼.
지 현 알아요. 잘 익은 거만 골라서 따고 있단 말이에요. (딴 포도 보고 히죽 웃으며) 그래도 포도 딸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죠?
택 기 그럼. 빌게이츠의 재산도 안 부럽지. (히죽 웃고는 돌아서서 따는데)
지현 잘 익은 포도를 고르느라 높은 가지에 달린 포도를 보며 발돋움 하고, 뒷걸음질해서 포도를 잡고는 따려고 돌아서서 좋은 자세 잡으려는 순간, 이때 다른 포도를 따려고 획 돌아서던 택기와 부딪치고, 넘어지는 두 사람. 지현이 택기 밑에 깔린다. 서로를 끌어안는 형국이 되어, 순간 서로를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데... 이때 포도밭으로 들어오던 경민과 지현모, 지현부. 두 사람을 보고 놀라서 멈춰 선다. 지현과 택기도 놀라서 고개 돌리면, 서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
지현모 얘, 지현아!
얼른 떨어져 일어나는 지현과 택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경 민 (기분 나쁜 표정으로 걸어와 지현 손목 잡아끌며) 나하고 얘기 좀 하자.
경민에게 손목을 잡혀 택기를 비껴 지나가는 지현. 지현을 돌아보는 택기.
지현모 (택기에게) 자네도 나 좀 보지. (경민과 반대쪽으로 가면)
조용히 지현모를 따라가는 택기.
S#35. 동 포도밭 일각 (밤)
지현의 손목을 잡아끌고 오는 경민. 엄청 화가 나있다.
지 현 왜 그래, 오빠? 오빠가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경 민 (손놓고 쳐다보면)......
지 현 (눈이 마주치자 주춤 시선 피할 뿐)......
경 민 (꾹 참고 또 참는 기색) 나 너한테 진짜 이런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화를 참느라, 한숨) 너 내일 당장 부모님 따라서 서울 올라가.
지 현 (보면) ?
경 민 포도밭 안 받아도 좋으니까, 서울에 올라가라구. (화를 참느라 한숨)
지 현 오빠?
경 민 솔직히 나도 처음엔 니 포도밭에 관심 있었던 거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은 니가 저 놈하고 같이 농사짓는 게 싫어.
지 현 (당황) 저기, 오빠, 저 사람하고 난 그냥 농사 파트너야.
경 민 농사 파트너구 뭐구, 난 니가 저 놈하구 같이 있는 게 싫다구. 그러니까 농사짓지 마. (이내 다른 곳 보며 씩씩댄다)
지 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머뭇거리다) 저기, 오빠. 난 농사짓고 싶어!
경 민 뭐?
지 현 솔직히 나 포도밭 못 받을지도 몰라. 그래도 농사 끝까지 짓고 싶어!
경 민 저 놈 때문이니? 저 놈 때문에 여기 있겠다는 거야?
지 현 아니야.
경 민 그런데 왜? 그 힘든 농사를 뭐 하러 지어? 내가 포도밭 필요없다잖아!
지 현 나 솔직히 어떤 날은 밭에 가기도 싫어. 농사짓는 거 너무 힘들고, 정말 하기 싫은 날도 많아. 하지만 이제까지 태어나서 내 힘으로 뭔가를 해본 건. (경민을 보며) 이번이 처음이야!
경 민 (볼 뿐)......
지 현 내가 흘린 땀으로 키운 포도를... 한 송이 한 송이 딸 때마다, 참 행복해.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난, 내가 길러낸 포도 한 송이가 정말 자랑스러워! 그 순간만은 정말 기뻐!
경 민 ......
지 현 땅과 상관없이 올해 포도농사 내 힘으로 끝까지 해보고 싶어.
경 민 (답답해서) 지현아!
지 현 오빠. 비싼 돈 들여서 해외 오지체험도 가는 마당에, 몇 달 간 할아버지 포도농사 좀 그냥 짓는다고 내 인생에 무슨 큰 손해 날 일은 아니잖아! 오빠만 이해해준다면, 나 농사 마치고 올라갈게.
경 민 차라리 내가 돈을 줄 테니, 해외 오지체험을 갔다 와! 나 다음주면 서울 가는데, 널 어떻게 저 놈하고 같이 여기 두고 가니?
지 현 (실망해서) 오빤 정말 내말이 이해가 안돼?
경 민 난 니가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대로 가버리는 경민. 안타깝게 쳐다보는 지현.
S#36. 포도밭 다른 일각 (밤)
택기에게 말하고 있는 지현모.
지현모 내가 일전에도 부탁한 적 있지요? 우리 지현이한테 각별히 조심해 달라구?
택 기 예.
지현모 혹시 우리 지현이한테 무슨 딴 마음 품고 있는 건 아니지요?
택 기 ......
지 현 이상하네? 왜 대답을 못해요?
택 기 (시선 피하며) 아닙니다.
지현모 우리 지현이는 의사한테 시집갈 사람이에요.
택 기 ......
지현모 혹시나 해서 이 자리에서 분명히 얘기하는데, 우리 지현이한테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택 기 !
지현모 물론 같이 일하다 좀 친해질 수도 있어요. 우리 지현이야 철이 없어서 그런다지만, 댁은 나이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면 안 되잖아요?
택 기 죄송합니다.
지현모 앞으로 우리 지현이한테 처신 확실하게 한다고, 지금 내 앞에서 약속을 해줘요.
택 기 ......
지현모 어서요!
택 기 약속 드리겠습니다.
지현모 그 약속 믿을게요. (먼저 가면)
꾸뻑 인사하고는 야속하게 쳐다보는 택기.
S#37. 포도밭 원두막 (밤)
둘러앉아 포도를 종이에 싸서 포장하는 지현과 지현모, 지현부, 택기. 굉장히 어색하게 아무 말도 없이 포도만 싸고 있다. 지현, 택기를 힐끔 보면, 택기, 시선도 주지 않고 묵묵히 포도만 싸고 있다. 이때 지현부와 지현모가 동시에 하품을 한다.
지 현 들어가서 주무세요. 새벽에 내려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지현모 (택기 힐끗 보며) 아니다. 너하고 둘만 두고 어떻게 들어가니? 우리도 같이 해야 빨리 끝나지. (또 하품하면)
지 현 참 내. 들어가라니까.
택 기 (지현에게) 그냥 부모님 모시고 들어가. 내 혼자 할게.
지 현 아니에요. 택기씨 혼자 이 많은 걸 어떻게 다해요.
지현부 포도가 다 떨어져 가네?
택 기 아, 예. (빈 박스 들고 일어서면)
지 현 (일어나며) 같이 가요.
지현모 (얼른 지현을 잡아 앉히며) 넌 그냥 여기 있어. (하품 또 하고)
지 현 (지현모에게) 왜 그래?
다시 앉으면서 택기와 시선이 마주치는 지현. 택기 말없이 그냥 내려간다.
S#38. 연구소 안 (밤)
모두 퇴근을 하고 아무도 없는 연구실 안. 성분분석기를 작동시키던 수진이 돌아서는데, 문득 어지럼증을 느끼는지 책상을 집으며 휘청한다.
수 진 어?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이내 바닥에 푹 쓰러지는 수진. 책상 위의 수진 핸드백도 바닥으로 쏟아진다.
S#39. 포도밭 원두막 (밤)
포도를 가득 따가지고 원두막으로 올라가는 택기. 이때 택기의 핸드폰 울리면, 쳐다보는 지현. 택기 전화를 받는다.
택 기 여보세요.
수 진 (E. 기운 없이 희미한 목소리) 택기야. 나 몸이 이상해. 지금 빨리 와 줄래?
택 기 뭐? 몸이 어떻게 이상한데? 지금 어데고?
수 진 (E) 연구소야. (수화기를 놓쳤는지, 둔탁하게 핸드폰 떨어지는 소리 들리고, 멀어진 음성) 택기야.
택 기 여보세요! 수진아!
지현, 쳐다보는데, 택기, 이내 달려 나간다. 택기를 보며, 자기도 몰래 벌떡 일어나는 지현.
지현모 (얼른 지현을 잡아 앉히며) 얘가 왜 이래?
어쩔 수 없이 다시 앉는 지현. 왠지 불안하게 택기를 돌아본다.
S#40. 달리는 트럭 안 (밤)
급하게 운전하는 택기.
S#41. 지현방 (밤)
경쟁이라도 하듯 쌍벽의 하모니를 이루며 코를 골고 자고 있는 영란과 지현모. 어둠속에서 지현이 지현모가 깨지 않게 살짝 일어난다. 핸드폰을 챙겨들고, 조심조심 밖으로 나가는 지현.
S#42. 시골집 마당 (밤)
마당으로 나온 지현. 창문으로 불이 꺼진 택기방을 살짝 들여다본다. 침대에 지현부가 자고 있고, 2층은 텅 비어있다. 집 밖을 내다보며, 서성이는 지현. 이내 전화를 걸어본다.
지 현 (한참을 기다리다 끊으며) 왜 전활 안받아? 핸드폰은 폼으로 갖고 다니나?
S#43. 병원 응급실 (밤)
누워있는 수진. 링거를 꽂은 채 잠들어 있다.
의 사 최근에 무리하거나 힘드신 일 있으세요?
택 기 아, 예. 조금.
의 사 (차트 넘겨보며) 원래 빈혈이 좀 있으시네요. 다행이 혈색소 수치는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구요. 며칠 안정을 취하셔야겠어요.
택 기 정말 별일은 없는 거지요?
의 사 네. (간다.)
수진을 보는 택기. 핸드폰을 열어보면, 화면에 양심에 털난 여자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가 많이 떠 있다. 굳은 표정으로 폴더를 덮는 택기.
S#44. 시골집 마루 (밤)
마루 끝에 전화기를 끌어다 놓고, 그 옆에 앉아있는 지현. 공연히 수화기를 들어서 확인을 하고 다시 내려놓는다.
지 현 고장은 안 났는데? 왜 전화를 안 해?
이때 택기방에서 나오는 지현부.
지현부 안 자니?
지 현 아빠. 왜 안주무시고 나왔어요?
지현부 (지현 옆에 와 앉으며) 어. 밖에서 니 소리가 나길래. 택기 이 친구는 오늘 안 들어올 모양이네?
지 현 (마치 관심 없다는 듯) 안 들어오거나 말거나.
지현부 (괜히 그런 지현을 보더니, 모르는 척) 지현아, 너 혹시 무슨 고민 있니?
지 현 아니. 왜?
지현부 그냥. 그렇게 보여서. (싱겁게 히죽 웃고는) 지현아, 아빤 항상 니 편이다. 알지?
지 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현부 그냥. 니가 무슨 결정을 하든 아빠는 널 믿는다고.
지 현 맨날 철딱서니 없다고 엄마한테 혼나기만 하는데?
지현부 엄마도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거 알지?
지 현 응.
지현부 철딱서니 없기는 니 엄마가 더 하지 않니?
지 현 (씽긋 웃으며) 그건 맞어.
지현부 (일어서며) 들어가 자. 나도 자야겠다.
지 현 주무세요.
지현부 들어가고, 혼자 앉아있는 지현. 이때 마루위의 전화벨이 울린다. 잽싸게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드는 지현.
지 현 (다급히) 여보세요!
택 기 (E) 내다. 영감님 주무시나? 좀 바까봐라.
전화벨 소리에 병달 문 열고 내다보면, 돌아보던 지현과 눈이 마주친다.
지 현 (할아버지 힐끗 보며) 지금 주무시는데요.
병 달 (지현에게) 누고? 택기가?
지 현 (수화기 막은 채, 병달에게 작게) 엄마한테 온 전화에요.
병 달 느그 엄마를 누가 예서 찾는 단 말이고? (이상하다는 듯 문 닫고 사라지면)
지 현 (전화에 대고) 왜 전화는 안받고 그래요? 내가 전화를 얼마나 한 줄 알아요?
택 기 (E) 내 오늘 못 들어간다.
지 현 왜요? 왜 못 들어와요?
택 기 (E) 못 들어간다면 못 들어가는 줄 알아. 영감님 걱정하시니까 전해 둬. (찰칵)
지 현 여보세요! (수화기 내려놓으며) 자기 할말만 하고 끊냐?
S#45. 병원 응급실 (밤)
잠든 수진 보며,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는 있는 택기.
Insert. - 택기를 앞에 세워놓고 다짐을 받는 지현모.
지현모 앞으로 우리 지현이한테 처신 확실하게 한다고, 지금 내 앞에서 약속을 해줘요.
택 기 ......
지현모 어서요!
택 기 약속 드리겠습니다.
택기, 생각을 지우려는 듯 착잡하게 고개를 드는데,
이때 부르르 떨리는 소리 들리고, 진동으로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는 택기.
보면, 지현이 보낸 메시지가 떠있다.
지 현 (E. 메시지) 내일 아침 일찍 포도 집하장 가는 거 알죠? 트럭 꼭 가지고 와야 돼요? 기다릴게요. ^^*
S#46. 시골집 마당 (밤)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시무룩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현. 까만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난다.
S#47. 지현 방 (새벽)
영란과 지현모는 잠들어 있고, 누워서 눈을 깜빡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보는 지현. 창문 밖이 파랗게 밝아오고 있다. 꼬끼요! 닭 우는 소리 들린다.
지 현 (일어나 앉고는, 혼잣말) 안 들어올지 모른다더니, 진짜 안 들어 왔네?
S#48. 병원 응급실 (새벽)
수진의 침대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택기. 언제 일어났는지, 수진이 택기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S#49. 포도밭 길가 (새벽)
쌓여있는 포도박스 앞에 서서 서성이는 지현. 시계를 보더니, 택기를 찾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이때 멀리서 트럭 한대가 달려오면, 자기도 몰래 손 번쩍 들며 환하게 미소 짓는 지현.
하지만 달려온 트럭 안엔 모르는 사람이 타 있고, 쌩! 먼지를 내며 지현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시무룩한 표정의 지현. 안되겠는지 혼자 경운기에 포도박스를 싣는다.
S#50. 읍내 가는 길 (아침)
포도박스가 가득 높이 실려 있는 경운기를 몰고 가는 지현. 지현의 옆으로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등교길의 학생들, 바구니를 이고 가는 할머니 등. 지나가는 사람들도 젊은 여자가 경운기를 모는 풍경이 신기한지, 지현을 쳐다본다.
S#51. 집하장 (아침)
컨베이어 벨트에 포도송이들 담긴 박스들이 차례로 실려 올라간다. 지현이 포도박스를 저울에 올려놓으면, 무게를 장부에 기록하는 직원. 무게를 잰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는 지현. 직원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올라가는 포도송이를 하나 집어 든다. 포도를 잘라 당도를 측정하는 직원.
직 원 (당도계 보며) 당도도 좋고, 작년보다 수확량이 많겠네?
지 현 (좋아하며) 그래요?
직 원 근데 장택기씨는 안 왔어요?
S#52. 달리는 택기의 트럭 안 (아침)
굳은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택기. 무심히 운전하던 택기가 문득 트럭을 세운다. 창문을 내리고 밖을 바라보면, 해바라기 밭이다.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트럭을 출발시키는 택기.
S#53. 포도밭 (아침)
포도밭으로 올라가는 택기. 출하시킬 포도상자들이 쌓여 있던 곳을 보면 텅 비어있다. 다시 포도밭 안으로 들어가는 택기. 멀리 지현이 지친 표정으로 대왕포도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다. 굳은 표정으로 지현에게 걸어가는 택기. 지현, 택기를 힐끗 보지만, 금방 말없이 외면한다. 택기도 말없이 지현을 지나쳐 가려는데...
지 현 (뒤에서) 수진씨는 좀 어때요?
택 기 좋아.
지 현 내 메시지는 받았어요?
택 기 받았어.
지 현 근데 아침에 왜 안 왔어요? 수진씨랑 둘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나보죠?
택 기 (돌아서며) 니가 뭘 알아?
지 현 나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택 기 잘 됐네. 이제 내 없이도 혼자 잘하고. 내 없어도 되겠네.
지 현 무슨 소리에요?
택 기 내 이제 여기 떠날기다.
지 현 (놀라며) 네? 뭐라고요?
택 기 여기 떠날 기라고.
지 현 (놀라서) 포도밭은 어쩌고요?
택 기 몰라. 그건 니 알아서 해. 내는 이제 포도밭도 지겹고, 농사도 지긋지긋하고.
이때 갑자기 택기의 뺨을 힘껏 치는 지현. 놀라서 바라보는 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