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출간 될 책의 원고를 훑어 보다가 '진보'를 생각하게 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렇게 물어 봅니다.
= 담배 피우는 사람은 진보적인가?
= 고기 먹는 사람은?
= 매를 드는 선생님은?
진보와 보수를 이런 질문으로 가를 수 없겠지요?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 어른 앞에서 담배 핀다고 고등학생을 나무랐다.
=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한다.
= 친일인명사전과 친북좌경인명사전 발간을 둘 다 반대한다.
= 조선일보 창간기념일에 참석 하는 것은?
= 낙태는 살생이기에 무조건 반대한다.
=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우선이다.
답변 하기가 좀 애매해 지나요?
우리가 '진보'라고 얘기 할 때 사회 의제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매우 구시대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서민복지,토지공개념,무상급식, 동성애인권 등등은 기본이구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지난 달에 진보신당의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 몇 사람과 몇 시간 같이 있게 된 자리에서 제가 했던 이야기이고
이 분들이 좀 놀랐던 얘기입니다.
평 당원인 제가 이런 말을 처음 했지 싶습니다.
-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그를 따라 하지 않는것은 그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아서이다./)
- 남에게 이것 바꿔라. 저것 하지 말라 하면서 그 사람(그 집단)을 교정하려고 언성 높이지 않는 것.
- 청하지 않으면 남에게 조언하지 않는 것. 자식에게도.
- 이 세상 최고의 자유는 '자기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자기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임을 아는 것.
- 이 세상 최고의 평등의식은 소유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모두가 이미 똑 같음을 아는 것.
- 최고의 혁명가는 자기 마음을 자기가 바라는 쪽으로 쓰는 사람이다.
- 자신의 깨우침이 사회화 되도록 (회향정신) 즐겁게 행동하는 것.
- 늘 긍정의 말을 하는 것. 밝고 맑은 마음을 전파하는 것.
- 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칭찬을 두려워하고 비판을 고마워 하는 것.
- 진보정당은 '권력' 그 자체를 두려워 하고 멀리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진보정당이다.
- 가장 진보적인 정치투쟁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해체이다. 권력을 잡더라도 이런 정신을 갖고 해야한다.
이 말들이 종교적인 교의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 단순한 생활상의 규범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일상에서 '진보'가 통합되어 가도록 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요?
그렇게 되어야 하는 때라고 여겨집니다.
김종철선생님,이범선생님,홍세화선생님,진중권선생님,박원순선생님,도법스님으로 일컬어지는 시대의 큰 스승들의 말씀에 2%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것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해답이 되지 못하는 많은 진보활동가들을 봅니다.
진보인사, 진보적 지식인들을 봅니다.
그들의 머리에 든 대답은 대개 옳아보입니다만
그들의 말과 글은 나무랄데 없이 옳습니다만
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보입니다만
그들 자신이 해답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우리 자신이 진보 그 자체여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이 풍기는 풍모와
스타일과 말투와 눈빛과 마음이
따스하고 부드러우며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감동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그런 사람이 진보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저는 여러 생명평화운동가들과 그렇게 시도 했었습니다. 때리면 맞고 밀면 밀리고 붙잡아 가면 끌려가고.... 어떤 순간에도 내 안의 평화가 교란되지 않도록. 그것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기초라고.
======= 검토하던 원고 (2006년에 녹색연합 기관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 실렸던 글)======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 일본 도시농업 연수에서 남는 여운
글/사진·전희식
일본에 닷새 동안 머물고 돌아온 지 이제 두 달쯤 됩니다. 돌아오자마자 계간 <환경과 생명>에 일본의 도시농업 연수기를 62매 분량이나 썼고, 이와는 별도로 지방지 <전북일보>에 전라북도의 농업정책이나 생태환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다섯 차례 연재를 했습니다. 닷새 다녀와서 모두 150매 정도나 썼으니 할 말은 웬만큼 다 한 셈인데도 뭔가 아쉬움 같은 게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작아>를 보는 순간 음극 자석이 양극 자석에 끌리듯이 제 아쉬움의 아쉬움의 정체가 쑥 끌려 나왔습니다. 마음속 또 다른 저장 장소에 새겨져 있는 것이 <작아>를 보고서야 임자 만난 것처럼 튀어나온 셈입니다.
부드러운 설득
연수 마지막 날 도쿄 중심가를 지나는데 큰 건물 벽에 펼침막 두 개가 아래로 길게 걸려 있었습니다. 흔한 풍경이 아니라 유심히 살펴봤더니 “해외파병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연금복지정책은 근로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펼침막 내용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겠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시민단체 하나가 저 건물에 들어 있구나 싶었습니다. 무슨 이름의 단체일까 싶어 살펴보니 시민단체가 아니고 정당이었습니다. 야당인 사회민주당 이름이 펼침막에 씌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야당이 내건 펼침막 구호가 참 부드럽지 않은가요?
옆자리에 앉은 일행에게 제 소감을 말했더니 그 사람도 동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던 ‘무엇무엇 하는 무엇무엇을 결사반대’한다든가 ‘무엇무엇 웬 말이냐 당장 무엇무엇 철폐하라’는 구호와 자연히 비교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함부로 내놓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구호를 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는데 일본 사회민주당이 내건 구호는 자기 당의 의견을 그냥 담담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었습니다. 조심스럽다고 할까 겸손하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소중한 일로 바쁜 시민들에게 팔을 잡아끌면서 예수 믿으라고 소리 지르는 일도 많이 겪었고 확성기를 크게 틀어
서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다 집어삼키는 시위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참 무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펼침막은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손전화를 걸어서 먼저 “지금 통화하기 괜찮으신가요?”라고 묻는 사람하고, 다짜고짜 자기 용건만 서둘러 말하는 사람이 연상되기도 하는 펼침막이었습니다.사회민주당의 펼침막 내용은 부드러웠지만 도리어 그 글귀는 아주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꼭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 주장에 이끌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장하는 것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사회라면 금하고 있는 주장을 듣는 것이 충격이 되고 각성이 되겠지만 자유롭게 주장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내면의 공감과 동의를 얻어 내는 설득력 있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입니다. 옆자리 짓궂은 친구가 일본 사회민주당의 구호를 한국식으로 바꿨는데 이랬습니다.
- 평화헌법 위반이다 파병논의 중단하라
- 부자만 배불리는 껍데기 연금정책 폐기하라
작지만 깊은 배려
일본 사회 전체가 그러한지 아니면 제가 보았던 그 구호만 그랬는지는 잘 모릅니다. 두 번째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인데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시 도쿄에서였습니다. 날이 새기 시작하는 새벽 거리는 한국처럼 ‘새벽의 사람들’로 분주했습니다.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도 있었고 환경미화원이랑 신문 실어 나르는 수송차량도 있었습니다.
아침 신문을 가득 실은 수송차량이 후진을 할 때 ‘삐뽀삐뽀’ 소리를 내더군요. 일본에서 닷새 동안 타고 다니던 전세버스가 후진을 할 때 차창을 다 닫은 상태에서 버스 뒤에서 주차 안내원의 “오라이 오라이” 하는 소리가 운전석 스피커로 들리고 운전석 옆 작은 스크린에는 차 뒤쪽이 훤히 비치는 것을 보고 제가 놀라워 하자 어떤 분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장치가 달린 고급자동차가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짐 실은 트럭이 후진할 때 소리가 나는 걸 보고 큰 차만 그런가 싶어 후진하는 크고 작은 트럭들을 눈여겨보았는데 제가 본 모든 트럭이 다 그런 식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또한 차도에 있는 가로수 지지대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나무를 철사나 나일론 끈으로 동여매서 나무 깊숙이 파고 들어간 상처를 많이 봐 왔던 제 눈에 일본의 가로수 지지대는 서너 단계나 더 진보한 것이었습니다. 나무 둘레는 쇠 파이프로 지지대를 튼튼하게 세우고 넓은 끈으로 공간을 두고서 나무를 붙들고 있는 식이었습니다. 나무가 자라 굵어지는 것을 고려해서 끈을 점점 늘여갈 수 있게 해 놨습니다. 나무의 처지에서 꼼꼼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고안해 낼 수 없는 장치로 보였습니다.
겉포장을 걷어낸 사회
나가노 현 주택가로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본 것들입니다. 현판을 보고 현 의회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70년대 연립주택 같았습니다. 2층 블록 건물이었는데 나가노 현은 주민이 230만 정도 된다고 하니 전라북도보다 큽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새로 페인트칠을 했는데 옅은 미색이 산뜻하긴 했으나 건물은 여간 초라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앞마당의 수백 년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의회의 역사와 권위를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의회 건물 뒤쪽 주택가 깊숙이 들어가 보니 집집마다 손바닥만한 땅도 텃밭으로 일구고 있고, 울타리가 따로 없이 텃밭으로 집 울타리를 삼고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뜨인 것은 주택가에 갈림길이 있는 곳마다 흰 색 페인트로 ‘ㅓ’ 자 표시나 ‘ㅏ’자 표시를 해 놓은 것입니다.
오른쪽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보일 것입니다. 좁은 주택가 길을 초행자가 차를 몰고 가다보면
어디에 골목이 있어 사람이나 차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법인데 모든 갈림길에 그런 표시를 해 놨으니 멀찍이서도 운전자가 대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차도로 나서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파란색 신호등 옆에 자전거도 함께 건너라는 표시등이 들어온 것을 보았습니다. 역시 길에도 자전거 길 표시가 사람이 가는 옆쪽에 따로 있었습니다. 하천가에는 시에서 만들어 놓은 거름통도 있었습니다. 텃밭에 난 풀을 매면 그냥 버리지 말고 그곳에 넣으면 잘 썩어 거름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당연히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어떻게 연관지어 해석해야 할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긴 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번화한 도심 거리에서 손전화 가게를 보았는데 단돈 2만5천 원짜리가 있었습니다.
안내 선생님 얘기로는 다른 기능은 전혀 없고 집 전화처럼 거는 기능과 받는 기능만 있다고 했습니다. 엠피쓰리 폰이니 카메라폰이니 하여 수십만 원짜리 손전화뿐인 한국의 현실과 많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홍옥’이나 ‘국광’처럼 시면서도 맛이 단 사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단 사과인 부사만 판을 치는 현실도 어쩌면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모자랐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길가 전봇대 옆에 쓰레기봉투 모아 두는 곳이 있었는데 단 한 개의 쓰레기도 봉투 밖에 버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혁명도 개인의 버릇과 삶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면 실패하는 법입니다. 한 개인이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뀌고 그 변화가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일본 도시농업연수는 일본 시민혁명 관찰여행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싶었습니다.
첫댓글 화두... 차분히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