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 백석
<82>
단풍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빨간 정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 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
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 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실찐 띠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 한울이 눈부셔 한다
시월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단풍도 높다란
낭떠러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이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
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 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紫朱)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 백석(白石)
(1912~1996)
-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
- 오산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학원 영문과 졸업.
-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나옴.
- 조선일보 기자,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여성』사 기자 등을 지내다가 만주로 가서 측량보조원,
세관원 등을 하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옴.
- 북한에서 문예창작활동을 하다가 숙청당한 후
협동농장 농부로 일하다가 1996년 별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