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들은 먼 곳에서 온다 [제1편]
침묵의 충만함이 파열하듯이 깨지면서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소리는 깊은 침묵에서 배태되어 세상에 노출되면서 다시 둥근 침묵의 요람 속에 잠긴다. 사람의 목에서 나온 낭랑한 소리들은 음성학적 파장 현상을 넘어서서 말이 되고자 애쓴다. 소리가 목소리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의미를 잡아챈다는 뜻이다. 목소리는 안보이는 세계를 소리로써 드러내 보인다. 이 목소리의 시작점은 어딘가? 목소리는 저 아득한 곳, 즉 존재의 시원에서 온다. “목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와서 아득히 먼 곳으로 간다. 그러나 목소리는 말을 담는다. 말은 아득한 것을 현존하게 만든다. 인간이 말에 싣는 진리는, 태초에 인간이 떨어져 나온 그 원초적 진리를 현존하게 만들 때, 말을 전달하는 목소리는 기쁨에 가득찬다. 목소리는 목소리로서 기쁘다. 목소리는 자신을 들어 올려 말 위에서 환호한다.” 모든 목소리가 다 맑은 음색으로 울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소리들은 거칠고 쉰 듯해서 마치 쇠를 긁을 때처럼 음산한 소리를 낸다. 미친 사람의 목소리, 매춘부의 목소리, 살인마의 목소리는 괴로움과 메마름, 분열된 자아의 조각들로 차 있다. 그것은 말의 기쁨과 명료성을 실어나르는 것이 아니라 뜻이 맺히지 않은 잡음어로서만 웅웅거린다. “신에게 목소리는 말 그 자체다. 신의 목소리는 신의 말이다.” 진실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타자에게 반향되는 메아리가 있다. 그 메아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를 모형으로 빚어진 것임을 반증한다.
장석주 「은유의 힘」
2024. 3. 2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