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서울현출원의 故 金武永 동창 묘소 안내 상세 약도
▲ 아버지 고 김무영 동창의 묘소를 찾아 절을 올리는 딸 김소연
▲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공군사관학교 12기 동기분들과 함께 공군사관학교를 방문한 소연이
▲ 아버지가 4년을 다닌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를 방문하고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소연이
▲ 충혼탑에 새겨져 있는 조국의 영공을 지키다 산화한 공군사관학교 졸업생들의 이름들이 각인되어 있다.(아래서 위로 셋째줄 오른쪽에서 2번째 파란 ▶ 화살 표시가 "김무영 동창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후배 이건수(17회)가 내게 이메일을 보내 왔길래 열어 봤더니 맨 위쪽에 사진이 한 장이 올라와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난 6월 13일 금요일 인동회모임에 참석했다가 일찍 미국으로 되돌아간 지가 열흘쯤 지난 6월 26일(목요일) 오후 2시쯤 미국에서 권순찬 동창이 어느 아름다운 묘령의 젊은 한국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 무슨 연유인가 궁금해서 아래에 붙은 글을 계속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정말 감동적이였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사연, 많은 인연이 있지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12회 동기들에게 많이 알려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와 관련이 있겠다 싶은 사람들을 접촉하기도 하고 또 관련된 자료 사진들과 얽힌 자료 글들을 찾아낸 후 자료들을 제공해 주신 분들에게 자료들을 인용해도 좋다는 양해와 허락까지 받은 지금에사 비로소 아래와 같은 어느 정도 정리된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밝힌다.
우리 서울고등학교 12회 동기 故 김무영 동창과 공군사관학교 12기(1960년 입학 ~ 1964년 졸업과 동시 소위 임관) 동기로서 전투조종사였던 제25대 공군참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공군전우회 회장인 박춘택 예비역 공군대장과 역시 전투조종사 출신으로 해ㆍ공 국방안보포럼 소속 배기준 예비역 공군준장(시인ㆍ코스모스문학 이사장)에게 자료와 글을 인용하게 해준 너그러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다음은 한편의 드라마같은 넌픽션 이야기의 대강의 줄거리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지 5년, 창공을 날아 오른 지 4년, 나이는 불과 27세! 조국의 영공을 지키다가 1969년 7월 22일 작전중 수원상공에서 산화 순직한 서울고 12회 동기동창생인 고 김무영 예비역 소령(공사12기・F86전투요격기 조종사)의 외동딸 김소연(48세・Monica S. Kim・미국거주)이 돌아가신 빨간 마후라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미국에서 20년만에 조국을 방문, 지난 4월 4일(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17묘역의 묘소(묘비 228)를 찾았다.
한 살 반 갓난 아기였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어지고 더욱 애틋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혈육의 정이였으리라.
아버지의 공군사관학교 동기 12기 임관50주년행사에 초청을 받아 이 날 아버지의 동기생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의 아버지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을 때, 마침 6월 호국보훈의 달 "현충원 지킴이" 특집프로를 미리 만들기 위해 취재차 국립서울현충원을 들른 국민방송 KTV의 재능기부 기자로 봉사하고 있는 서울고 이건수 후배(17회・12회졸업50주년동영상CD제작자)가 참배 일행을 인터뷰하던 도중에 그녀의 부친이 서울고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그후 계속 끈질긴 수소문의 노력으로 소연이 아버지가 서울고 12회 졸업생이라는 것과 아버지와 서울고등학교 3학년 학창시절 같은 3학년 3반(문재림 선생님 담임)으로 미국 뉴저지 같은 이웃에 살고 있는 12회동창 권순찬 동창의 자택 주소와 연락처를 소연이에게 알려주었고, 그 후에 소연이가 먼저 권순찬 동창에세 찾아 뵙고 싶다고 연락을 드려 마침내 지난 6월 26일(목) 오후 2시 뉴저지에서 김무영 동창의 딸 소연이와 권순찬 동창의 기적같은 극적인 두 사람의 만남이 현실로 이루어 지게 됐다. 권순찬 동창은 소연이에게 아버지 故 김무영 동창과의 서울 중ㆍ고교시절의 주옥같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동화를 들려주듯이 얘기해 주었다. 권순찬 동창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한 가지씩 생각이 나서 더해져 간다면 말이다.
아버지 고 김무영 동창이 1969년 순직했을 당시 김 동창의 딸 소연이는 한 살 반 갓난이였다. 1977년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어머니는 생소한 이국땅에서 남모르게 수많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30여 년간 교직에 머물며 재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식교육에 전념하였으며, 외동딸 소연이에게 매월당 김시습이 가문의 선조임을 알게 하고 TV드라마는 우리나라 사극만 보게 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제대로 가르쳐 대한의 딸로 키웠으며, 치과 의사가 된 딸은 역시 의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딸 두 아이를 두고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소연이는 낯선 미국에서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않고 컬럼비아 대학과 대학원의 높은 벽을 넘어 전문직에 도전한 총명한 재원으로 건강하게 자라 동양미를 갖춘 아름다운 미모에다 친절하고 상냥함에 절제와 겸손까지 몸에 배어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춘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모범 여성으로 미국사회에 당당히 우뚝 섰다.
이번 한국 체류중에 아버지의 공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의 안내로 아버지묘소를 참배하고 같은 날 4월 4일 오후 3시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수원 전투비행단 기지를 공식 방문하여 비행단장으로부터 부대차원에서의 VIP로 정중하게 영접을 받고 또 단장으로부터 F-86D 모형항공기까지 증정받고 수원기지에서 산화한 조종사들의 忠義탑에 헌화 후 101대대 방문시에는 전 대대 조종사들이 나와서 도열하고 소연이를 극진히 환대해 주어 소연이를 감동시켰다. 항공기 전시장에서 아버지가 조종했던 낡은 F-86D에 앉아 보는 소연이의 모습에서는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살아 오면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만 했던 소연이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임관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버지나라 한국에서 머문 시간동안 아름답게 아빠와의 추억을 쌓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후, 그 아름다웠던 한국방문에서의 봄날들을 되돌아보며 아버지의 공군사관학교 동기분들에게 보내온 편지에서 "어머님도 안녕하시고 17살의 딸은 얼마전에 쥴리아드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할 정도의 실력으로 미국전체에서 teenager중 5등 안에 드는 클라리넷 player이지만 음악전공은 안한다면서 내년에 대학 입학을 위한 6주간의 캠프에 참가중이고, Ice Hockey를 하는 14살짜리 아들은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9월에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라고 알려 오면서, “저처럼 전투기 조종사 아빠를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 모든 아이들에게 닥쳐올 슬픔과 고난을 이해합니다. 그 어린 아이들은 자라서 철이 들면 공군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마음에 새기고 그리고 절망하여 큰 뜻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건강하게 씩씩하게 열심히 살아가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라는 아름다운 글도 함께 보내 왔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어머니이자 고 김무영 동창의 부인도 남편의 공사 12기 동기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아빠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소연이의 모국 방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 주셔서, 4월 4일 현충원 참배, 수원 제 10전투 비행단 방문, 공군회관, 그리고 4월 22일 공군사관학교 방문등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 채워주신 모든 동기생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라는 내용과 함께...
소연이가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아버지 묘에 참배하던 날, 우연히 취재때문에 들렸다가 촬영협조를 구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TV 특집프로에 동영상으로 방영했던 내용은 이건수 후배가 CD에 담아 고 김무영 동창의 공사동기생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소연이에게 전해졌다.
아무쪼록 소연이와 그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사진 및 일부 인용한 글의 내용 자료 출처 : - 서울고 후배 이건수(17회), 공군사관학교 12기 동기「은성회」홈페이지, 인터넷에서 찾아낸 관련 자료들.
♬ 배경 음악 :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 정수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