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 : 6~16)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머리에 값비싼(노동자의 1년 품삯 정도)
향유옥합을 붓는 여인과 그를 비판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제자들의 논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이성적이다.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왔다면 훨씬 더 값지게, 효과적으로
또는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이 혹할 논리이다.
반박할 만한 논리를 찾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결국 이러한 세상에서의 복잡한 많은 문제들은
그 사람의 마음의 동기와 중심이 어떤 것이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낱낱이 밝힐 수 없는 부분이다.
굳이 물증을 제시하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 결국은 드러내는
열매가 있으나, 이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여인은 당연히 가난한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이든, 부자이든 모든 이들의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님이기에 아낌 없이 헌신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사건과 관련하여
기름부음을 하는 상징적 의미 보이는 일에 쓰이는 이끌림이 있었을 것이다.
입으로 하는 논리적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과 그 분의 뜻과 진리,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실제적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반면, 제자들은 입으로는 논리적으로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서 벗어나 있고, 관심이 적으며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기보다는 -그런 실천적 행동도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물질적 규모에 자신의 욕망이 내밀하게 작동했던 언사였을 지 모른다.
'어떤 모양으로든 내게도 혜택이 와야 하는데......'라는 자신도 쉽게 catch하기 힘든
내밀한 욕망. 그것을 shield 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사.
사실, 제자들만의 행동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 특히 신앙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내 그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유다가
사탄의 조종을 받아 악한 일의 도모를 시작한다.
다른 제자들은 유다의 지경까지는 않았지만 얼라인먼트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 수시로 벗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일에 대한 방치가 지속되면 결국 유다의 지경에 이를 지 모른다.
고난주간이다. 깨어 있자. 기도하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