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유튜브를 통해 본 내용입니다. 중국의 젊은 여성 사형수의 생명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에 담당 간수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옷을 입혀줍니다. 여인은 하루밖에 남지 않은 삶 앞에서 애써 웃으며 그 음식을 먹으며,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머리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우리 시대의 의학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되어 사람의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의 죄된 성격과 성품을 쉽게 고치지 못하고, 육체의 생명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높이며 섬겨야 합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언제나 능력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그 소리에 문을 여는 사람에게만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예배함은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였기 때문입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은 우리 곁에 서서 함께하시며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서서’ i{sthmi (2476 히스테미 VIRAXS e{sthka)
멈추어 서다. 확고히 서다. 존재하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부유를 자랑하였으나 그 영혼은 몹시 빈곤하였습니다.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나 마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하므로 자신 앞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서서’는 과거와 미래의 행동이 아닙니다. 확고한 존재로 지금의 장소에 계심을 뜻합니다.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춘 상태가 아닙니다. 문을 두드리기 위해 분명한 목적으로 멈추신 것입니다. 본문은 믿지 않은 영혼을 위함이 아닙니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의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성령의 뜨거운 은혜로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믿음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멈추어 서서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천국의 문과 지옥의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나 그러하지 못한 영혼은 어떤 핑계와 변명에도 지옥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결코 되돌아 나올 수 없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의 심판을, 십자가를 통해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육체적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문이 열릴 때까지 서서 계속 두드리고 계십니다.
계3:20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듣고’ ajkouvw (191 아쿠오 VSAAZS ajkouvsh/) 듣다. 깨닫다. 순종하다.
우리는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여 기쁨이 넘칩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듣는 것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을 통한 순종까지를 뜻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고 원하시는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의 참된 맛은 하나님이 계속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순종으로 문을 열어 드림으로 나타나는 생명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열지 않는 자에게까지 억지로 문을 열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이 복 된 것입니다.
눅 12: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혼인 집의 신부는 신랑이 오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문을 열어 맞이합니다. 일이 바쁘고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문을 열지 않으면 그 혼인은 무산됩니다(성사되지 못하고 없었던 일이 됨).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상태를 항상 잘 살펴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환영하고 모셔 들여 함께하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새해를 맞아 오랜 친구와 식사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한 주간을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한 주간을 미루었습니다. 이러하다 보니 아직도 식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서로는 괜찮다고 말하나 실질적 만남의 인격적 교제를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하시나요? 구원을 통한 영적 교제 때문입니다. 한 번 만나고 더 이상 찾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하는 기쁨의 교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계 3:20 ..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먹고’ deipnevw (1172 데이프네오 VIFAXS deipnhvsw) 기쁨의 잔치
음식 나눔은 교제를 통한 기쁨을 뜻합니다. 인격적 교제로 서로의 친밀감을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적 기쁨의 잔치를 통해 깊은 교제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의 자리로 부르실 때 성령 충만으로 문을 열고 달려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부르시는 장소에, 말씀하시는 장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옵소서’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도 지체하거나 머뭇거림은 그 시간만큼의 불순종입니다.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할 자리를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 잔치의 장소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기쁨의 잔치를 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려야 하겠습니다.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은 자신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그 방법의 우선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성령 충만의 기쁨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천국의 잔치를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