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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714주일오전예배/김동건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광야에서 외치는 자 |
성경 | 요한복음 1:19-23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요한복음 1:19-23)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녹취자료 |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굉장히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예전에는 잘생기고, 키크고, 연예인같은 연예인들에게 연기를 시켰다고 한다면 요즘은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섭외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생활연기를 잘한다라고도 표현하죠.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활 속 복음과 삶 속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일찍 일어나자 마자 우상, 종교 섬기는 것이 문화가 되어버렸어요. 삶이 되어버렸어요. 일어나면 무조건 우상에게 절하고 나무에게 절하고, 동물에게 전해요. 또 믿고 있는 신에게 절해요. 우상과 종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믿는 것이 생활, 삶이 되어버린 거예요. 복음이 여러분의 현장에 삶과 인생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말씀 따로, 삶 따로 신앙 따로라면 무언가 되어지는 것 같지만 되어지지 않습니다. 되어지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무너집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 현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예수에 미친 사람(7절)
오늘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입니다. 제가 서론에 말씀드렸듯이 복음이 삶, 생활이 된 인물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예수에 미친 사람입니다. 7,8절을 한번 볼까요?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이렇게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세례요한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합니다. 세례요한을 메시야로 알았던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거든요. 기적을 행하고, 이적을 행하니까 메시야로 착각했던 거예요. 세례를 주니까 세례요한이라고 하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고 부조리를 파헤치고 우리가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 하니까 개혁주의자라고들 말했어요. 오늘 본문 내용을 보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기 원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본인의 역할과 사명, 주제를 잘 알고 있었어요. 본인이 그랬잖아요. 이 빛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빛을 증언하기 위해 왔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어요. 23절을 보면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리스도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다만 나는 하나님의 대로을 평탄케 하고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실 그리스도를 광야에서 외치는 도구다!라고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광야는 불모지, 생물이 자라지 못하는 황무한 땅을 말하는 것도 맞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영적 광야를 말하는 겁니다.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 앞에 하나님은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을 율법과 종교로 바꾸고 있는 현장을 말하는 겁니다. 흑암과 불신앙이 난무하고 가득한 현장, 그리스도를 도무지 믿지 않는 현장, 그리고 복음을 들어도, 그리스도를 들어도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영적 광야라고 하는 겁니다. 그 광야에서 나는 그저 그리스도로 오실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이며, 마이크, 확성기다! 단지 그뿐이다, 나는 심부룬꾼이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다. 나는 그래서 예고하는 것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여러분의 영적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예배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마른 광야, 도무지 안 될 것 같은 그 광야, 복음을 들어도 메말라가는 그 광야 같은 내 영적 상태가 그리스도를 듣고 외치는 영적 상태로 변해야 합니다.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세례요한이 얘기한 겁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영혼들이 살아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겁니다. 복음이 없어 망해가는 현장에 다른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복음이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그리스도가 필요한 겁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육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돈이 많다고 해도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부분이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은 복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한주간 복음 세미나를 통해서 충분하게 말씀과 복음을 들었잖아요. 그냥 그 말씀을 흘리지 마시고 그 말씀을 소중하게 언약으로 각인으로 뿌리로 체질으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있어야해요. 그래야만 우리 교회가 살고 우리 교회 주위가 살고 여러분들 자신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오늘 광야같이 메말라있는 내 영적상태를 회복해야 해요. 복음과 예배와 은혜를 하나님께서 계속 주시는데 내 영혼은 말라가고 피폐해져가고 있어요. 영적 황무지 영적 광야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 현장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에게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담대하게 전한 겁니다. 그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세례요한은요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는 사람이었어요. 생각과 마음속에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여러분들 주중에 삶과 인생과 생각을 하시면서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니까. 그게 다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 하면서요, 성도님들에게 설교자로서가 아니라 저한테 질문해봤어요. 너는 과연 예수에 미쳐있냐. 저한테 질문해봤다니까요. 네가 목사인데 교역자니까 이래저래 해야되고 하는건 맞는데 네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에 미쳐있냐. 질문했을 때 솔직히 자신없어요. 목사인데도 사단이 직분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여기에 자신이 없는거에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 자신에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도 세례요한처럼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하는 예수에 미친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저는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했습니다.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세례요한의 삶의 목적이었어요. 복음에 의한 삶, 복음은 모든 것이라는 그 말씀을 세례요한이 알고 있었어요. 세례 요한의 삶은 복음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자기 인생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2. “예, 아니요” 로 영적으로 분명한 자(20절)
우리는요. 예, 아니오로 영적으로 분별해야될 줄 믿습니다. 여기에 분명한 자가 되어야 해요. 여러분들 신앙의 위기가 언제 오는 줄 아십니까. 이게 예인지 아니오인지가 정확하지 않을 때 신앙의 위기가 와요. 무슨얘기냐. 오늘 20절에 보니까요. 요한이 확실히 얘기했습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데. 사람들이 너가 누구냐. 너가 그리스도냐 할 때 숨기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확실하게 드러내게 말했어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다만, 이스라엘 광야 같은 영적 현장에 나라와 백성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니까 영적 광야같은 현장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나는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것이다.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사실 때 현장이 그렇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현장에서요 우리가 인간관계가 나빠질까봐 내가 손해를 볼까봐 복음의 유익한 쪽으로 복음이 아니면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하는데 영적으로 분명하게 얘기를 해야하는데 이걸 못하고 있어요. 저건 분명히 아닌데, 저건 분명히 맞는데, 영적으로 분명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이익과 손해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흘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실한 답을 가진 여러분들이 흔들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일들이 많잖아요. 인간관계 나빠질까봐 손해볼까봐 내가 유익이 안 될까 봐, 저거만 조금 하면 내가 타협하면 내가 많은 유익이 있는데.. 그게 복음에 유익하냐, 아니냐 거기에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안 되면요 신앙생활에 위기가 온다니까요. 위기가 오지 않아도 내가 갈등을 하게 돼요. 흔들리게 되어 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그리스도 앞에 서야 되는데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내가 행해야 하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흔들린다니까요. 흔들리다 보면 불신앙이 와요. 불신앙이 오게 되면 신앙에 위기가 초래되는 거예요.
우리가 현장에서 믿음이 약하고 어렵지만 복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얘기해야 되지 않습니까? 우린 복음 가진 사람입니다. 율법과 종교와 우상을 섬기는 그런 얄팍한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로 믿고, 그분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하나님의 축복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이 유익한 쪽으로 가야 되는 거에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게 안 되니까 세례요한을 그리스도로 착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요. 마태복음 16장 13절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냐? 사람들이 나를 따라다니는데 사람들이 나를 누구로 하느냐.. 첫 번째가 세례요한이라고 그랬습니다. 두 번째가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아느냐? 그때 베드로가 중요한 시대적인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여러분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아는 교회와 성도님들과 개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타협하면 안 돼요. 그래서요, 복음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손해 봐도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하세요. 교회 다닌다고 불신자들이 지인들이 얘기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되냐?“, “너 기도한다고 기도 응답 주냐?“, ”헌금 낸다고 되냐?“, ”주일에 쉬지, 놀러 가지, 뭘 예배드린다고 예배 드리냐“, ”그리스도 정확히 알아?“, ”그리스도가 너에게 해답이 돼?“ 비꼬잖아요. 현장에 얼마나 많은 이런 얘기들이 있습니까? 근데 그게요. 사람이 뒤에서 공격하는 거지만 누가 뒤에 조정을 합니까? 흑암과 사단이 역사하는 거예요.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음을 잃어버리도록 믿음에 서지 못하도록 하나님 만나지 못하도록, 예배 드리지 못하도록, 예배의 축복 누리지 못하도록 뒤에서 사단과 흑암 및 방해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제가 뭐 주일날 30분, 40분 계속 우리가 집중할 수 없잖아요. 순간 다른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걸 얘기 하는게 아닙니다. 주일에 우리가 급한 일이 있으면 예배 드리지 못할 때도 있죠.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면 그 틈을 타고 사단이 공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옛날에 예수 믿었을 때는 뜨겁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고 진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내 인생을 바치겠노라 확신 했는데 가면 갈수록 내 영적상태와 영적신분은 모든 걸 다 놓치는 거예요. 그래서 불신앙하고 염려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해결이 되는데 그 응답이 온다는 자체가 망각하는 거예요. 아무 힘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나중에 하는 말이 나도 옛날에 예수 믿어 봤습니다.. 교회 다녀봤습니다.. 지금은? 저는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현장에 나가면, 현장에 나가면은요. 거의 80%가요, 나 옛날에 학생회장 하고요, 나 옛날에 집사 였고요, 성가대 지휘도 하고요, 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그럼 지금은요? 질문하면 대답들을 못하셔요. 그럼 저는 분명하게 얘기를 합니다. 비유 맞추지 않고.. 선생님은 예수 믿은 게 아니라 교회 건물을 다닌 겁니다.. 예수 믿은게 아닙니다, 선생님은.. 삐지든지, 말든지 저는 얘기합니다. 정확하게 얘기는 해줘야 되니까요. 오늘요. 다시 한번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분명한 자가 돼야 돼요. 세례요한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그러거나 말거나 오실 그리스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어요.
그래서 계시록 3장 15절에 보니까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양다리 걸치지 마라! 나 중심, 물질 중심, 성공 중심의, 세상의 것과 영적인 것들을 겸하지 마라. 우상과 겸하지 마라! 그 얘기예요. 차갑든지 뜨겁든지 해라.
어정쩡하게 하지 마라. 오늘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그리스도에 집중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내 생각에,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성경에 이르기를”(23절)
23절에 보니까요.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세례 요한은요. 내 생각에, 내가 알기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 생각에 그런가?‘ 이렇게 얘기 안 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오늘 이사야 선지자 말을 인용 한 겁니다. 내 생각에, 내 지식에, 내 체험에 말하지 않고 이사야서 40장 3절에 하나님 말씀 성경을 인용했어요. 저도 약간 실수하는 게요, 목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을 만나다 보니까 자꾸 어떤 이 목사다 보니까 어떤 자꾸 답을 주려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대화 중에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 내 체험 이런 것들을 자꾸 얘기할 때가 있어요. 지식 같지도 않은 거 갖고 있는 거 그 지식 얘기하려고 하는 거예요. 체험 같지도 않은 거 체험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게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제가 한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보게 하신 것이지 내 지식과 생각이 하나님 말씀보다 위대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내 생각을 말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저는요. 삐지든지 말든지 이 사람들한테 비위 맞추는 말을 안 합니다. 왜냐면 내가 즐거운 얘기 하고, 그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얘기할 건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의 영적 상태와 영혼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무엇으로만 살아납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임해야 되는 거예요.
세례요한이요. 막 칭찬하고, 격려하고, 엄지척하니까 얼마나 어깨가 올라가고, 뭔가 된 줄로 착각을 합니까? 세례요한이요. ‘여자가 나 자중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요. ’이 같은 사람이 없다.‘ 그 정도로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그러면 어깨에 힘 들어가고 ’야! 이거 내가 뭔가 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단번에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로서 심부름꾼으로 왔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을 만나는 사람이 다 살아야 되는데 여러분들의 지식과 경험과 체험을 얘기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을 해야 돼요. 하나님 말씀을 전달을 하면은요. 그 사람이 그때는 나를 싫어해요. 아니 나는 내 속 얘기를 다 얘기했는데 저분은 나한테 공감되는 얘기도 없이 하나님 말씀만 전한다? 그때는 나를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을 싫어할 거예요. 그런데요. 시간 가면 갈수록 여러분들을 기억하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여러분들을 생각할 거예요. ‘야 그때 내가 정말 어려웠을 때 그분이 육신적인 말을 하지 않고 나에게 영적인 말을 해줬구나. 하나님 말씀을 줬구나!’ 그걸 기억하는 거예요.
저번 주에 모란역에서 노숙하시는 분이 갑자기 교회를 딱 오셨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제가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저는 많이 만나봤으니까요. 왜냐하면 노숙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너무 안타깝다고 도와주고 돈을 주면 그게 소문이 퍼져가지고 그 일대 노숙자들 다 교회로 오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잘라야 해야 돼요. 그 영혼이 안타깝고 귀하지만 전체를 보려고 하면 커트 해야 되거든요. 그러면 몇십 명이 옵니다. 그 돈을 받으려고, 밥 먹으려고요. 저는 그거를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뭐 때문에 왔습니까? 저한테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그걸 원했는데 제가 바로 얘기를 하니까 약간 뜨끔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선생님이 노숙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될 거 아니냐?‘ 7~8년 전부터 노숙을 했다는 거예요. 나이가 이제 43인데 노숙을 했다는 거예요. 그럼 그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회지, 돈 주고, 뭐 먹을 것 주고, 마음 안타깝다고 다 드리는 게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전도 선교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제가 돈은 줄 수 없는데 선생님에게 중요한 인생의 중요한 분을 소개하겠다. 복음을 전했어요. 당연히 영접하겠죠. 동기가 있으니까요. 언제라도 주일날 오셔서 점심때에 밥도 드시고 예배도 드리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매일 와요. 이번 주 내내 오는 거예요. 제가 너무 귀찮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를 했죠. 성도님, 선생님이 아니라, 성도님 자꾸 이렇게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오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약간 얼굴이 안색이 편치 않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뭐 그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가끔씩 오셔서 제가 밥은 사드리고 도와드릴 수 있는데 매일매일 와서 선생님, 성도님의 일상을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삶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도와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기도를 하고, 문을 여는 열쇠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해야 돼요.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얘기를 하고요, 영적으로 그분을 살릴 수 있도록 해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내 생각, 내 지식 내 체험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인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언약의 복음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오늘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을 놓치면은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돼요. 나는 대적 안 한다고 하는데 대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신앙하고.. 이해하고 소통해야 되는데 오해하고 불통하는 자리에 내가 서게 돼요. 그래서요, 예배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온 거 일생일 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생각, 생활 이런 것도 중요하게 보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하나님 보시는 게 있어요. 뭐냐? 내가 예배의 자리에 있느냐, 없느냐. 한 주간의 어려움을 당해도 내가 주일날 예배 자리에 있느냐? 그걸 하나님 보신다니까요.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로만 복음을 체험해야지. 무슨 체험을 말하는 겁니까? 지금. 신비 체험? 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불 나가라. 뭐 그냥 성령 받으라. 그런 거 얘기하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상적인 하나님이에요. 말씀으로 정상적으로 여러분들을 통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거지. 뭐가 보이고 눈에 들리고 귀에 들리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은 신비의 하나님이지 신비주의에 체험하는 하나님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들 무슨 체험합니까? 예수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내게 응답이 되어서... 그 체험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체험, 기도 체험, 그리스도 체험, 복음 체험해야 돼요. 밖에서 말하는 체험? 다 그거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뭡니까? 곧 하나님이에요. 말씀이 육신 돼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제자는 강단의 말씀을 따라가는 거고요. 제자 마인드는 말씀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렇게 해야 돼요. 머리 굴려 인본주의 쓰고 신비한 막 체험하지 말고요. 전통 규례 허례허식 포장 체면. 그리스도 복음보다 앞선 것들은 다 내려놔야 돼요.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체면. 이런 거 내려놔야 돼요. 그거 좀 보이고 하면 어떻습니까? 서로. 험한 것도 보면서 인간적이구나... 그런 것이지 완벽하게 보이려고 그런 거 없습니다. 전통 규례 그런 거 다 내려놓으세요. 허례허식 다 내려놓으세요.
예를 들어서 그 노숙인 그 성도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어요. 냄새, 죄송한 얘기지만 냄새 많이 나십니다. 그분 오시면 새가족인데 하나님 볼 때는 한 영혼이 너무 귀한데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면, 나는 절대...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새가족을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을 보내지 않습니다. 이건희 회장 될 사람을 만드는 거지, 이건희 회장 같은 회장 총수들을 보내지 않아요? 안 보냅니다. 영혼을 보낼 때 얼마나 하나님이 귀중하게 생각 하냐.. 헐벗고 어렵고 못입고 아픈 성도들을 보내시는데 얼마나 하나님이 영혼을 품고 기도하느냐? 그걸 보시는 거예요. 그걸 안 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영혼을 보내줍니까? 안 보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될 때 보내주시는 거예요.
그런 부분들은 다 내려놔야 돼요. 그리스도가 아닌 거 내려놔야 돼요. 말씀을 들으셔도 나는 절대 그래도 못 내려놓습니다. 그래도 내려놓으셔야 됩니다. 가장 응답이 빠른 길이 그걸 내려놓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요. 약속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말씀하신 언약을 이루십니다. 그 말을 약속으로 반드시 성취하셔요. 본인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말을 내뱉었는데 약속을 안 지킨다?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셔야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1장 1절을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서 내가 하나님이니까 말씀 받아라.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 자리, 하나님 말씀 듣는 이 말씀. 이게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말씀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받는 거예요.
이번 한 주간도 영적 광야 같은 내 현장에 나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세례요한을 주축으로 우리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영적 광야 같은 현장에 복음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복음을 율법으로 종교로 만들어버리고, 흑암과 불신앙이 가득하고 난무하며, 그리스도를 도무지 믿지 않는 그 현장, 무엇보다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내 영적 광야의 현장을 하나님께서 이번 주간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들을 응답하는 한 주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붙잡고 한 주간 승리할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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