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사(略史)
경상북도가 도내에서 필요로 하는
초등교원의 양성을 위해
1949년 9월 26일
1년 과정의 도립 경상북도
초등교원 양성소를 개설하였다.
경상북도는
1950년 3월 25일
대구공립사범학교를 설치하고,
본과의 신입생을 모집하고,
초등교원 양성소생 180명을
대구사범학교의 강습과로
편입토록 하였다.
1951년 9월에
3년제의 병설 중학교가 설치되고,
1952년 4월에
고등학교 졸업자를
입학자격으로 하는
1년제의 연수과가 개설되었다.
1952년 10월 1일
공립에서 국립으로 이관되었다.
1959년 5월에
12학급 규모의
부속국민학교가 설치되었다.
현황
대구사범학교는
1962년 2월에
경북대학교 병설 교육대학으로
개편되고,
1963년 2월 2일
제12회 본과 졸업식이 거행됨으로써
폐교되었다.
1950년부터 1963년 초까지 존속된
대구사범학교의 졸업자는
본과 2,681명,
교원양성강습과 277명,
강습과 519명,
연수과 440명 등
총 3,917명이다.
2. 교사(校舍)
가. 1950년대
1) 신천 언덕 감밭 가교사
2) 삼덕동 가교사 정문간판
3) 대명 언덕 모교 신축 당시
나. 구 본관
다. 1957년 신축 본관
3. 교훈(敎訓)
1951년 9월 초대 김영기 교장
아름다운 삶을 누리자.
가. 교훈 약사
1951년 9월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신
김영기 교장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아름다운 삶을 누리자'
당시의 본관 3층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현관에는 돌로 조각된 양이 세워졌다.
그 후로 곳곳의 간행물에는
양의 머리가 그려지고
교훈이 적혀지게 되었다.
김영기 교장은 훈화, 훈시 때마다
학생들에게 포근한 정서가
담뿍 담긴 말씀으로
아름다운 삶을 누리도록
당부하셨다.
1958년 11월
2대 김봉조 교장이 부임하였다.
교훈은 그대로 일관하면서
지침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내세우셨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는 성경의 한 귀절이다.
김 교장 부임 후
이 귀절은 제8회 졸업기념으로
교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동편 운동장에 비석으로 세워졌다.
그 후 1961년 9월
제5대 강치봉 교장이 부임하면서
교훈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1. 우리는 절차탁마 사표시범지도를 달성하자.
2. 우리는 호연지기와 지․인․용 삼자를 배양하자.
3. 우리는 살신 순국 진․선․미 절대성을 견지하자.
1962년 12월
제6대 이규현 교장은
‘불식지공’이란 문구를 강조하셨다.
나. 지침
1958년 11월 2대 김봉조 교장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출처: 성경
글씨: 이성재 선생님
건립: 8회 졸업생
1) 처음 세웠을 때 모습
2) 교대 설립후 신축 모습
3) 현 교대 본부 앞 정원에 옮겨 놓은 모습
4) 대구사범을 상징하는 본과 8회 졸업기념비 위치
5) 교육대학에서 세운비 (참된 스승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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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1961년 5대 강치봉 교장
1. 우리는 절차탁마 사표시범지도를 달성하자.
2. 우리는 호연지기와 지․인․용 삼자를 배양하자.
3. 우리는 살신 순국 진․선․미 절대성을 견지하자.
라. 1962년 12월 6대 이규현 교장
불식지공(不息之工)
불식지공이란
천천히 해도 늘 끊임없이
꾸준하게 하는 일이라는 뜻
4. 교표(校標)
5. 교기(校旗)
(교표와 같은 모양의 마크를
기 가운데 새겨 넣었다)
교가의 가사는
대구사범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신
김영기 선생님이 지었다.
신라 옛터전 달구벌,
그 중에도 비파산을 바라보는
대명 언덕에 우뚝 자리한
배움의 전당에서
새 나라 새 일꾼을 길러내기 위한
스승의 길을 꾸준히 한 곬로 닦아 나간다는
의지를 굳게 내보이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가사에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곡을 붙였다.
본과 제1회생은
1950년 3월 25일에 입학식을 하였다.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신
고 박준규 선생님의 '10년을 회고한다'
(사원 10호 게재)는
글 속에 교표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즉, 모표는 교기에 쓰인,
「大師」를 세로로 서서 도안화한 것인데,
당시 본과 제1학년생이었던
김광희 군이 만들었다.
뺏지는 당시의 미술 강사이시던
최유련 선생님의 도안으로 만들었으나
나중에 병설 중학이 생긴 후
그 뺏지를 중학 뺏지로 하였다.
따라서 본과는 모표의 마크를
그대로 축소하여 쓰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대사를 세로로
도안하여 만든 마크가 교기,
모표, 뺏지, 단추 등에
두루 같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마크는 앨범, 졸업생 상황 일람표 등
학교나 학생회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에 두루 사용되었다.
나라에 국가(애국가)가 있듯이
대구사범학교에도 교가가 있고
또한 당시 재직하셨던 국어 담당
박준규 선생님이 노랫말을 쓰시고
음악 담당 한창희 선생님이
곡을 붙이신
'대명의 아침'이 대구사범학교
7. 졸업가(卒業歌)
8. 애교가(愛校曲)
학생들의 애교가였다.
정말 가슴 벅차고
희망에 어깨가 우쭐거릴
그런 가사 내용에 곡까지
웅장하고 씩씩하여
어디가나 이 노래가 널리 불렸다.
아울러 대구사범학교에서는
특별한 사명을 자각하고
졸업식 때도 특별히 작사, 작곡된
졸업송별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 역시
박준규, 한창희 명 콤비교사(?)가
노랫말을 지으시고 곡을 만드셨다.
박 선생님은 문학에 일가를 이룬 분이셨고,
한 선생님은 나중에 본교 교감을 거쳐
경상북도 학무국장,
대구서부교육구청장,
경덕여교 교장을 거쳐
정년퇴임하신,
그리고 108곡집(1950년대 후반)을
펴내신 분이셨다
(그 속에는 본인 작곡의 곡도 포함되었음).
이 노래는 정말 사범학교 학생으로서의
깊은 감회와
앞으로의 교사로서의 사명감,
선후배 사이의 너무나 따뜻한 우정,
사제 간의 포근한 사랑이
철철 넘쳐 흘러
이별의 아쉬움을
눈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9. 교모(校帽), 모표(帽標), 뺏지(Badge)
10. 교복(校服
11. 교화(校花)
12. 교목(校木)
13. 교조(校鳥)
보완 요
첫댓글 대구사범학교 교가를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