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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코스 절반쯤 오다가 스마트폰 밧데리가 소진되어 좋은 풍경들을 촬영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강화도 해안도로
서울 지척에서 만나는 낭만 바닷길
전인구의 절반인 2천 4백만 명이 북적대는 수도권에서 강화도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서울에서 3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수천 년간 응축된 역사와 문화유산, 해맑은 바다 경치, 기세등등한 산세 그리고 그 틈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는 사람들까지…… 가장 ‘수도권’ 답지 않은 섬 풍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소금 강(鹽河)’으로 불리는 작은 해협을 간극으로 두고 있어 섬이라는 단절감이 크지 않고,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된지도 오래인데 강화도가 여전히 멀리 떨어진 별세계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매혹의 섬을 일주하는 코스는 약 90킬로미터. 철책선이 가로막은 북쪽 해변은 민통선 안쪽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아 풍경의 감성적 밀도가 더욱 높다.
섬이라고 믿기 힘든 곳
▲바닷물이 밀려나면 드러나는 갯벌은 강화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와 푹푹
발이 빠져 접근이 쉽지 않은 부담감이 다소 비현실적인 이국풍을 풍긴다. 사진은 황산도 남쪽 풍경.
강화도를 섬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에는 폭 7백 미터 내외의 강 같은 좁은 바다가 길게 나 있어 다리를 지나 진입할 때도 섬으로 들어선다기보다 내륙의 강을 건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반면 거제도, 진도, 남해도 같은 큰 섬들은 5백 미터 전후로 육지와 매우 가까이 있으나 주변으로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 섬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섬으로 진입하는 다리 모양도 독창적이거나 거창해서 관문의 느낌을 더한다. 강화도는 진입다리 두 개 모두 개성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해서 ‘관문’은 고사하고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치는 평범한 다리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강화도를 처음 찾는 사람은 언제 섬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강화도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황당해하기도 한다. 섬이라고는 해도 지형이 복잡하지 않고 땅이 넓어서 어떤 산에 올라도 한눈에 섬 지형으로 알아보기 어렵다. 면적은 약 3백 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절반에 달하며 제주도와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이다. 지형적으로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어도 ‘강화도’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김포와 강화도는 자연환경이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김포에는 지천인, 무질서하게 들어선 공장이 강화도에는 없고, 성냥갑 같은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도 없으며, 자동차들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왕복 4차로 이상의 도로도 강화읍내를 제외하면 볼 수 없다.
강화도에만 있는 것
강화도는 갯벌 천지다. 썰물 때면 폭 1킬로미터 내외의 엄청난 갯벌이 섬 전체를 둘러싼다. 남쪽은 특히나 넓어서 폭이 2, 3킬로미터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 갯벌을 모두 간척한다면 면적이 훨씬 더 늘어나 진도(353.8㎢)를 넘어설 것이다. 강화도는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다. 고조선 시대의 유적으로 전하는 마니산 참성단과 삼랑산성부터 고구려 연개소문의 흔적, 고려의 임시수도 유적, 조선의 해안 방어시설 등이 남아 있다. 고려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 수도였던 한양에서 가까워 고려와 조선 천 년 동안은 수도 방어기지로 요새화되었다. 해안을 따라 1~3킬로미터 간격으로 군사보루인 돈대(墩臺)가 설치된 것도 그 때문이고, 돈대가 이처럼 밀집되어 있는 곳은 강화도뿐이다(강화도 해안에는 5진 7보 53돈대가 있었다). 섬의 북쪽 해안은 한강 하류와 접해서 태백산맥에서 발원해 5백 킬로미터를 힘겹게 흘러온 한강의 장중한 소멸과 마주한다. 동쪽은 한강보다 좁은 해협인 염하가 흐르고, 남쪽으로는 거대한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남서쪽으로는 수평선이 아득한 먼 바다가 장황하며, 서쪽으로는 석모도와 교동도, 볼음도, 주문도 같은 부속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강화군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해안 경치를 보고 삼아 해안일주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있는데, 2009년 현재 개통된 구간은 3분의 1 정도다. 해안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북쪽은 군사보호구역이어서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해안일주 자전거도로 개설의 걸림돌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쪽의 해안은 그만큼 개발이 덜 되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군부대의 허락을 얻어 민통선 안의 철책선 옆길까지 포함해 강화도 해안도로 90킬로미터를 꼬박 달려보면 이 섬의 가치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통일이 된 후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남북의 통로가 될 것이다.
지역정보와 코스정보
일주하면 거리는 약 90km에 이르고, 라이딩 시간만 7시간은 잡아야 한다. 휴식과 명승지 관람을 포함하면 하루 꼬박 걸린다. 1. 별도 자전거도로가 포함된 강화도 해안도로는 2015년까지 84.8km가 계획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아직 완공되지 않은 구간이 있으나 기존 도로를 이용해 일주가 가능하다. 일주 코스의 기점은 무료주차장과 매점이 있으며 해안도로와 바로 접하고 있는 강화역사관이 적당하다. 여기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를 소개한다. 2. 강화역사관에서 나와 우회전, 강화대교를 통해 진입하는 48번 국도 아래 굴다리를 지나 샛길로 인삼센터를 거쳐 내리막을 내려가면 해안도로를 다시 만난다. 해안도로 옆에는 별도의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강화역사관에서 6km 북상하면 해변 언덕에 자리한 연미정이 나오고 곧 민통선 군 초소가 길을 막는다. 여기서부터는 사전에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야 출입할 수 있다. 3. 대산저수지를 지나면 길은 내륙으로 들어가는데, 은암자연사박물관을 통과하면 당산리에서 다시 바다를 만난다. 이후 철산리, 북성리를 돌아 양사면소재지인 교산리 입구에서 인화리로 우회전, 3.7km 가면 48번 국도와 만난다. 국도에서 우회전, 인화성 마을에서 바다가 가까운 쪽의 농로를 따라 남하하면 별립산(400m) 서쪽 해안을 돌아 창후리선착장에 도착한다. 4. 창후리선착장에서 도로를 따라 나오면 곧 오른쪽으로 삼거천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하천을 건너 제방길과 농로를 따라 남하하면 들판 한가운데 종이학 모양의 교회 건물이 있는 망월리를 거쳐 황청리에서 도로와 만난다. 우회전해 국수산 서쪽 해안을 돌아가면 석모도행 배가 뜨는 외포리다. 외포리에서 화도면 후포항까지 약 9km 구간은 해안도로가 말끔하다. 5. 후포에서는 마니산을 돌아가는 도로를 만나 우회전하면 오르내림이 심한 산길이 시작된다. 일몰이 아름다운 장화리와 여차리를 돌아가면 강화도의 상징 중의 하나인 마니산(469m)이 우뚝 하고, 그 산자락에는 흥왕리가 포근하게 안겨 있다. 길은 흥왕리를 돌아 동막해변으로 이어진다. 동막해수욕장 끝에는 분오리돈대가 있는데, 여기서 길은 내륙으로 꺾어져 함허동천을 지나 길상산(336m) 아래에서 삼거리가 된다. 왼쪽은 전등사 방면이고 해안도로는 오른쪽이다. 6. 택지돈대가 있는 선두리에 이르면 도로 옆에 자전거도로가 시작된다. 가천의대를 지나 동검도를 마주보며 산을 살짝 돌아 초지대교로 이어진다. 초지대교에서 강화역사관까지 14km는 잘 알려진 해변길이다.
가는 길
우선 서울에서 올림픽대로를 따라 서쪽 끝까지간다.개화나들목에서 39번 국도 김포공항 방향으로 진입한 후 우측 차로에서 48번 국도를 통해 김포를 거쳐 강화대교로 진입하면 된다. 행주대교에서 강화대교까지 약 35km. 다른 지방에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 김포IC에서 빠져 48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김포IC에서 약 32km. 강화대교를 지나 첫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 하면 바로 강화역사관(갑곶돈대)이다.
▲물 위에 있어야 할 배가 육지에 올라서 있으면 왠지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강화도의 포구에서는 갯벌에 기우뚱 올라앉은 배를 쉽게 볼 수 있다.
주변관광지
교동도면적 47.2㎢로 백령도와 비슷하며, 강화도에서 1.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북한 땅인 황해도 연안군과는 2km 거리를 둔 최전선이기도 하다. 북쪽 해안을 두른 철책선 옆길을 달릴 수 있고, 강화도 본도보다 넓은 교동평야, 연산군 유배지, 교동읍성 등 소소하지만 뜻 깊은 볼거리가 많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카페리로 15분 소요. 볼음도면적 6.3㎢의 작은 섬이지만 백사장과 8백 살 은행나무, 철새 도래지 등 풍경이 다채롭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카페리로 1시간10분이 걸리는 꽤 먼 거리가 단절감을 더한다. 주문도볼음도보다 작은, 면적 4.6㎢의 섬으로 서쪽 해변은 전체가 백사장으로 이뤄져 있다. 볼음도행 배가 도중에 거쳐 간다.
추가정보
주차: 강화역사관 앞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숙박: 강화읍내와 전등사 아래 온수리, 동막해수욕장에는 모텔이 많다. 해안도로 곳곳에는 예쁜 펜션이 즐비하다. 바다와 낙조 전망이 좋은 곳은 마니산 서쪽 해안 화도면에 많다.
식사: 꽃게, 밴댕이, 인삼, 순무는 강화의 특산물이고, 생선회와 장어 요리도 유명하다. 생선회는 초지대교 남쪽 황산도 어판장이나 가천의과학대 맞은편에 있는 선두리 어판장이 좋다. 장어요리는 강화역사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약 1km 내려온 더리미에 전문식당이 모여 있다. 그중 ‘더리미집’과 ‘별미정’이 유명하고, 초지대교 입구의 ‘영빈관’과 장흥리의 ‘장어마을’, ‘장흥 숯불 장어구이’도 알려져 있다. 꽃게요리는 외포리 입구 ‘충남서산집’이 유명하다. 휴식: 연미정, 창후리 선착장, 외포리 선착장, 장화리 낙조마을, 동막해수욕장, 택지돈대, 초지진, 화도돈대 등이 쉼터로 적당하다. 주의: 민통선 구간은 길 찾기가 다소 복잡한데, 코스 도중의 주요 경유지를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민통선 구간에는 해안도로가 딱히 없으므로 바닷가 가까운 길을 찾아서 돌아오게 된다. 외포리에서 강화역사관까지는 휴일에 관광객이 몰려들어 차량통행이 많으니 자동차에 주의하고,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는 곳에서는 이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민통선 출입문의 032-454-3222(해병2사단 보안과).
출처:(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자전거 여행)
간석지[干潟地]
정의
하천에 의해서 하구에 운반된 점토와 모래 같은 미립물질이 해수의 운반작용으로 하구나 그 인접해안에 퇴적된 지형. 개펄.
개설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평평한 해안퇴적지형(海岸堆積地形). 육상생태계에 가까운 쪽의 염생식생이 정착되어 있는 곳을 염생습지(salt marsh), 해안 생태계 쪽을 갯벌(mud flat)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염생습지는 대부분 간척되어 최근의 간석지라 하는 곳은 갯벌을 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계적으로 조석간만의 차가 큰 한반도의 서해안과 남해안에 넓게 분포한다. 위성사진 분석에 의하면 남한의 간석지 총 면적은 약 23만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경기도 8만 3000㏊, 충청남도 3만㏊, 전북특별자치도 1만 1000㏊, 전라남도 10만 5000㏊, 경상남도가 8,000㏊를 차지한다. 경기만은 한강 · 임진강 · 예성강의 하구가 되기 때문에 강화 갯벌과 같은 넓은 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대표적인 갯벌로는 순천만과 서천 갯벌 보존구역 등이 있다. 20세기 후반 서해안과 남해안의 곳곳에서 간척사업이 국토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 간석지의 면적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도상에 해안선의 직선화(直線化)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관련한 해안 생태계의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하천에서 직접 토사를 공급받아 형성되는 간석지는 대체로 다량의 모래를 함유하거나 주로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미세한 점토 물질은 조류에 의하여 하구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으로 운반되며 파도가 약한 만입부에 쌓인다. 남양만 · 가로림만 · 천수만 등지에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는 까닭은 바다가 잔잔하여 벌이 쉽게 집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깊숙한 만으로 흘러 들어오는 작은 하천의 하구에도 하천의 운반 물질보다 조류에 의하여 바다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벌의 양이 훨씬 많아서 점토질 간석지가 넓게 발달한다. 현재 서해안과 남해안에는 염생습지가 국지적으로만 분포한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 분포는 광범위하였으며, 동진강 및 만경강 하구 일대와 같은 일부 해안에서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선조차 뚜렷하지 않았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리시설의 확충과 더불어 간척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염생습지의 대부분은 논 또는 염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중장비가 대량으로 동원됨에 따라 간척사업이 천수만 · 시화지구 · 대호 · 영암만 · 새만금 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간척사업의 규모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형화 되었다. 과거에는 염생습지가 간척의 주요 대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바다도 방조제로 막고 바닷물을 퍼내는 식의 간척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계화도간척사업 처럼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된 곳도 있지만, 시화호나 새만금간척사업에서 보듯이 생태계 파괴, 수질문제 등 수많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많은 논쟁을 불러 잁으키고 있다.
현황
문헌사료에 의하면 간석지는 고려기로부터 염전과 농경지로 간척되었다. 흙으로 둑 또는 방조제를 쌓았던 20세기 이전에는 개발의 규모가 극히 작았으며, 염생습지만이 간척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방조제를 쌓으면 갯벌은 그 바깥쪽에 집중적으로 쌓이며, 염생습지는 확장된다. 일제강점기 이후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의 간척사업이 행하여졌으며 1917년 공유수면매립법(公有水面埋立法)을 공포하여 근대적인 간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건국 후,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는 1960년대의 국토종합개발사업의 대부분은 자연환경 개조의 내용을 포함하는 수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한 다목적댐 건설, 농지개발사업, 간척지 조성 등을 정부주도 하에 공공단체 및 민간사업자가 참여하여 추진하였다. 1960년대의 국토개발은 개발효과가 큰 경인특정지역, 공업단지를 위한 울산지역, 관광자원 · 경제개발을 위한 제주도특정지역, 지하자원과 에너지자원개발에 치중한 태백산지역, 토지개간 · 수자원개발을 위한 영산강지역 · 아산∼서산특정지역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특히 서남해안은 간척지로서의 입지조건이 유리하여 오래 전부터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62년 공유수면매립령이 제정되고 간척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져 62∼66년 사이에 7개 지구 1만 3260ha가 착공되었다. 그 뒤로 김해 · 대천간척이 준공되어 식량증산에 기여하였고, 삽교천(揷橋川)지구에 1329ha, 목포지구에 5500ha가 조성되었다. 이 밖에도 아산만 일대, 만경강 · 동진강 하류의 호남평야, 영산강 하구의 나주평야는 각각 상당한 면적의 간척평야를 포함하고 있다. → 국토개발
의의와 평가
간석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간척사업은 지금까지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강조되어 왔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차원의 환경인식으로 간석지의 매립은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해안생태계와 지역공동체의 위기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간석지를 구성하는 물질과 각종 서식 생물체들은 육지에서 흘러드는 오염 물질을 분해하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간석지의 파괴는 연 · 근해의 오염을 유발하고 해안생태계의 파괴를 야기함으로써 어획고의 감소를 초래한다. 또한, 지형변화에 따른 조류의 유속감소는 항구에 미세점토(벌)를 퇴적시켜 항구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조류에 의한 대규모의 자연재해 가능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인근 지역공동체의 삶도 경제적 기반을 잃게 되면서,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던 전통마을들은 이촌(移村)현상에 의해 공동화(空洞化)되고 초등학교의 폐교와 같은 사회문제가 환경문제와 함께 대두되고 있다. 간석지는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생태적 가치도 보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해안관리와 이용을 위한 행정체제와 법규를 재조정해야 하고 불가피한 간척사업으로 야기된 생태적 손실을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전향적인 제안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남해안의 순천만이 간석지를 생태관광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고, 보령의 해안에서는 개펄을 상품화하여 국제적인 머드축제를 벌이는 등 간석지의 활용이 다각적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지리지 ; 총론편』(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08)
『한국의 간척』(농어촌진흥공사, 1995)
『국토이용과 간척지 개발에 관한 연구』(국토문제연구소, 1991)
『자연지리학』(권혁재, 법문사, 1983)
「해안습지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동향과 과제」(박의준, 『지리학연구』Vol.35 No1, 2001)
「순천만 염하구 퇴적작용의 시·공간적 변이」(박의준,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황해안(黃海岸)의 간석지(干潟地) 발달(發達)과 그 퇴적물(堆積物)의 기원(起源)」
(권혁재, 『지리학(地理學)』10, 1974)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10-24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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